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각자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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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그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세대와 그 무렵에 태어나 이제야 해당 문화를 곱씹고 있는 세대가 각자의 입장에서 솔직한 생각을 털어놓았다.

90년대 생들이 말하다

너의 명곡, 나의 명곡

87년생인 형과 함께 MBC <무한도전>에서 기획한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이하 토토가)를 시청했다. 들썩들썩한 노래 를 듣다 보니 흥이 났고, 형과 함께 아는 노래 몇 곡을 따라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갑자기 말이 없어진 형을 힐끔 쳐다보니 눈가가 촉촉해져 있었다. ‘아, 그래도 형이 나이가 좀 들었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그 모습이 참 낯설게 느껴졌다. 90년대에 태어났지만, 90년대 문화를 온전히 누린 것은 아니었던 나에게 ‘토토가’는 언론에서 말하는 ‘추억 공유’의 의미로는 와 닿지 않았다.

방송이 끝나고 난 뒤, SNS에는 추억의 가수들에 대한 글이 무수히 올라왔다. 단순히 가수들의 공연뿐만 아니라 의상, 자 막, 심지어 백댄서까지,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한 제작진과 출연진의 모습에 감동받은 사람도 여럿 있었다. 토토가는 찬란했던 과거를 다시 한번 공유하고 즐길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분명 좋은 기획이었다. 눈물을 흘리는 가수들과, 그들과 함께 울먹이는 팬들의 모습을 보면서, 90년대 음악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와는 별개로, 음악이라는 것이 단지 청각의 영역만은 아니라고 더욱 믿게 되었다.

하지만 몇 가지 의문이 남았다. 모든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양 90년대 음악을 찬양하고 ‘이게 진짜였지’, ‘전설이었지’ 라고 하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내가 그 시대의 음악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요즘 가요가 어떻다느니, 예전만 못하다느니, 비판의 잣대를 세우는 사람들 때문이다. ‘과거의 것’의 정의가 요즘에 비해 좋은 것이라면, 조용필을 듣던 사람들이 ‘명곡’이라는 90년대 대중가요를 듣고 이게 무슨 음악이냐고 해도 딱히 할 말이 없을 거다. 그렇게 가치 있고, 명곡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었다면, 왜 진작에 꾸준히 찾아 듣지는 않았는지, 왜 가끔 가는 노래방에서나 불렀는지 궁금해진다. 누군가는 “그때 음반 판매량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어!”라고 욱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음반 시장의 판도는 완전히 바뀌었고, 대중 가수의 인기를 가늠하는 척도도 크게 달라졌다. 과연 90년대 대중음악과 2000년대의 대중음악의 우위를 가릴 수 있을까? 과거의 ‘대중음악’과 요즘의 ‘대중음악’의 속성은 결국, 심미성, 진정성, 지속성이라는 특징을 가진 예술 음악의 분명한 대척점에 서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또한, 90년대 가요가 2000년대 가요의 시발점이었다는 점과 ‘대중’ 가요로서 ‘대중’의 입맛에 맞게 발전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추억과 밀접한 음악과 그렇지 않은 음악의 평가는 별개로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정말 사람들이 90년대 음악을 음악적인 측면에서 한정시켜 치켜세우는 것인지, 아니면 추억의 테두리 안에 있기 때문에 좋게 보는 것인지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 재밌는 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2’009년 K POP 차트 30’ 이란 제목의 동영상이었는데, 당시 차트를 석권했던 노래들의 뮤직비디오가 연달아 나오는 것이었다. 조회 수는 약 150만, 좋아요 수는 8만 개가 넘었다. 그때를 기억하고 즐겼던 친구들은 추억, 고전, 레전드와 같은 단어를 사용하며 댓글을 썼다. 자연스럽게 ‘토토가’를 오롯이 즐겼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전국적으로 방송되어 세간의 화제가 된 ‘토토가’와 페이스북의 게시물을 단순 비교할 순 없겠지만, 시간이 지나서 비슷한 방식으로 2000년대의 가수들의 무대를 꾸민다면, 30대와 40대가 된 또 다른 사람들이 역시 그때가 좋았다고 평가할 거란 사실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거다.

한 가요 프로그램에서 EXID의 ‘위 아래’가 1위를 차지했다. 10년이 지나 EXID의 무대를 다시 보며 “이게 한국 가요의 전설이었지” 하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글 | 최완(대학생)

모든 90년대생들에게

“너는 그때 몇 살이었어?” MBC <무한도전 – 토요일 토요일 은 가수다>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선배들은 나에게 이렇게 물어봤다. 1990년에 태어났고 1997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하면 꼭 다음과 같은 말이 돌아왔다. “에이, 그럼 너무 어렸으니까 기억도 안 나겠네.” 지금 ‘토토가’ 열풍의 중심에 서 있는 1970~80년대생들이 그들의 청춘 그 자체였던 90년대를 또렷하게 기억하는 반면, 나에게 90년대란 오래된 사진 앨범을 들춰봐야만 겨우 기억이 날 듯한 어린 시절에 가깝다. ‘잘못된 만남’의 전주 몇 마디만 들어도 19년 전 길거리를 본능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그들과 달리 90년대생들 대부분은 터보의 김종국보다 예능인 김종국 더 익숙하다고 생각할 정도니 말이다. 결국 그들과 우리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90년대에 대해 ‘추억’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지, 없는지일지도 모른다.

지금 각종 음원 차트에서 90년대 곡이 상위권에 오르고 강남역 ‘밤과 음악 사이’ 앞에 줄을 서서 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 이 나와 상관없는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시절에 엄마, 아빠가 좋아했던 가수들 이 나오는 KBS <콘서트 7080>을 보는 것은 새벽에 애국가 영상을 보고 있는 것만큼이나 지루했지만 ‘토토가’ 방송은 재 미있었다. 하지만 재미가 감동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과거를 회상하면서 받는 감동은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서태지가 ‘난 알아요’를 외치며 데뷔했을 때 나는 ‘난 알아요’라는 말 자체를 발음하는 것조차 힘들어했던 세 살배기였고, H.O.T.가 1997년 ‘올해의 최고 가요 대상’을 받았을 때도 가요 가사 하나를 제대로 외울 수 없었던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 1998년에 H.O.T.의 ‘빛’ 뮤직비디오를 보고 나서야 성인 남성에게 끌린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알았지만 팬클럽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핑클의 ‘루비’가 좋은 노래라고 생각했지만 그 가사에 담긴 어른들의 이별 이야기는 절반도 채 이해 못했다.

이렇게 말하고 나면 몇몇 90년대 예찬론자들은 혀를 차며 ‘그래, 어린 것들이 뭘 알겠니’라고 할지도 모른다. 요즘 SNS 만 보더라도 ‘토토가’나 90년대 가요계에 대해 조금만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면 무조건 90년대 가요계를 ‘황금기’라고 치켜세우거나 애꿎은 2000년대 가요계를 폄하하며 공격하는 ‘젊은 꼰대’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지금 당신들은 90년대의 문화가 지닌 특수성이 아니라 그저 청춘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삶에 지쳐버리는 것에 더 익숙해진 지금과 달리 생기 넘치던 20대 시절로 단순히 돌아가고 싶은 것은 아닌지. <콘서트 7080>을 보면서 70, 80년대를 그리워하는 부모님, <가요무대>를 보면서 60년대를 그리워하는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지금 90년대 열풍의 중심에 서 있는 세대들 모두, 그저 다시 돌아오지 않는 청춘을 기억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청춘이 지닌 힘 앞에서는 그 모든 좋고, 나쁨의 기준이 무의미해진다. 그것이 우리가 더 이상 무조건 90년대를 최고의 시대라고 찬양하거나 2015년 가요계는 퇴색했다고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러니 지금 각자의 청춘 드라마를 만들어가고 있는 90년대생들이 해야 할 일은 매우 간단하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길 것.

에디터 | 이채린

90년대를 기억하는 세대가 말하다

그 시절은 끝났다

내 기억 속에서 1990 년대의 대중음악은 ‘무언가 크게 변하고 대단한 게 이루어질 것 같은’ 분위기와 함께 떠오른다. 아마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생각한다. 명칭의 변화에서도 그런 흐름을 감지할 수 있다. 생각이 바뀌면 이름도 달리 부른다. 사람들은 한국 영화를 ‘방화’라 일컫지 않게 되었고, ‘가요’와 ‘대중음악’의 차이를 민감하게 인지하기 시작했다.

이 짧은 글에서 1990년대의 대중음악을 꼼꼼히 살펴 보는 건 언감생심이다.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 점만 간단히 언급해보려 한다. 우선 그간 존재하지 않았거나 뚜렷하게 두드러지지 않았던 새로운 스타일, 즉 록과 힙합 등이 전면에 나섰다(서태지와 아이들, 넥스트, 드렁큰 타이거 등). 다른 한편에서는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음악 스타일을 세련되게 정련하고 대중화시킨 음악들이 나왔다(이승환, 토이, 전람회 등). 댄스 음악이 엄청난 규모로 성장했고(듀스, 김건모, 룰라 등), 현재의 아이돌 시스템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H.O.T., 젝스키스, 핑클 등), 인디 음악이 ‘대안적 음악’으로 제시되었다(노브레인, 델리 스파이스, 언니네 이발관 등). 또한 ‘록=젊음의 반항=진정성’이라는 록이 데올로기와 ‘X세대’ 등의 용어가 소개되면서 ‘세대를 대변하는 음악’이라는 관점이 생겨났다. 미국에서는 너바나가, 한국에서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이 그런 평가를 받았다. 이와 같은 상황을 ‘다양성의 폭발과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이 시절의 ‘다양한’ 음악에는 (당연하게도) 이면이 있다. 1990년대의 대중음악 전반에는 다양성과 새로움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반대급부로 생긴 모종의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걸 ‘장르 강박’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해외의 새로운 장르나 트렌드를 수입하되, 그걸 목적(장르에 대한 탐구)이 아닌 수단(맛보기 혹은 홍보 방법)으로 삼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한 아티스트의 음반에 온갖 장르와 스타일이 일관성도 목표도 없이 뒤섞여 있는 ‘백화점 식 구성’은 거의 관행에 가까웠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은 완성도와는 별개로 그 장르 강박이 음반 단위로 되풀이된 사례라 할 수 있다. 지금보다 훨씬 노골적인 수준에서 표절이 시도되었으며(단, 입증될 경우에는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레퍼런스’나 ‘장르적 유사성’ 등의 표현이 없던 시절이다), 뮤지션에 대한 대우는 형편 없었다(H.O.T.의 멤버들은 음반 인세로 장당 20원을 받았다). 진정성을 강조하는 록 이데올로기는 다른 한편으로 ‘진정한 음악’에 대한 편협한 시각을 유도했고 음악에 ‘위계’가 있다는 생각을 강화 했다. 그런 관점에서 아이돌-댄스 음악은 혐오의 대상이고 혁파해야 할 ‘적’이었다. 인디 음악은 때로 ‘음악’과 ‘문화운동’ 사이에서 갈지자 행보를 걷곤 했다. 음악 자체의 신선함이나 완성도보다는 ‘태도’가 중시되는 경향도 종종 보였다.

1990년대의 대중음악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긍정적으로 회고 된다면, 그건 음악의 질뿐만 아니라 다양함과 새로움을 흥청망청 만끽하던 시절에 대한 감상도 한몫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제 그런 세상은 다시 오지 않는다. 온다 해도 반갑지 않다. 그 시절은 끝났다. <토토가>에서 ‘좋았던 옛날’을 재현하는 ‘왕년의 스타’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나는 즐겁고 훌륭한 옛날 히트곡보다는 ‘형편없는’ 오늘의 노래 중에서 멋진 순간을 찾아내는 게 더 좋다. 아직은 발견의 기대와 기쁨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글 | 최민우(대중음악평론가)

비약과 찬양

1997년과 1994년을 향해 응답하라고 외쳤던 드라마들과 영화 <건축학개론>이 기대 이상의 신드롬을 일으켰을 때는 꽤나 묘한 기분이었다. 1990년대가 향수에 젖은 눈으로 돌아볼 만큼 ‘옛날’이 됐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 봤자 대략 10년 전 아닌가’라고 생각을 하다 보니 놀랍게도 삐삐 차고 헤이즐넛 커피 마시던 게 벌써 20년 전의 일이었다. PC통신이 있던 시절에 이미 내가 성인이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건축학개론>은 시작에 불과했다. 언제부터인가 90년대는 가장 활발하게 팔리는 추억이 됐다. 최근의 사례 중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아무래도 <무한도전 –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이하 <토토가>다).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가수들의 무대를 철저한 ‘고증’을 통해 재현했던 이 기획은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철 지난 히트곡들이 20년 세월을 몇 시간 만에 역주행해 음원 차트 정상까지 등극했으며, SNS는 터보, SES, 혹은 엄정화에 대한 이야기로 도배됐다.

나 역시 <토토가>는 즐겁게 시청한 편이다. 예전에 좋아했던 뮤지션을 다시 볼 수 있었던 기회라서? 솔직히 털어놓자면 나는 그 가운데 어느 누구의 팬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무렵 큰 감흥을 주지 못했던 곡들이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갑작스레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물론 군복무 기간에는 SES와 핑클을 위해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본방 사수하기도 했지만 군인들의 걸그룹 애호는 뭐랄까, 취향과 상관없는 일종의 집단최면 같은 것이다. 내게 <토토가>는 과거의 음악보다는 지금의 드라마가 강력하게 느껴지는 예능이었다. 이 무대를 위해 오랜만에 뭉친 엄정화와 백댄서들의 공연은 그 자체로 근사하기도 했지만 그들이 거쳐온 역사 때문에 더욱 짜릿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1990년대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으로 수렴되는 일부의 시청 소감에는 일단 멈칫하게 된다. 아무래도 몇 단계를 비약하는 감상 같기 때문이다. 직접 경험했고 여전히 기억하는 1990년대 한국의 대중문화가 엄청나게 완성도 높은 무언가는 아니었다. 다만 새로운 시도가 있었고 그 시도 들이 지금보다 다양했던 것 같기는 하다. 일단 ‘대중’의 개념이 요즘처럼 편협하지 않았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이 장기간 스크린을 확보하며 10만 명 관객을 동원했고, 대기업이 TTL 캠페인 같은 불친절한 마케팅을 시도했다. 불균질한 풍경이었고 나쁜 시도만큼이나 좋은 도전도 많았기에 흥미로웠다. 하지만 2010 년대의 쇼비즈니스를 재롱 잔치처럼 느껴지게 할 만큼 대단한 시절이었다고 한다면 엄연한 과대평가다.

사람들은 대부분 추억에 취약하다. 아직 풋풋하던 무렵, 힙합 바지 끝자락으로 거리 청소를 하며 듣던 노래에 내 또래가 아련해하는 게 그리 흉볼 일은 아니다. 하지만 1990년대가 특정 세대의 향수로 소비되는 걸 넘어서서 지금 사람들이 잃어버린 거대한 가치처럼 포장될 때는 몸이 좀 가려워진다. 시대는 다양한 장면들의 합이며 그 자체로는 가치 중립적이다. 좋았던 기억만을 추려 현재 목격되는 얼룩들과 비교한 뒤, 이를 당대 전체에 대한 평가로 확대하는 건 아무래도 부당하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1990년대를 향한 손쉬운 찬양의 이면에는 그 시절 대중문화의 풍경을 이루던 많은 것들이 이제는 거의 다 사라져버렸다는 불편한 진실이 도사리고 있다. 아이돌이 가요계의 절대적 지분을 차지하게 됐으며, 작고 특색 있는 작가 영화보다는 크고 보편적인 블록버스터에 집중하는 추세다. 아이돌이 록 밴드보다 열등하고 블록버스터는 예술 영화보다 하찮다는 말이 아니다. 견주고 비교할 대상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게 아쉽다는 거다. 지금은 없는 것에 상찬을 바치는 건 너무 쉬운 일이니까.

에디터 | 정준화

에디터
피처 에디터 / 이채린
포토그래퍼
엄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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