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세상에서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2009년 공동 작업을 시작한 예술가 듀오 문경원 & 전준호는 이 같은 질문을 품은 채 10년 넘게 예술적 여정을 이어왔다. 정치·경제적 모순, 역사적 갈등, 기후 변화 등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정면으로 탐구해온 이들은 올해 ‘기후 위기’에 새롭게 주목한다. 8월 30일부터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전시 <서울 웨더 스테이션>을 통해 두 작가는 그간 기후와 자연을 바라본 인간 중심의 관점을 과감히 전복할 예정이다.
MOON KYUNGWON & JEON JOONHO, I-CITY/WE-CITY, 2022, MIXED MEDIA ON PAPER, 1,200(W)×1,400(H) MM.
2022년, 세기말을 통과 중인 것도 아닌데 유독 카타스트로피의 기운이 곳곳에 횡행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글로벌 식량난이 터졌고, 영국과 인도에선 40℃가 넘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이상고온 현상이 지속됐으며, SNS에선 2030년 지구멸망설을 주장하는 게시물이 수많은 ‘좋아요’를 얻고 있었다. 여기에 코로나 바이러스의 뒤를 이어 인류를 위협할 또 다른 ‘질병 X’가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까지.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더는 묵시론적 시나리오에 머무르지 않고, 이윽고 현실 세계에서 해상도 높게 펼쳐지고 있었다. 2009년 공동 작업을 시작한 문경원과 전준호는 이렇듯 카타스트로피에 가까운, 무릇 외면하고 싶은 현실에 현미경을 들이민 채 13년째 예술적 여정을 떠나온 아티스트 듀오다. 두 작가는 2012년 제13회 카셀 도큐멘타에서 훗날 자신들의 대표작으로 불릴 연작 ‘미지에서 온 소식’을 발표했는데, 이는 ‘급변하는 세상에서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다. 정치· 경제적 모순, 역사적 갈등, 기후 변화 등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정면으로 탐구하는 ‘미지에서 온 소식’은 단순히 하나의 작품을 넘어 일종의 예술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전시’라는 테두리에 갇히지 않고 디자인, 과학, 철학, 경제, 정치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하고, 나아가 영상, 설치, 아카이브, 출판물, 다학제적 연구 및 워크숍 등을 제시하는 모든 과정이 작업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미지에서 온 소식’의 출발점이자 2채널 비디오 ‘세상의 저편’(2012)은 21세기 말을 배경으로 지구 땅의 대부분이 물에 잠기는 대재난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생존자를 그린다. 미래의 종말적 상황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거꾸로 현재 인구가 직면한 자원 고갈, 환경 파괴 등의 이슈를 환기한다. 이후 ‘미지에서 온 소식’ 은 시카고, 취리히 등 다양한 도시를 순회하며 발전했고 작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MMCA 현대차 시리즈 2021: 문경원 전준호 – 미지에서 온 소식, 자유의 마을>에선 남측 비무장지대에 위치한 파주시 대성동 ‘자유의 마을’을 조명하며 재난 이후 인간의 삶과 예술의 역할을 탐구했다.
올해 문경원과 전준호는 8월 30일부터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전시 <서울 웨더 스테이션>을 개최하며 지금 우리가 마주한 수많은 문제 중에서도 특히 ‘기후’에 주목한다. 아무리 둔감한 사람일지라도 좀처럼 외면할 수 없는, 가장 뜨거운 이슈를 말하고 있기에 어쩌면 가장 현재성 있는 전시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의 큰 줄기를 이루는 키워드는 ‘비인간(Non-Human)’. 그동안 기후 문제를 철저히 인간 중심으로 바라봐왔다면, 두 작가는 그 관점을 전환해 비인간의 관점에서 지구의 과거, 현재, 미래를 바라보고 특히 한국의 탄소 배출 문제에 주목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탄소 측정 장치를 장착한 4족 보행 로봇 ‘스팟’이 관객을 설치 신작 ‘불 피우기’(2022)로 안내한다. 신작이 놓인 전시장에선 ‘돌’의 관점에서 바라본 수천 년 동안의 지구의 변화를 서술한 소설이 시종 흘러나오는데, 이는 인공지능이 창작의 주체가 되어 작성하고 실시간으로 편집한 내러티브다. 한편 디자이너, 과학자 등과 협업한 참여형 플랫폼 ‘모바일 아고라’ 전시장에선 극한의 기후 조건과 종말 이후 세계에서 사용할 법한 다양한 디자인 솔루션을 만날 수 있다. 조류의 호흡기 ‘기낭’에서 모티프를 얻어 극한 상황에서도 무호흡으로 생존할 수 있도록 고안한 인공 장기 ‘슈퍼 폐’, 해수면 상승으로 대륙이 사라진 환경에서 물 위를 떠다니며 생활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 자립 도시 모델 ‘I-City/We-City’ 등은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닥칠지 모르는 재난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번 전시의 마지막 퍼즐은 바로 ‘월드웨더네트워크(WWN)’. 올해 6월 론칭한 WWN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전 세계 28개국의 미술 기관이 연합해 ‘기상 관측소’라 명명한 예술 작품, 전시, 프로그램 등을 전개하는 디지털 플랫폼이다. 지금 홈페이지(worldweathernetwork.org)에 접속하면 전 세계에서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흥미로운 기후 프로젝트들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 <서울 웨더 스테이션> 역시 서울의 기상관측소로서 WWN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아트선재센터라는, 문경원과 전준호가 차린 서울의 기상관측소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W Korea> 오늘 유난히 더웠는데 오전에 아트선재센터 옥상에서 탄소 측정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전준호 이번에 전시를 기획하면서 일상에서 탄소 배출량을 측정하는 장치를 개발했어요. 대기 중의 탄소를 집진해서 얻은 수치로 조만간 ‘탄소 달력’을 만들 예정이거든요. 탄소 연구자들에 따르면 우리가 2022년 동시대를 살고 있어도 탄소 치수가 높은 지역을 미래로, 반대로 오염량이 낮은 지역은 과거로 설정하더라고요. 우리나라에선 평창이 대표적인 저탄소 도시로 꼽히는데 평창을 2022년이라 하면, 인구 밀도가 높은 서울은 대략 2050년에 해당하죠. 이런 데이터들을 가시화하는 작업이 탄소 달력이에요. 매일 서울 시내 대기에서 포집한 탄소 치수로 달력을 만들 건데, 그때그때 치수가 다를 테니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달력이 되겠죠.
문경원 그런데 운이 좋게도 오늘이 우리나라 상공 위로 NASA의 인공위성이 지나가는 날이래요. 인공위성이 측정한 탄소 수치도 두 달쯤 지나 확인할 수 있으니, 이번 기회에 저희가 만든 장치의 정확도를 실험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색다른 우연이네요.
전준호 우리는 이런 걸 ‘문득’이라고 하죠(웃음). 운이 좋게 맞아떨어졌어요.
그런데 여태 민간용 탄소 특정 장치가 없었다는 사실이 의외네요.
전준호 그렇죠. 세계적으로 탄소세가 도입됐기 때문에 국가나 기업에선 오염도가 노출되는 걸 꺼리죠. 그런데 흔히 탄소 중립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 추상적인 무엇으로만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정치적, 경제적 문제들이 깊이 연결되어 있어요. 우리나라 같은 제조업 중심의 국가는 탄소 중립을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앞으로 탄소세를 계속해서 부담해야 할 거예요. 반면 더는 제조를 하지 않는 미국이나 유럽 같은 강대국은 이러한 제조업 중심 국가들을 식민지화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고요. 탄소 중립은 단순히 탄소를 줄이는 데 국한된 문제가 아니에요. 환경, 정치, 세계 질서의 문제가 포괄된 개념이죠. 저희가 일상에서 탄소를 측정하는 장치를 개발한 것도 ‘어떻게 삶을 바꿀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됐어요. 그런데 사실 이 또한 로맨틱한 생각에 불과할 수도 있죠. 실상은 절대 바뀌는 법이 없으니까요.
이번 <서울 웨더 스테이션>은 ‘기후’에 관한 전시입니다. 과거 ‘세상의 저편’ (2012) 등의 작업에서도 기후 변화로 발생한 종말적 세계가 그려진 적이 있는데, 기후 자체를 조명한 전시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요. 특별히 기후에 주목한 이유가 있나요? 이번 전시에서 ‘비인간’의 관점을 택한 점도 흥미롭습니다.
전준호 여태 자연과 기후라 하면 정복해야 하는, 개발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바라봐온 것 같아요. 인간과 기후는 ‘나’와 ‘너’라는 이분법적인, 대립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던 거죠. 그런데 이런 관점이야말로 지금의 기후 문제에 봉착하게 만든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번 전시를 통해 기후를 인간 중심에서 벗어나서 ‘비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한 거죠.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면 여태까지의 지구의 역사, 종의 역사, 인간 스스로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훨씬 더 용이해질 테니까요.
문경원 사실 지구상 생명체에는 인간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모든 것이 인간 중심으로 기술되고, 그에 따라 지금 지구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해요. 그런데 최근 코비드로 인해 사람들의 이동이 제한됐을 때를 보세요. 베니스 운하의 경우 오히려 그 2년 동안 물이 깨끗해졌고 다양한 생물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으로 탈바꿈했잖아요.
저도 그 사실을 기사로 접한 기억이 있어요. 팬데믹 이후 베니스 운하의 수질이 개선되자 돌고래까지 목격하게 되었다죠.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두고 ‘코로나 역설’이라 부르더라고요.
문경원 그렇죠. 바닷속 생명체나 물,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지구상에 사람이 없는 것이 그들에게 훨씬 좋을 수 있죠. 또 이번에 리서치하면서 떠오른 건, 과연 ‘지속가능성’이라는 것이 비인간의 관점에서 봤을 때 정말 이로운 것인가 하는 질문이에요.
전준호 지구는 아마 변하기를 원할 거예요. 지구에게 어떤 의식이 있다면, 얘는 몸이 뜨거워지니까 옷을 벗고 싶어 하고 쿨링하고 싶어 하겠죠. 또 그렇게 되어야만 또 다른 생명의 종이 탄생하고 다양성이 생길 수 있고요. 그런데 인간은 지속가능성이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변화를 막고 현재 시스템과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만 고안하고 있어요. 세계의 패권을 쥔 국가나 기업은 자신들이 헤게모니를 놓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지속가능성을 말하죠. 프로파간다 식으로 사람들에게 탄소를 줄이자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탄소를 줄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거든요. 탄소는 문명과 함께해왔으니까요. 문명이 멸하지 않는 한, 혹은 멸한다 해도 탄소를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죠.
이번 전시가 ‘비인간’의 관점으로 진행된다는 사실은 인공지능이 창작 주체가 돼서 신작 ‘불 피우기’의 내러티브를 작성했다는 것에서 확연히 드러나요. 두 분은 여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번처럼 인공지능과 협업한 경우는 처음이죠?
전준호 그렇죠. 몇 년 전 영국 <가디언>지에서 인공지능이 쓴 기사를 접한 적이 있어요. 그걸 보고 ‘와, 놀랍다’ 싶었죠. 문장력이나 설득력이 탁월하고 굉장히 맥락이 잘 짜인 글이었어요. 그걸 보면서 ‘얘가 스크립트도 쓰겠네?’ 생각했죠. 게다가 ‘불 피우기’는 돌의 관점에서 바라본 지구의 역사라는 줄거리를 가지니 우리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 것보다 인공지능이 쓰는 것이 훨씬 잘 들어맞았죠. 아무리 우리가 돌의 관점에서 쓴다 해도 우리의 경험치가 투영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문경원 이번에 인공지능을 쓰면서 가장 놀라웠던 건, 그리고 인간과 인공지능의 결정적 차이라고 느꼈던 건 바로 ‘스피드’예요. 우리가 글을 쓰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데, 인공지능은 몇 가지 정확한 명령어만 입력하면 정말 몇 초 만에 A4 용지 한 면을 채울 정도의 글을 써요. 또 명령을 두 번, 세 번 요청할 때마다 얘가 스킬이 늘어요. 딥러닝을 통해 스스로 훈련하며 확장하는 거죠. 정말 경이롭더라고요.
인공지능에 어떤 명령어를 입력했는지 궁금하네요.
전준호 저희는 키워드만 줬어요. ‘너는 옛날에 마그마였다, 그러다 분출해 밖으로 나와 지구를 보게 되었다, 옛날엔 몸집이 거대했으나 오랜 세월 풍화 작용에 의해 작은 돌멩이가 되었다. 자, 지금 네가 인류뿐 아니라 모든 종의 탄생을 서술해봐라’. 처음 완성한 내러티브는 다소 투박했는데 계속해서 프로그래머들이 문장을 워싱해서 인공지능에게 뚜렷한 목정성을 주는 식으로 작업했어요. 이렇게 완성한 내러티브를 목소리로 전환하는 프로그램을 사용해 전시장의 사람들에게 마치 옛 구연동화를 들려주듯 들려주고, 거기에 맞춰 전시장 조명이라든가 영상이 켜지고 사운드가 나오는 식이 될 것 같아요. 창문의 블라인드가 자동으로 개폐하기도 하고요.
신작 ‘불 피우기’는 1902년 잭 런던의 소설에서 제목을 빌려왔죠. 소설은 영하 50℃의 극한의 추위에서 살아남고자 필사적으로 불을 피우려다 죽고 마는 주인공을 그립니다. 이번 신작은 소설과 어떤 연결고리를 갖고 있나요?
전준호 사실 소설에서 제목만 따왔지, 내용의 상호교환은 없어요. 다만 저희가 주목한 건 불의 상징성이었거든요. 불 피우기란 오로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문명의 상징이잖아요. 인간이 불을 다스릴 줄 알면서 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했고 인간이 지구의 지배 종이 됐으니까요. 그래서 불 피우기 자체가 인간이 쌓아 올린 모든 것의 시발점이라고 생각했어요.
문경원 사실 인간과 인공지능이 다른 지점이 무엇인가 할 때, 불을 발화시킨다는 행동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시작을 의미하니까요. 이번 신작은 인공지능의 객관적 시각에 의해 내용이 랜덤 플레이되지만 사실 이것을 발화시키는 행동은 저희가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불이 저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척 컸어요.
전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모바일 아고라’를 통해 더욱 현실 세계에서 강력화된다는 인상이 있어요. 디자이너, 과학자 등과 협업한 ‘모바일 아고라’에선 재난 상황을 가정한 다양한 디자인 솔루션을 제시하잖아요.
전준호 그렇죠. ‘불 피우기’가 전시된 2층 전시장에선 상징 언어로 관객과 소통한다면 ‘모바일 아고라’가 전시된 3층 전시장에선 훨씬 직접적이고 더 피부에 와닿는 언어로 소통하는 거죠. 두 레이어 사이에서 관객이 여러 체험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게 저희의 기획 의도예요.
최근 코비드 때문인지 ‘모바일 아고라’에서 조류의 호흡기에서 모티프를 얻어 극한 상황에서도 무호흡으로 생존할 수 있도록 고안한 인공 장기 ‘슈퍼 폐’가 가장 인상적이더라고요. 두 분은 어떤 디자인 솔루션이 가장 인상에 남나요?
전준호 지금 산업디자인 스튜디오 BKID와 함께 탄소를 눈으로 볼 수 있는 장치를 만들고 있어요. 물론 콘셉추얼한 디바이스예요. 탄소는 무색무취하기 때문에 우리 삶과 동떨어진 무엇이라 생각하는데, 탄소도 미세먼지처럼 눈에 보인다면 사람들은 위기감으로 받아들이겠죠. 이를테면 오늘 외출하지 말아야 해, 빨래도 하지 말아야 해, 라는 식으로. 탄소를 눈으로 볼 수 있는 장치를 만든다면 삶은 무조건 달라질 거라 생각했어요. 물론 프로토타입이기 때문에 현실화될 수는 없지만 그것 자체로 상징성을 띤, 어떤 태도를 가진 오브제를 만들고 싶었어요.
두 분이 만약 예술가가 아닌 발명가였다면, 지금쯤 재벌이 되어 있을 것 같군요 (웃음).
전준호 전혀 아니에요(웃음). 아마 저희 물건을 사주려는 소비자가 없어서 제대로 생산도 못했을 거예요.
하하. 두 분은 여태 수많은 전문가들과 협업해왔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긴밀한 협업자일 듯해요. 서로는 어떠한 동료이자 협업자인가요? 과거 전준호 작가님이 인터뷰에서 자신이 노지 딸기라면, 문경원 작가는 하우스 딸기라고 표현한 대목도 인상적이었어요.
전준호 세상에나, 진짜 말 조심해야겠다(웃음). 서로 살아온 환경과 경험치가 무척 달라요. 그래서 어떤 일이나 상황을 해결하는 방식도 다르죠. 그런 점에서 저희 둘은 굉장히 ‘매처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단점이 무지 많은 사람인데, 문경원 작가는 그 단점을 장점으로 굉장히 잘 커버해주는 사람이고요. 아, 그런데 둘 중 누가 더 당도 높은 딸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그런데 실제 두 딸기 중 어느 것이 당도가 높을까요?
전준호 글쎄요, 기후에 따라 다르지 않겠어요?(웃음)
문경원 저는 말을 아끼겠습니다(웃음). 사실 혼자 작업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자기 한계에 부딪칠 수 있죠. 작업에 있어서 반성과 성찰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건 혼자 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협업의 좋은 점은,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어준다는 점인 것 같아요.
전준호 저는 다른 것보다 외롭지 않아서 좋아요. 작업은 외롭거든요. 그런데 옆에 도와줄 누군가가 있다면, 내가 지금 걷는 길이 오롯이 나 혼자 만들어서 가는 길이 아니게 되는 거죠.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 전 포기했을 거예요. 사실 그렇잖아요. 왜 이렇게 힘들고, 돈도 안 되는 걸 계속 해야 하는지 모르겠으니까. 무엇을 위해서 내가 예술을 하지? 예술가의 사명감 때문에? 사실 잘 모르겠거든요. 내가 내 삶도 구원하지 못하는데. 어쨌든 동료가 있어 외롭지 않다는 게 저에겐 가장 큰 것 같아요.
문경원 그런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 외롭다는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바빠서…(웃음).
두 분 유독 서로가 어떤 협업자인지 묻는 이 질문에 첨예하시네요(웃음).
문경원 사실 같이 공동 작업을 하다 보면 아주 실질적인 것을 가지고 많이 부딪치기 마련이거든요. 저희 둘은 너무 다른 캐릭터의 사람이고 그래서 자주 싸우지만 예술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지점, 바라보는 지점이 비슷해요. 전부 이 점을 위해 싸우는 거니까 참는 거죠. 아니었다면 인간적으로 굉장히 상처받을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심할 땐 무섭게 싸우거든요. 두 번 다시 당신과 같이 일하면 사람이 아니라고 서로 말했을 정도로(웃음).
하하. 어쨌든 방금 말씀하셨듯 두 분은 공통의 목표가 있는 거잖아요. 저는 두 분의 작업들로 보아선, 그게 바로 ‘실천하는 예술’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실천하는 예술이란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자꾸 직면해야 하는 거잖아요. 두 분도 가끔은 그게 피로하지 않으세요?
전준호 피로하죠. 어떨 때는 안식년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렇게 에너지를 쏟다 보면 고갈해서 죽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런데 이제는 우리의 의지로 프로젝트를 멈추고 시작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고 생각해요. 저희 프로젝트의 성격은 다장르 간의 다성 지성이 모이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멈추면 모든 사람의 액티비티가 멈추게 되는 거잖아요.
문경원 사실 저희가 대단한 실천을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많은 분들과 연결됐어요. 그런 점에서 일종의 책임감이 들죠. 그런데 저희끼린 이런 말도 해요. 이런 식의 협업을 통한 가장 큰 수혜자는 우리라고. 배우는 게 너무 많거든요.
전준호 지속성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껴요. 물론 누구나 다 저희가 하는 프로젝트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두 번은. 그러다 지치면 말겠죠. 저희가 10년째 프로젝트를 끌어올 수 있었던 건, 저희에게 모범적인 행동을 보여준 분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면 건축가 이토 토요 선생님 같은 경우엔 어린이들을 위한 건축 학교 ‘이토주쿠’를 몇십 년째 운영 중시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엔 공동 공간 ‘모두의집’을 지어 재해 활동에 적극 참여하셨어요. 여러 도시 계획에 있어 그분의 일관된 태도가 저희에게 큰 동력이 되죠. 사실 저희도 나태해지잖아요. 습관적으로 전시를 하면 모바일 아고라 또 하지, 불렀던 사람 또 부르지, 하다가도 그분의 행보를 떠올리면 각성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되죠.
최근 두 분의 작업에 들어오고 있는 것들이 있나요?
문경원 지난 국립현대미술관전시에서도 다뤘던 고립. 그리고 이번 전시를 하면서 비인간 관점에 대해 좀 더 발전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준호 최근 팬데믹 상황을 겪었고 앞으로도 겪을 거예요. 바이러스에 의한 일상의 중단은 끊임없이 찾아올 거예요. 또 다른 형태의 바이러스에 따른 질병이든 전쟁이든, 계속해서 우린 고립될 텐데 저는 비단 고립이란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해요. 고립은 지난날을 반성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거든요. 고립이야말로 훨씬 더 발전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상황을 만들어주는 유한한 환경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고립을 어떻게 해석하고 고립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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