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작별, 아름다운 시작, 26 SS 조르지오 아르마니 프리베 오트 쿠튀르 컬렉션

명수진

GIORGIO ARMANI PRIVÉ  26 SS HAUTE COUTURE 컬렉션

파리 팔라조 아르마니(Palazzo Armani)에서 조르지오 아르마니 프리베 26 SS 오트 쿠튀르 컬렉션이 공개됐다. 이번 쇼는 창립자 조르지오 아르마니 타계 이후, 그의 조카 실바나 아르마니(Silvana Armani)가 선보인 첫 번째 오트 쿠튀르 컬렉션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40년 넘게 삼촌 곁에서 브랜드의 핵심을 함께해온 그는 데뷔 컬렉션을 통해 하우스의 유산을 계승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여성적 시각을 분명히 드러냈다.

컬렉션의 테마는 ‘제이드(Jade)’. 고대부터 권력과 영성을 상징해온 옥에서 영감을 받아, 섬세한 제이드 톤을 중심으로 핑크와 화이트 등 보석처럼 고운 컬러 팔레트가 펼쳐졌다. 이는 깊은 밤하늘을 연상시키는 네이비, 블랙과 어우러지며 차분하면서도 깊이 있는 대비를 이뤘다.

오프닝은 하우스의 상징인 매스큘린 테일러링을 재해석한 룩으로 시작됐다. 화이트 슈트에 뉴트럴 톤의 오간자 셔츠와 넥타이를 매치해 중성적이면서도 고전적인 분위기를 완성했다. 안경을 쓰고 관객을 응시하며 걷는 모델의 모습에서 현대적인 긱 시크 무드도 느껴졌다. 이후 컬렉션은 밤하늘의 별처럼 은은히 빛나는 드레스와 슈트, 그리고 조르지오 아르마니 프리베의 시그니처인 리퀴드 드레스로 이어졌다. 실루엣은 과장 없이 곧게 떨어지되, 새틴과 실크가 몸을 따라 미끄러지듯 흐르며 부드러운 곡선을 만들었다. 블랙 드레스와 팬츠 룩 위에 흩뿌려진 미세한 스팽글과 크리스털은 별빛처럼 반짝이며, 제이드의 서정과 대비되는 성숙한 관능을 더했다. 톤온톤으로 겹쳐진 파스텔 드레스와 미묘하게 빛나는 자수, 길게 늘어진 비즈 태슬은 ‘조용한 호화로움’이라는 아르마니 특유의 미학을 드러냈다. 조용한 럭셔리를 표방하면서도 장인 정신이 깃든 디테일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특히 시즌의 시그니처인 동양적 부채 모티프는 뷔스티에와 드레스, 가방 장식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은은한 오리엔탈 무드를 더했다.

후반부를 장식한 이브닝 드레스들은 옷 자체가 하나의 보석처럼 느껴졌다. 제이드 기운이 감도는 미색의 실크 새틴과 오간자 드레스는 과장된 볼륨 대신 몸을 따라 흐르는 슬림한 리퀴드 실루엣으로 절제된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거의 투명하게 보일 정도로 수많은 비즈와 시퀸을 장식한 톱에, 유기체를 연상시키는 길쭉한 새틴 자락을 여러 겹 쌓아 완성한 드레스, 아이보리 새틴 위에 제이드 컬러 비즈를 섬세하게 수놓은 드레스는 이번 컬렉션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하다.

피날레는 화이트 드레스로 마무리됐다. 이 웨딩 드레스는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타계 직전 직접 디자인을 완성한 작품이다. 가볍고 투명한 베일은 얼굴을 가리기보다는 신비로운 아우라를 형성하며, 그가 평생 추구해온 ‘드러내지 않는 화려함’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생전에 설계했으나 런웨이에 오르지 못했던 이 드레스를 실바나 아르마니가 쇼의 피날레로 선택한 것은, 하나의 챕터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페이지를 여는 조용한 헌사였다.

영상
Courtesy of Giorgio Armani Priv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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