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즌 런웨이에 뜨겁게 내린 핫 핑크 샤워.
발렌티노의 피에르파올로 피촐리는 2022 F/W 런웨이를 위해 극단적인 컬러 전략을 취했다. 세트까지 포함한 런웨이 전체를 핑크색으로 물들여버린 것. 그것도 강렬하고 쨍쨍하며 압도적으로 생생한 푸크시아 핑크색으로. 그는 발렌티노 레드나 다른 색이 아닌, 문화적 의미, 소녀스러움, 펑크와의 연관성, 남성의 사용(아마도 르네상스 시대의 교황, 죄수, 왕이 즐겨 사용했던 시절)을 전복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피촐리의 말을 들어보자. “핑크는 여림, 관능, 쾌락, 불손함을 모두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핑크는 규범화된 모든 문화적 의미에서 자유로워질 때 최고의 매력을 발산합니다. 소녀스러움, 펑크, 중세 성직자 등 핑크 하면 떠올리는 상투적인 이미지에서 말이죠. 핑크의 특성은 원하지 않는데도 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화함과 파괴성을 시적으로 은유하기에 완벽한 선택입니다.” 피촐리의 문화사적 분석과는 상관없이 그의 핑크는 황홀했고 고유명사가 되기에 충분했다. 당연하게도 그의 핫 핑크 샤워에 매혹된 셀럽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발렌티노의 앰배서더이자 우리 시대 가장 핫한 스타인 젠데이아를 비롯해, 니콜라 펠츠 베컴, 지지 하디드 등 레드카펫의 스타들이 발렌티노 피촐리표 핑크 복장을 한 채 등장했으니까. 그렇다면 왜 디자이너들은 지금 핑크를 논할까? 최근 몇 년 사이 제4의 물결 페미니스트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젠더화된 색을 정치화했다. 포스트모던 세계에서 핑크색은 다시 한번 성별과 정체성 경계에 대한 재고를 요구한다. 예를 들면, 샤넬에서 셜록 홈즈 차림 같은 망토가 달린 팬츠 슈트는 푸크시아 핑크로 트위스트가 더해졌고, 톰 포드의 부드러운 핑크색 드레스는 힐과 체인 덕에 더욱 터프한 뉘앙스를 내포하게 됐다. 이는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로맨틱한 면모가 아니라 여성의 힘을 찬양하는 것이다. 현대의 디자이너들은 1950년대 영화 <퍼니 페이스>의 경박한 칙령 ‘Think Pink’를 여성을 위한 강력한 상징으로 새롭게 재해석했다( 알다시피, 그레이는 너무 꼬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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