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틴 도겸의 목소리는 어딘가 잘 다듬은 유리를 닮았다. 투명하지만 쉽게 흐려지지 않고, 빛을 받으면 또렷해진다.
그 목소리의 결을 담아낸 미니 앨범 <소야곡>의 발매를 앞둔 어느 날, 도겸은 유난히 차분한 상태였다. 소리를 키우기보다, 조곤조곤 마음의 밀도를 이야기했다.


<W Korea>연말과 새해 중, 어느 때가 더 좋아요?
도겸 새해요.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느낌이 좋아요.
아무래도 연말은 한 해의 성적표를 받는다는 느낌이 있죠.
그렇죠. 작년을 돌아보면 아쉬움이 좀 남아요. 뭘 하든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보니까 제가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쓰고 있더라고요. 그런 마인드를 덜어내는 게 올해의 목표예요. 덜 의식하고, 덜 눈치 보고, 더 가볍게 하자. 이런 마음가짐이에요.
올해, 서른을 맞아요. 서른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금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도겸은 어느 쪽이었어요?
원래는 빨리 서른이 되고 싶었어요. 어른이 된 느낌을 빨리 알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서른이 되니까 생각보다 크게 달라진 건 없더라고요. 열아홉에 데뷔해서 지금까지 삶의 흐름이 크게 바뀐 적이 없어요. 앨범 내고, 치열하게 살아가기, 그걸 계속 반복해온 거죠. 나이를 실감할 틈도 없었고요. 그래서 지금은 일 말고도 삶을 더 잘 채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나이에 맞는 사람이 되어가고 싶어요.


작년을 하나의 휴지통이라고 한다면, 그 안에 넣어두고 싶은 내 모습도 있나요?
그런 게 있죠. 자신을 좀 못나게 바라본 순간들요. 사실은 저한테 칭찬해주고 아껴줄 수 있는 부분이 되게 많았거든요. 조금 잘해도 ‘잘했다’고 해주면 되는 건데, 더 완벽해지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계속 스스로를 채찍질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거기서 못 멈추고, 더 깊이 파고들면서 제자신을 괴롭힌 순간들이 있었죠.
칭찬에는 박하지만, 그래도 스스로 잘했다고 느낀 순간도 있었어요?
작년에 가족들이랑 괌에 다녀왔어요. 누나가 결혼하고 처음으로 매형까지 함께한 가족 여행이었어요. 그때 기념으로 가족들에게 선물을 했거든요. 별거 아닐 수도 있는데, 그 순간이 좀 뿌듯했어요. 여행 마지막 날엔 한식당에 가서 고기에 소주 한잔을 즐기기도 했고요. 그날 꽤 진솔한 얘기를 나눴어요. 각자 속에 있던 마음을 조금씩 꺼내놓으면서요. 제가 원래는 가족에게 그런 얘기를 잘 안 하는 편이거든요.
평소 무뚝뚝한 아들이에요?
그렇다고 아주 무뚝뚝한 편은 아닌데, 힘든 걸 잘 드러내지 않아요. 그냥 알아서 잘 해내자는 마음도 있고, 부모님이 괜히 걱정하실까 봐요. 그런데 그 여행에서는 부모님께 조금 서운했던 마음을 털어놓는 시간을 모처럼 가진 거죠. 부모님도 얘기를 잘 들어주셨고요. 되게 좋은 시간이었어요.

도겸에게 2026년은 1월부터 달리는 해죠. 1월 12일, 도겸과 승관의 첫 유닛 앨범 <소야곡>이 발매돼요. 최근 공개된 트레일러를 보니, 꼭 사랑을 다룬 짧은 독립영화를 보는 느낌이었어요.
사랑 이야기를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소야곡은 흔히 세레나데라고 하잖아요. 밤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들려주는 노래예요. 승관이랑 작업하면서 ‘보통의 사랑’이라는 키워드에 꽂힌 것 같아요. 설렘으로 시작해서 권태기를 지나, 이별에 이르기까지. 사랑이 흘러가는 과정을 앨범 안에 담아보고 싶었어요. 스토리텔링이 분명한 앨범이다 보니 뮤직비디오도 요즘엔 드문 드라마타이즈 형식으로 찍었고요. 이유미, 노상현 배우가 출연해요.
유튜브 댓글을 보니 “세븐틴에 없던 분위기”라는 반응이 많더라고요. 영화 장르로 치면, 세븐틴의 음악이 액션이나 어드벤처라면 도겸과 승관의 음악은 정통 멜로에 가깝다는 인상이 있어요.
맞아요. 소야곡이라고 했을 때 제 안에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어요. 달빛 아래 나무가 있고,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고요. 그 자리에 그녀가 서 있는 거죠. 저는 그쪽으로 천천히 다가가고 있고요. 그런 정서를 가진 앨범이에요. 그간 우리 팀에서 해보지 않은 걸 시도했어요. 또 승관이랑 저는 팀의 메인 보컬이잖아요. 그 지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기도 했고요.
두 보컬 멤버의 만남, 그 합은 어땠나요?
사실 승관이랑 제 보컬 스타일이 꽤 달라요. 승관이는 감정 표현이 굉장히 섬세하고 호소력이 짙은 보컬이에요. 저는 그보다는 소리가 시원하게 뻗어나가는 타입에 가깝고요. 그래도 서로 겹치는 지점은 분명히 있어요. 그런 저희의 스타일을 잘 섞어서 만든 곡이 타이틀곡 ‘Blue’예요. 원래는 후반에 베리에이션이 없어서 조금 심심할 수 있었는데, 승관이랑 계속 얘기하면서 곡을 다듬어갔어요. 그러면서 이 곡만의 의미가 조금씩 생긴 것 같아요.
데뷔 이후 가장 많이 서로 음악 이야기를 나눈 시기였겠어요.
맞아요. 사실 승관이랑 이번처럼 음악 얘기를 깊게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러다 보니 서로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요. 특히 승관이가 생각보다 훨씬 섬세하더라고요. 원래도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자기 생각이 분명하고 본인만의 확고한 스타일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저는 좋아하는 건 있어도 그렇게까지 확고한 편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많이 배웠죠. 승관이가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나는 왜 이 부분엔 관심이 없었을까 생각도 해보고요.


언젠가 멤버 우지가 이런 말을 했죠. “타고난 보컬이 조슈아라면, 노력형 보컬은 도겸이다.” 이 말에 공감하나요?
네. 저는 타고났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진짜로요. 물론 사람마다 하나쯤은 타고난 게 있겠지만, 저 스스로를 노래 잘하는 사람이라고 여겨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했던 것도 있고요.
저는 도겸이 주인공의 목소리를 가졌다고 느꼈어요. 안정적인 톤에, 또렷하게 뻗는 소리. 만화영화 속 정의로운 주인공의 목소리 같달까요.
오, 그런 얘기는 처음 들어봐요. 제 목소리가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는 것 같긴 해요. 너무 튀지도 않고, 그렇다고 과하게 유니크하지도 않고요. 보컬로서도, 한 사람으로서도 안정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데, 제 목소리에도 그런 면이 조금은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보컬에서 줄이고 싶은 것, 혹은 더 남기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예전에는 고음을 얼마나 시원하게 내느냐, 성량이 얼마나 폭발적이냐가 중요해 보였어요. 그게 잘하는 거라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지금은 기준이 좀 달라요. 자기만의 색깔이 있는지, 그리고 그걸 얼마나 오래 갈고닦았는지가 더 중요해진 것 같아요. 쉽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사람이 멋있더라고요. 요즘 들어선 그것만큼 대단한 게 없다고 봐요.


그런 기준으로 돌아보면, 2025년은 세븐틴에게 특히 의미 있는 해였죠. 데뷔 10주년을 맞았고, 흔히 “세븐틴은 열심히 해서 성공한 팀”이라고 말하잖아요.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그 말에 공감이 가나요?
공감해요. 사실 저희가 처음부터 지금 같은 분위기였던 건 아니잖아요. 갑자기 뭔가가 된 게 아니라, 정말 차근차근 올라왔다는 느낌이 커요. 그래서 2023년 처음으로 MAMA에서 대상을 받았을 때 더 실감이 났던 것 같아요. 우지 형이 시상대에서 울컥했던 것도 기억나고요. 그때 멤버들 다 비슷했을 거예요. ‘우리가 말로만 듣던 대상을 받네, 진짜 이루어냈구나’ 하고요. 그날 저희끼리 자축도 많이 했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하자는 얘기를 나눈 게 지금도 생생해요.
데뷔 9년 차에 받는 대상이었죠. 개인적으로 그때가 세븐틴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순간 같았어요. 시간을 쌓고 쌓아 전성기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요. 그게 곧 세븐틴의 저력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데뷔 초에는 음악 방송 1위처럼 눈앞의 목표들이 전부였거든요. 그런데 하나씩 기준을 높여가다 보니까 어느 순간 대상까지 닿아 있었어요. 저희한테는 계단 밟듯 올라간 그 과정이 오히려 좋았던 것 같아요. 한 번에 확 올라갔으면 아무래도 좀 오만해질 수도 있잖아요. 시간을 들여서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지금도 멤버들끼리 마음가짐을 잘 붙잡고 있는 것 같아요.
13명이 함께한 10년이 마냥 무탈했다고는 할 수 없죠?
그렇죠. 저희 싸우기도 엄청 싸워요(웃음). 그런데 그만큼 서로에게 솔직하기도 해요. 사랑하니까 싸우는 거고요. 무엇보다 저희를 사랑해주는 분들이 많고, 또 우리가 우리를 많이 사랑하잖아요. 결국엔 그것밖에 없지 않나 싶어요.


데뷔 초엔 당연하게 여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고 느끼게 된 관계의 조건이 있다면요?
기분 나쁜 말은 웬만하면 안 하려고 해요. 당연한 얘기이지만요. 그리고 연습하다가 분위기가 가라앉을 때나 다들 지쳐 보일 때는 일부러 좀 엉뚱한 짓을 하면서 웃기려고 하는 편이에요. 어차피 같이 해야 하는 거니까, 서로 힘내서 하면 좋잖아요. 그런 파이팅을 넣어주는 역할을 제가 자연스럽게 맡아온 것 같아요.
“팀에서 나의 역할은 버팀목인 것 같다.” 데뷔 10주년을 맞아 공개된 디즈니+ 다큐 <세븐틴: 아워 챕터>에서도 이런 말을 했죠.
옛날부터 멤버들에게 그런 파이팅을 전해주는 걸 좋아했어요. 웃기고, 하하호호 유쾌한 분위기 만드는 거요.
그건 늘 주변을 먼저 챙기는 태도이기도 하잖아요. 도겸은 타인에게 친절한 만큼, 스스로에게도 친절한 편이에요?
저 자신에게는 그렇게 친절하지 못하죠. 특히 작년에 그걸 많이 느꼈어요. 남들에겐 별일 아닌 것도 저한테는 유난히 무겁게 느껴질 때가 많았고요. 그래서 올해는 아까 말했듯이 좀 달라져보자는 마음이 커요. ‘가볍게.’ 2026년은 이 단어로 한번 가보려고요.
2026년의 시작에 <소야곡>이 있는 셈이에요. 겨울밤에 특히 잘 어울리는 음악들이죠. 도겸이 떠올리는 가장 이상적인 겨울밤은 어떤 모습이에요?
일단 일본 료칸이 떠올라요. 따뜻한 온천에서 몸을 푹 담근 채 묵은 피로를 풀어요. 그러고 나와서 귤을 먹는 거죠. 제가 귤을 진짜 좋아하거든요. 한 박스를 앉은 자리에서 다 먹어요(웃음). 따뜻한 곳에 앉아서 귤을 까먹고 있는 그 순간이 제가 생각하는 멋진 겨울밤이에요.
- SPONSORED BY POLO RALPH LAUREN
- 포토그래퍼
- 고원태
- 스타일리스트
- 윤보람
- 헤어
- 남다은
- 메이크업
- 한아름
- 어시스턴트
- 나혜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