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비통의 시간을 두드리는 손

김민지

고요함 속에 들려오는 루이 비통 아니에르(Asniéres) 공방의 망치 소리는 박물관의 정적과는 다르다.

그것은 새로운 탄생을 예고하는 리듬이다. 트렁크와 모노그램, 그리고 손의 기억. 이곳에서 유산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존재한다. 이 역사적인 공방에서 태어난 피에르-루이 비통(Pierre-Louis Vuitton)은 비통 가문의 6대째를 대표하는 인물로 루이 비통의 말티에(Malletier) 유산과 장인 정신을 보존하고 전승하는 데 헌신한다. 발전과 혁신 사이,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바꿀 것인가. 루이 비통의 장인 정신(Savoir-faire) 총괄, 피에르-루이 비통과의 대화에서 그 답을 찾았다.

1859년, 루이 비통이 설립한 현대적인 공방 아니에르는 수십 년 뒤 그의 아들 조르주(George)가 관리한 가족 저택이다. 아니에르 아틀리에가 만들어질 당시 루이 비통은 처음에 작은 거주 공간을 포함시켰고, 1870년에 이르러 가족을 정식으로 이주시켰다. 비통의 자녀들은 정원에서 뛰놀고, 근처 센강에서 노를 저으며 시간을 보냈으며, 사업에 입문하기 전 공방에서 가족의 전통 기술을 익혔다.
아니에르에는 풍성한 역사를 품은 동시에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전문 장인들의 기술을 간직하고 있다. 트렁크의 기본 구조를 만드는 목공 작업부터 리빙(ribbing), 로지나주(lozinage)까지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센강을 따라 오래 걷다 보면, 파리의 화려함은 점차 정제된 침묵으로 바뀐다. 1859년 설립된 아니에르(Asniéres) 공방은 루이 비통의 또 다른 얼굴이다. 이곳은 판매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제작의 공간, 전시를 위한 곳이 아니라 축적과 기억의 장소다. 트렁크가 태어나고, 모노그램이 정교해지고, 세대를 거쳐 기준이 다듬어지는 곳. 아니에르의 고요함은 비어 있는 침묵이 아니라 축적된 시간의 밀도에 가깝다.

럭셔리 하우스의 기원을 말할 때 우리는 종종 창립자의 이름과 연도를 나열한다. 그러나 루이 비통의 경우, 그 기원은 보다 구조적이다. 루이 비통의 혁신은 1858년 플랫 트렁크에서 시작됐다. 돔 형태 대신 평평한 상단을 선택한 이 구조는 적재를 가능하게 했고, 가볍고 방수 기능을 갖춘 그리 트리아농 캔버스는 여행의 방식을 바꿨다. 이 설계에서 영감을 받아 발전한 쿠리에(Courrier) 트렁크는 장거리(longcourrier) 여행을 위한 모델이었다. 포플러나무 구조 위에 캔버스를 입히고, 내부에는 트레이를 층층이 배치해 의류를 정교하게 분류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1870년대부터 도입된 내부 분할 시스템은 이동의 질서를 시각화한 장치였다. 말 오트, 말 쿠리에, 말 캐빈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구조는 수납 방식에 따라 선택할 수 있었다. 크루즈 객실 침상 아래에 두기 위해 고안된 캐빈 트렁크는 공간을 확보하면서도 기능을 유지하는 해법이었다. 이동은 점점 빨라졌고, 트렁크는 그 속도를 따라 진화했다.

메종의 아카이브와 유산을 볼 수 있는 갤러리에는 트렁크를 비롯한 방대한 아카이브 제품이 자리한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트렁크가 단지 물건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이동을 둘러싼 근대인의 욕망과 기술, 그리고 사회적 지위를 동시에 수용하는 구조였다. 19세기 후반, 여행은 특권이었고 이동은 계층의 지위를 드러내는 행위였다. 트렁크는 짐을 담는 상자가 아니라 소유자의 태도를 담는 오브제였다. 루이 비통은 이 오브제를 통해 ‘여행의 예술(Art of Travel)’이라는 개념을 현실에 구현했다.

아니에르 공방은 이 예술이 구체적으로 작동하는 장소다. 제작 과정은 지금도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목공으로 기본 구조를 세우고, 리빙(ribbing) 공정을 통해 캔버스를 입히며, 로지나주(lozinage)로 외곽을 단단히 고정한다. 황동 잠금장치와 브래킷, 손잡이를 부착하고 내부에는 말타주를 더한다. 1889년 특허를 받은 멀티플 텀블러 락은 오늘날에도 동일한 원리로 제작된다. 이 일련의 과정은 고도의 기술적 숙련을 요구하지만, 동시에 장인의 윤리적 태도를 전제한다. 반복과 인내, 정밀함과 판단력. 럭셔리가 단순히 희소성의 문제가 아니라 기준의 문제임을 이 공간은 조용히 증명한다.

조르주 비통(George Vuitton). 아버지 루이 비통을 향한 깊은 헌정과 대담한 비전으로 1896년 전설적인 패턴 모노그램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루이 비통의 유산이 기술적 완성도에만 머물렀다면 오늘날의 문화적 위상은 설명되지 않는다. 1896년, 조르주 비통이 탄생시킨 모노그램은 럭셔리 브랜딩의 초기 사례 중 하나로 평가된다. 위조 방지를 위한 보호 장치로 고안된 이 패턴은 교차하는 LV이니셜과 플로럴 모티프를 통해 단번에 식별 가능한 시각적 코드가 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구조화된 정체성이었다. 네오 고딕의 기하학적 질서와 자포니즘의 상징적 단순성이 결합된 이 문양은 동서양의 미학을 흡수하면서도 하나의 독자적 언어를 완성했다. 1900년대 초 포슈아(판화 및 채색 기법)를 통해 정교함을 더했고, 1959년에는 유연성과 내구성을 갖춘 새로운 캔버스로 진화하며 하드사이드 트렁크를 넘어 소프트 러기지와 백으로 확장되었다. 키폴, 스피디, 노에, 네버풀에 이르기까지 모노그램은 이동의 방식을 변화시켰고, 동시에 ‘Travelling Identity’라는 개념을 시각적 코드로 구현했다.

패션 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모노그램은 단순한 패턴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권위이자 클래식이다. 그것은 동일성을 유지하면서도 변주를 허용하는 구조이며, 그래서 다채로운 협업과 무한한 재해석을 수용할 수 있다. 수많은 아티스트와 디자이너가 이 패턴을 변형했지만, 정체성은 손상되지 않았다. 오히려 확장되었다. 이는 모노그램이 이미지가 아니라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작업대마다 다양한 연령과 배경의 남녀 장인들이 모여 메종의 타임리스한 피스를 위해 창작 열정과 장인정신에 대한 존중을 나눈다.

이 유산의 현재적 의미는 피에르-루이 비통(Pierre-Louis Vuitton)이라는 존재에 의해 또 한 번 구조화된다. 1974년 아니에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공방을 “금지된 세계”처럼 바라보았다고 회상한다. 장인 정신은 그에게 기술 이전에 태도였다. 인내, 절제, 그리고 한 가지 일을 평생 반복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 오늘날 루이 비통의 장인 정신(Savoirfaire) 총괄로서 그는 유산을 보존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준을 유지하는 사람이다.

그의 역할은 디자인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는 일이다. 디자이너가 형태를 제안하면, 그는 그것이 메종의 제스처와 기준에 부합하도록 구현되는지를 조율한다. 전통과 디지털 기술, 온갖 새로운 소재가 공존하는 지금, 그가 강조하는 것은 균형이다. 혁신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손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장인 정신’은 종종 마케팅 언어로 소비된다. 그러나 루이 비통에서 장인 정신은 기능과 상징, 인물과 장소가 교차하고 공명하며 구축된 장기적 시스템이다. 아니에르의 제작 과정, 1896년의 모노그램, 1959년의 캔버스 혁신, 그리고 현재의 장인 정신까지. 유산은 고정된 기념비가 아니라 끊임없이 재조정되는 기준이다. 이 기준이 유지되는 한, 루이 비통의 트렁크는 단지 이동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태도를 담는 구조로 남는다. 모노그램은 단순한 패턴이 아니라 권위 있는 표면으로 기능하며, 아니에르는 과거를 저장하는 장소가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작동한다.

2. 피에르-루이 비통(Pierre- Louis Vuitton), 장인 정신 총괄(Head of Savoir-fair). 그는 1974년, 메종의 역사적인 공방이 위치한 아니에르에서 태어나 비통 가문의 6대째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W Korea> 당신은 아니에르에서 태어났다. 하우스의 역사적 공간에서 성장한 경험은 오늘날 장인 정신 총괄로서의 시
각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피에르-루이 비통(Pierre-Louis Vuitton) 공방이 아이들을 위한 공간은 아니었지만 그곳은 마치 금지된 세계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세계를 경외심과 호기심으로 바라보았다. 이른 시기에 그러한 환경을 접한 경험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는 장인 정신에 대한 존중을 배우게 되었고, 그것이 요구하는 인내와 엄격함, 그리고 그 일에 평생을 바치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을 자연스럽게 키우게 되었다.

6대에 걸친 비통 가문의 일원으로서, ‘유산을 지킨다’는 것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보존일까, 아니면 진화일까?
나는 우리 가족 모든 구성원에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들로부터 강한 직업 윤리를 물려받았다. 오랜 시간에 걸쳐 절제와 겸손, 그리고 꾸준함을 통해 탁월함이 완성된다는 것을 배웠고 이해했다. 장인 정신(Savoir-Fair)을 총괄하는 책임자로서 나는 전승에 대한 존중, 디테일에 대한 열정, 그리고 각각의 피스 뒤에 담긴 인간적인 제스처를 기리고자 하는 끊임없는 의지를 가지고 작업한다.

장인 정신(Savoir-faire) 총괄로서 당신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면? 디자인과는 다른 차원에서, 창조 과정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나?
장인 정신 총괄 책임자로서 나의 역할은 하우스의 장인 기술과 노하우를 해석하고 구현해내는 것이다. 나는 루이 비통을 정의하는 기술, 제스처, 그리고 기준이 모든 피스에 걸쳐 보존되고 전승되며 적용되도록 한다. 디자이너들이 형태와 실루엣을 구상한다면, 나의 역할은 정밀함, 소재에 대한 이해, 그리고 기술적 실현 가능성을 바탕으로 비전을 현실화하고, 각각의 피스가 최상의 장인 정신을 보여주며 완성되도록 장인들을 이끄는 것이다. 기술적 차원을 넘어, 나는 유산과 혁신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크리에이티브 팀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탐색하는 것을 돕는 동시에 세대를 거쳐 하우스를 형성해온 제스처, 소재, 그리고 품질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아니에르 갤러리는 메종의 유산을 조명하는 전시를 정기적으로 여는 공간이다. 관람객들은 입체적인 디지털 트렁크를 지나, 주제별로 큐레이션된 전시를 자유롭게 거닐며 루이 비통의 창의적이고 아이코닉한 대화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

당신은 아니에르, 뒤세, 아르데슈, 드롬 등 여러 공방을 경험했다. 각 공방이 지닌 고유한 기술적 정체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각 공방은 저마다 특정한 유형의 피스 제작에 전념하면서 고유한 장인 정신을 반영한다. 트렁크 제작에 사용되는 제스처는 알마 백 제작에 요구되는 것과 다를 수 있다. 모든 피스는 저마다의 리듬과 정밀함, 그리고 전문성을 요구한다.

루이 비통의 말티에(Malletier) 유산은 오늘날 하드사이드 러기지에 어떻게 계승되고 있나? 또한 현대 고객에게 트렁크는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나?
루이 비통의 유산은 우리의 하드사이드 러기지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모든 트렁크에는 한 세기 이상 하우스를 정의해온 원칙이 담겨 있다. 구조의 정밀함, 디테일에 대한 세심함, 그리고 소재에 대한 깊은 존중이 그것이다. 디자인이 진화하더라도 이러한 기반은 변하지 않는다. 오리지널 트렁크를 혁신적으로 만들었던 내구성, 보호 기능, 그리고 우아함의 정신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의 작업을 이끌고 있다. 현대의 고객에게 트렁크는 러기지 그 이상이다. 여정의 상징이자 여행이라는 개념, 실용성과 아름다움의 결합, 그리고 경험만큼이나 장인 정신을 중시하는 전통과의 연결을 의미한다.

루이 비통의 아카이브 속 아이코닉한 피스.
루이 비통의 아카이브 속 아이코닉한 피스.
루이 비통의 아카이브 속 아이코닉한 피스.

올해는 루이 비통 모노그램 탄생 130주년이다. 모노그램이 세대를 넘어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모노그램은 그 자체로 하우스를 상징하는 강력한 아이콘이었다. 1900년까지는 서로 다른 패턴의 캔버스가 차례로 등장했다. 스텐실 기법으로 표현된 모노그램부터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캔버스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변화가 이어졌다. 오랜 시간, 그러니까 1980년대까지 모노그램은 루이 비통의 핵심 캔버스였다. 이후 추가적인 컬러와 소재가 도입되었지만, 모노그램은 강력한 정체성을 확고히 구축한 상태였다. 패션이 루이 비통 세계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으면서 더욱 공고해졌다. 긴 시간 속에서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들이 이를 포용하며 새로운 생명과 해석을 더해온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모노그램은 하나의 제품이자 동시에 창작을 위한 캔버스로 기능한다는 점이 매우 매력적이다. 하이 주얼리와 워치, 그리고 레디투웨어 패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이처럼 탁월한 다재다능함과 지속적인 존재감이야말로 오늘날 모노그램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제작 방식과 디지털 커팅, 새로운 소재 같은 현대적 기술 사이의 균형은 어떻게 유지되나?
나의 커리어 전반에 걸쳐 모노그램 캔버스 작업은 언제나 중심에 있었다. 이 캔버스로 대형 러기지를 제작하는 일은 놀라울 정도의 정밀함을 요구한다. 완벽하게 재단하고 각각의 피스에 정확히 배치하기 위해서는 하우스의 기준을 충족하는 숙련된 기술과 인내가 필요하다. 전통적인 장인 정신과 현대적인 혁신 – 새로운 소재에 대한 실험 등 – 사이에서 균형을 이룬다는 것은 우리 장인 정신을 규정하는 제스처의 본질을 존중하는 데 있다. 나에게 혁신은 결코 손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대를 거쳐 전해온 예술적 기량을 한층 끌어올리고 보존하는 방식이다.

루이 비통의 아카이브 속 아이코닉한 피스.
루이 비통의 아카이브 속 아이코닉한 피스.

오늘날 ‘장인 정신’이라는 단어가 종종 마케팅 언어로 소비되기도 한다. 당신이 정의하는 진정한 사부아페어는 무엇인가?
진정한 장인 정신은 기법이나 기술을 훨씬 넘어선다. 그것은 세심함과 고도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 그리고 판단력이 결합된 결과다. 소재를 깊이 이해하고, 제스처를 완벽히 구사하고, 공예가 지닌 역사를 존중하는 동시에 언제 혁신해야 하고 언제 전통을 지켜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장인 정신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것은 품질과 인내에 대한 약속이라 할 수 있다.

젊은 세대의 장인을 양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첫 번째 가치는 존중이다. 소재에 대한 존중, 작업 자체에 대한 존중, 그리고 세대를 거쳐 전해 내려온 지식에 대한 존중이다. 호기심과 겸손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장인 정신은 끊임없이 배우고, 관찰하며, 인내를 가지고 제스처를 다듬어가고자 하는 태도를 요구한다. 마지막으로 제스처가 완성되었는지, 디테일이 완벽한지 판단할 수 있는 감식안 역시 중요하다.

앞으로 루이 비통의 장인 정신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보나?
전통을 유지하면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당신의 비전이 궁금하다. 나는 루이 비통의 장인 정신이 전통과 혁신 사이에서 지속적인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우스를 형성해온 제스처와 소재, 그리고 원칙을 존중하는 동시에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 협업에 열린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본질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이 살아 숨 쉬며 세대를 넘어 적응하고 영감을 전하도록 하는 것이다. 나의 비전은 탁월함과 정밀함, 그리고 존중이라는 견고한 기반을 전승하는 동시에 창의성과 실험, 그리고 대화를 장려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루이 비통의 장인 정신은 결코 영혼을 잃지 않으면서 계속 진화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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