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건드리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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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도쿠진 요시오카의 전시<스펙트럼>을 보게 된 건 우연이었고, 돌아 나오는 길엔 운명이라고 생각했다.빛과 바람, 공기와 소리를 두 눈으로 보고, 두 손으로 만질 수 있게 만든 이 사람이 세계적인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라는 사실은 오히려 중요하지 않았다. 홀린 듯 인터뷰를 요청하니, 그는 벌써 서울에 와 있었다.

1. Venus - Natural Crystal Chair : 의자의 기본 골격에 미네랄 용액과 섬유조직이 반응을 일으켜 만들어지는 크리스털 작품. 2. Rainbow hurch : 485개의 크리스털 프리즘으로 무지개 빛을 발사한다. 3. Water Block : 비가 내리는 장면을 형상화한 옵티컬 글라스 벤치. 4. 일본 긴자의 스와로브스키 매장 리뉴얼을 위한 설치 작업.

1. Venus – Natural Crystal Chair : 의자의 기본 골격에 미네랄 용액과 섬유조직이 반응을 일으켜 만들어지는 크리스털 작품. 2. Rainbow hurch : 485개의 크리스털 프리즘으로 무지개 빛을 발사한다. 3. Water Block : 비가 내리는 장면을 형상화한 옵티컬 글라스 벤치. 4. 일본 긴자의 스와로브스키 매장 리뉴얼을 위한 설치 작업.

도쿠진 요시오카를 만나기 위해 비욘드 뮤지엄의 육중한 문을 당기자, 거대한 빛이 먼저 나타나 온몸을 찌른다. 사방이 흰색으로 칠해진 세계 안에, 문득 나와 빛 단둘만 남겨진 듯한 기분. 이 갑작스러운 비현실감에 할 말을 잊고 서 있는데, 뒤따라 들어온 사진가도, 또 어느 관람객도, 문이 열린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같은 얼굴이다. 높이 9m, 485개의 크리스털 프리즘으로 만들어진 이 압도적인 스펙트럼의 이름은 ‘레인보우 처치(rainbowchurch)’. “내가 20대 때 처음 본, “로사리오 예배당’ 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거예요. 화가 앙리 마티스가 만든 만년의 작품이죠. 그 스테인드글라스가 발하는 아름다운 빛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어느새 곁에 선 요시오카가 말했다.

2007 디자인 마이애미에서 올해의 디자이너 상, 2007년 세계가 존경하는 일본인 100명에 선정되는 등 일본 현대 디자인계의 신화적인 인물로 손꼽힌다는 그이지만, 막상 “당신을 만나러 간다고 하니 디자이너인 친구들이 몹시 분개하며 부러워했다” 는 농담엔 귀까지 빨개진 얼굴로 웃는다. 소재와 삶에 대한 진지한 탐구와 성찰 끝에 하나씩 완성되는그의 작품들은 에르메스, 스와 로브스키, 까르띠에, 도요타 등의 세계적인 하우스들을 매료시켰다. 특히 화제를 불러모았던 건 도쿄의 메종 에르메스 윈도 디스플레이 작업. 고요한 매장 윈도에는 공중에 매달린 스카프 한 장과 직사각형의 LED 모니터 한 대뿐이고, 모니터 안의 아름다운 여자가 ‘후’ 바람을 불면 그에 맞춰 스카프가 조용히 나부끼는 설치물이다. “늘 액자에 그림처럼 걸려 있는 평면적인 스카프를 살아 있는 것으로 만들고 싶었죠. 마치 공기나 바람처럼요.” 널찍한 창으로는 7월의 햇빛이 쏟아지고, 그의 작품들은 아까보다 좀 더 빛나는 것 같다. 커다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40분의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고, 그의 작품을 바라볼 때 가슴 언저리에서 어릿하게 느껴지던 것들이 조용한 웃음과 잊고 싶지 않은 언어로 남았다.

5. Stellar : 스와로브스키 팰리스 프로젝트를 위한 작업.6. 도쿄의 메종 에르메스에 설치된 스카프 윈도 디스플레이7. Tornado : 150만 개의 스트로를 이용하여 토네이도 현상을 창조한 작품. 8. The Invisibles & Snowflakes : 카르텔과의 협업으로 만든 인비저블 가구와 얼음 결정을 형상화한 매장 설치 작업. 9. 토네이도 작품 앞에서포즈를 취한 도쿠진 요시오카. 10. Moon Fragment : 까르띠에의 미래를 상징화한 향수병 디자인.

5. Stellar : 스와로브스키 팰리스 프로젝트를 위한 작업.6. 도쿄의 메종 에르메스에 설치된 스카프 윈도 디스플레이7. Tornado : 150만 개의 스트로를 이용하여 토네이도 현상을 창조한 작품. 8. The Invisibles & Snowflakes : 카르텔과의 협업으로 만든 인비저블 가구와 얼음 결정을 형상화한 매장 설치 작업. 9. 토네이도 작품 앞에서포즈를 취한 도쿠진 요시오카. 10. Moon Fragment : 까르띠에의 미래를 상징화한 향수병 디자인.

크리스털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인상적이다. 스와 로브스키에서 당신을 무척 좋아할 것 같다.
스와로브스키와 작업하기 전까지만 해도 크리스털이라는 소재는 관심 밖에 있었다. 너무반짝거리고 비싸 보였으니까. 그런데 막상 작업을 시작해보니, 크리스털은‘빛’ 그 자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떤 방향에서 어떻게 빛이 통과하느냐에 따라 각각 다른 빛을 발산하는 매력이 있어,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무궁무진하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 비너스’의 경우, 의자처럼 생긴 작품이 큼직한 수조 속에 잠겨 있는데, 그 안에서 크리스털 결정체가 생성되어가며 구조가 완성된다. 마치 신화 속 미의 여신인 비너스가 거품 속에서 서서히 탄생하듯, 과학적인 원리로 자연에 대한 의미를 담았다. 반은 내가 만들었지만, 나머지 반은 자연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새로운 소재를 탐구하는 데 두려움이 없는 건, 당신의 본래 기질인가?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소재들의 표면보다, 그것이 작품으로 구체화되는‘ 과정’에 더 관심이 있다. 둥근 종이관에 넣어 104도의 가마에서 빵처럼 구워 만든 섬유 덩어리 소재의 ‘펜네 체어’는‘강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만든 것이다. 섬유의 구조는 탐구하면 할수록 식물의 그것과 유사하다. 독특한 내구성과 탄성을 갖고 있다. 기존의 건축이 ‘강도’에만 치중한 것에 반해, 나는 주변 환경과 공존하고 유연함을 갖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음악 인스톨레이션은 작품과 어떤 연관이 있나?
평소 음악을 즐겨 듣는 편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소리들이 있다. 자연의 소리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그걸 녹음해서 음악 프로듀서에게 음악으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까르띠에의 특별전 총감독을 맡기도 했는데, 그 작업 과정은 어떠했나?
나는 주얼리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손에 만져지는 물질적인 가치보다, 그걸 소유한 사람들이 저마다 갖고 있는 이야기를 표현해내고 싶어, 장 콕토나 오드리 헵번과 같은 까르띠에 아카이브의 주요한 인물들의 얼굴과 이야기에 얽힌 사진들을 공간에 투영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함께 작업하는 브랜드를 선정하는 특별한 기준이 있나?
오리지낼리티.

건축가인 채로 주얼리 디자인을 했던 프랭크 게리처럼 직접 주얼리를 만들 생각은 해본 적 없나? 당신이 건드리는 주얼리의 감정은 어떤 것일지 궁금하다.
실은 준비 중이다. 그런데 계약서에 사인을 해서 더 밝힐 수가 없다. 미안하다.

당신의 스승이자 패션 디자이너인 이세이 미야케에게서 받은 가르침은 어떤 것이었나?
디자인이 자유롭다는 걸 배웠다. 미야케 디자인 사무소에서 일하는 동안, 파리 컬렉션을 함께 준비했는데 나는 액세서리를 만들거나 전시 공간 구성, 매장의 디스플레이 등을 담당했다. 패션을 공부하지 않은, 제품 디자이너가 접근할 수 있는 다양성이 재미있었고, 통념을 깨는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다. 그때의 경험이 나의 작품의 폭을 넓혀주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작품이 ‘자연’의 이름이나 연상작용을 담고 있는데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나?
내가 만들고 싶은 건 ‘현상’ 에 관한 거다. 자연처럼, 혹은 자연과 함께 만들어지고 변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이 예전에 개인적으로 경험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내면에 간직하고 있다가, 내 작품을 통해 그때의 느낌과 감정을 환기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

작품마다 색연필로 그린 듯한 스케치가 하나씩 걸려 있는데, 그것도 또 다른 작품처럼 멋지다.
보통 사람들은 작업을 하기 전에 스케치를 그리지만, 나는 작품이 완성되고 나면 이렇게 스케치를 그린다. 왠지 다 끝나고 나서 그리는 편이 더 좋다.

모든 것이 가상화되는 디지털 시대에서 ‘물질’에 대한 당신의 화법은 테크놀로지와 어떤 협력 관계를 맺고 있나?
디지털 시대에서 하드웨어는점점 더 우위를 잃고 있다. 옛날에 처음 전화기가 발명됐을 때를 생각해보라. (아이폰을 가리키며) 테크놀로지가 발달하면 할수록 하드웨어는이렇게 점점 작아진다. 아마 없어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니 디자이너들은 하드웨어 안에 담기는 콘텐츠를 디자인할 줄 알아야 한다. 실제로 만질 수 없는 무언가에 감각을 선사하고, 감정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디자인 내부에 감성과 철학이 담겨야 하는 거다.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누구인가?
아니쉬카푸어.

당신의 궁극적인 화두는 무엇인가?
숲속을 걷다가 고개를 들면, 나뭇잎사이로 햇빛이 내리쬐는 게 보인다. 그 반짝반짝하는 기분 좋은 볕을 누구나 느껴봤을 것이다. 그건 왜 기분이 좋을까? 그걸 어떻게 답하면 좋을까? 내 작품을 보는 사람들도 같은 마음이 들면 좋겠다. 자연이 주는 감동을 주는 것이 내 목표이자 화두다.

앞으로의 계획은?
7월 말부터 도쿄 모리미술관에서 두 명의 다른 작가와 함께 전시를 오픈한다. 새로운 작품이 공개될 예정이다.

에디터
최서연
포토그래퍼
COURTESY OF TOKUJIN YOSHIOKA INC., 엄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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