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팝의 슈퍼노바, 레이베이

김현지

재즈 팝계의 슈퍼노바, 아이슬란드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레이베이가 지난 6월 서울재즈페스티벌로 처음 한국을 찾았다. 1999년생으로 올해 그래미 어워즈에서 최연소로 ‘최우수 트래디셔널 팝 보컬 앨범’을 수상하고 단 몇 장의 앨범으로 단숨에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의 정점에 선 인물. 서울을 찾은 레이베이와의 만남은 그녀의 음악, 무대만큼이나 어딘가 초현실적이었다.

장미 모양 이어링은 알렉산더 맥퀸 제품.

레이베이(Laufey)는 재즈 팝계의 빌리 아일리시다. 이제 스물다섯 살인 이 싱어송라이터가 단 몇 장의 앨범과 싱글로 음악사를 새로 쓰고 있다. 작년 발매한 2집 는 스포티파이 역사상 재즈 앨범의 발매 당일 최다 스트리밍 기록(약 570만 회)을 깼다. 대표곡 ‘From the Start’는 무려 3억6,000만 회 이상의 재생수를 기록 중이다. 재즈, 클래식의 요소에 아름다운 팝 멜로디를 토핑해 잘파세대를 블루노트 선율의 끈적한 늪, 바이올린과 첼로의 깊은 숲으로 인도하는 세이렌이다. 고운 선의 외모와 상충하는 녹진한 알토 보이스, 체리 샴푸처럼 시고 쓴 사랑의 언어를 얹은 가사. 지난 6월 1일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서 처음 선보인 그의 내한 무대는 초현실적이었다. 레이베이의 손끝에서 나오는 기타의 탄현, 피아노의 타건, 보컬 애드리브의 음표 하나에 모두가 숨죽였고, 곡이 끝날 때마다 낮은 탄성, 우레 같은 박수가 교차했다. 기적의 싱어송라이터 레이베이를 서울 강남구 한복판의 촬영장에서 마주하는 일 역시 여러모로 비현실적이었다.

구조적인 디자인의 베스트, 레이어드한 핑크색 드레스는 느와 케이 니노미야, 타비 슬링백 슈즈는 메종 마르지엘라 제품.

<W Korea> 올해 서울재즈페스티벌에 참가하며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어요. 공연 말고 한국을 느껴볼 시간을 좀 가졌나요?
레이베이 늘 오고 싶은 곳이었는데 드디어 방문하게 됐어요. 공연 전날 서울의 수산시장에 들렀는데 무척 흥미로웠어요.


이런, 당신은 레이캬비크 출신이잖아요. 아이슬란드야말로 수산물로 유명한 곳인데 서울까지 와서…?
하하. 그러게요. 제가 수산물에 눈높이가 좀 높은데요. 한국에서 맛본 연어와 소라고둥은 정말 최고였어요.


이번 무대에서 현악 4중주, 그리고 당신이 직접 연주하는 기타와 피아노, 보컬만으로 완벽한 무대를 보여줬잖아요. 대단한 80분이었어요.
과찬의 말씀이에요. 사실 한국의 4중주단이 너무 훌륭했어요. 무대 뒤에서 그분들께 말했죠. “여러분은 제 부족한 음악이
아니라 베토벤을 연주해야 합니다!”


무대 위의 당신에게서도 한 치의 흠을 찾기 힘들었는걸요.
또 과찬의 말씀을···(웃음). 클래식 음악가 집안에서 자란 영향일까요. 엄마가 바이올리니스트이고 외조부모 모두 중국 베이징 중앙음악학원 교수셨거든요. 어릴 적부터 피아노와 첼로를 잡았죠. 엄마는 제가 하루에 몇 시간씩이나 연습에 매진하도록 독려하셨고, 그렇게 네 살 부터 열여덟 살까지 기량을 익힌 게 좋은 자양분이 된 듯해요.

저도 클래식 음악, 또 실내악 앙상블을 참 좋아해요. 혹시 특별히 아끼는 현악 4중주나 실내악 작품이 있다면요?
한두 곡만 고르기는 힘든데 쇼스타코비치 현악 4중주를 뺄 수 없죠. 동생과 정말 많이 연주했거든요. 연주해보면 쇼스타코비치가 즐겨 쓰는 전매특허 같은 패턴을 알아차리게 돼서 퍼즐 풀듯 흥미진진한 작품이에요. 라벨의 현악 4중주, 멘델스존의 피아노 3중주도요. 라벨은 클래식이지만 특유의 ‘재지’한 매력이 있죠. 현악 4중주는 밴드 음악 같은 면이 있어서, 심취해 듣다 보면 무대를 휘젓는 록스타를 보는 것 같아요.


클래식 연주를 숨 쉬듯 하며 성장했는데, 팝 싱어송라이터가 되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뭔가요?
아빠가 재즈를 너무 좋아해서 저도 덩달아 재즈를 많이 들으며 자랐어요. 조금 더 커서는 내 노래를 만들고 싶어졌죠. 팝 음악의 스토리텔링, 재즈 음악의 코드 진행과 멜로디, 영화적이고 마법 같은 클래식 음악의 매력 등등. 그 모든 것의 장점을 저만의 방식으로 조합해보고 싶었어요. 클래식은 제게 큰 장벽이기도 했어요. 완벽한 연주에만 천착했지, 음악을 창작한다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한번 ‘마음의 자유’를 찾은 뒤에는 클래식의 기량, 재즈나 팝의 자유와 개방성을 겸비할 수 있었으니 되레 저의 장점이 돼줬죠.

올해 제66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정규 2집 로 ‘최우수 트래디셔널 팝 보컬 앨범’을 수상했죠. 이 부문 역대 최연소 수상자예요.
좀 더 연륜이 있는 분들이 타리라 생각해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어요. 저에게 진정한 트로피는 젊은 분들이 이런 음악에 여전히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예요.


당시 그래미 어워즈에서 빌리 조엘의 무대에 첼리스트로 출연한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무대 화면에서 당신을 발견하고 무척 반가웠어요.
정말 미쳤죠. 아는 작곡가 중 한 분이 빌리와 인연이 있는데, 마침 빌리가 첼리스트를 찾고 있다고 했어요. 저는 어차피 그래미 후보 자격으로 현장에 가게 돼 있으니 흔쾌히 참여하겠다고 했죠. 빌리와 무대에 오를 때는 이미 제 그래미 수상이 결정된 뒤여서 긴장이 쫙 풀린 상태였어요. 그저 그 순간을 즐겼죠. 너무 긴장이 풀려서 글쎄, 엔드핀(첼로를 바닥에 고정시키는 도구)이 계속 밀리는 줄도 모르고 연주했다니까요.


당신의 음악은 종종 마치 60~70년은 묵은 고전처럼 들려요. 트래디셔널 팝 스타일로 신곡을 쓰는 것은 클리셰와의 싸움일 수 있는데, 그 싸움에서 이기는 비결이 있나요?
노래가 전달하는 스토리 자체에 집중하는 거요. 곡의 구조나 화성 진행 같은 기술적인 부분은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 것. 마음이 길을 잃도록 내버려둘 것. 스토리가 주도권을 쥘 수 있도록 할 것. 마치 자신이 20세기 같은 지난 세기에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속이지도 말 것. 그저 2020년대를 사는 평범한 스물다섯 살 여성의 관점에서 현대적 삶의 이야기를 풀어낼 것.


미국 보스턴의 버클리 음대를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해 졸업했죠. 거기선 주로 어떤 걸 배웠나요?
첼로 연주와 뮤직 비즈니스를 전공했어요. 내내 첼로를 메고 다녔는데 버클리 음대에서 흔한 악기는 절대 아니었어요. 처음엔 어려웠어요. 클래식 연주에만 익숙했던 제가 재즈 콤보에 첼로를 들고 들어가 자유 즉흥 연주를 해내야 했으니까요. 호되게 재즈를 배웠죠. 가끔은 깊은 물에 던져져야 헤엄쳐 나오는 법을 익히잖아요. 앞에 했던 클리셰 이야기로 돌아가면, 쳇 베이커나 엘라 피츠제럴드의 몇 곡만 듣고 좋아서 음악을 만든다면 ‘유사품’을 만들기 쉬울 거예요. 하지만 한 장르에 대해 그 기원과 뿌리까지 연구하고 수많은 작품을 배우면서 본질에 접근하면 비로소 클리셰를 피할 수 있게 된다고 믿어요.


중국계 아이슬란드인이고 성인이 된 후로는 주로 미국에서 생활했어요. 여러 문화권 속에서 살아온 삶이 음악에도 영향을 끼
쳤나요?

물론이에요. 어려서부터 레이캬비크와 워싱턴DC를 오갔고 여름방학은 늘 할머니와 베이징에서 보냈어요. 열여덟 살에 보스
턴으로 이주해 버클리 음대를 다녔고, 3년 전부터는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어요. 스토리텔러로서, 다양한 문화권과 정서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건 아주 유리해요.

이어링은 펜디, 오프숄더 재킷은 르주 제품.

스토리텔러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가사를 보면 첫사랑, 풋사랑, 짝사랑, 망한 사랑에 대한 스토리가 아주 많아요.
하하하. 맞아요. 제가 사실 청소년기에 거의 연애를 하지 못했어요. 학교, 집, 피아노, 첼로··· 이런 식이었죠. 그러다 처음 사랑이란 걸 하게 됐는데, 웬걸. ‘아니, 도대체 이 이상한 감정은 뭐지?’ ‘세상 사람들이 다 이런 말도 안 되게 강렬한 감정을 느꼈다고?’ 하며 거의 쇼크를 받았어요. 누구나 겪지만 누구도 정답을 모르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제 노래는 사랑이 뭔지, 슬픔이 뭔지를 듣는 분들과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목소리가 독특해요. 제아무리 뛰어난 가수라도 자기 목소리에 대해 조금씩은 불만이 있던데요.
저도 제 낮은 음성이 처음엔 맘에 들지 않았어요. 또래보다 나이 든 것 같은 목소리니까요. 너무 어려서부터 첼로를 연주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낮은 목소리를 쓰게 됐는지도 몰라요. 팝을 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너무 낮아서 어울리지 않았죠. 어떤 노래를 불러도 클래식 느낌이 났으니까요. 레가토나 비브라토를 많이 쓰는 제가 다른 사람의 노래를 부르면 몸에 안 맞는 기분이 들었어요. 저의 음악을 만들면서 제 목소리에 맞는 음악을 찾았어요. 저의 음악을 통해서 비로소 제 목소리를 사랑하게
된 거죠.

비로소 스스로의 색깔을 인정하고 사랑하게 된 거네요?
그렇죠. 어떤 아티스트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되면 양면적 반응을 얻을 수밖에 없다고 봐요. 가진 것이 유니크할수록요. 절반은 열광하고 절반은 싫어할 수 있죠. 그럴 때 변화를 꾀하는 건 되레 위험해요. 좋아하든 싫어하든 둘 다 지대한 관심이고, 그런 관심마저 잃게 되면 모든 사람이 등을 돌리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거든요.

원숄더 톱과 초록색 스커트는 하나 차, 슈즈는 페라가모 제품.

이번에 서울재즈페스티벌 무대에서도 부른 스탠더드 곡 ‘Misty’ (1954년 에롤 가너 작곡) 있잖아요. 사실 당신의 여러 자작곡, 그러니까 ‘Beautiful Stranger’나 ‘Bewitched’에서도 ‘Misty’의 테마 선율이 들리던데, 의도한 건가요?
맞아요! ‘Beautiful Stranger’에 ‘Misty’의 선율을 슬쩍 넣은 건 사실 힌트였어요. 다음 앨범에는 ‘Misty’를 커버해 실을 거라는…. 저만의 퀴즈 같은 거예요. 바그너가 여러 오페라에서 특정 선율에 인물의 성격이나 감정 같은 것을 대입해 사용한 ‘라이트모티프(leitmotif)’와 비슷한 저만의 장치랄까요. ‘Haunted’란 곡에는 아예 ‘misty’라는 단어를 일부러 넣었죠. 가사에도, 악곡에도 이런 식으로 장치를 숨기는 걸 좋아해요. 클래식 애호가라면 더 많은 걸 찾아낼 수 있을 거예요. ‘Promise’란 곡엔 바흐의 선율을, ‘Haunted’에는 멘델스존 피아노 3중주의 멜로디를 넣었어요.

그러고 보니 ‘Everything I Know about Love’란 노래의 인트로에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가 들어갔어요.
짧은 부분이지만 제가 첼로를, 동생과 엄마가 바이올린을 잡고 직접 연주해 녹음했어요. 외할아버지(중국의 존경받는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린야오지)에 대한 헌정의 의미도 있어요. 제가 아홉 살 때 외할아버지 추모 콘서트에서 첼로 파트 연주를 맡은 기억이 생생해요. 제 안에 음악을 심어준 분에 대한 감사의 의미죠.


혹시 한국 음악가들과도 교류할 기회가 있었나요?

지난 2년간 SNS를 통해서 K팝 아티스트들과 소통할 기회가 많았어요. 그분들 중 거의 처음 저에 관심을 가져준 분이 방탄소년단의 뷔일 거예요. 재즈를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서로 좋아하는 재즈 음악에 대한 이야 기를 많이 나눴어요. 저의 노래를 커버해준 분도 많았죠. 어제는 페스티벌 현장에서 르세라핌의 허윤진을 만났어요. 저희 둘 다 클래식 음악의 배경을 가졌고 문화권을 옮겨 활동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많은 이야기를 즐겁게 나눴어요. 지금 각자 하는 음악은 결이 많이 다르지만 정말 재미난 시간이었어요. 한국 음악가들은 음악을 정말 다양하게 많이 듣고 좋은 취향을 갖고 계세요. 해외의 음악 흐름에 민감하게 관심을 가진다는 면이 멋지죠.

클래식 음악 분야를 봐도 그래요. 요즘 한국의 클래식 팬층의 평균 연령이 세계 어느 곳보다 낮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러게요. 요즘 콩쿠르를 석권하는 최고 연주자들을 보면 죄다 한국 분들이더라고요. 저희 엄마가 하신 말이 생각나요. ‘한국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최고다. 기본기가 정말 탄탄하거든.’

구조적인 디자인의 베스트, 레이어드한 핑크색 드레스는 느와 케이 니노미야 제품.


‘Z세대를 위한 재즈, 클래식 앰배서더’라는 수식어도 붙더군요. 다른 세대와 비교해서 Z세대가 클래식이나 재즈를 받아들이는 태도나 방식이 다르다고 느끼나요?
네. Z세대는 다양한 음악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는 세대예요. 틱톡, 인스타그램, 스포티파이를 통해서 수많은 음악에 자연스레 노출되잖아요. 지금은 어떤 음악도 거의 무료로 언제든 들어보며 스펙트럼을 넓히고 자기 취향을 찾아갈 수 있는 시대예요. 틱톡에는 1970년대, 60년대, 40년대 음악이 넘쳐나요. 어떨 땐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 바이럴되기도 하죠. ‘Misty’를 비롯한 수많은 재즈 스탠더드도 재조명받고 있어요. Z세대는 음악을 장르가 아니라 감성으로 접해요. ‘이건 비 오는 날 듣는 음악, 이건 행복한 피크닉 음악’ 하는 식으로요. 이를 통해 이전 세대의 예술 양식이 새로운 생명력을 얻기도 하고 완전히 새로운 것에 편견 없이 도전하는 이들도 생겨나죠.


아직 20대를 통과 중이지만 10년, 20년 후 자신의 모습을 그려본 적이 있나요?

여성 음악가의 상업적 생명력이란 매우 짧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저 제가 사랑하는 음악을 계속 만들어나갈 수 있다면 좋겠어요. 언젠가는 영화 음악, 뮤지컬 음악도 해보고 싶고요. 저는 무대가 좋아요. 음악 만드는 게 정말 좋아요. 더 많은 사람에게 어필할 만한 음악을 억지로 짜내고 싶지는 않아요. 언제나 자신에게 솔직한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포토그래퍼
윤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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