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수: 더 그레이>전소니와 하이디

권은경, 김신

‘하이디’라는 기생생물을 몸 안에 품고 서로 공존한다는 것.

전소니에게 <기생수: 더 그레이>는 그 새로운 감정과 재미를 안겨준 경험이자,배우가 먼저 문을 두드리지 않아도 알아서 먼저 찾아와준 반가운 작품이다.

비즈 장식 드레스는 제이든 조 제품.

<W Korea >오늘 소니 씨는 오트 쿠튀르 쇼의 주인공 같네요. 창백할 정도로 말간 얼굴과 아방가르드 패션의 대비를 소화하는 모습이 놀라워요. <기생수: 더 그레이>의 수인에게서는 그로테스크한 촉수가 튀어나오는데 말이죠(웃음). 그런 순간이면 시나리오상에는 어떻게 묘사가 돼 있죠?
전소니 기생생물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인물의 움직임에 구체적인 묘사가 있진 않았어요. ‘얼굴에서 나온다, 얼굴이 열린다’, ‘서로 싸운다’ 정도죠. 글에 세세하게 규정된 건 아니었어요.

4월 5일 넷플릭스 시리즈 <기생수: 더 그레이>가 공개되죠. 안타깝게도 우리가 만난 지금은 작품이 공개되기 전이에요. 일본의 원작이 있는 경우인데, 그걸 보지 않아도 이번 작품을 즐기는데 딱히 지장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원작을 전혀 모르는 상태로 보셔도 괜찮아요. 원작의 세계관을 가져오긴 했지만, 내용이 많이 달라졌어요. 원작 내용을 이미 아는 분들은 더 반가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을 것 같고요.

<기생수>는 원작을 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그 이름은 익숙한, 독특한 설정의 작품이에요. 인간을 숙주 삼아 뇌에 침입해 육체를 지배하는 기생생물이 등장하죠. 주인공의 경우 기생생물이 그를 완전히 장악하는 데 실패해서 신체 일부에 기생하고요. 이와아키 히토시라는 만화가가 1980년대부터 연재한 만화를 시작으로 2010년대 중반엔 TV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로까지 나왔어요. 원작을 보셨겠죠?
네. 만약 우리 작품이 원작과 거의 같은 내용이었다면 볼지 말지 고민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원작의 설정을 가져온 또 다른 이야기라, 그렇다면 ‘내가 아는 이 설정으로 원작자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알아보는 게 원작자와 작품을 대하는 예의라고 생각했어요. 만화책도 다 보고 애니메이션도 봤어요. 아무래도 처음에는 나에게 온 기생생물을 기존 작품과 어떻게 다르게 만들어갈지를 고민했어요. 그런데 기생생물은 이야기만큼이나 그 비주얼과 움직임이 중요하거든요. 그 부분은 후반 작업으로 어떻게 구현될지 배우가 미리 정확하게는 알 수 없는 문제였죠.

VFX(시각 특수효과)가 중요한 작품의 특징이 바로 그 점이죠? 배우가 어떤 가정을 한 채로 자기만의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것 같아요, 캐릭터가 변하기 전후의 변화나 대비를 위해서.
제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은 저를 떠난 문제이고, 제 손에 들린 문제를 풀자니 수인이가 인간일 때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싶었어요. 기생생물이 제 안에 들어오기 전까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분량은 짧지만, 거기서 현실감이 느껴지면 좋을 것 같았죠. 그냥 돈 벌어야 하니까 일하는 거고, 몸이든 마음이든 사는 데 생기 넘칠 이유가 없는 사람. 그렇게 보이길 바랐어요

볼륨감 넘치는 드레스는 느와 케이 니노미야 제품.
검정 컷아웃 드레스는 구찌, 목장식으로 활용한 가죽 베스트는 네드바스 제품.

고단한 청춘 같은 건가요?
네. ‘고단함’을 키워드로 잡았어요. 딱 보기만 해도 뭔가 피곤해 보이는 거 있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너무 외롭거나 슬픈 것도 아니고, 그저 피로감이 느껴지는 인물요.

그러다가 수인의 얼굴이 기괴하게 열리며 기생생물이 튀어나올 때, 마치 상모를 돌리는 것처럼 목과 머리를 움직이는 연기를 해야 했죠. 원작의 기생생물은 주인공의 오른손에 기생해서 ‘오른쪽이’로 불리는데, <기생수: 더 그레이>의 ‘하이디’는 주인공의 얼굴 부위에 기생합니다. VFX 작업을 위해 초록 스크린 앞에서 연기하는 경우가 많았나요?
별로 그렇지는 않았어요. 대신 페이스 마커라고 얼굴에 초점이 될 만한 걸 부착하고, 얼굴의 반은 머리카락도 날리지 않도록 망으로 정리한 상태로 촬영했어요. 수인의 얼굴 오른쪽에서만 기생생물이 촉수를 뻗어나가는 식이거든요. 얼굴의 한쪽은 원래 제 모습으로 나오고, 다른 한쪽에 후반 작업으로 기생 생물의 움직임을 만든 거죠. 마블 영화들의 메이킹 필름을 보면 배
우들이 촬영 당시에는 최종 결과물과 아주 다르게 초록 스크린 앞에서 연기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럴 때의 외로움이 있다거나 촬영 환경 때문에 몰입하기 힘든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목을 휙휙 돌리면서 잘 사용해야 했더라고요. 빈혈이나 목 디스크 증상이 있는 배우는 위험하겠다 싶었어요(웃음). 전소니의 목은 안녕한가요?
그 걱정을 해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웃음). 그런데 제 몸이 움직이는 것에 따라 기생생물의 움직임이 정해지는 건 아니었거든요. 어느 정도 맞춰 따라가는 느낌이면 충분했어요. 다만 평소 촬영 때는 카메라를 둘러싼 스태프가 수십 명이 있어도 그
상황이 그렇게 의식되지는 않는데, 이번 작품에서 액션 연기를 할 때는 느낌이 좀 다르더라고요. 저와 싸우는 상대 배우와 ‘여기 우리 둘만 있다’라는 생각으로 서로 의지하면서 촬영했던 기억이 나요.

영화 <악질경찰>(2019)을 작업할 때도 액션 스쿨에 다니셨죠? 보통의 액션 연기를 준비할 때와 <기생수: 더 그레이>를 준비할 때는 어떻게 달랐어요?
<악질경찰>에서는 주로 제가 맞거나 당하는 액션을 배웠거든요. 그보다 작년에 박형식 배우와 함께한 사극 <청춘월담>을 할 때 액션 준비를 더 많이 했어요. 말 타고, 검을 쓰고, 발로 차고 구르고 하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죠. 마침 <기생 수: 더 그레이>를 위한 액션 스쿨이 <청춘월담>과 같은 곳이었어요. 몇 번 가서 기초체력 훈련 위주로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안 나갔어요. 우리 작품은 보통의 액션으로 준비될 성격이 아니었거든요. 기생생물의 움직임이 어떻게 완성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목 아래쪽의 움직임을 구성하려니 선생님들도 뭘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알 수가 없었던 거예요.

주로 같이 합을 맞춘 구교환 배우는 어땠나요?
아주 대단합니다.

그의 연기가 대단했어요?
연기도 그렇고 여러모로요. 말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뭐랄까, 배우가 뭔가에 너무 신중을 기하고 조심하느라 시도하지 못하는 것들이 생길 수도 있는데, 교환 선배에게 는 그런 느낌이 전혀 없어요. 정해진 대사 분량을 마친 이후에도 자연스럽게 다른 대사를 이어간다거나, 대본에 없는 행동을 한다거나. 아직 열어보지 않은 무엇을 계속 열어본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구교환은 고정되고 정형화된 연기와는 거리가 먼 타입에다 센스도 넘치는 배우 같아요. 하지만 상대가 즉흥적인 시도를 할 경우 당황하는 배우들도 있다는데, 소니 씨에겐 흥미로운 자극이 된 듯하네요.
제가 교환 선배랑 연기해보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해요. 선배의 작품을 보면 왠지 그런 배우일 것만 같았어요. 작품만 봐도 그 점이 느껴진 거예요. 사실 현장에서 교환 선배처럼 하려면 용기가 필요해요. 내가 시도한 것들이 막상 최종 편집에서는 채택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럼 스스로가 좀 무안해지기도 하잖아요. 저는 연기할 때 신중한 편이거든요. 그런데 교환 선배가 눈 앞에서 막 이런 저런 시도를 하니까 저 역시 뭔가 더 해보게 되더라고요. 결과적으로 작품에 더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는, 내 무안함을 우려하며 시도 해보지도 않기엔 좀 아까운 것들을 해보게 만들어 주었달까요.

연상호 감독님은 작품을 두고 ‘인간이 자신과 다른 존재와 공존하는 게 가능한가’ 혹은 ‘조직 안에서의 개인’ 같은 주제도 담고 있다고 언급하셨어요.
환경, 생물, 공존 같은 주제는 원작 <기생수>도 이야기하는 점이거든요. 그런데 수인이 같은 캐릭터를 제가 막상 연기해보니까 시청자로 볼 때와는 다른 재밌는 지점이 있었어요. 내 성격이나 말투, 특징을 나보다 친한 친구나 가까운 사람이 더 잘 알
때가 있잖아요. 나는 나를 그렇게까지 지켜보지 않으니까요. 기생생물인 하이디는 자신이 기생해 사는 여자아이가 인간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제대로 이해하진 못하지만, 수인이를 지켜보면서 ‘너는 열심히 사는 사람이구나’, ‘너는 포기하지 않는구나’ 같은 점을 발견해줘요. 그런 점에서 ‘나와 다른 존재라서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줄 수도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수인이는 삶의 의욕도, 지키고 싶은 무엇도 없는 아이인데, 기생생물로 인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겪고 느끼게 되는 거죠. 누군가와 같은 편이 되기도 하고요.

비즈 장식 드레스는 제이든 조 제품

수인이는 평소 현실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연대감 비슷한 걸 인지하게 되고, 소니 씨도 연기하면서 그 과정을 자연스레 느꼈나 봐요.
네. 수인이가 누군가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연대한다는 감정을 처음 느끼면서, 뭔가 생을 향한 의욕도 생기는 듯해서 재밌었어요. 감독님이 언급하셨듯 저 역시 ‘인간인 나는 이 사회와 조직 안에서 어떻게 살고 싶었나’ 생각해보게 됐고, ‘사회란 결국 서로 다른 존재들이 부딪치며 살아가는 거구나’ 느끼기도 했죠. 물론 이게 너무 과대 해석일 수도 있어요.

<기생수>와 <기생수: 더 그레이>가 단순히 기괴한 생명체가 지구에 떨어졌다는 SF물만은 아닌 거죠. 장르물의 재미와 사회에 대한 은유까지 담고 있는지라 오랜 시간 꾸준히 관심받는 이야기가 된 것 같습니다. ‘정신’이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로서요.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예요. 저는 거의 무릎 꿇는 기분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기생생물이 인간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부분, 그 점이 바로 우리가 인간다움이라고 여기는 것들이기도 해요. 인간다움은 오히려 인간의 눈으로는 쉽게 알아채지 못하는 특징일 수도 있고요. 그러니까 기생생물이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인간의 입으로는 평소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고자 이 작품이 탄생한 게 아닐까 싶어요.

<기생수: 더 그레이>의 수인은 하이디와 한 몸이 되기까지, 영혼 없는 것만 같은 건조한 청춘이었어요. 배우가 되기 전의 전소니는 어떤 아이였어요?
저는 좀 애어른 같았어요. 현실에 큰 가치가 있는 것처럼 느끼질 않았죠. 연기에 관심 갖게 된 건 어릴 적 연극을 보고 난 후인데, 커튼콜 때 사람들이 다 박수를 치니까 이상하게 제 가슴이 벅차오르더라고요. 무대 위에서의 이야기는 한마디로 실제와 현실이 아닌 가짜잖아요. 그런데 그걸 배우와 관객이 진짜라고 믿기로 약속한 듯이 연기하고 감상하고, 또 우렁차게 박수를 보내는게 마법처럼 느껴졌어요. 모두가 진짜라고 믿을 수 있는 허상이란 참 아름답고 신비하구나 싶었죠. 현실이 환상 같아질 거라는 기대는 안 했지만, 공연하는 동안만큼은 환상 속에서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처음엔 그렇게 시작했어요.

끼는 좀 있었어요?
아니요, 저는 끼 없어요.

끼 없는 내가 남들 앞에 서서 연기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은 안 들었어요?
두려움은 없었어요. 저는 연기를 하고 싶었던 거지 연예인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연기하려고 조금씩 문
을 두드릴 때 ‘배우를 하려면 길바닥에서 갑자기 쇼를 하라고 해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식의 말이나 사고방식을 자주 접했죠.

길바닥에서 쇼를 하진 못해도 배우로 계속 살 수 있던가요?
네. 예전에는 물론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제가 스물일곱에 데뷔했으니, 시작도 좀 늦은 편이었죠. 하지만 연기가 너무 하고 싶은데 어떡해요? 그냥 했어요. 독립영화 경험도 하면서 할 만큼 했는데도 별로 달라지는 게 없구나 싶을 때 장편영화인 <악질경찰>을 만났어요. 그런 기회가 너무 고팠죠.

가죽 보디슈트는 느와 케이 니노미야 제품.

2017년 이상덕 감독의 영화 <여자들>로 데뷔해 〈죄 많은 소녀〉, <악질경찰>, <밤의 문이 열린다>, 드라마 <남자친구>, <화양연화〉, <청춘월담> 등으로 활동했어요. 김다미와 친구 사이로 등장한 리메이크 영화 <소울메이트>는 작품도 연기도 좋은 평을 받았죠. 이제 전소니에게는 어떤 만족감이 남아 있어요?
만족감이라면 저에게도 감사한 존재가 생겼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사실 ‘나의 팬’을 스스로 인정하는 게 꼴사납고 건방진 것만 같았거든요. 제가 화려하고 재밌는 볼거리를 계속 제공하는 타입도 아닌데, 누군가 내 연기를 궁금해하고 봐준다는 게 얼마나 고맙고 신기한지 몰라요. 이번 작품처럼 이제는 나를 먼저 찾아오는 작품도 생겼고요. ‘나 열심히 한 거 맞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해요.

그럼 배우로서 어떤 갈증이 있나요?
배우는 몸이라는 가죽과 목소리와 눈동자 등등을 다 써야 하는 직업이에요. 나의 상태란 시시각각 변하죠. 표정 근육조차 오늘과 내일이 다를 수 있어요. 그래서 작품을 쉬는 시간이 아주 아까워요. ‘소처럼 일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 ‘출연작을 많이 남기고 싶다’ 같은 것과는 좀 다르게, 계속 조금씩이라도 달라지는 나를 최대한 사용하고픈 바람이 있어요.

배우는 주로 누군가 찾아줘야 일할 수 있는, 쓰임과 부름을 당하는 존재죠. ‘만약 내가 나를 캐스팅할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에 활용하고 싶다’는 상상도 해보셨어요?
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편은 아니에요. 창작자들은 하고 싶고 만들고 싶은 이야기를 결국 만들어내니 존경스럽죠. 다만 제가 배우로서 이야기와 역할을 가지고 일하지 않을 때, ‘나를 재료로 쓰면 재밌게 작업할 크리에이터는 누굴까’ 같은 상상은 좀 해요.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리는, 혹은 옷을 만드는 사람 등등이 전소니라는 이미지로 서사를 만들어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그거 재밌는 발상인데요? 가깝게 지내는 크리에이터들과 언젠가 꼭 작업해보면 신나겠어요.
저는 아날로그를 좋아해서 그런 시각화 작업을 한다면 종이책으로도 만들고 싶거든요. 물성이 있게끔. 그러자니 일이 커져요(웃음). 여유가 생기고 돈도 더 벌면 언젠가 해보고 싶다고만 생각했어요.

<기생수: 더 그레이>의 캐릭터 포스터에 전소니의 얼굴 한쪽이 변형된 상태로 기생생물이 뻗어 나가고 있는 이미지가 담겼어요. 그 이미지를 처음 봤을 땐 느낌이 어땠나요?
반가웠어요. 궁금해하면서 기다린 모습이니까. 저는 우리 작품을 보는 분들이 하이디라는 존재도 반가워하면 좋겠어요. 어쨌든 저에게서 나오는 아이잖아요. 작품 속에서 제가 하나의 온전한 크리처로 변신하는 게 아니라, 저와 하이디가 공존하면서 함께 등장하는 모습을 눈으로 처음 확인했을 때 마냥 신기했어요. 저처럼 많은 분들이 그 점을 반갑고 재미나게 느끼길 바라요. 제일 궁금한 건 엔딩에 대한 반응이에요. 저는 시나리오를 읽다가 그 존재가 등장해서 정말 깜짝 놀랐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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