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몰입해 밀고 나가는 태도, 방효린

이예지, 전여울

사랑하는 마음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의 주인공 ‘주애’는 연기를 위해서라면 자신을 기꺼이 던지는 인물이다. 이 캐릭터를 배우 방효린이 연기했다는 건, 어쩌면 필연에 가까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뜨겁게 몰입하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태도에서 두 사람은 거울처럼 서로를 비춘다.

코트, 실크 톱, 스커트, 니트 뷔스티에, 빨간 스카프, 앵클부츠는 토즈 제품.

<W Korea> 첫 매거진 화보라고 들었어요. 어제는 무슨 생각을 했어요?
방효린 오늘 토즈 의상을 입고 촬영했잖아요. 어젯밤 ‘어떤 예쁜 옷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상상하면서 내내 설렜어요. 오래전부터 가장 좋아한 브랜드였거든요. 처음으로 가져본 명품 가방도 토즈였어요. 스물네 살 때인데, 그 당시에는 돈이 없어서 알바해 모은 돈으로 중고 제품을 샀어요.

여행 좋아하나요? 인스타그램의 사진 대부분이 여행지에서 찍은 것들이에요.
작품이 끝나면 일단 여행을 가요. 인도네시아를 좋아하는데, 올해 발리, 자카르타에 다녀왔어요. 바다 수영을 좋아해서 최근엔 발리 길리섬에서 거북이와 함께 수영하기도 했고요. 아, 멕시코도 좋아해요. 멕시코에서 한 달을 보낸 적이 있는데 거리 풍경도 너무 예쁘고, 사람들도 좋고, 음식도 정말 맛있었어요. 행복한 기억밖에 없어요.

여행을 갈 때 캐리어에 어떤 책을 챙기곤 해요?
주로 시집이에요. 중학생 때까지 꿈이 시인이었거든요. 요즘엔 〈도넛을 나누는 기분>을 한창 읽고 있어요. 산문은 적힌 것을 그대로 따라가며 읽는 기분이라면, 시는 생각지도 못한 예상 밖의 것을 계속해서 만난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 게 마음에 들어올 때가 좋아서 시집을 자주 읽어요.

벨티드 장식 가죽 코트는 토즈 제품.

이해영 감독이 연출을 맡은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가 곧 공개되죠. 1980년대 극장가를 뒤흔든 영화 <애마부인>의 탄생 과정을 좇아 당시 충무로의 민낯을 그려낸 작품이에요. 이번이 첫 상업 작품 출연이죠? 공개를 앞둔 지금의 기분은, 설렘과 긴장감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요?
설레고 기대되는 마음이 가장 커요. 촬영하며 가장 자주 한 말이 ‘너무 재미있다’였어요. 늘 현장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달력에 하루하루를 지우는데 그게 너무 아쉽더라고요. 다시는 그날의 대사를 할 수 없으니까요. 배운 것도 정말 많은 현장이었고요. 지금은 모두가 열심히 만든 작품을 많은 사람이 같이 즐기고 좋아해줬으면 하는 마음뿐이에요.

<애마>의 캐스팅이 공개된 후 익숙한 이름들 사이 ‘방효린’을 발견하며 물음표를 띄운 이들이 적지 않았을 거예요. 2015년 단편영화 <렛미인>으로 데뷔하고 줄곧 독립영화계에 몸 담아오다, <애마>로 대중 앞에 본격적으로 나선 셈이죠.
안 그래도 최근 드라마 감독님들과 미팅하면 ‘왜 이렇게 상업을 늦게 했니?’라는 질문을 종종 받아요. 그럴 때면 그냥 웃기만 했는데, 스스로도 ‘왜였지’라고 생각하면 ‘그저 좋아서’였던 것 같아요. 같은 꿈을 꾸는 학교 친구들과 뭔가를 만든다는 게 너무 즐거웠어요. 또 빨리 소속사를 가져야 한다거나 모두가 보는 드라마에 출연해야겠다는 생각이 별로 없었어요. 다행히 독립 영화를 찍으며 하고 싶은 건 거의 다 해본 것 같아요. 그 경험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까지 갈망이나 갈증이 남아 있었을 거예요.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보면서 연기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진 듯하고요. 나에겐 이런 성향이 있구나, 이런 얼굴이 있구나 하면서 스스로를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알려진 바에 따르면, 무려 2700:1의 경쟁을 뚫고 <애마> 속 ‘주애’ 역에 캐스팅되었죠. 오디션 당시를 기억하나요?
아마 2차 오디션 때였을 거예요. 이번 작품은 이해영 감독님이 직접 극본과 연출을 맡으셨잖아요. 오디션 현장에서 감독님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내가 쓴 대사를 이렇게까지 표현해줘서 너무 고맙다.’ 그 순간, 당락과 상관없이 이미 마음이 벅차고 감사했어요. 그 말만으로도 오래 기억에 남는 하루였거든요.

시어링 코트는 토즈 제품.

한마디로 <애마>는 ‘영화’에 관한 이야기예요. 사실 할리우드엔 이런 류의 작품이 많아요. 데이미언 셔젤의 <바빌론>, 코엔 형제의 <헤일, 시저!>,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등은 모두 할리우드 영화 산업을 해부한 작품들이죠. 개인적으로 관객으로서 그때 그 시절의 충무로를 다룬 이야기가 드물다는 점이 늘 아쉬웠어요. 그래서 <애마>는 관객뿐 아니라 배우인 당신에게도 오래 기다려온 작업이었을 듯한데, 어떤가요?
저도 방금 말씀하신 영화들 전부 좋아해요. 저 또한 영화를 사랑하고, 제 삶에서 가장 큰 관심사가 연기다 보니 영화, 연기, 배우를 이야기하는 작품이 가장 재미있는 것 같아요. 또 아빠의 영향으로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요. 아빠는 혼자서도 독립영화나 GV를 보러 가실 정도로 영화광이세요. 어렸을 땐 극장 바로 건너편에 사셨는데 창문 너머로 신작 간판이 걸리면 그날은 꼭 극장에 가셨대요. 이번 〈애마〉는 1980년대 영화판을 배경으로 하잖아요. 이해영 감독님은 당시의 충무로를 이야기하기 위해 한국 영화사의 분기점 역할을 한 <애마부인>을 소재로 삼으셨다고 했어요. 어쨌든 시대극적 요소가 있는 작품이라, 저도 이참에 아빠와 함께 그 무렵 한국 영화들을 다시 봤어요. <겨울 여자>, <꽃순이를 아시나요>, <고교 얄개>, <나는 77번 아가씨다> 등등. 다행히 <애마부인>은 예전에 이미 봤고요. 안소영 선배님의 인터뷰를 찾아본 기억도 있어요.

극 중 <애마부인>의 주인공으로 발탁된 ‘주애’는 연기 경험이 전무한 인물이죠. 어떤 성격의 인물인가요?
‘주애’는 나이트클럽에서 탭댄스를 추며 배우의 꿈을 키워가던 중 우연한 기회로 <애마부인>의 오디션에 참가해요. 당돌한 매력에 사로잡힌 제작진은 곧바로 ‘주애’를 주연으로 캐스팅하죠. 일약 화제작의 얼굴이 된 ‘주애’는 일단 연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굉장히 큰 아이예요. 단단하면서 당차고, 목표를 정하면 반드시 이뤄내고, 때론 참고 견딜 때도 있지만 맞서 싸울 줄도 아는 용감한 아이예요.

‘주애’와 방효린은 얼마나 닮았어요?
극 중 ‘주애’가 이런 말을 해요. “연기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뭐든 할 수 있다.” 그런데 ‘주애’는 정말 그런 애거든요. 연기를 위해 자신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는 아이예요. 연기를 너무 사랑한다는 것이 저와 정말 닮았다고 느껴요. 다만 ‘주애’는 저보다 훨씬 강한 사람인 것 같아요. 행동이나 말을 보면 ‘나는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을 때가 많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런 ‘주애’가 너무 용감하고 멋있어 보여요.

양가죽 튜브톱 드레스, 가죽 부츠는 토즈 제품.

2023년 개봉한 영화 <지옥만세>를 촬영하면서는 맡은 캐릭터가 혼자 있을 때 무엇을 할까 상상하며 인물을 구체화했다고 들었어요. 보통 인물의 ‘빈칸’을 상상하며 접근하는 편인가요?
대본 밖의 것을 상상하며 확장해가는 걸 좋아하긴 해요. 그런데 ‘주애’는 딱히 그럴 필요가 없었어요. 마치 살아 있는 인물을 만난 기분이었거든요. 대본에 모든 게 녹아 있었고, 저는 그저 그대로 따라간 것 같아요.

그건 대본상 지문이 꼼꼼히 적혀 있었다는 의미일까요?
아니요. 인물의 대사가 완벽히 공감됐어요. 정말 그 사람이 할법한 말만 적혀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대사만으로도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또렷하게 그려지는 경우였어요.

트위드 재킷, 검정 웨이브 백은 토즈 제품.

이해영 감독은 특유의 영상미와 미장센으로 잘 알려져 있잖아요. 이번 작품에서 그가 당신의 얼굴을 어떻게 해석하고 담아냈을지 무척 기대돼요.
감사하게도 저의 있는 그대로를 좋아해주셨어요. 늘 하신 말씀이 ‘아무것도 안 해도 좋다’, ‘이 자체로 예쁘다’였어요. 제가 눈썹이 유독 짙은데 제 눈썹을 특히 좋아하셨고요. 굉장히 디테일하신 분이라 눈썹 한 올이 흐트러져 있으면 바로 알아채세요. 얼굴에 작은 뾰루지가 난 날이면 가장 먼저 알아채고 ‘어떡해!’라며 저보다도 속상해하시는 스타일이에요(웃음). 극 중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독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어요. 하나하나 정말 작은 것까지도요. ‘주애’에게 어울리는 화장을 찾기 위해 아이섀도와 립스틱 수십 가지를 펼쳐놓고 감독님과 하나하나 발라보며 색을 정했을 정도예요.

<애마>를 촬영하며 보낸 뜨거운 한 철을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요?
<애마>를 찍으면서 저는 그냥 ‘주애’가 됐던 것 같아요. 머릿속에 온통 작품 생각뿐이라 누구를 만난 기억도, 레스토랑에 가서 제대로 된 한 끼를 먹은 기억도 없어요. ‘오늘은 잘했구나’ 혹은 ‘오늘은 못했구나’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죠. 사실 다른 작품을 할 때도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캐릭터와 닮아진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닮아져야지’가 아니라 ‘닮아진다’는 표현이 정확한데요. 누구보다 캐릭터 가까이 서서 속내를 들여다보고 이해하려다보니 그렇게 되는 걸 거예요. 이번에도 역시 저는 ‘주애’가 되는 경험을 했어요. 그래서 촬영이 끝나고 공개만 남은 지금 캐릭터에 대한 그리움이 크게 남았어요. 계속 생각나고 또 그리워요.

파시미 가죽 트렌치코트, 셔츠, 가죽 스커트, 부츠는 토즈 제품.

배우를 꿈꾸게 만든 영화가 있을까요?
<웰컴 투 동막골>과 <파이란>이 떠올라요. 두 작품 속 강혜정, 장백지 배우의 연기를 보면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깊고 투명하다고 느껴져요. 마치 캐릭터의 삶과 마음을 내가 전부 읽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요. 그때 처음 알게 된 것 같아요. 연기가 단순히 대사를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고, 모든 걸 깨버리고, 새로운 마음을 심는 일이라는 것을요. 그게 마치 마법 같다고 생각했어요.

나와 닮았다고 느낀 소설이나 영화 속 주인공이 있나요?
<빨간 머리 앤>의 앤을 보면서 ‘나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앤은 공상하는 걸 좋아하고 가끔 엉뚱한 실수를 숱하게 하지만 결국에는 성장해가는 인물이거든요. 그리고 앤의 꿈도 작가예요. 소설을 읽으면서 앤이 하는 말이 좋은 건 둘째 치고 일단 너무 공감이 됐어요. 제가 언젠가 연기 수업을 하며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어요. 그때 학생들도 ‘선생님 앤 같아요. 앞으로 앤 선생님이라고 부를 거예요’라고 하는데 저는 기분이 참 좋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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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효린의 비밀 세 가지를 알려주세요.
첫째,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에요. 뭔가 들킨 기분이 들어서 어디 가서 MBTI 얘기를 거의 안 하지만 일단 INFP입니다(웃음). 둘째, 빵을 너무너무 좋아해요. 별명이 ‘빵효린’인데 크림빵이나 케이크처럼 달달한 디저트류를 특히 좋아해요. 셋째, 아이들을 좋아해요. <지옥만세>는 아역 친구들이 많은 현장이었는데 정말 행복했던 기억밖에 없어요. 지금도 종종 그 귀엽고 사랑스러운 친구들과 연락을 나눠요.

요즘 마음속에 품고 있는 한 문장이 있다면요?
‘오랫동안 꿈을 그린 자는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사실 지금 이렇게 인터뷰를 나누는 것도 예전부터 꿈꿔온 순간이에요. 토즈 백을 좋아했는데 오늘 토즈 옷을 실컷 입고서 촬영했고요. <애마>가 곧 공개된다는 건 두말할 것도 없죠. 마음속에 계속해 꿈을 그리면 그 꿈이 선명해진다고 믿어요. 오늘이 바로 그런 하루였고요.

<애마>가 공개되면 또다시 아주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행을 떠날 건가요? 오늘 입은 토즈 의상들과 어울리는 여행지와
순간은 무엇일까요?

이탈리아 로마가 좋을 것 같아요.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고, 옷을 다시 여미고 거리를 걸어가는 모습이 상상돼요.

포토그래퍼
목정욱
스타일리스트
김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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