환각과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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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월까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는 현대 조각에서 공예적 요소를 발견하는 대규모 그룹 전시 <공작인(工作人) : 현대 조각과 공예 사이>가 열린다. 이곳에서 주목할 만한 두 작가, 매슈 로네이(Matthew Ronay)와  솝힙 피치(Sopheap Pich)를 만났다.

매슈 로네이의 ‘안과 밖 그리고 안과 밖, 다시’.

‘팀 버튼이 내뿜는 그로테스크한 기류와 장 미셸 오토니엘이 지닌 드라마퀸의 면모가 동시에 읽히는 작가’. 누군가가 미국 출신 작가 매슈 로네이(Matthew Ronay)를 이렇게 설명했다. 확실히 <공작인 : 현대 조각과 공예 사이> 전시장의 초입을 지키고 선 ‘안과 밖 그리고 안과 밖, 다시’는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다소 기기묘묘한 설치 작품이긴 했다. 남성의 성기와 소화기관, 적혈구를 연상시키는 조각들은 터질 듯한 카니발적 색감이 덧입혀져 초현실적 풍경을 연출했는데, 수직으로 돌출한 조각에서는 이따금 자그마한 점토 구슬이 요란하게 떨어지며 전시장의 적막을 깼다. 로네이는 이 수수께끼와도 같은 작품의 모티프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사후세계에서 얻었다고 설명한다. “그리스 신화에는 저승으로 향하는 스틱스 (Styx) 강이 등장해요. 이곳에서 망자는 뱃사공 카론(Charon)의 배에 몸을 싣고 강을 건넌 후 비로소 사후세계로 가게 되죠. ‘안과 밖 그리고 안과 밖, 다시’는 망자가 스틱스강을 건너 카론을 만나고 사후세계에 진입하는 여정을 형상화한 작품이에요. 수직으로 돌출한 성기 모양 조각은 카론을 뜻하는데, 이는 사람이 죽은 후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을 생리학적으로 무언가를 분출하는 성기에 은유한 것이랍니다.” 작품을 통해 죽음, 성, 주술, 신화를 말해온 로네이는 ‘다 자란 듯 보이는 것, 그러나 반드시 사람이 제작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라나는 것’을 창조하는 시도를 즐긴다. 공상 과학, 식물학, 진균학, 생물학에 이르는 작가의 광범위한 호기심과 탐색은 이러한 초현실적인 시도를 가능케 하는 초석이다. “매일같이 위키피디아를 들여다보며 하루를 보내는 것 같아요. 일례로 최근 기생충에게 공격당하는 듯한 느낌을 환기시키는 작품을 완성했는데, 이는 위키피디아에 ‘Troph’라는 접미사를 검색하며 시작한 작업이었어요. 사물기생균(Necrotrophs), 겉입틀류(Ectotrophs), 독립 영양 생물(Autotrophs) 등에 관한 문서를 끈질기게 추적하며 작업을 이어갔죠.”

솝힙 피치의 ‘고난’.

로네이가 환각제를 복용한 후의 도취 상태와도 같은 사이키델릭 아트를 보여준다면, 캄보디아 출신의 솝힙 피치(Sopheap Pich)는 보다 공예에 밀착한 작품을 선보인다. 피치의 유년 시절인 1970년대 후반 캄보디아에서는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급진적 무장 단체 크메 르루즈(Khmer Rouge)가 등장했는데, 이때의 경험은 그의 작업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시간, 기억, 몸이라는 주제로 발전했다. “크메르루즈가 캄보디아를 점령했을 당시 네 살이었어요. 배고픔에 굶주리던 또래 친구들과 음식을 찾고 게임을 하며 하루를 보내곤 했죠.” 이후 1984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해 지내다 2002년 캄보디아로 돌아온 피치는 자국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대나무와 등나무, 삼베, 밀랍, 흙 안료를 주재료로 작업을 이어갔다. 그의 대표작이자 이번 <공작인> 전시장을 빛낸 ‘고난’도 대나무를 섬세하게 직조해 완성한 대형 조각이다. 아프리카에서 자생하는 오딜나무의 씨앗에서 영감을 얻은 ‘고난’은 가까이 다가가면 정교한 만듦새에 감탄하게 된다. “자연은 수많은 예술가들의 선생님과도 다름없어요. 당신에게 저를 소개할 때 ‘자연의 아들’이라고 설명한 이유도 이 때문이죠. 제 조각은 끊임없이 자연을 응시한 결과 탄생해요. 자연은 제가 무한한 영감을 주는 원천이에요.”

피처 에디터
전여울
포토그래퍼
최영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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