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M+에서 막을 내린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아시아 Robert Rauschenberg and Asia》는 로버트 라우센버그를 서구 현대미술의 거장이라는 익숙한 위치에만 매어두지 않았다. 전시는 그가 아시아와의 교류 속에서 작품의 재료와 조형 언어를 어떻게 확장해 왔는지 그 여정을 따라가며, 탄생 100주년을 맞은 작가를 오늘의 시점에서 다시 읽게 했다. 그리고, 2026년 아트 바젤 홍콩에서는 라우센버그의 1986년작 BMW 아트카가 아시아 최초로 공개됐다.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아시아》
홍콩 M+에서 열린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아시아》 전시가 지난 4월 26일 막을 내렸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이번 전시는 그를 서구 현대미술의 중심에 자리한 익숙한 이름으로만 다루지 않고, 아시아와의 교류 속에서 조형 언어를 확장해 온 작가로 재조명했다.


팝아트의 선구자로 불리는 라우센버그. 그는 퍼포먼스, 사진, 판화, 조각, 설치를 넘나들며 일상의 사물과 대중매체 이미지를 예술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였고, 회화와 조각, 예술과 삶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느슨하게 만들었다. 젊은 시절부터 여행에 열정적이었던 그는 중국, 인도, 일본 등 아시아 각지를 오가며 현지 장인들과 활발히 협업했고, 그 경험은 이후 그의 작업에 개념적, 형식적, 재료적 변화로 이어졌다.
전시는 라우센버그가 아시아의 장인 전통과 제작 환경, 재료, 문화적 맥락과 어떻게 맞닿으며 자신의 언어를 넓혀갔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1975년 인도, 1982년 중국, 그리고 1980년대 여러 차례 방문한 일본에서의 경험은 새로운 색채와 재료, 기법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이는 훗날 냉전 말기 프로젝트 ROCI(Rauschenberg Overseas Culture Interchange)로도 이어졌다. ROCI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라우센버그는 각 나라에 직접 들어가 현지에서 작업하고 그 결과를 현지에서 전시하는 방식으로, 이동 자체를 예술 실천의 형식으로 삼았다. M+는 이러한 궤적을 연대기적 회고가 아닌, 라우센버그의 실천에 조응하는 아시아 작가들의 작업과 함께 배치하는 방식으로 풀어냈다.
이러한 맥락 위에서 2026년 아트 바젤 홍콩에 라우센버그의 1986년 작 BMW 635CSi 아트카가 아시아 최초로 모습을 드러냈다. 50주년을 맞아 월드 투어를 시작한 아트카 프로젝트의 경유지가 지금 홍콩이라는 점이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이 작업이 M+가 복원한 라우센버그의 아시아적 궤적과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한 작가의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가 미술관 안에서 펼쳐지고 있을 때, 홍콩 아트 바젤 현장에서는 그의 또 다른 실험이 움직이는 형태로 다시 등장한 셈이다.
1975년 알렉산더 칼더의 손을 거쳐 시작된 BMW 아트카 프로젝트는 이후 프랭크 스텔라,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제프 쿤스를 거쳐 줄리 머레투에 이르기까지 반세기를 가로질러 왔다. 각자의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자동차라는 동일한 매체 위에서 저마다의 예술 언어를 펼쳐온 이 프로젝트는 2025년부터 월드 투어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홍콩에서의 이번 공개가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지금 이 도시에서 라우센버그를 다시 읽고 있는 방식과 정확히 맞물렸기 때문이다.
BMW 아트카 #6: 미술사와 일상의 콜라주

1953년 봄, 라우센버그는 뉴욕 거리 위에 긴 종이를 펼치고 자동차 바퀴 자국을 남긴 뒤 그것을 《Automobile Tire Print》로 제시했다. 자동차의 흔적 자체가 드로잉이 된 이 작업은 이동과 과정, 흔적을 예술의 언어로 바꾸어 놓은 사례로 남아 있다. 그리고 30여 년이 지난 뒤, 그는 다시 자동차를 작업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번에는 BMW 635CSi의 차체 전체가 그의 캔버스가 되었다.

BMW 아트카 #6은 라우센버그 특유의 콜라주 시각 언어를 차체 위로 옮겨 놓은 작업이다. 라우센버그는 자신의 작업뿐 아니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품 이미지들을 가져와 자동차를 미술사와 사진, 일상의 이미지가 겹치는 플랫폼으로 바꾸었다. 왼쪽 측면에는 브론치노의 〈젊은 남자의 초상〉을, 오른쪽에는 앵그르의 〈그리자유의 오달리스크〉를 실크스크린으로 인쇄했다. 휠캡에는 고대 접시 이미지가 들어가고, 차체 곳곳에는 라우센버그가 직접 찍은 나무와 늪지 풀 사진이 겹쳐 있다. 그 결과 이 차는 고전 회화와 사적인 풍경, 미술사와 산업 디자인이 하나의 표면에서 충돌하는 이동식 콜라주가 되었다.
“이동하는 미술관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이 차는 내 꿈의 실현이다”
– 라우센버그
자동차 위에 늪지의 이미지를 겹쳐 놓은 선택은 결코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BMW는 이를 자동차가 야기하는 환경 문제에 대한 라우센버그의 미묘한 논평이자, 작업이 제작된 플로리다 캡티바의 풍경을 환기시키는 요소라고 설명한다. 라우센버그가 서로 다른 이미지와 물질을 충돌시키는 방식으로 동시대의 긴장과 모순을 시각화해 왔다는 점에서, 이 아트카는 그의 작업 세계의 연장선에 놓인다. 라우센버그에게 차는 속도나 성능의 상징이 아니라, 예술과 삶, 예술과 기술의 경계를 실험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플랫폼이었다.
홍콩에서 다시 읽는 라우센버그

홍콩에서의 아트카 공개는 라우센버그의 실험정신이 가장 물리적인 형태로 다시 작동하는 장면이었다. M+의 전시가 그의 아시아에서의 궤적과 상호 교류의 감각을 복원했다면, 아트 바젤 홍콩에 선 BMW 아트카는 그 감각을 보다 즉각적이고 입체적인 방식으로 번역했다. 하나는 미술관의 문법 안에서, 다른 하나는 자동차의 표면 위에서 같은 작가를 다시 읽게 만든 것이다. 라우센버그가 평생 밀고 나간 질문, 곧 예술은 어디까지 현실의 사물과 이미지를 끌어안을 수 있는지, 또 서로 다른 문화와 매체는 어떤 방식으로 한 표면 위에서 공존할 수 있는지를 홍콩은 두 개의 장면으로 동시에 보여주었다.
2026년 아트 바젤 홍콩의 BMW 라운지에는 아트카 실물과 함께 1953년 작 《Automobile Tire Print》의 레플리카가 놓였다. 자동차 바퀴 자국에서 출발해 자동차 자체를 하나의 작업으로 확장한 라우센버그의 여정이 같은 공간에서 맞닿은 셈이다. 초기 작업의 개념적 출발점과 1986년 아트카가 나란히 놓이면서, 이동과 흔적, 표면에 대한 그의 오랜 관심이 더욱 또렷하게 드러났다.
BMW가 라운지를 일반 관람객에게 열린 공간으로 구성한 점도 흥미롭다. 미술관과 페어, 예술과 산업, 역사적 작품과 현재의 관람 경험이 분리되지 않고 한 동선 안에서 만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라우센버그가 자동차를 ‘달리는 미술관’으로 상상했던 이유 역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박제된 기념물이 아니라, 움직임과 접촉, 시선의 흐름 속에서 계속 다시 읽히는 예술의 형식이었다.
50년의 아트카가 향하는 곳
BMW 아트카 월드 투어는 2026년 여름까지 이어진다. 그 피날레는 7월 29일부터 8월 31일까지 뮌헨 BMW Welt에서 열리는 전시로, 알렉산더 칼더부터 줄리 머레투까지 20대의 BMW 아트카 전체가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홍콩에서 라우센버그의 차가 아시아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면, 뮌헨에서는 50년에 걸친 BMW 아트카 프로젝트 전체가 하나의 역사로 정리될 예정이다.
월드 투어는 지난 1년여 동안 주요 아트페어와 미술관, 모터스포츠 이벤트, 문화기관을 오가며 BMW 아트카 컬렉션을 다시 현재의 시간 안으로 끌어왔다. 이 프로젝트를 하나의 브랜드 유산으로만 읽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라우센버그의 BMW 635CSi 앞에 서면 조금 다른 해석도 가능해진다. 그것은 자동차 위에 이미지를 입힌 협업물이 아니라, 라우센버그가 평생 시도해 온 콜라주적 사고, 서로 다른 시각 체계와 물질, 문화의 층위를 한 표면 위에 중첩하는 방식이 가장 선명하게 구현된 하나의 작업이기 때문이다.
100주년의 라우센버그를 다시 읽는 방식은, 미술관 벽면 안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한번, 자동차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