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미술가 찰스 게인즈가 구축한 세계

권은경

<찰스 게인즈: 1992-2023>이 ICA 마이애미에서 열리고 있다

‘개념미술 분야에서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아프리카계 미술인’. 지난 50년간 이런 수식어와 곧잘 붙어 다닌 찰스 게인즈(Charles Gaines)의 회고전 <찰스 게인즈: 1992-2023>이 ICA 마이애미에서 열리고 있다. 섬세한 개념적 틀을 통해 자기 세계를 구축해왔고, 지금은 유명해진 아티스트들을 가르치기도 한 이 흑인 예술가의 삶은 어떻게 흘러왔나?

말콤 엑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등이 쓴 정치적 텍스트를 음악 퍼포먼스로 재해석하는 작품, ‘Manifestos 2’(2013).

찰스 게인즈(Charles Gaines)의 스튜디오는 다운타운 LA 남쪽, 헌팅턴 파크의 옛 타일 공장에 자리한다. 규모는 약 1,000㎡다. 이 공간은 작가가 지난 50년간 펼쳐온 개념미술 작업을 품은 미니멀리즘의 신전과도 같다. 올리브나무를 심은 지중해풍의 고요한 정원을 지나 천장의 채광창으로 빛이 쏟아지는 일명 ‘그레이트 홀’로 들어가면, 에어팟을 낀 작가의 어시스턴트들이 도서관을 연상시키는 고요함 속에 작업 중이다. 그들은 그리드(격자)가 새겨진 플렉시글라스 상자 위에 녹색, 주황색, 분홍색 사각형을 꼼꼼히 번호 매기면서 칠하고 있었다. 그것은 찰스 게인즈가 꾸준히 작업해온 ‘넘버스 앤 트리스’ 연작으로, 작가는 이 독특한 작업 형식을 50년 동안 유지하는 중이다. 점묘법에 숫자로 그린 회화를 결합한 듯한 픽셀 구조의 ‘넘버스 앤 트리스’ 연작은 가까이서 보면 테트리스 게임을 닮았다. 하지만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면 그리드 아래 놓인 어떤 풍경 사진과 이미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잎이 무성하게 우거진 애리조나 미루나무 이미지 말이다. 규칙에 따르는 시스템을 통해 완성되는 이 작품은 성격 심리 검사 방법 중 하나인 ‘로르샤흐’ 효과를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하나의 이미지에서 시작해 촘촘한 그리드에 그 윤곽을 그려 넣는다. 각종 나무를 찍은 사진이 그 이미 나무와 숫자와 글자들 너머에 ‘개념미술 분야에서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아프리카계 미술인’. 지난 50년간 이런 수식어와 곧잘 붙어 다닌 찰스 게인즈(Charles Gaines)의 회고전 <찰스 게인즈: 1992-2023>이 ICA 마이애미에서 열리고 있다. 섬세한 개념적 틀을 통해 자기 세계를 구축해왔고, 지금은 유명해진 아티스트들을 가르치기도 한 이 흑인 예술가의 삶은 어떻게 흘러왔나?Photographer SHARON LOCKHART | Writer MICHAEL SLENSKE | Editor EUNKYOUNG KWON 지에 해당한다. 그는 나무에 임의로 색상을 지정하고, 이후 어시스턴트들이 그리드에 색을 칠하고 번호를 매긴다. 작가는 8점에서 18점에 이르는 그리드를 조합해 작품을 완성하는데, 하나의 그리드 작업을 마칠 때마다 새로운 나무와 색을 겹치는 식이다. 그에 따라 이미지가 점점 더 촘촘하고 풍부해진다. 모든 그리드를 하나로 통합하는 최종적 작업 결과물은 작가가 ‘숭고한 반응’이라고도 부르는 감상을 관객에게 불러일으킨다. “제 관심사는 사물이 의미를 얻는 데 있어 구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겁니다. 예술이 주관성을 바탕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지요.” 79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테니스를 치고 매일 스튜디오에 가는 게인즈는 주로 검은색 운동복 상의와 카키색 팬츠, 검은색 운동화를 유니폼처럼 입고 다닌다. 그 차림으로 기호학과 미술사를 가르치던 교수 시절에 그랬듯이 차분한 어조로 말하는 그를 상상해보라. 찰스 게인즈는 칼아츠(캘리포니아 예술학교)에서 30년 가까이 가르치며 오늘날 LA 미술계의 거장이 된 마크 브래드퍼드, 로라 오웬스, 헨리 테일러, 로렌 할시의 멘토로 활약한 바 있다. 물론 그는 진지한 대화 도중에 우렁찬 웃음소리로 흐름 끊기를 즐기는 사람이기도 하다.

게인즈는 긴 시간 작가 경력을 쌓으며 부침을 겪기도 하다가 2018년 하우저앤워스(Hauser&Wirth) 갤러리에 합류한 이후 뉴욕, 사우샘프턴, 생모리츠, LA, 런던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2022년에는 두 도시에서 10년에 걸쳐 3부작으로 만든 대작 ‘아메리칸 매니페스트: 무빙 체인스(The American Manifest: Moving Chains)’를 완성했다. 이 작품의 일부로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대대적인 음악 공연이 펼쳐졌고, 맨해튼에서 멀지 않은 거버너스 아일랜드에는 길이 33.5m에 700kg 무게의 사슬 아홉 개가 한 척의 거대한 배처럼 관람객의 머리 위에서 움직이는 초대형 조각 작품이 들어섰다. 노예 노동을 통해 움직이던 세계 경제에 대한 사색을 보여주는 이 장엄한 작품은 2024년 여름 오하이오 강변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전시 장소는 과거 미국 북부로 탈출한 노예들의 역사를 기리는 ‘국립 지하철도 자유센터’에서 도보로 멀지 않다. 2021년에는 디아 비컨과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역시 대규모 회고전을 통해 찰스 게인즈의 작품 세계를 다루었다. “이제는 그 정도 규모의 프로젝트를 구현할 만한 자원을 갖추셨죠. 하지만 제가 아버지 나이대 라면 활동하는 속도를 좀 늦출 거예요. 아버지는 작업하는 걸 너무 좋아하시죠.” 작가의 아들인 말릭 게인즈가 들려준 말이다. 그는 연극 콜렉티브 ‘마이 바바리안’의 멤버로 극작가이자 퍼포먼스 아티스트로 활동한다.

스튜디오에서, 찰스 게인즈. 뒤편의 작품은 ‘Submerged Text: Signifiers Of Race #11’을 테스트 설치한 것이다.
‘String Theory: Rewriting Fanon #6’(2010). 이 연작은 저명한 이들이 인종차별에 대해 발언하거나 쓴 텍스트의 일부를 옮기는 식이다.

찰스 게인즈의 가장 최근 행보는 ICA 마이애미에서 열리는 전시 <찰스 게인즈: 1992-2023>이다. 작년 11월에 시작된 이 회고전은 2024년 3월까지 이어지며, 가을에는 피닉스 미술관에서 다시 열린다. ICA 마이애미 큐레이터인 진 모레노는 전시의 출발점이 1992년이어야 한다고 느꼈다. 1992년은 게인즈가 ‘매우 강렬한 재료’로 작업을 시작한 시기다. 이와 관련해 큐레이터가 언급하는 작품은 범죄자의 머그샷과 살인 현장을 찍은 사진을 밤하늘의 이미지와 결합한 ‘나이트/크라임즈’ 연작, 또 말콤 엑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프란츠 파농이 조직적 인종차별에 대해 쓴 정치적 텍스트를 음악 퍼포먼스로 재해석한 ‘매니페스토’ 등이다. ICA 마이애미에서 진행 중인 회고전에 대해 게인즈는 이렇게 말한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저 제 작품이 세상 속 의미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게인즈가 인종 문제의 부당함을 다루기 위해 반직관적 방식을 찾아낼 운명을 타고난 작가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는 공공장소에서 인종을 분리하는 짐크로 법(1876~1965)이 시행되던 시절에 태어났다. 게인즈의 어머니는 미국 남부에서 양장점을 운영했고, 아버지는 백인 동료가 받는 임금의 절반만 받는 건설 노동자였다. 이 가족은 비포장도로 가 옆 작은 목조 주택에서 살았다. 마당에 닭과 돼지가 뛰노는 집이었다. 게인즈가 다섯 살이던 해, 가족은 흑인 대이동(Great Migration)에 합류하며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서 뉴저지주 뉴어크로 이주했다. 찰스턴은 인종들 사이에 긴장감이 높은 지역이었는데, 게인즈에 따르면 뉴어크 역시 딱히 나을 게 없었다. 스스로를 ‘늦깎이’라고 부르는 게인즈는 학교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그림 그리기에 능했고, 재즈 보컬 사라 본과 배우 마이클 B. 조던 등 재능 있는 아티스트들이 경력을 시작한 뉴어크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음악 프로그램 쪽으로 입학하진 않았지만 재즈를 하는 친구들을 사귀었죠. 그래서 저는 드럼을 연주하겠다고 정했어요.” 그는 제임스 브라운의 클럽을 포함해 뉴어크에 있는 R&B 클럽들에서 공연을 했고, 뉴욕에 있는 로체스터 공과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땄다. 이후에는 흑인 학생들이 많은 미시시피 밸리 주립대학교에서 실기와 미술사를 가르쳤다. 그러나 1968년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암살 사건 후 벌어진 학생들의 시위 행진을 진압하기 위해 미시시피 주지사가 학교에 경찰을 파견하자 일을 그만두었다. “교실에 첩자들을 심어두었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작가의 스튜디오 풍경.
작가의 스튜디오 풍경.

게인즈는 서부로 거처를 옮겼고, 캘리포니아주 프레즈노에 있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내용과 형식’이라는 제목으로 이론 중심의 강의를 시작했고, 이후 칼아츠에서도 같은 내용으로 강의했다. 칼아츠의 미술 학과장으로 일한 토머스 로슨은 학생들이 게인즈의 강의를 듣기 위해 그야말로 ‘줄을 섰다’고 기억한다. 게인즈의 강의에서는 미셸 푸코에서 앙리 포시용에 이르는, 당대 가장 논쟁적이고 뜨거운 지성의 텍스트를 읽었다. 강의 제목 역시 그들의 글에서 따왔다. 게인즈에게 멘토링을 받았고 이후 예일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기 전에는 게인즈 밑에서 일한 떠오르는 아티스트, 로렌 할시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제가 전문적인 아티스트 스튜디오를 접한 건 그때가 처음이죠. 저에겐 저만의 예술 언어랄 게 없었고요. 하지만 그는 제 속도에 맞춰서 말 그대로 문장을 부분으로 쪼개면서 함께 작업해줬어요. 저를 긍정해준 그 아름답고 천재적인 흑인 남성 예술가를 만나게 된 것이야말로 작가로서 저를 만들어준 가장 중요한 경험이었어요.”

ICA 마이애미에서도 전시 중인 인터랙티브 조각 설치작 ‘그린하우스’는 그가 거의 선보인 적이 없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2007년 LA의 LAXART에서 열린 전시를 계기로 재창작한 것으로, LA 전역의 오염 감지 센서와 연결된 거대한 유리 밀폐 구조물이다. 오염도의 증가와 오염의 종류는 LED 디스플레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고, 포그머신이 연기를 불어넣으면 색색의 조명이 구조물을 밝힌다. ICA 마이애미의 ‘그린하우스’는 두 개의 모니터와 함께 설치되어 있다. 그중 하나는 18세기에서 현재까지 전 세계의 기온 변화를 보여주고, 다른 하나는 지금이 순간의 전 세계 기온을 보여주는 식이다. 반세기 전의 찰스 게인즈였다면 이 정도의 작품 규모를 생각지도 못했을 테지만, 그가 이렇게 야심 찬 작업을 할 작가라는 단서는 그의 안 어딘가에 늘 있었을 것이다. ‘그린하우스’의 뜻인 온실 안의 씨앗처럼.

촘촘한 그리드 작업을 위한 물감 견본.

게인즈보다 먼저 칼아츠에서 교수로 일한 작가 존 발데사리와 마찬가지로, 게인즈는 개념미술로 방향을 바꾸기 전 구상과 추상 화가로 작가 경력을 쌓았다. 초기에는 작품에 오래된 느낌을 덧붙일 수 있는 도구로 캔버스에 선을 긋는 제스처를 반복하는 추상 작업을 했다. 이를 통해 1975년 휘트니 비엔날레에도 참가하게 되었다. 하지만 심지어 당시에도 그는 불교의 탄트라 미술에 등장하는 만다라와 그리드에 영향을 받은 ‘회귀(Regression)’ 연작을 만들며 어떤 체계와 규칙을 기반으로 하는 작업에 발을 내디뎠다. 그의 초기 작품에서는 반복적인 그리드 체계를 통한 기하학적 형태가 펼쳐진다. “불교의 탄트라 드로잉은 그저 경험적으로 만들어진 사물이 아니라 명상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 형태는 세포의 재생산에서 전개되는 것과 유사하죠.” 그 무렵, 게인즈는 샌호아킨 밸리 주변을 자동차로 지나던 중 우연히 호두나무 과수원을 마주했다. 그는 그리드 체계를 활용하면 ‘나무가 스스로를 그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월넛 트리 과수원’ 3면화는 세 이미지로 구성된 작품으로, 나무 한 그루를 중형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 위에 이를 간결한 선으로 그린 드로잉을 겹쳐놓은 모습이다. 여기에 더 많은 그리드를 덧붙일수록 복합적인 색의 구성이 그 총체와 겹친다. 작가는 이 작업을 하면서 질문을 품게 되었다. 그가 만든 시스템을 통해 나무가 스스로를 그리듯 저절로 그려진다면, 역시 그 시스템을 통해 다양한 사람의 얼굴에서 보이는 요소를 결합하거나(‘페이스’, 1978~1979), 실내에서 햇볕을 쬐는 식물의 그늘진 부분을 추적하거나(‘쉐도우’, 1980), 저드슨 댄스 시어터를 창립한 트리샤 브라운의 움직임을 지도를 보듯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모션: 트리샤 브라운 댄스’, 1980~1981)

‘Submerged Text’ 연작을 위한 도식.

그렇게 완성된 그의 초기 그리드 작업은 개념미술의 아이콘인 솔 르윗의 도움을 받아 더 많은 관객에게 소개되었다. 솔 르윗은 무려 레오 카스텔리 같은 미술품 딜러에게도 게인스의 작품을 소개했다. 1980년대 들어선 후, 게인즈는 뉴욕에서는 레오 카스텔리와 존 웨버 두 명의 블루칩 딜러와 함께 일했고, LA의 거물 딜러인 마고리빈도 게인즈의 작품을 취급했다. 게인즈를 말할 때면 ‘개념미술 분야에서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아프리카계 미술인’이라는 수식어가 곧잘 따라붙는데, 그렇다고 해서 흑인 예술 운동(Black Arts Movement) 참가자들이 게인즈를 좋아하진 않았다. “그들은 제가 백인의 미술을 만든다고 봤죠. 저를 두고 제가 속한 문화에 관한 미술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물론 그런 시기는 1989년 게인즈가 칼아츠에 교수진으로 합류하면서 끝이 났고, 게인즈는 ‘작업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하며 갤러리를 통해 전시하는 활동을 잠시 중단했다. 게인즈의 아들 말릭은 이렇게 회상한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가르치는 일에 집중하셨고, 아버지에게 배운 마크 브래드퍼드, 로드니 맥밀런, 안드레아 바워스, 샘 듀란트 같은 작가들이 사람들에게 아버지에 관해 말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제 아버지는 개념주의를 단지 어떤 체계를 정립하는 일이 아니라 생각에 대한 믿음이라고 여겼습니다. 하나의 생각을 가지고 흔들리지 않는 방식으로 끝까지 밀고 나가는 분이기도 하고요”.

1990년대에 이르자 게인즈는 흑인 예술가들을 소외시킨 비평의 역사에 주목했다. 그 결과가 1993년에 열린 기념비적인 그룹전 <거절의 극장: 흑인 예술과 주류 비 평(The Theater of Refusal: Black Art and Mainstream Criticism)>이다. 그가 큐레이팅한 이 전시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 캠퍼스에서 열렸고, 소외당한 흑인 예술가들을 공격하는 비평에 맞서 개리 시몬스, 에이드리언 파이퍼, 장 미셸 바스키아 등을 선보인 자리였다. 2022년 게인즈는 칼아츠에서 퇴임했지만, 새로운 인재들을 멘토링하는 일은 여전히 열정적으로 한다. 칼아츠에는 매년 학생 두 명에게 학비 전액을 지원하는, 찰스 게인즈의 이름을 딴 석사 프로그램 펠로십이 있다. “젊은 시절 저에게는 멘토가 없었고, 그래서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느꼈거든요.” 하지만 그는 그런 펠로십을 제공하는 일이 자신이 학교에 남긴 유산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밝히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1989년부터 유색인종 예술가들을 지원하려고 애썼지만 한 번도 이를 성취한 적이 없었어요. 모두들 이것이 좋은 아이디어라고 여기지 않았으니까요. 이제야 마침내 그 일을 제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시점에 이르렀군요.

촘촘한 그리드에 채운 색과 나무 이미지가 중첩되는, 작가의 대표적인 연작 중 하나. ‘Numbers And Trees: Palm Canyon, Palm Trees Series 2, Tree #5, Quechan’(2019).
포토그래퍼
SHARON LOCKHART
MICHAEL SLENSKE
아트워크
© CHARLES GAINES, COURTESY OF THE ARTIST AND HAUSER&WIRTH
사진
FREDRIK NILSEN
헤어&메이크업
SARA DENMAN FOR CHARLOTTE TILBURY(@ CELESTINE AGENCY)
포토 어시스턴트
BLAKE JACOBSON, ALEX SL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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