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구를 밤에 만났다. 어둠이 깔리고 조명을 켜면 어른들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yeojin9oo

 

성근 짜임의 니트 톱은 Wooyoungmi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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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여기 들어가도 되나요? 기분이 이상해요.” 촬영 장소인 호텔의 바 앞에서 여진구가 스태프들을 웃게 했다. 올해 성인이 된 그가 못 갈 곳은 호텔 바가 아니라 어디에도 없다. 앞으로 펼쳐진 스무 살 이후의 시간 동안 그는 여느 20대가 그러하듯 여러 잔의 술을, 외국의 숱한 도시를, 아주 많은 밤을, 사랑과 이별을 경험할 테다. 그리고 많은 배우들이 그러하듯 이 경험들을 연기의 재료로 삼을 것이다. 사춘기와 변성기를 모두 카메라 앞에서 보여온 여진구는 10년 동안 쉬지 않고 일을 해온 직업인이지만 올해부터 그가 보여줄 얼굴은 조금 달라질지 모른다. 여진구에게 어른의 시간은 이제 시작이니까.

스트라이프 실크 셔츠는 Prada, 소매에 용무늬를 수놓은 재킷은 R. Shemiste, 검은색 팬츠는 Juun. J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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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에 모피를 부착한 초록색 로브는 Gucci, 검은색 티셔츠는 Rick Owens, 팬츠는 J Koo, 목걸이는 Cheap Monday, 반지와 뱅글은 2 Dello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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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고등학교 졸업식이었다. 뭘 하며 보냈나?
새로 들어가는 드라마의 대본 리딩을 좀 했다. 친구들 만나고, 가족과 식사하고 그런 평범한 졸업식이었다.

<대박>은 성인으로서의 첫 드라마다. 대하는 마음가짐이 다른가?
성인이 된 후 첫 작품이니까 아무래도 특별함이 있는 것 같다. 부담감까지는 느끼지 않으려고 경계하는데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무게감은 분명 있다. 어느 정도 무거움을 가지고 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잘하고 싶다는 욕심도 생기고.

사극인 이 드라마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영조라는 임금에 대해서는 그 업적이나 아들인 사도세자와의 관계 정도의 역사를 배웠을 뿐, 젊은 시절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대본을 읽으면서 연잉군이라는 캐릭터가 가벼운 역할이 아니라는 생각 이 들었고, 연기해보고 싶었다. 도박을 소재로 한 사극이다 보니 왕조를 가지고 내기를 건다거나 하는 현대적인 재해석을 품고 있는 점도 흥미로웠다. 승부욕을 가진 왕이라는 인물의 감정선 자체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입학을 앞두고 있다. 대학 생활에 가장 기대되는 점은?
연극영화과에 진학하니까 관심 분야가 비슷한 친구들과 모인다는 게 기대된다. 동기들끼리 연기나 예술에 대해 깊이 있게 토론해보고 싶다. 어릴 때부터 현장에 다니면서 선배님은 많이 만나왔지만 동갑내기나 또래를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영화광이나 연극광도 있을 테고. 내 나잇대의 보통 친구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나는 현장에서 연기를 배워온 스타일이다 보니 이론적인 부분을 채우고 싶은 욕구도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
변성기 때. 중학교 1, 2 학년 시절 음성이 갑자기 변해버렸다. 마침 앞으로 배우를 하겠다는 결심을 진지하게 했을 땐데 배우로서 중요한 부분인 목소리가 이상해지니까… 스스로 컨트롤하거나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까, 당시엔 정말 힘들었다.

그 시기를 거쳐 오히려 근사한 저음이 되지 않았나?
물론 지금은 행운으로 여기고 감사하는 부분이다. 좋은 선물을 받은 만큼 장점이 될 수 있도록 가꾸고 싶다. 하지만 그때는 불안이 더 컸다. 변성기 때 남자아이들 목소리 들어보셨나? 듣기 힘들다(웃음). 카메라에 녹화되어 영상으로 나오는 걸 내 스스로도 듣기가 싫었다. 말수도 적어지고, 성격도 위축될 정도로 심각했다. 지나간다는 걸 알면서도 힘들어했다.

 

레오퍼드 프린트 셔츠는 Saint Pain, 검은색 와이드 팬츠는 R. Shemiste, 반지와 뱅글은 2 Dello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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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 사진가가 ‘스무 살에 어떻게 이런 눈빛을 가질 수 있을까’라고 했다. 또래보다 성숙하게 느끼는 사람이 많은데, 이유가 뭘까?
아무래도 목소리가 저음이고 피부색도 어두운 편이고, 얼굴선이나 이목구비도 굵고 큼직큼직한 편이라서 그렇게 봐주시는 거 같다. 내가 봐도 여린 느낌이 아닌 거 같다(웃음).

몇 년 전 더블유와의 인터뷰에서 스무 살이 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묻는 질문에 운전면허 따기라고 답했다. 얼마 전 드디어 면허를 땄는데 차를 몰고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
동해 쪽으로 가보고 싶다. 어릴 때부터 사극을 촬영하면서 경상도부터 충청도까지 다 다녔는데 유독 그쪽으로 많이 안 가봤다. 촬영 말고 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

어떤 어른이 되고 싶나?
많이 부딪쳐보고 도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아직 모르는 부분이 많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슬픔이건 좌절이건 격렬하게 느껴봤음 좋겠다. 그게 연기가 되어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우선 나라는 사람 자체로도 많이 자라고 여유를 늘 가졌으면 한다.

‘소년에서 남자로’ 같은 표현이 늘 따라다니는데 들을 때 어떤 생각이 드나?
아직까지는 괜찮은 거 같다. 20대가 훌쩍 지나 서른 마흔 됐는데도 그런 얘기 들으면 심각한 거겠지만. 내가 자라온 과정을 많은 분들 앞에서 보여드린 건 사실이니까. 계속 소년에 머물러 있는 것보다는 좋은 거 아닐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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