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 쿨리지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감독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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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콴 & 다니엘 쉐이너트가 일본의 특수촬영물을 오마주했고, 그 주인공으로 배우 제니퍼 쿨리지를 초대했다.

‘기발하다’라는 평은 다소 진부하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7관왕에 오른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의 이야기다. 영화를 통해 우리를 무한 팽창하는 세계로 인도한 두 감독 다니엘 콴 & 다니엘 쉐이너트가 <더블유>와의 화보를 위해 또다시 번뜩이는 재치를 부렸다. 이번에는 일본의 특수촬영물, 이른바 ‘특촬물’을 오마주했고, 그 주인공으로 누구도 예상치 못한, 하지만 누구보다 이 독특한 화보에 부합하는 배우 제니퍼 쿨리지를 초대했다.

JENNIFER COOLIDGE IN

COOLIDGE VS HAUTE SQUAD 5: ATTACK ON NEO RUNWAY CITY

-JENNIFER REBORN

제니퍼 쿨리지가 착용한 코스튬 리본 드레스는 Bad Binch TongTong by Terrence Zhou,
헤드피스는 MAM, 귀고리는 Amina Muaddi,
반지는 Dollybaby 제품. 장갑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어느 오후의 미국 코리건빌 공원. 배우 제니퍼 쿨리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성운이 폭발하는 순간을 형상화한 듯 한 뾰족한 머리 두건, 원더우먼을 연상시키는 손목 커프스, 프로엔자 스쿨러에서 나온 독특한 디자인의 오픈토 슈즈를 착용한 채였다. 그런 그녀가 풍성한 금빛 머리카락을 휘날리 며 눈앞의 외계인을 쓰러뜨리는 모습은 흡사 SF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한편으로 영화 <바바렐라>의 제인 폰다, <외계에서 온 여왕>의 자 자 가보르, 짐 헨슨이 만든 인형 그룹 ‘더 머펫츠’의 미스 피기 등이 떠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참고로 코리건빌 공원은 캘리포니아 남부 시미 밸리를 지나는 산타 수사나 산맥의 기슭에 자리한 고전 영화 세트장 겸 목장이다.

쿨리지는 지난해 12월 종영한 HBO <화이트 로투스> 시즌 2에서 어머니의 죽음 이후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호텔 손님을 연기했다. 그 결과? 그녀는 올해 에미상과 골든글로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을 휩쓸며 수상을 독식했다는 논란 아닌 논란에 휘말렸다. 마찬가지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연출한 듀오 다니엘 콴과 다니엘 쉐이너트, 일명 다니엘스 역시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다 부문에 이름을 올리며 수많은 트로피를 거머쥔 화제의 주인공이다. 그런 그들과 <더블유>가 함께한 화보 촬영 현장은 한마디로 ‘비현실적’ 그 자체였다. 쿨리지가 거대한 집게발을 가진 외계인으로 분장한 감독 쉐이너트로부터 지구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외계인을 이기려면 힘껏 두들겨 때리는 소리가 나야 할 텐데 ‘퍽’ 대신 ‘폭’ 소리만 나는 건··· 착각인 걸까?

다니엘스는 <더블유>를 위해 기획한 자신들의 독특한 화보에 쿨리지 이상으로 어울리는 스타는 없다는 사실에 적극 동의한다. 같이 작품을 해본 적도 없고, 1월에 열린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에서 간단한 인사를 나눈 것이 전부였지만 말이다. “멋진 영화계 스타들이 많지만, 쿨리지가 매거진 커버에 등장해준다면 무척 즐거울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콴이 말했다. 볼륨감 있는 몸매와 아름답게 흩날리는 금발, 도톰한 입술, 백만 불짜리 미소의 주인공인 쿨리지는 어느 곳에서나 확실한 존재감을 발하는 배우다. 귀여운 허당미를 뽐낸 <금발이 너무해>에서의 네일 숍 직원, 여자 푸들 조련사에게 사랑을 느끼는 <베스트 쇼>의 외로운 트로피 와이프, 교외 지역에 사는 <아메리칸 파이> 속 섹시한 유부녀는 물론, 제니퍼 로페즈를 며느리로 둔 <샷건 웨딩> 속 폭력적인 시어머니부터 가장 최근 연기한 넷플릭스 시리즈 <우리 집에 유령이 산다>의 유명 영매사까지. 그녀가 연기한 캐릭터를 잊는 것이 오히려 어려울 정도다.

“이걸 드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요.” 잠시 카메라 앞으로 모습을 드러낸 콴이 쿨리지에게 모조 다이아몬드가 박힌 지팡이를 건네며 말했다. “이렇게 적을 찔러 죽일 것 같은 시늉을 하는 거죠.” 쿨리지가 눈을 가늘게 떴다. 자신이 가진 초능력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워하는 눈치다. “제가 이 외계인들을 완전히 격파해야 하는 거죠? 좋아요, 해볼게요.” 쿨리지가 답한다. 쿨리지가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가 쉐이너트의 팔꿈치를 쿡 찔렀다. 단단해 보이는 의상 때문인지 쉐이너트는 쿨리지의 분노의 찌르기를 거의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카메라 뷰파인더와 눈앞의 안전한 전투 현장을 번갈아 보면서 콴이 눈썹을 찡그렸다. “지팡이를 보고 충격을 받아야 할 텐데요.” 그가 쉐이너트에게 설명했다. 그러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면서 디렉팅을 추가했다. “음, 즐기는 느낌으로 가보면 어떨까요.” 쉐이너트가 자신의 집게발을 엉덩이에 대곤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수염처럼 생긴 길쭉한 안테나가 공중에 흔들렸다.

쿨리지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크게 터뜨렸다. “더는 못하겠어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서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즐거워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카메라의 일시정지 버튼이 눌리자 쉐이너트가 자신이 쓰고 있던 로빈 린치의 발라클라바 밖으로 얼굴을 드러냈다. 다니엘스의 코스튬 디자이너인 셜리 쿠라타는 절지동물처럼 생긴 그의 의상을 벗기기 시작했다. “어째서 이 가재 집게발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걸까요?” 쿨리지가 물었다. 그러곤 그녀는 입체적인 튜브톱 드레스, 조명갓처럼 생긴 모자, 메탈릭 컬러의 카우보이 부츠 등등 갖가지 촬영용 의상이 걸린 옷걸이를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여기 있는 것들이 우리가 오늘 입을 옷이로군요. 덕분에 아름다운 악마가 될 수 있겠는걸요. 오늘 제게 아주 다양한 악당 의상을 입혀주시려나 봐요.” 쿨리지가 놀라움과 설렘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콴과 쉐이너트 감독은 <고질라>, <자이언트 로보> 등 일본의 특수촬영물, 이른바 ‘특촬물’에서 영감을 얻어 <더블유> 화보를 기획했다. “특촬물은 상당히 매력적인 장르입니다. 특촬물에 쓰인 특수효과는 언제나 수작업으로 완성되곤 했는데, 특히 1960년대 작품을 보면 지문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정교히 제작됐죠. 간혹 코스튬 속에 사람이 들어가 있는게 보이기도 하고요. 요즘처럼 디지털 기술로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고 색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없는 시대에 특촬물은 더 특별하게 느껴질 듯해요.” 콴이 울트라맨과 파워레인저로 변신한 대역 배우들, 친구들, 동료들로 북적거리는 세트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니퍼 쿨리지가 착용한 케이프는 Gucci, 왕관은 Laurel DeWitt,
귀고리는 Nickho Rey, 목걸이는 MAM,
커프스는 Alexis Bittar 제품.
드레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로브스터 괴물이 착용한 재킷과 바지는 Windowsen 제품.

다니엘스는 여러 장르 각각의 고유한 미학을 오마주하고 뒤트는 데 탁월하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도 두 감독은 <마블> 시리즈, 픽사의 <라따뚜이>, 왕가위의 <화양연화> 등을 오마주 및 패러디했는데, 이를 통해 다양한 세계관에서 비롯된 뒤틀린 정신세계가 실존주의의 심오함(과무용함)으로, 다시 형이상학적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영화의 흥행은 두 감독에게 전율을 가져다주었지만, 수상 트로피 개수는 이를 뛰어넘는 압도감으로 다가왔다. <뉴욕타임스>는 이들의 작품을 “모든 장르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거대한 소용돌이”라고 했을 정도다. 총 200개 부문 수상과 그 두 배에 달하는 노미네이트 횟수를 기록하면서, 이들의 영화는 영화 배급사 A24에 가장 많은 수익을 안긴 영화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성공으로 인한 압박감이 정말 컸어요. 그래서 이번 <더블유> 촬영은 오히려 영화 작업과 반대로 해보자 싶었죠. 그냥 맘껏 해보는 거예요. 정말로 괴물 분장도 해보고 싶었고, 친구들과 뭉치는 시간도 필요했고, 종이를 오려 만든 소품을 갖고 놀고 싶기도 했고, 사막에도 가고 싶었거든요.” 우선 쉐이너트는 이번 화보의 숨은 공신인 세트 디자이너 칼더 그린우드의 섭외를 맡았다. 그리고 그린우드의 손끝에서 작아진 도시 풍경, 판자로 만든 사무라이 검, 몽둥이 같은 장갑이 탄생했다. 한편 콴은 셜리 쿠라타와 함께 의상 제작에 공을 들였다. “쿠라타는 이제 오스카에 노미네이트된 코스튬 디자이너랍니다.” 쉐이너트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콴과 쉐이너트는 영화 전공 학부생으로 만난 2008년부터 각자 업무를 분담해 활동해왔다(두 사람이 초보 시절에 만든 55초짜리 짧은 영상을 보면 앳된 얼굴의 콴이 놀이터 그네에 앉은 쉐이너트를 밀면서 시공간을 부수려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졸업 후 두 사람은 2015년 그래미상 후보에 오른 크로미오의 ‘When the Night Falls’, DJ 스네이크 & 릴 존의 ‘Turn Down for What’ 뮤직비디오를 연출하면서 자신들만의 화려하고 독특한 세계관을 구상해왔다(콴이 발기를 가라앉히려 화분을 부수는 장면이 등장하는 ‘Turn Down for What’ MV는 현재 유튜브에서 11억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두 사람은 2010년경부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줄거리를 기획했지만, 그들의 첫 장편 영화는 <스위스 아미 맨>였다. 폴 다노가 주연으로 출연한 <스위스 아미 맨>은 무인도에 조난을 당해 생을 마감하려던 주인공이 우연히 방귀 뀌는 시체를 발견하고 섬에서 탈출하려 시도하는 기묘한 여정을 그린다. 2016년 북미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같은 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다니엘스와 쿨리지가 함께한 화보 촬영이 어느덧 마무리될 즈음, 쉐이너트는 감독이라면 두툼히 쌓인 이력의 진가를 알아본다고 말하며 입을 뗐다. “사실 전 젊은 사람에 대해 편견이 있어요. 젊음에 초점을 맞춘 문화와 미의 기준에 불편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희가 작은 파장이라도 일으킬 수 있다면, 모든 것을 걸고 임할 거예요.” 35세인 콴과 쉐이너트는 60세인 양자경과 64세인 제이미 리 커티스, 그리고 이제 61세가 된 쿨리지와 함께 일하는 것이 “이 업계에서 존재할 수 있는 다양한 전략”을 배우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마치 삼투압처럼 말이다. “여전히 저희가 어린아이로 느껴질 때가 많답니다.” 콴이 말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쿨리지도 다니엘스의 말에 동의한다. “영화 업계는 사람을 지치게 만들곤 하죠. 하지만 맹세컨대 이번 작업은 어린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기분이었어요. 다니엘스는 매우 똑똑하고 창의성이 뛰어난 어린 신동들 같아요. 무기를 들고, 작은 도시들을 파괴하고, 자동차를 집어 들어 던지다니. 이런 촬영 제안은 제 평생 처음이에요. 다시 이렇게 놀랄 만한 재밌는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제가 참여한 일 중 최고의 작업이었어요.”

제니퍼 쿨리지가 착용한 코트와 장갑은 Valentino Haute Couture,
귀고리는 Uncommon Matters,
신발은 Thom Browne, 슬립 드레스는 본인 소장품.
로봇 코스튬은 Scott Zillner 제품.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콴과 쉐이너트 또한 <화이트 로투스> 속 타냐를 연기한 쿨리지의 연기력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고 한다. <화이트 로투스> 시즌 2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무시무시한 시칠리아 재벌가 5인이 빌린 럭셔리 요트에서 죽음을 맞이한 쿨리지의 연기를 보고 경이로움을 느낄 정도였다고. 이에 걸맞게 드라마 속 타냐의 대사는 이제 전설적인 밈이 되었다. “이 게이들이 날 죽이려고 해!”

쿨리지도 타냐에 대해 말하기 위해 입을 뗐다. 타냐뿐만이 아닌, 자신이 지나온 길을 떠올리는 모습이었다. “타냐를 생각하면 안타까워요. 자신을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인물이거든요. 타냐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었어요. 때때로 우리 삶에는 이러한 무서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바로 나 자신이 생존자이며, 때로는 결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방식으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쿨리지가 허스키한 자신의 목소리 톤을 살짝 높여 <화이트 로투스> 속 천방지축 캐릭터에 빙의한 듯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결국 제 뜻대로 흘러가지는 않은 모양이에요.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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