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다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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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 한국인이 가장 많이 방문한 동남아 국가, 베트남. 베트남의 남쪽에는 해발 1,500m에 펼쳐지는 또 하나의 세계, 다랏이 있다.

1,500m는 대체 어느 정도 높이일까? 일단 123층 규모인 제2 롯데월드의 높이가 555m, 북한산이 836.5m, 설악산 대청봉이 1,708m다. 베트남 남부의 다랏(Da Lat)은 해발 1,500m에 자리한 도시다. 그러니까 우리가 산 정상에 올랐을 때의 그 쾌청한 공기가 머무는, 하늘과 구름이 가까운 곳에 있다. 고산지대라고 해서 세상을 등진 강호의 고수가 수련하고 있을 법한 바위산에 리조트가 덜렁 있다거나 하는 풍경은 아니다. 인구 25만 명이 사는 소도시이니, 높은 고도에 또 하나의 세계가 펼쳐져 있는 셈이다. 이 세계가 만들어진 때는 베트남이 프랑스의 지배를 받던 19세기 후반. 고원을 탐사하던 프랑스 학자가 지금의 다랏을 발견했고, 후텁지근한 베트남 기후에 시달린 프랑스인들은 낙원을 찾은 듯 쾌재를 부르며(분명 그랬을 것이다) 휴양지를 건설했다. 과거 베트남 왕족의 여름 별장도 다랏에 있었다. 연평균 20도 이내의 쾌적한 기온 덕에 다랏은 최근 베트남 커플이 즐겨 찾는 핫한 신혼 여행지로 떠올랐다. 고산지대라 저녁이면 낮과 달리 꽤 쌀쌀해지니, 다랏에 사는 개들은 오뉴월에도 감기에 걸릴 만하다. 하롱베이, 다낭, 나트랑 등 이미 유명한 베트남의 바다 휴양지에 비하면 다랏은 아직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구름에 맞닿을 것처럼 높은 세상의 다랏, 땅으로부터 멀리 도망치듯 가보면 좋을 그곳의 인상적인 풍경을 꼽아봤다.

숲속 호숫가에 숨어 있는 에덴시(Edensee) 리조트.

숲속 호숫가에 숨어 있는 에덴시(Edensee) 리조트.

소나무 숲속 리조트
시내에도 숙박 시설이 많지만, 꼬불 꼬불한 산길을 따라 좀 더 깊숙이 들어가면 고급 리조트들이 군데군데 자리한다. 거대한 뚜옌람(Tuyen Lam) 호수를 둘러 싼 소나무 숲에 골프 리조트나 옛 프랑스 양식으로 지어진 빌라들이 숨어 있는 모양새다. 이 정도의 자연 환경과 리조트라면 5성급 호텔 객실료와 비슷한 수준이어야 할 텐데, 워낙 물가가 싼 베트남이라 감탄사가 육성으로 나올 만큼 저렴한 숙소를 구할 수 있다(하지만 베트남에선 최고급 수준이어서 신혼여행차 오는 내국인은 거의 없고 주로 외국인들 차지라고). 만약 베트남까지 가서 리조트에 틀어박혀 힐링하고 싶다거나, 자연 속에서 양궁, 테니스, 카약 등을 즐기고 싶다면 주소에 뚜옌람 호수가 들어가는 리조트를 적극 권한다. 객실 침대의 이불이 살짝 축축하게 느껴질 정도로 습기가 많아 추위를 타는 사람이라면 한여름에도 결국 난방을 틀테지만, 넓은 별장 느낌의 리조트에서 호젓하고도 호사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피톤치드가 함께할 것이다.

성스러움과 운치를 모두 충족하는 쭉럼 선원.

성스러움과 운치를 모두 충족하는 쭉럼 선원.

쭉럼 선원
다랏 일대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사원인 쭉럼 선원에 가려면 시내 쪽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산을 가로질러 가야 한다. 이곳에서 느낀 감상과 비슷한 맥락의 것을 대한민국 안동 병산서원에서도 느껴본 적이 있다. 당대의 엘리트들이 학업에 정진하겠다고 모인 곳의 운치가 이렇게 좋아서야, 공부를 하겠다는 건지 풍류를 즐기겠다는 건지 알 수 없었던 바다. 승려 100여 명이 수행 중인 쭉럼 선원에는 부처를 모시는 대웅전과 종루는 물론 잘 가꾼 꽃이 가득한 미니 정원, 호수가 바라보이는 긴 산책길이 있다. 호숫가에 일렬로 서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햇살을 만끽하고 있는 거북이들도 나름 수행 중인 듯하다.

현지인과 여행객으로 붐비는 다랏 시장.

현지인과 여행객으로 붐비는 다랏 시장.

다랏 시장과 쓰어다우
시내 중심가에 큰 규모의 상설 시장이 있다. 생활에 필요한 각종 물건과 다랏에서 재배한 식자재와 꽃, 길거리 음식 등등 현지인의 삶과 분위기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활기찬 곳이다. 옷을 늘어놓고 파는 상점에서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 포스터를 과감한 사이즈로 프린트한 티셔츠를 만날 수도 있다. 정처 없이 걸어 다니는 동안 시장에서 마주치 는 상황 치고는 이질적이다 싶은 장면을 자주 접하는데, 현지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각종 빵을 수프 같은 것에 찍어 먹는 모습이다. 빵과 곁들여 먹는 그것의 정체는 ‘쓰어다우’라는 두유. 우리가 아는 두유 맛이 아닌, 더 담백하고 덜 걸쭉하며 콩물에 가까운 맛이다. 다랏은 베트남인에게 꽤 추운 지역이기 때문 에 이곳에선 아침 식사 대용이나 간식으로 따뜻하게 마실 수 있는 쓰어다우가 흔하다. 베트남 중에서도 다랏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 마찬가지로 시장엔 옷은 물론 열쇠고리 장식, 휴대폰 케이스까지 니트를 이용한 품목이 많은데, 다랏의 인형은 옷마저도 두툼한 ‘핸드메이드’ 니트 드레스를 입었다.

시내 중심에 있는 쑤언흐엉 호수.

시내 중심에 있는 쑤언흐엉 호수.

쑤언흐엉 호수
서울에 한강이 있다면, 다랏엔 인공 호수인 쑤언흐엉이 있다. 어 디로 이동하든 이 호숫가를 지나칠 확률 이 크다. 그냥 잔잔한 물가가 아니라 꽃과 나무가 있는 공원, ‘프렌치 양식’의 집과 건물, 평화로운 풍경을 감상하기 좋은 벤치에 둘러싸인, 총둘레 7km의 너른 호수다. 호숫가에 인접한 카페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보면 언뜻 에펠 타 워처럼 보이는 타워가 눈에 띄는데, 이름이 정말 ‘리틀 에펠 타 워’다. 이 도시를 세운 프랑스인들의 존재감이 새록새록 느껴진 달까? 사실은 전화국에서 세운 송신탑이지만. 산책하기 좋은 쑤언흐엉 호숫가에선 웨딩 촬영 중인 커플도 자주 본다. ‘쑤언’은 봄, ‘흐엉’은 향기라는 뜻이다.

휘핑 크림으로 만든 거품보다 고소한 거품의 달걀 커피.

휘핑 크림으로 만든 거품보다 고소한 거품의 달걀 커피.

커피
베트남 커피 브랜드인 G7 의 빨강 포장 인스턴트 커피는 국내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베트남 여행자라면 누구나 연유를 넣은 베트남식 커피를 마셔볼 것이다. 웬만한 카페 메뉴판에 커피 종류가 많아 여태껏 몰랐던 자신의 결정 장애를 발견할 수 도 있다. 특징적인 커피를 꼽자면, 아이스 블랙 커피이지만 에스프레소만큼 진한 소량의 커피와 얼음을 따로 내어주는 ‘카페다’, 역시 진하게 내린 커피와 연유를 섞어 마시는 ‘카페 쓰어 농’(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어 드리퍼 역할을 하는 ‘커피 핀’이 연유 깔린 커피잔 위에 얹어진 채로 나온다), 달걀을 섞은 ‘카페 껨 쯩’. 특히 영어로 에그 커피라고 표기된 것은 맛보기 전까지 커피에 달걀노른자 동동 띄운 건가 싶어 긴장하게 만들지만, 흰자로 만든 포근한 거품과 노른자로 커스터드 크림처럼 만든 것을 커피와 섞어 마신다고 생각하면 된다.

어떻게 갈까?
한국에서 다랏으로 갈 때는 베트남 내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거나 호치민, 나트랑, 무이네에서 버스를 탄다. 버스를 타면 어느 순간 꼬불꼬불한 산길을 한참이나 달리는데, 나무에 걸친 안개를 목격하면 높은 세상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실감이 난다. 베트남항공을 이용해 인천이나 부산에서 베트남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으면 베트남 주요 국내선을 무료로 두 번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나의 다음 휴가지를 결정해줄 만한 팁. 하노이, 호치민, 다낭으로 가는 베트남항공을 이용할 때는 자연히 다랏이나 다른 도시로도 여정을 짜야 마땅하겠다. 비즈니스 티켓일 경우,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베트남 국내선도 비즈니스석으로 제공된다. 침대처럼 180도 뒤로 젖혀지는 A350의 비즈니스석을 탐내볼 만하다.

에디터
권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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