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의 색으로

W

데뷔 10년을 앞두고 돌아본 길 위에는 외로움도, 성찰도, 그리고 따뜻한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도 있었다.

아스트로의 윤산하는 그 모든 감정을 음악에 담는다.

트렌치코트, 니트 톱, 쇼츠는 아미 제품, 니하이 부츠는 에디터 소장품.

<W Korea> KBS <내 여자친구는 상남자>가 한창 방영 중이죠? 본인이 나오는 드라마를 실시간으로 보는 기분은 어때요?
윤산하 아무래도 부족한 부분이 더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아요. 솔직히 좀 오글거리기도 했고요. 어제는 쿠션을 손에 꼭 쥐고 봤고 등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어요.

그렇게까지 긴장할 장면은 없었던 것 같은데요(웃음). 아쉬움을 느낀 부분이 있나요?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더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예전부터 코믹 연기를 해보고 싶었거든요. 촬영할 땐 분위기도 좋고 괜찮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방송으로 보니까 ‘나만 왜 이렇게 텐션이 높지?’ 싶은 장면이 제법 있더라고요. 전체 흐름과는 조금 안 맞는 느낌도 있었고요. 코믹 연기는 힘 조절이 진짜 어렵다는 걸 새삼 느꼈어요. 살짝만 힘을 줘도 오버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면 어떤 장면인가요?
클럽에서 춤추는 장면이요. 제가 맡은 ‘윤재’는 극 중 천문학과에 재학 중인 모범생 캐릭터예요. 그런데 춤을 너무 자연스럽게, 잘 춰버린 거죠(웃음). 아스트로로 활동하면서 무대에 섰던 습관 때문인 것 같아요. 제 눈에는 그게 너무 잘 보이더라고요.

‘윤재’는 사실상 모태 솔로에 가까운 친구인데!
맞아요. 그런데 뽀뽀할 때도 굉장히 능숙하게 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더 민망했어요.

어느 계절에 촬영을 시작했죠?
작년 8월, 딱 이맘때네요. 정말 더울 때 촬영을 시작해서 무척 추운 12월에 끝났어요. 새삼 배우라는 직업이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날씨가 어떻든 감정을 잡고 연기에 몰입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배워야 할 게 아직 많구나 싶었죠.

드라마가 편성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어요. 마음 한편에 부담감도 있었겠어요.
맞아요. 주변에서 ‘요즘 드라마 환경이 어렵다’, ‘이미 다 찍어놨는데도 편성이 안 돼서 대기 중인 작품이 많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어요. 저도 걱정이 많았죠. 그러다 어느 날 편성이 확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기뻤어요. 동시에 걱정도 들었고
요. 제 연기에 대한 피드백을 본격적으로 받을 테니까요.

┃레더 재킷, 메시 폴로 톱, 자카드 팬츠, 벨트는 아미리 제품, 글러브는 에디터 소장품.

평소 멘탈이 강한 편이라 들은 듯한데.
보통은 악플에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편인데, 연기에 대한 냉정한 평가에는 위축되는 부분이 있어요. 제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수긍해서 그런가 봐요.

이번 작품의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는 어땠어요?
지난해 8월에 촬영이 들어갔으니까 감독님과 처음 미팅한 건 6월쯤이에요. 제목만 봤을 때는 웃음이 났어요. ‘내 여자친구가 상남자 같은 성격인가?’ 싶었는데, 막상 대본을 읽어보니까 반전이 많더라고요. 무엇보다 어느 날 갑자기 여자친구가 꽃미남으로 변해버렸다는 설정이 흥미로웠고요. 중간중간 예상을 뒤엎는 장면들이 있어서 뒤로 갈수록 더 재미있게 읽었어요.

극 중 ‘윤재’는 여자친구밖에 모르는 모범생이에요. 이 캐릭터를 처음 이해할 때 어떤 점에 주목했나요?
처음엔 좀 힘들었어요. 저랑 성격이 완전히 반대거든요. 저는 T 성향이라 ‘여자친구가 남자가 됐는데도 여전히 사랑한다고?’ 이해가 잘 안 됐어요. 그런데 연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캐릭터에 스며들더라고요. ‘진짜 사랑이 뭘까?’라는 생각도 하게 됐고요.

사람이 바뀌고 성별까지 바뀌었는데, 여전히 사랑할 수 있다는 거, 쉽지 않은 설정이죠.
맞아요. 흔히 연인이 ‘정 때문에 못 헤어진다’고 하잖아요. 딱 그 상황 같아요. 여자친구 ‘지은’의 성별은 바뀌었지만, 예전의 말투나 행동이 그대로 남아 있잖아요. 그래서 옛날 기억이 계속 떠오르는 거고요. 외형은 변했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거죠. ‘지은’은 하루아침에 남자 ‘지훈’으로 변하는데, ‘지훈’을 보면서 ‘지은’의 얼굴을 떠올리려는 노력을 많이 했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지은’이로 보이더라고요. 신기했어요, 저도.

극 중 ‘윤재’는 발이 아픈 여자친구를 위해 슬리퍼와 반창고를 가방에 챙겨 다니는 다정한 남자친구잖아요. 산하에게도 이런 면이 있나요?
‘윤재’만큼 스윗할 수는 없어요. 저는 그렇게 계획적인 사람이 아니라서요. 3일 뒤면 해외 팬콘 투어를 떠나는데, 전 출발하기 20분 전에 짐을 싸요. 그러니까 자꾸 뭔가를 빠트려요. 콘택트렌즈나 충전기를 안 챙겨서 1층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간 적도 있어요(웃음).

그럼 캐리어 짐을 쌀 때 본인만의 순서나 방식이 있어요?
있죠. 무조건 속옷부터 챙겨요. 그리고 어디서든 운동은 해야 하니까 트레이닝복은 필수고요. 청바지 같은 불편한 건 잘 안 챙겨요. 전 진짜 편한 걸 좋아해요.

팬콘 투어 준비는 잘 마쳤어요?
솔로 활동이 끝나고 일주일밖에 시간이 없었어요. 그런데 국내 공연과 해외 공연에 조금은 다른 느낌을 주고 싶거든요. 그래서 새로운 무대도 준비했어요. 남미 팬들이 좋아할 만한 현지 언어로 된 곡도 있고요. 두 가지 버전 다 준비하느라 정신없었지만, 준비는 얼추 끝났어요.

크러시드 재킷과 셔츠, 팬츠, 실크 타이, 앵클부츠는 보테가 베네타 제품.

투어 제목이 <Prism: From Y to A>예요. ‘프리즘’이라는 단어에는 빛을 분산시켜 다채로운 색을 만들어내는 힘이, ‘Y에서 A까지’에는 윤산하의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담긴 듯해요. 어떤 부분에서 가장 많은 아이디어를 냈어요?
요즘은 ‘멋있어 보이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관객과 더 잘 소통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요. 예전엔 춤선, 동작 등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그게 전부는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같은 멤버인 (차)은우 형에게 조언을 구했는데요. 남미는 고산지대라 숨이 가쁠 수 있다고 해요. 관객 반응도 뜨겁고 열정적이고요. 그래서 가끔은 민망한 상황이 생기기도 한대요. 그러더라도 당황하지 말라고 해서… 저도 최대한 즐겨보려고요(웃음).

본인 무대를 직캠으로 다시 볼 때는 어떤 부분을 제일 먼저 봐요?
표정이요. 그리고 춤선. 아무래도 아스트로 때부터 칼군무에 익숙해서인지 그걸 쉽게 못 버려요. 요즘은 자연스럽게 그루브를 타는 춤이 멋지다고 느껴요. 얼마 전에도 모니터링하면서 ‘왜 이렇게 숨차게 열심히 추지?’ 싶더라고요. 팀에서 막내다 보니까 ‘아스트로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더 열심히 한 것 같아요. 물론 팬분들이 그걸 좋아해주시기도 하지만, 저는 지드래곤 선배님처럼 무대 위에서 좀 더 즐기고 싶어요.

무대 위에서 실수하기도 하나요?
실수가 거의 없어요. 사실 그게 또 고민이에요. 너무 연습을 많이 해서 몸이 정해진 안무대로밖에 안 움직여요. ‘이번엔 다르게 해볼까?’ 해도 결국 다시 원래 동작으로 돌아오더라고요. 여유는 있는데, 그 틀을 못 깨는 거죠.

지난 7월 15일에는 두 번째 솔로 미니 앨범을 발매했죠. 수록곡이 모두 다른 색으로, 그만큼 감정의 폭도 넓은 앨범이었어요. 수록곡 중에서 본인의 감정을 가장 많이 담은 곡은 뭐예요?
‘Aura’요. 제가 작사, 작곡한 곡인데, 타이틀곡 ‘Extra Vigin’과 막상막하긴해요. 그런데 ‘Aura’엔 제 음악성과 진심이 더 많이 담겼어요. 메시지를 어떻게 담을까, 많이 고민하면서 만든 곡이에요.

작사, 작곡에 본격적으로 욕심을 내게 된 계기가 있나요?
가수라면 자기 음악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나중에 활동을 못하게 되더라도 누군가에게 ‘이게 내 음악이야’라고 들려줄 수 있는. 아스트로의 노래는 많지만, 제 노래는 없다는 게 늘 아쉬웠거든요.

이번 앨범을 들으며 ‘산하가 이런 장르도 소화하네?’ 싶은 신선함도 있었어요.
사실 여태 제 솔로곡은 대부분 발라드였어요. 그래서 새로운 걸 해보자 싶어서 알앤비와 댄스 장르에 도전한 거예요. 아직도 자신은 없어요. 아버지가 기타 치면서 노래하는 걸 보고 음악을 시작했거든요. 저희 형들도 음악을 하는데, 둘 다 댄스는 안 해요. 그런 환경이 저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나이 들면서 듣는 음악도 바뀌잖아요. 요즘 자주 듣는 음악은 어떤 장르예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팝을 좋아했는데, 요즘은 재즈랑 클래식에 빠졌어요. 아마 마음이 좀 안정되길 바라는 시기인 것 같아요.

산하에게 재즈는 어떤 의미인가요?
여유요. 그래서 더 찾는 것 같아요. 스케줄 중간 이동할 때나 자기 전, 샤워할 때도 항상 재즈를 틀어요. 뭔가 마음을 다독여주는 느낌이 있거든요.

레이스 셔츠, 팬츠, 슈즈는 펜디 제품.

<Chameleon>은 산하의 성장 기록처럼 느껴지기도 하더라고요. 앨범을 만든 자신에게 편지를 쓴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어요?
잘했다. 고생했다. 그리고 더 잘하자. 이번 활동을 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멤버들이랑 늘 함께 있다가 혼자 활동하다 보니 외롭기도 했고, 형들의 존재가 얼마나 큰지 더 절실히 느꼈어요.

다음 앨범에는 어떤 색깔을 담고 싶은가요?
이번 앨범은 대중성을 중점적으로 생각했어요. 대중과 더 가까워지고 싶은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다음에는 챌린지하기 좋은 중독성 있는 후렴구로 가볼까?’라는 생각도 했고요. 그런데 또 그런 곡을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개인적으로는 타이틀곡 ‘Extra Virgin’이 역주행을 했으면 좋겠어요. 여름의 청량함이 딱 살아 있는 곡인데, 많은 분들이 아직 못 들어본 것 같아 아쉬워요.

앨범명으로 이 <Chameleon>아닌 다른 제목을 붙였다면 어떤 단어가 어울렸을까요?
원래 후보가 ‘카멜레온’과 ‘팔색조’였어요. 그런데 ‘팔색조’는 좀 올드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카멜레온’으로 정했는데, 솔직히 더 좋은 단어를 끝까지 찾아보려고 했거든요? 결국엔 못찾았어요. 다시 정한다고 해도 ‘카멜레온’만 한 게 없는 것 같아요.

누군가는 산하를 두고 ‘정이 많고 속이 깊지만, 의외로 기가 세고 쿨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또 어떤 사람은 ‘할 말은 꼭 하는 단호한 모습’도 있다고 하고요. 스스로 동의하세요?
음…상대방이 기가 세면 저도 지고 싶지 않아요. 제가 아스트로 막내로 10년을 살았잖아요. 자연스럽게 눈치도 빨라지고, 센스도 생긴 것 같아요. 그렇다고 무조건 할 말을 하는 스타일은 아닌 듯해요. 삼키는 것도 많아요. 하지만 저에게 피해가 생긴다 싶으면 꼭 말하는 편이죠.

아스트로는 각자의 영역에서 활약 중인데 서로에 대한 믿음과 응원이 느껴져요. 특히 작년 솔로 활동 당시 ‘목표는 차은우’라고 말하기도 했고요. 최근 멤버 차은우가 입대했는데, 그의 부재가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나도 곧이구나. 얼마 안 남았구나.’ 그날 밤이 기억나요. 연습 끝나고 늦게 집에 들어왔는데, 형이 입대하기 하루 전이었어요. 오랜만에 기타를 잡았어요. 형한테 ‘이등병의 편지’를 불러주고 싶었거든요. 괜히 마음이 허전하고 센치해지더라고요. 친형이 군대 갈 때보다 마음이 더 안 좋았어요.

레더 재킷, 니트 톱, 플랫 캡은 돌체앤가바나 제품.

그만큼 많이 의지했나 봐요.
네. 은우 형은 늘 저보다 앞서서 무언가를 해왔어요. 아스트로 솔로 첫 타자도 형이었고, 배우 활동도 가장 먼저 시작했고요. 1년 반 동안 의지할 사람이 사라졌다는 게 저에게는 큰 공허함으로 다가왔어요. 다른 멤버나 회사 분들도 “산하 표정이 왜 이렇게 어둡니?”라고 할 정도였어요. 저도 모르게 생각이 많아지고… 그래서 형이 제대할 즈음엔 어깨를 견줄 만큼 빨리 성장하고 싶어요.

비슷한 연차의 여느 보이 그룹처럼 아스트로도 ‘군백기’를 겪고 있어요. 예상한 일이지만 막상 닥치면 공백이 크게 느껴지기도 하죠.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어요?
우리끼리 약속한 게 있어요. 각자 활동하면서 자기 영역을 더 넓혀보자. 지금은 떨어져 있지만, 이 시기를 허투루 보내고 싶지는 않아요.

2026년 2월 23일이면 데뷔 10주년이네요. 아직 시간이 좀 남았지만 그사이에도 많은 일이 있겠죠. 어떤 모습으로 10주년을 맞이하고 싶나요?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데뷔할 때 그렸던 10년 후의 그림과 지금 모습은 조금 달라요. 그땐 야망도 크고 꿈도 컸거든요. 미국 슈퍼볼 하프타임 무대에 서는 걸 상상했지만(웃음). 그게 다 이루어지진 않았어도, 지금 모습도 좋아요. 형들이 옆에 있기만 해도, 그것만으로도 행복해요.

요즘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뭔가요?
신인 때처럼 다시 열심히 해보자. 이건 은우 형이랑도 약속한 거예요. 앞으로 몇 년 동안 진짜 열심히 해보려고요. 그렇게 하면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후회는 안 할 것 같아요.

산하가 인생에서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가치가 있다면?
제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 챙기는 것. 그 사람들이 웃고 잘 지내는 걸 보면 제 마음도 편해요. 제가 큰돈을 쓰더라도, 그 사람들을 위한 거라면 전혀 아깝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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