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분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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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마이애미’ 참가 10주년, 피카부 백 탄생 10주년. 겹경사를 맞은 펜디의 아주 특별한 2018년 마이애미.

<펜디FF로고N.2>,더블F로고를 활용한 작품으로 정육면체 고형물 속에서 물이 흐르며 2개의 F를 보여준다.

<미로>, 물을 채우면 펜디의 고전적 모피 무늬인 미로 모양이 드러난다.

10개의 분수가 전시된 부스 모습.

디자인을 사랑하는 이들의 축제 ‘디자인 마이애미(Art Basel and Design Miami)’. 매년 12월이면 세계 3대 아트 페어로 꼽히는 아트 바젤이 미국 마이애미 비치에서 열린다. 전 세계의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 큐레이터, 갤러리 등이 따스한 마이애미로 몰려든다는 얘기. 패션계도 예외는 아니다. 전통의 패션 하우스들 역시 패션을 넘어선 영역에서 발휘한 아티스틱한 면모를 뽐내기 위해 마이애미로 향한다. 2018년은 펜디가 디자인 마이애미에 참여한 지 10년째 된 해였다. 이 뜻깊은 해를 기념해 펜디는 네덜란드 출신 디자이너 사빈 마르셀리스(Sabine Marcelis)와 함께 물 재발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물의 형태 (The Shapes of Water)> 전시를 선보였다. 물은 펜디의 역사에서 꽤나 중요한 소재이자 영감의 원천이었다.

<팔라초 델라 치빌타 이탈리아나>, 로마에있는펜디본사를본뜬분수.

<피카부 백>, 피카부 탄생 10주년을 기념하는 분수.

네덜란드의 젊은 디자이너 사빈 마르셀리스.

특히 펜디는 물과 로마의 분수를 중요한 디자인 요소로 활용해왔다. 시작은 1977년, 그러니까 처음 기성복 컬렉션을 선보인 그때, 업계 최초로 패션 필름 <물의 이야기(Histoire d’Eau)>를 발표한 바 있다. 로마를 방문한 젊은 관광객 수지 다이슨이 펜디 의상을 입고 분수를 배경으로 도시의 매력에 빠지는 내용을 담은 필름이었다. 2013년엔 로마의 트레비 분수와 그 밖의 분수를 복원 하는 ‘분수와 펜디(Fendi for Fountains)’ 사업을 시작했고, 칼 라거펠트는 야외 분수들을 담은 ‘물의 영광(Philanthropic)’ 사진전을 파리와 뮌헨에서 열었다. 2016년에는 하우스 설립 90 주년을 맞아 트레비 분수를 런웨이 무대로 변신시켜 ‘전설과 동화’라는 테마로 쇼를 선보이기도 했으니, 이쯤 되면 물과 분수로 탄생한 브랜드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빈 마르셀리스 는 펜디의 상징 10가지를 새롭게 표현한 10개의 분수로 브랜드의 역사적 정체성을 형상화했다. 그녀의 작품은 군더더기 없는 형태 덕분에 재료의 속성이 돋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분수 작품은 트래버틴 대좌(불상을 안치하기 위한 대)에 올려져 있 는데, 트래버틴은 펜디 본사이자 이탈리아 건축의 역사적 건물인 ‘팔라초 델라 치빌타 이탈리아나’에 많이 쓰인 석재다. 1965년 칼 라거펠트가 합류하며 만든 FF 로고를 본뜬 2개의 분수나 로마의 타일과 모피 태블릿에서 영감 받은 분수도 있다. 라거 펠트가 1972년에 디자인한 아스투치오 코트를 만드는 모피 제작 기법 ‘게로나투라’에 착안한 분수는 선과 십자 무늬로 이루어져 있다. 주황색과 투명 수지 패널이 교차하면서 생긴 세로 홈이 ‘게로나투라’ 기법을 연상시킨다. 마르셀리스는 디자인이 그저 고정된 작품에 그치지 않는 진정한 감각 경험이라고 믿는다. 유려하고 독특한 심미성을 부여할 때, 경험은 기능이 되는 것이다. 디자인 마이애미 크리에이티브 최고 책임자 로드먼  프리맥은 “펜디가 사빈 마르셀리스와 협업해 ‘물의 형태’를 서정적이고 깊이 있게 탐구한 덕분에 관람객들이 행사장의 바쁘고 정신없는 분위기에서 한 발짝 물러나 고요한 순간을 누릴 수 있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라고 반겼다.

크리스 울스턴이 디자인한 10주년 기념 피카부 백.

디자인 디스트릭트에 위치한 펜디 부티크에서 열린 피카부 백 전시.

양태오가 디자인한 한국 전통문화에서 영감 받은 10주년 기념 피카부 백.

펜디 부스 입구에는 피카부 백에서 영감 받은 분수를 설치해 시선을 모았다. 펜디를 대표하는 피카부 역시 올해 탄생 10주 년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한편 마이애미 디자인 디스트릭트에 위치한 펜디 부티크에서는 세계 각국의 아티스트들이 해석한 피카부 백 전시도 함께 진행됐다. 네덜란드의 사빈 마르셀리스 를 비롯해 한국의 양태오, 미국의 크리스 울스턴, 일본의 오가 와 키이치로, 홍콩의 오스카 왕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한국 대표로 참여한 양태오는 한국 전통문화에서 영감 받아 여성의 삶이 자유롭지 못했던 조선 시대로 되돌아갔다. 전통 기법인 옻칠로 색을 입히고, 3D 프린팅을 사용해 전통과 현대의 융합을 담은 디자인으로 전혀 새로운 피카부 백을 탄생시켰다. 2008년부터 이어진 디자인 마이애미와의 협력과 아티스트 후원은 펜디의 무한한 창조 정신, 수공예에 대한 존중과 열정을 디자인 세계와 공유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이루어진 협업들은 디자인과 패션의 세계를 아름답게 혼합하고 두 세계의 미래적인 ‘소통과 융합’을 실현한다. 펜디가 마이애미에서 공개한 두 개의 프로젝트는 2019년 전 세계로 확장될 펜디 글로벌 프로그램의 출발점이다. 출발은 완벽했다.

패션 에디터
정환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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