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듀오 빅터&롤프

이채민

네덜란드 예술 대학을 졸업한 두 디자이너 빅터 호스팅과 롤프 스뇌렌이 만든 패션 하우스, ‘빅터&롤프’가 올해로 론칭 25주년을 맞았다. 레디투웨어를 떠나 쿠튀르 컬렉션에 매진하는 그들은 여전히 패션은 예술이 될 수 있고, 입을 수 있는 예술 작품이라 믿는다. 5월 27일부터 9월 30일까지 네덜란드 쿤스탈 로테르담에서 열리는 <빅터&롤프 : 패션 아티스트 25년> 전시와 그간의 기록을 담은 책의 공개를 앞두고 더블유코리아와 이야기를 나눴다.

VIKTOR & ROLF PORTRAITS BY TEAM PETER STIGTER
<W Korea>먼저 25주년을 축하한다. 쿤스탈 로테르담에서 열리는 전시를 비롯해 파이돈에서 발간하는 책 소식도 들었다. 이를 기념하는 또 다른 이벤트가 있나?
Viktor & Rolf 고맙다. 7월에 쿠튀르 컬렉션을 발표하고, 웨딩과 이브닝 웨어를 위한 마리아주와 수아 라인을 강화해 새로운 컬렉션을 준비 중이다.

처음 브랜드를 론칭했을 때와 25주년이 지난 지금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패션 세계의 변화를 설명해야겠지. 인터넷과 스트리트 신의 비약적 발전은 패션 지형을 평등한 세계로 진화시켰다. 누구든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말이다. 패션은 모두가 아닌 몇몇 전문가에게만 해당하고 누리던 때가 있었잖나.

1993년 론칭했을 당시에는 SNS와 디지털 플랫폼이 없었는데, 새로운 플랫폼을 활용하는 당신만의 방식이 있나?
그것보다 정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당시 재밌는 이야기를 해 주겠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어떻게라도 어디엔가 우리가 소개되기를 바랐다. 그때 유명 잡지였던 <The Face>에 이네즈&피노트가 찍은 사진이 실렸는데, 그때 크레딧에 우리가 뭘 적은 줄 아나? 전화번호를 적었다. 혹시라도 우리와 연락이 닿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말이다. 집에서 나오지도 않고, 전화기 옆에서만 지냈다. 올지도 모르는 우연한 기회를 놓치게 될까 봐(하하).

입을 수 있는 아트를 보여준 2015 F/W ‘Wearable Art’.

가면무도회를 연상시키는 2018 S/S ‘Surreal Satin’.

리본의 낭만성을 극대화한 2005 S/S ‘Flowerbomb’.

설치 작품처럼 보이는 2015 S/S ‘Van Gogh Gils’.

설치 미술로 시작해 향수, 오트 쿠튀르, 아이웨어, 마리아주와 수아 등등 라인이 아주 풍성하다. 각각의 라인을 통해 어떤 것을 보여주고자 하나?
오트 쿠튀르, 이브닝드레스, 웨딩드레스는 인생의 특별한 순간에 입는 옷들이다. 그런 옷을 디자인한다는 건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조각적인 형태와 실루엣이 나오게끔 옷을 만든다.

컬렉션에 따라 접근하는 방식이 다른가?
쿠튀르는 런웨이에서 보이는 것을 크게 염두에 두기 때문에 쇼에서의 퍼포먼스가 디자인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다. 그런가 하면 마리아주와 수아 라인처럼 웨어러블한 디자인은 인더스트리의 생산 공정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게 과정과 목적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향수든 패션이든 아이웨어든 그 시작은 하나의 아이디어와 생각에서 출발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2015년에는 쿠튀르와 액세서리 라인에 전념하기 위해 레디투웨어를 중단했다. 이 생각은 여전히 유효한가?
레디투웨어를 다시 하고 싶다는 마음은 딱히 없다. 마리아주와 수아 라인을 작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웨딩드레스를 선보이는 마리아주 컬렉션.

웨딩드레스를 선보이는 마리아주 컬렉션.

사실 웨딩 컬렉션을 할 줄은 몰랐다. 어떤 점에 매료됐나?
웨딩드레스는 소설같이 각기 작은 우주를 가지고 있다. 마리아주는 단순히 웨딩드레스가 아니라 예술적인 해석과 브랜드의 세 가지 핵심을 담아내는 작품이다. 바로 예상 밖의 우아함, 개념적인 화려함, 그리고 도발적인 쿠튀르.

레디투웨어를 선보일 때처럼 트렌드를 만들고, 더 상업적인 아이템을 내놓고, 더 많은 대중이 우리의 아이템을 즐겼으면 하는 생각은 없는가? 그런 방식의 일환이 튤(Tulle) 컬렉션 같은 것인지 궁금하다.
쿠튀르를 하는 과정이 정말 행복하다. 튤은 액세서리에 가까운 컬렉션인데, 즐겁고 명랑한 방식으로 전개하는 라인이라 보면 된다.

쿠튀르의 창작 과정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내가 하고자 하는 것, 원하는 것과 아이디어가 명확할 때, 창작 과정 중 가장 큰 성취감을 느낀다. 우리는 그것을 ‘Light Bulb!(백열 전구)’의 순간이라고 부른다.

다가올 6월 8일에 뉴욕에서 새로운 라인을 선보인다고 들었다.
그것은 아주 사적인 프레젠테이션이 될 거다. 리테일과 선택된 프레스를 초대할 건데, 쇼는 아니고 컬렉션을 사진으로 찍어서 룩북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스케치하는 디자이너 빅터 호스팅과 롤프 스뇌렌.

스케치하는 디자이너 빅터 호스팅과 롤프 스뇌렌.

아카이브에서 영감을 얻는 편인가? 아카이브에서 디자인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설명해줄 수 있나?
일반 패션사도 관심이 많지만 우리가 해온 모든 작업을 소중히 여긴다. 지나간 패션, 과거의 것을 지키는 것 말이다. 우리가 꾸준히 진행 중인 인형 컬렉션, ‘Dolls’가 그 예가 될 것 같다.

‘Dolls’ 프로젝트는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나?
패션이라는 울타리를 초월한 방식을 고민했다. 우리의 가장 아이코닉한 옷을 복제해 인형에게 입혀 영원성을 부여하고 싶었다.

2017 S/S 쿠튀르 컬렉션 당시 더블유와 백스테이지 촬영을 함께했다. 쇼 직전까지 드레스의 길이를 다듬고, 세부 장식을 체크하고, 여러 명이 함께 옷을 입히는 과정을 눈으로 직접 보면서 스태프들의 단단한 팀워크도 목도했다. 아틀리에 구성원은 어떤 인물들인가?
우리는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최상의 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틀리에의 수장을 비롯한 몇몇은 아주 긴 시간을 함께해왔다. 마틴(Martin)은 1998년 오트 쿠튀르 쇼, 아토믹 밤부터 함께해왔으니 벌써 20년째다. 매번 새로운 것을 선보이고 싶어 하는 우리를 가장 잘 이해하기에 테크닉에 대한 기준이 점점 높아진다. 언젠가 우리의 스케치가 볼륨이 과한 걸 보더니 ‘어이 이건 심각해’라고 말한 적도 있다.

네덜란드의 쿤스탈 로테르담에서 <빅터&롤프 : 패션 아티스 트 25년> 전시를 앞두고 있다.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빅터&롤프 작업의 정수다. 콘셉추얼함, 감성적인 부분, 조각적인 면까지 모두. 가장 자랑하고 싶은 점은 우리의 장인 정신을 보여줄 수 있는 크래프트맨십이 중앙에 위치한다는 거다. 이건 정말 중요한 거다.

쿤스탈 로테르담에 전시될 작품을 들여다보며 체크하고 있다,

쿤스탈 로테르담에 전시될 작품을 들여다보며 체크하고 있다,

전시할 작품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나? 수많은 컬렉션 중에 45여 개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전시를 기획한 티에리 막심 로리에와 함께 골랐다. 가장 조각적이고도 단호한 옷들로, 비주얼적으로 강렬한 것을 선택했다.

티에리 막심 로리에와의 작업은 어땠나?
그는 패션 전반에 대해 아는 게 정말 많다. 그래서 25주년 하이라이트라고 할 만한 특징을 선택하는 데 트러블이 없었고, 그의 안목에 기댄 바도 크다. 우리의 작업을 인정하고 좋아했기에 가능했지만.

25주년을 기념하는 책 소식도 들었다. 어떤 식으로 구성되었는지 소개해달라.
책은 세계적인 그래픽 디자이너, ‘이르마 붐(Irma Boom)’이 맡았다. ‘CoverCover’라고 이름 지었고, 붐의 아이디어에 따라 복잡하게 접혀 있는 디자인이 특징이다. 각각의 스프레드는 더블 페이지로 펼쳐지게 구성되었고, 반대쪽 이미지는 흑백으로 구성했다.

브랜드 역사를 돌이켜보며 기록할 만한 결정적 순간에 대해 말해줄 수 있나? 쇼, 전시, 이벤트, 퍼포먼스, 컬렉션 어떤 것이든 좋다.
프랑스 남부의 이에르(Hyeres)에서 일 년에 한 번씩 열리는 이에르 콘테스트에서 1993년에 우리가 우승했을 당시가 아닐까. 패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준 계기가 되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우리 스스로에게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 무대에 서서 청중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던 ‘Russian Doll Show’도 중요한 순간으로 기억한다.

패션 에디터
이예진
특파원
이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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