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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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는 밀라노의 아침. 경쾌하게 떨어지는 빗소리, 비에 젖은 부드러운 흙냄새, 다채롭고 조화로운 색감이 주는 시각적 울림. 감각의 향연으로 영감을 불러일으킨 질샌더 2023 S/S 컬렉션이 끝난 뒤 루시 마이어와 루크 마이어를 만났다.

<W Korea> 밀라노에서 선보인 2023 S/S 컬렉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번 시즌에는 인비테이션으로 코튼 소재의 모자를 보내왔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루시 & 루크 마이어(Lucie & Luke Meier) 우리는 인비테이션을 한번 보고 버리지 않아도 되도록 쓸모 있게 만들기를 좋아한다. 이번에는 쇼를 야외에서 진행했기 때문에 모자가 좋겠다고 생각했고,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사용하면서 이 특별한 순간을 기억할 만한 무언가를 선물하고 싶었다.

팬데믹 이후 열리는 오프라인 쇼이다 보니 그 어느 때보다 기대가 컸다. 쇼장으로 택한 검은 모래가 깔린 정원에는 마침 비가 내렸다. 너무나 드라마틱했다. 어떤 판타지를 떠올리며 쇼를 준비했는지 궁금하다.

우리는 자연의 힘과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다. 더불어 자연을 보호해야 하는 긴급한 필요성도 알리고 싶었다.

쇼 당일 날 비가 내렸다. 대부분의 쇼에서는 비가 와도 모델들은 비를 맞은 채 워킹을 하는데, 질샌더 쇼에서는 모델들이 검정 우산을 쓰고 걸었다. 비 오는 날 아침, 검은 모래 정원을 걷는 우산을 쓴 모델들. 시각, 청각, 후각적으로 더없이 완벽한 순간이었다. 모든 것이 철저히 계산된 것인지 궁금하다.

날씨 상황이 쇼에 가져올 느낌에 대해서는 늘 염두에 둔다. 우연이지만 이번 쇼에 비가 강렬한 자연 요소가 되어주어 정말 기쁘다. 우리가 그런 상황을 계획할 수는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그 광경은 무척 서정적이었다. 결국 결정은 언제나 자연이 내린다.

이번 시즌은 어떤 테마를 가지고 접근했는지?

현대성, 진화, 발명, 기회, 새로운 시작, 자연의 힘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그러면서 캘리포니아와 미국 서부 해안의 특별한 시대를 떠올렸다. 우리는 현재의 맥락에서 각지고 날카로운 워크웨어와 화사한 매력의 대비를 탐구했다.

이번 시즌 새틴 소재가 유난히 많이 쓰였다. 새틴 소재에 특별한 매력을 느낀 이유가 있는지?

우리는 직물이 드러내는 광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새틴의 촉감과 섬유 혼용에 각별한 공을 들인 한편 원단을 구조적인 방식으로 접착 및 커팅하고, 드레이프가 생기는 셰이프를 고민하면서 기술적인 방식을 탐구했다. 현대의 화려함과 다양한 면면을 표현하기에 새틴은 아주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검정과 편안한 파스텔 컬러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핫 핑크색 톱, 여자 모델의 빨강 구두, 초록과 빨강 백 등 비비드한 컬러 매치도 흥미롭다. 색 조합을 할 때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은 무엇인가?

색상은 이번 컬렉션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었고, 사실 모든 컬렉션이 그렇다. 자연을 나타내는 색이 많지만 우리는 소재 자체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색을 사용하고 싶었다. 색채는 우리의 무드를 드러내기도 하기 때문에 상당히 직관적인 방식으로 색을 활용한다.

블라우스, 셔츠, 드레스 등 소재와 아이템을 불문하고 곳곳에서 포착된 드레이프 장식도 인상적이었다. 간결하면서 우아하다! 섬세한 공정으로 완성되었을 테지만.

이번 시즌에는 각지고 강한 테일러링과는 대조되는 형태를 어떻게 결합할지 고민한 결과다. 요즘 시대에 드레이프 잡힌 옷을 입는다면 어떻게 입고 싶은지 자주 생각했다.

후반부에 나온 드라마틱한 옷들은 잊을 수가 없다. 특히 쇼장의 면면을 비춘 미러 장식은 패션 판타지를 고스란히 구현한 것 같다. 소리 없이 강하게 말이다.

자수는 일부러 복잡하게 넣었지만, 옷에 자수를 집중적으로 넣으려면 자수가 하나라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무엇보다 밀도가 중요했다.

당신들의 질샌더에는 수공예적 요소가 돋보인다. 시퀸 장식의 드레스, 니트와 시퀸을 잇는 정교한 작업 등 깃털처럼 보인 시퀸을 다루는 데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당신이 언급한 작업은 실제로 더없이 섬세하고 정교한 공정을 거쳐야 완성된다. 우리는 정말 노련한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 하지만 우리가 의도한 것은 아주 튼튼하고 대담한 자수였다. 이 아름다운 옷에, 운동화를 신거나 튼튼한 팬츠를 입어도 될 만큼 편안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누군가는 이 드레스들을 편하고 쉽게 입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커팅 이야기도 하고 싶다. 곳곳에 들어간 간결하지만 힘 있는 커팅. 당신들의 동물적인 감각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시행착오도 겪었을 것 같다. 우아함을 유지하면서도 힘 있는 커팅의 원천은 무엇인지?

간결하고 강한 셰이프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엄격함이다. 그것이 우리 일의 본질적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모든 룩이 물 흐르듯 아름다웠고, 아침의 클래식 같은 쇼를 보면서 질샌더를 디자인하는 두 사람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가 궁금했다. 우리는 자연과 사람에게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우리의 일에 생명을 불어넣는 존재는 인간이다. 자연은 소재, 모양, 색을 알려준다.

많은 기자들이 당신들의 쇼를 보면서 행복해졌다고 말했다. 밀라노의 빡빡한 스케줄 안에 휴식 같은 시간을 만들어줘서 감사하다. 팬데믹 이후 많은 사람을 제대로 대면하는 쇼였는데, 어떤 부분에 가장 신경 썼는지 궁금하다.

사람들이 우리 쇼를 보고 즐거웠다는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좋다. 컬렉션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고, 놀라움을 선사하기 위해 세심하게 신경 쓴다. 우리에게 쇼는 소리, 옷, 무대, 사람 등 모든 것이 한데 모이는 중요한 순간이다. 컬렉션을 통해 우리의 진정한 의도를 전한다.

팬데믹 전과 후 옷을 만드는 데 있어 달라진 점이 있을까?

전혀 없다. 우리는 늘 아이디어를 신중하게 구상하고 철저하게 연구하며 옷을 만든다. 항상 지속가능한 해결책을 찾고, 제품을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높은 품질을 추구한다. 지금 우리는 더 특별한 옷, 눈앞의 순간을 즐기려는 열망을 기대하는 것 같다.

이번 시즌 질샌더의 쇼는 어떻게 기억되었으면 좋겠나?

신선하고, 과감하고, 한마디로 아름다운 쇼!

마지막으로 Y2K 트렌드, 밀레니얼 트렌드, 튀어야 사는 이 시대에서 묵묵히 미니멀한 아이덴티티를 지켜가는 데 당신들만의 신념 같은 것이 있을까?

우리는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방식으로 일한다. 몹시 개인적인 작업이기에 그것이 가장 정직하고 솔직한 방식이다. 트렌드는 신경 쓰지 않는다.

JIL SANDER 2023 S/S COLLECTION

패션 에디터
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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