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RIS 2026 FW 컬렉션
“저는 말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촉감과 질감으로 생각합니다. 올가 데 아마랄에게서 영감을 받은 원단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 알버트 크리믈러, 아크리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버트 크리믈러의 코멘트는 이번 26 FW 컬렉션을 읽어내는 가장 정확한 단서였다. 지난 3월 8일 파리에서 공개된 아크리스 컬렉션은 소재가 지닌 원초적 생명력을 탐구하는 무대였다. 알버트 크리믈러는 그간 추상 화가 카르멘 헤레라(Carmen Herrera),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Sou Fujimoto) 등 동시대 거장들에게서 받은 예술적 영감을 패션의 언어로 번역하는 데 탁월한 감각을 보여왔다. 이번 시즌 그의 시선이 머문 곳은 콜롬비아의 직물 예술가 올가 데 아마랄(Olga de Amaral). 아마와 면, 말총 같은 거친 천연 섬유에 금박과 페인트를 입혀 직물과 조각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세계는 감각적 경험을 중시하는 아크리스의 미학과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었다.

런웨이에 설치된 황금빛 커튼은 아마랄의 금빛 텍스타일 작품에 대한 오마주이자, 이번 컬렉션의 테마인 ‘이성을 넘어선 감각의 초대(Beyond Reason, It Invites Sensation)’로 향하는 문이었다. 이번 아크리스 컬렉션의 가장 압도적인 성취는 단연 ‘소재의 연금술’이었다. 올가 데 아마랄의 시그니처인 금박 기법을 의상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시도는 그 자체로 감탄을 자아냈다. 얇은 금속성 소재를 겹겹이 쌓아 올린 코트와 스커트 수트는 빛의 각도에 따라 미묘하게 파동치며, 마치 박물관에 걸린 예술 작품이 런웨이 위를 걸어 나오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다. 여기에 생갈렌(St. Gallen)의 자수 기술을 기반으로 완성한 ‘브루마스(Brumas)’ 니트웨어는 작가의 ‘안개(Mists)’ 시리즈를 패브릭으로 구현한 정점이었다. 수직으로 늘어진 섬세한 프린지가 모델의 움직임에 따라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며, 안개 속에서 형체가 드러났다 사라지는 몽환적인 순간을 포착했다.
이번 컬렉션에서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질감의 레이어링이다. 가죽을 종이처럼 유연하게 다루는 테크닉은 레더 드레스에서 특히 빛을 발했고, 굵은 니트와 시폰, 매끈한 가죽과 캐시미어처럼 서로 다른 성질의 소재들을 한 착장 안에서 조화롭게 엮어냈다. 벨벳, 트위드, 시폰, 니트, 스팽글, 레더 등 다양한 소재를 과감하게 겹쳐 쌓아 올린 연출은 부피와 질감만으로도 충분히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브랜드의 자신감을 보여준다.
컬러 팔레트 또한 치밀하게 설계되었다. 차분한 블랙과 골드로 시작한 컬렉션은 콜롬비아의 토양을 닮은 테라코타와 번트 오렌지, 대지의 생명력을 품은 비비드 그린과 블루를 거쳐 감정의 절정을 상징하는 레드와 핑크로 이어졌다. 이 색의 흐름은 피날레 드레스 시리즈에서 다시 한 번 응축되었다. 차분한 블랙으로 시작한 이브닝 드레스는 선명한 레드로 이어지며 강렬한 여운을 남겼다. 한 올 한 올 연결된 드레스의 섬유 가닥들은 아크리스 장인정신의 집약체이자, 올가 데 아마랄에게 바치는 완벽한 헌사였다. 이번 아크리스 컬렉션은 패션이 도달할 수 있는 감각의 지평을 한 단계 넓히며 시대를 초월한 우아함을 보여주었다. 화려한 로고 플레이 없이도 이토록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아크리스가 정의하는 진정한 럭셔리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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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urtesy of AKRI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