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고 싶다, 강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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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리라는 남자를 진짜 갖고 싶다면, 길들여지지 않는 영혼까지 감당해야 할 거다.

라이더 재킷과 티셔츠는 Mr & Mrs Furs by 쿤위드어뷰 반지는 Saint Laurent Paris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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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다 같이 볼까요?” 개리가 스튜디오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건 인터뷰도, 헤어 메이크업도 아니라 스태프들을 다 불러모아 자신의 맥북을 펼친 일이었다. 더블유 최종 마감일의 이례적으로 아슬아슬한 마지막 촬영은 개리의 스케줄에 맞춰 어렵사리 잡혔다. 그나마도 해 뜨고 나서야 귀국한 그를 해 지자마자 스튜디오에 불러낸 무리한 일정이었지만. 데뷔 16년 만에 처음 솔로 앨범을 발표하기 이틀 전, 아직 공개되지 않은 뮤직 비디오를 재생하면서 그는 약간 긴장되고 살짝 들뜬 기색이었다. “솔직히 떨리죠. 리쌍 1집 때 생각도 나는데, 그땐 어려서 반항하는 기분이 있었거든요. 잘 되든 안 되든 부딪쳐보는 거지 뭐, 하면서. 그런데 지금은 부담감이 느껴져요. 그동안 잘해왔지만 이번엔 혼자고, 리쌍과는 다른 색깔을 보여줘야 하니까.” 준비하느라 몇 달을 달려왔지만, 곡을 세상에 내놓고 나면 이제야 쉴 수 있을 거라며 웃기도 했다. 19금 판정을 받아 방송 활동을 못하는 데 대한 이야기였다. 앨범에 담긴 4 곡의 노래 모두 가사에 쓰인 욕설도, 성적인 표현도 수위가 높은 이유는, 스스로를 검열하거나 제동 걸지 않고 솔직하게 쏟아내며 작업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순하고 편한 예능 캐릭터 안에 뮤지션으로서의 자신을 가두어놓지 않으려는 시도였다고. “런닝맨에서 웃기만 하고 바보 같던 아저씨가 낯설게 보일지 몰라요. 리쌍의 진중한 가사를 좋아하던 누군가는 가볍다고 싫어할수도 있고요. 하지만 그런 틀을 스스로 깨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검은 셔츠와 재킷, 팬츠는 모두 Saint Laurent Paris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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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정을 받아서 공중파 방송을 못 탄다는 게 아쉽지 않나? 기왕 만들어놓은 음악을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이 있을 텐데.
무엇보다 작업 과정을 편하게 하고 싶었다. 예전에는 가사를 쓰다가 강한 표현이나 욕설이 들어가면 스스로 제동을 걸고 걸러내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 솔로 앨범만큼은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심의를 염두에 두지 않고 써지는 대로 썼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다른 힙합 뮤지션에 비해서는 알려진 편이다. 그런 입장에서 랩 가사까지 쉽게 풀어가고, 유하게 표현한다면 아무 색깔도 없을 것 같았다. 내가 해왔던 감성들, 그리고 하고 싶은 느낌을 잘 전달하기 위해 색다른 음악을 만드는 프로들을 모셔 같이 작업했다.

개리가 작사, 길이 작곡해서 리쌍 음악의 성격이 만들어졌다. 솔로 작업을 하면서는 어떤 작곡가들과 손을 잡았나?
타이틀곡 ‘조또몰라’, 그리고 ‘술 취한 밤의 노래’ 두 곡은 시모(Simo)와 기즈모(Gizmo)라는 뮤지션 둘이 같이 작업했다. 사운드의 색깔이 뚜렷한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다. 페이스북에서 음악 하는 사람들한테는 좀처럼 친구 요청을 안 하는 편인데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 내가 먼저 메시지를 남겼다. 그레이라는 친구는 ‘조금 이따 샤워해’라는 곡을 줬다. 요즘 한창 젊은 힙합 팬들 사이에 떠오르는 프로듀서고, 크러시라는 친구가 그 곡에 좋은 멜로디 라인을 입혔다. 데뷔한 지 16년 차고, 나이도 들어가니 감성이 퇴화하지 않으려면 이런 젊고 재능 있는 친구들과 작업해야 할 것 같았다.

나머지 한 곡이 더 있다. ‘Mr. Gae’라는 노래인데.
한참 유행한 덥스텝, 트랩 같은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가미된 장르인데 아스트로비츠라는 실력파 작곡가가 썼다. 처음 듣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바로 가이드보컬을 녹음하고 요즘 스타일로 효과를 줘봤다. 그 곡이 잘 나와서 새로운 스타일을 하나 얻은 것 같아 뿌듯하다.

데뷔 16년 만의 솔로, 나올 때가 되었지 싶은 한편으로 왜 여태는 안 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리쌍은 팀워크가 좋고, 그 안에서 음악 하는 건 안정되어 있다. 7집 ‘TV를 껐네’가 감사하게도 많이 사랑받았고, 처음으로 했던 리쌍 단독 공연도 잘됐고, 밴드 공연 포맷을 발전시키고 싶어서 했던 8집 ‘Unplugged’도 성공적이었고… 하지만 내가 음악을 길게 하려면 그 안에 안주하면 안 될 것 같았다. 한번도 해보지 않은 시도를 하고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솔로라는 작업으로 다른 색깔을 밀어붙여보는 게 그런 돌파구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과정이나 결과는 만족스럽나?
쉽지 않았다. ‘술 취한 밤의 노래’ 같은 경우 편곡도 서너 번 고치고, 가사도 몇 달을 붙잡고 있었다. 인트로, 송 부분, 랩 부분의 감성이 다 달라서 정리해 쓰기 힘들었다. 나중엔 피처링한 정인이가 정말 멋있게 노래해줘서 느낌이 잘 살았지만. 본인 앨범에서 발라드도 잘하는 정인이지만 이 노래에서는 조금 더 리쌍 1집 ‘러시’ 때 같은 애매하고 므흣한 보컬을 부탁했다. 생각하지 말고 미친년처럼 불러달라고.

그렇게 거친 말로 디렉션을 주나? (웃음) 정인이 피처링한 다른 가수, 이를테면 이적 같은 경우엔 뭐라고 주문할지 궁금하다.
우리는 주로 그렇게 한다. 적이 형은 물론 음악적인 이론이 풍성한 사람이라 다르게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이라. 노래의 테크닉이나 스킬보다는 어떤 감정이 더 중요하다. 녹음이 아주 빨리 끝났고, 정인 본인 스스로도 만족한다고 하더라.

리쌍과 다른 음악적 색깔을 보여준다는 목표는 성공했나?
솔로 하면서 가장 여과 없이 담고 싶었던 건 나의 일상에서 느낀 것들이었다. 리쌍 때는 나름 삶에 대한 진중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솔로곡에서 ‘술에 취해 개돼 떡돼’ 이런 랩을 하는 게 누군가에게는 눈살 찌푸려지는 변화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번은 눈치 안 보고 자유롭게 표현해보고 싶었다. 사랑 노래도 예전에 했다면 이렇게까지 농도 진하게는 안 했을 거 같다. ‘조금 이따 샤워해’ 같은 곡에 비하면 ‘TV를 껐네’는 귀여운 수준으로 여겨질 정도니까. 사운드적으로도 90년대 힙합이 최고고 전부였다면, 그런 면의 변화도 시도해보고 싶었다. 요즘 유행하는 음악을 찾아 듣고, 클럽에서 요즘 젊은이들이 어떤 음악을 듣고 노는지도 보고.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다 보니 서로 다른 느낌의 네 곡이 나왔다. 새로운 옷을 입고 첫 단추를 끼운 것 같다.

자꾸 ‘젊은 친구들’ 같은 표현을 쓰는데, 당신도 아직 충분히 젊은 나이 아닌가?
난 이제 마흔이 가까운 사람이다. 2년 전에 록페스티벌이라는 데 처음 가봤다. 젊은 친구들이랑 섞여 3일 내내 공연 보고, 술 마시고, 어울려 다니고 했다. 어린 청춘들이 노는 광경을 보니까 놀랍더라. 나도 젊게 산다고 자부하지만 그때 확 느낀 게 있다. 요즘 세대는 끓어오르고 싶어하고 해방되고 싶어 하는 뭔가가 내면에서 크구나 하는… 단순히 노래를 듣고 감상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젊은이들이 그 속에 들어가 잘 놀 수 있게 하는 음악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변화를 시도한 게 일렉 사운드를 쓴 ‘Mr. Gae’ 같은 노래다.

록페스티벌에 처음 간 건 어떤 뮤지션 공연을 보고 싶어서였나?
그때 라디오헤드가 헤드라이너였는데, 사실 들국화 공연을 보러 간 거였다. 리쌍 1집 가사를 쓸 때 가장 깊은 영향과 많은 영감을 받았던 음악이 들국화 노래들이다. 그때 어리고 잘 안 풀리던 당시의 내 마음에 ‘행진’이나 ‘그것만이 내 세상’ 같은 가사가 크게 위로가 됐다. 내가 들국화 음악을 듣고 용기와 에너지를 얻은 것처럼, 누군가 단 한 명에게라도 공감을 주고 힘을 줄 수 있는 랩 가사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들국화와 리쌍이라니, 스타일은 전혀 다른 음악인데 정서적으로는 통한다는 느낌도 든다.
데뷔할 무렵부터 고민을 많이 했다. 힙합 신에는 랩 잘하는 형들이 정말 많고 각자 색깔도 뚜렷한데 나는 뭘 해야 할까. 그때 드렁큰타이거를 보면 얼마나 멋있었는지 모른다. 키도 크고, 진짜 미국 스타일로 간지가 철철 넘치는 거다. ‘저런 걸 해봐야 우린 안 돼’ 속으로 좌절 많이 했다. 그러다 찾은 답이 한국 음악이었다. 초등학생 때 형이 좋아해서 막연히 따라 듣던 들국화, 김현식, 봄여름가을겨울… 내가 보잘것없을 때 위로가 되어주던 그 음악 속에 답이 있더라. 말하자면 틈새 시장을 찾은 거다.

어떻게 보면 힙합은 공감하고 위로하기보다는 공격하고 위에 서는 장르 아닌가? ‘내가 제일 잘나가’ 하는 허세와 쎈 척도 허용되는.
그게 제일 힘든 거 같다. 자기 자랑이 토대를 이루지만, 막상 본격적으로 자랑하기에는 우리 정서상 어딘가 편치 않다. 흑인 힙합 뮤지션이 많이 하는 금목걸이, 화려한 시계 이런 게 나랑은 맞지 않는 옷 같아서 그런 건 하고 싶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비행기 타고 여자들이랑 섬에 가서 놀거야 넌 지갑 안 갖고 나와도 돼’ 이런 가사들이 멋지더라도 내 이야기가 될 수는 없다. 몇백억씩 벌고 진짜로 그렇게 사는 스타도 있겠지만. 요즘 젊은 친구들은 그런 ‘쎈 척’도 가사로 재밌게 잘 쓰는 것 같던데 나는 모르겠다.

또 ‘젊은 친구들’ 이라고 말한다. 해가 바뀐 지 얼마 안 돼서 나이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 걸까?
작년쯤부터, 하는 일이 다 잘되는 데도 걱정이 들더라. 앞으로 10년은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들…. 지금은 괜찮지만 언젠가는 사람들이 질려 하지 않을까, 히트되는 음악도 줄어들고 자존심 상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에 무섭기도 했다. 지금 새로워지지 않으면 앞으로의 10년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서, 젊은 감성을 찾아 느끼려고 의식적으로 애썼다. 죽돌이라고 소문날 정도로 클럽에 자주 가고, 거기 가서는 누가 사진을 찍어도 신경 안 쓰고 놀고, 음악하는 젊은 친구들 만나 얘기하고 부딪치며 지냈다.

어린 친구들과 어울리려면 술은 많 이 사야겠다(웃음).
많이 사기도 하고, 그러면서 많이 늘기도 했다. 원래 소주 세 잔 마시면 뻗는 스타일이었는데 두 병까지는 주량이 늘었다.

뮤지션임에도 클럽에 자주 다닌다는 소문을 걱정해야 한다니, 연예인으로서의 불편함 같은 거겠다.
예능 시작하고 2년 지나고서는 가슴에 답답한 것이 좀 쌓였다. 우리나라는 연예인의 이미지에 대해 모범적인 걸 좋아하니까. 다들 엄친아, 엄친딸이 될 순 없는데. 내가 나쁘게 살아온 사람이 아님에도 어디에 가도 웃어야 하고 겸손해야 한다는 데 부담이 있었다. 물론 유재석 형 같은 분은 보이는 그 모습이 정말로 진실된 사람이지만, 나는 그렇게 못 살겠더라. 그렇게 살면 음악을 못할 거 같다. 누군가에게 혐오스러운 행동만 아니라면 성질도 좀 내고 술 마시고 자빠져도 보고 여자도 만나고 싸워도 보고… 그런 경험이 많아야 음악이 나올 수 있다. 이번에 아주 솔직하게 솔로 앨범을 만든 이유도 그런 걸 좀 해방하고 싶어서다. 누군가는 런닝맨에서 웃기만 하고 바보 같은 아저씨가 뭐 이런 걸 했어? 하고 실망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싫어할 수도 있지만 그런 틀을 스스로 깨지 않으면 앞으로 음악 하기가 힘들 거 같았다. 물론 예능에서 보여주는 내 모습이 절대 거짓은 아니지만 음악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다. 사람들이 어떤 걸 나한테 원하는지 자꾸 신경 쓰게 되는데, 그런걸 깨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시기인 거 같다.

흰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팬츠는 Julien David by 쿤위드어뷰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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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프로그램이 주는 스트레스가 있나 보다.
밤에 곡을 쓰다가도 내일 녹화가 있으면 흐름을 끊고 자야 하니까, 마치 회사원처럼. 런닝맨이 처음이자 마지막 예능이라고 생각하며 이거 하나만 책임감을 갖고 하려고 한다. 음악까지 못하게 되면 인생이 너무 허무할 거다. 돈이나 다른 모든 걸 떠나서 그게 가장 중요하다. 행복이 뭘까라는 걸 고민했을 때 돈을 아무리 벌어도 대중이랑 재밌게 놀 수 있는 음악이 안 나온다면 내게는 그게 큰 불행이다.

트위터에서 ‘백억쯤 벌면 젊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라고 쓴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는 땅이 너무 비싸긴 하지만, 돈을 많이 벌면 공장 같은 데 박스 만들어놓고 음악 하는 프리한 공간을 열고 싶다. 사람들이 자기를 좀 해방시킬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다들 서로 눈치를 많이 보면서 사는데, 연예인들도 마찬가지고… 나는 욕을 좀 먹더라도 흘러가는 대로 살면서 이게 나니까 하는 걸 받아들이려고 한다. 가사도 음악도 사는 것도 그렇게 나다운 게 좋다. 이런 게 큰 해방인 거 같다. 싫어할 사람은 어쩔 수 없는 거고. 이미지 관리를 하며 살다 보면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아야 할 거다. 법에 어긋나는 짓은 안 하는 한도 내에서 주말에는 좀 흐트러져 보면 어떤가. 그래야 또 월화수목금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거고. 사람들이 울타리를 전혀 넘어가지 못하게 만들어놓으면 세상이 힘들어진다. <희랍인 조르바>에 ‘사람에게는 약간의 광기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밧줄을 끊고 자유로워지지 못하니까’ 라는 말이 나오는데 깊이 공감했다.

<그리스 인 조르바> 책을 읽었나?
영화로 봤다. 영화를 통해서 뭔가 배우고 얻으려는 편이다. 한 동안은 책을 하루에 몇 시간씩 공부하다시피 읽었는데, 어릴 때 공부를 안 해서 그런지 자꾸 잠이 와서… (웃음). 영화는 2시간 몰입해서 보면 되니까 좋다. 시간 때울 길은 없고 밖에 나가서 돈 쓰기도 싫고 할 때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 세 편씩 빌려 봤다. 상 받은 영화 위주로 보다가 메모도 해놓고 종종 그랬다.

최근에는 어떤 영화가 기억에 남나?
모딜리아니, 잭슨 폴록, 바스키아 같은 예술가의 삶을 다룬 영화를 많이 찾아서 봤다. 그러면서 마음을 많이 열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극의 재미를 위해 과장했겠지만, 아티스트들은 하나같이 술과 여자를 가까이하더라(웃음). 뮤지션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인 <서칭 포 슈가맨>도 감동적으로 봤다. 공연 장면에서는 눈물이 났다. 지구상 어딘가에서 음악만으로 엄청난 사랑을 받은 주인공이 돈도 많이 벌고 호화로운 삶을 이룰 줄 알았는데 아무도 몰라주는 소박한 삶으로 돌아간다는 게 대단했다. 그 행복을 한번 경험한 이상, 나는 힘들 것 같지만.

10년 후, 그 이상 음악을 오래한다는 것에 대해 여러 번 언급했다.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그려보고 있나?
50대쯤에 자유롭게 살면서 그 시대 상황에 맞는 음악도 하고 지내는 모습이면 좋겠다. 20대 중반에 1년 정도 심하게 고생을 했다. 이번에 홍콩 가서 3백만원짜리 옷을 샀는데,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더라. 이전 1년 생활비보다 비싼 옷을 사게 되었다는 게. 그런데 그때 고생했기 때문에 10년은 내가 잘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지금 1, 2년을 열심히 해놔야 40대의 삶을 에너지 넘치게 살 수 있을 거다. 주변의 40대 형들 보면 음악에 대한 열정이 마음속에 있으면서도 끄집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업이나 골프, 돈 버는 재미로들 많이 산다. 나는 돈보다는 젊은 사람들과 젊은 음악을 접하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 69년생인 제이지나 나랑 동갑인 칸예 웨스트가 여전히 힙합 신을 이끄는 것처럼. 나이 먹을수록 꼰대 기질을 경계해야 한다. 어린애들이 인사 안한다고 화낼 게 아니라 같이 담배 피우고 즐기고 함께 작업하면서 살아야 생각이 늙지 않고 앞으로의 인생이 재밌을 것 같다. 돈은 많이 벌면 좋지만 거기에 인생의 행복이 있진 않다. 행복은 더 재밌는 무언가를 해나가는 데 있지.

20대에 고생을 하고 돈을 벌어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그때의 경험 덕분인지 삶의 어려움들이 크게 두렵진 않다. 걱정이 안될 순 없지만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조용필의 입에서 바운스라는 가사가 나오는 걸 들으며 느껴지는 전율은 그 사람이 지내온 세월 덕분이다. 에미넴도 약에 빠져서 엄청나게 힘든 시기를 거쳤지만, 결국 중독까지 이겨내고 다시 최고로 돌아왔다. 시련과 고난은 누구나 거치는 거고, 자기 내면에 강한 힘이 있다면 그걸 성숙의 기회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실패가 없는 삶이 아니라, 굴곡 많지만 재기하는 삶이 더 멋지다. 인생은 기니까.

에디터
황선우, 컨트리뷰팅 에디터 / 최진우
포토그래퍼
안주영
스탭
스타일리스트 / 이애연, 헤어 / 도경(VOID by 박철), 메이크업 / 박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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