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을 위한 이솝의 여정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순환을 위한 이솝의 여정

2022-08-24T15:58:22+00:002022.08.23|ART + JEWELRY, BEAUTY, 뉴스|

순환을 위한 여정은 결코 녹록지 않다. 스토어 곳곳에 자연을 심은 이솝은 자원 순환에 기꺼이 동참할 기회를 제공한다. 

키클로스(Kyklos)는 고대 그리스어로 순환(Circle)을 의미한다. 제품 원료와 패키지, 스토어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인류와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노력. 그 일환으로 이솝은 성수와 가로수길, 삼청 세 개 스토어를 대표해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이솝의 지속가능한 접근을 보여주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그곳에서 자연을 만지고, 버려지는 것들로 만든 작품을 감상하며 순환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자연이 숨 쉬는 스토어 디자인 이솝 성수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은 작년 12월 오픈한 이솝 성수. 입구에 들어서자 제품이 반듯하게 진열된 원목 테이블과 투박한 흙벽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솝 스토어는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역사회에서 얻은 건축 자재를 재활용하거나 기존에 사용한 가구를 재사용하는 식으로 자원 순환에 일조한다. 이솝 제주의 벽면은 해녀복으로, 이솝 부산의 싱크대는 기와 파편으로 만드는 식이다. 이곳 이솝 성수에 사용된 목재 역시 철거된 건물에서 조달됐다. 또 한국 전통 가옥에서 볼 수 있는 황토와 지푸라기를 섞어 만든 벽은 재생 종이와 데님으로 채워 단열재를 대신했고, 이중창을 사용해 에너지 효율도 극대화했다. 이솝 성수는 이렇듯 스토어 디자인과 비주얼 머천다이징 측면에서 지속가능한 접근을 시도, 전 세계 이솝 매장 중 환경적 영향이 가장 적은 매장으로 꼽힌다. 흙벽에 살포시 손을 대보니 시원한 냉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천장에 뚫린 반원형 유리창은 햇살을 투과해 조도가 낮은 LED 조명을 써도 되어 전기도 절약한다. 지시에 따라 매장 한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비에 젖은 땅과 풀 위로 흑자작나무가 까꿍,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인위적으로 다듬은 인공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야생의 모습을 한 소박한 정원이 작은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다. “첫 돌도 채 지나지 않은 아기 정원입니다. 햇살을 듬뿍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죠. 안타깝게도 사람이 만든 모든 정원이 자연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빗물과 양분이 원활하게 순환하게끔 설계하는 노력이 필요하죠. 이를 알아챘는지 고맙게도 꽃이 피면 벌이 찾아오고, 땅을 파면 지렁이가 꿈틀거리더군요. 이솝의 철학을 바탕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까지 소외되지 않도록 노력한 결과입니다.” 이솝 성수의 정원을 구상한 이대길 정원사는 풀잎의 색이 변하고 낙엽이 쌓이는 것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실감한다고 했다. 그가 고창과 제주의 습지에서 직접 녹음해 가져온 자연의 소리에는 새의 지저귐과 물 흐르는 소리, 풀벌레 울음소리가 담겨 있다. 잎이 바람에 부딪치는 소리는 마치 파도 소리 같았다. 귀가 호강하는 기분. 청음을 마친 뒤 문을 열고 정원으로 나섰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흑자작나무는 콘크리트에 덮여 뿌리가숨 쉬지 못하는 대로변의 앙상한 가로수와 달리 싱그러운 초록빛을 뿜어냈다. 고개를 낮추니 고사리 줄기를 기둥 삼아집을 지은 거미 서너 마리와 유리창에 딱 붙어 산책을 즐기는 민달팽이가 보였다. 조그마한 생명체들이 그날따라 애틋하게 느껴진 건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이솝 덕분이다. 도심 속에서 자연과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라니. 자연은 행복감과 안정감을 주며, 오감이 살아나게 만든다. 어쩌면 이작은 정원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당신을 더 행복하게 해줄지도 모른다!

이후 스토어 밖에 마련된 공병 수거함에 미리 세척해 간 보디 클렌저와 핸드워시를 넣었다. 누군가가 먼저 두고 갔을수거함 속 공병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바로 옆에는 자전거 거치대도 설치돼 있다. 이곳 성동구 주민의 높은 자전거 이용률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주차 공간을 제공하려는 이솝의 세심한 배려다. 자전거 이용이 늘면 온실가스 배출량을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눈치 보지 말고 손만 씻고 가도 좋다는 스토어 안 수전처럼 스토어 밖에서도 나눔을 실천하고 있었다. 브랜드에서 마련한 전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차 안. 함께 탄 에디터들은 서로 말이 없었다. 이솝이 설계한 잔잔한사운드를 들으며 잠깐의 고요한 휴식을 취했으리라.

 

윤리적인 제품 이솝 가로수길

‘지혜란 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여행을 한 후 스스로 지혜를 발견해야 한다.’ 이어 도착한 이솝 가로수길. 벽에 적힌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글귀 아래에 작은 나뭇가지 더미가 보였다. 갸우뚱하며 계단을 올라 도착한 2층에서는 이보다 훨씬 거대한 둥지를 마주했다. 어림잡아 수천 개의 나뭇가지로 만들었을 법한 둥지는 전 층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 둥지는 강남 지역의 공원과 도로변 가로수를 가지치기한 뒤 버려진 잔가지를 채집해 만든 설치물이다. 전시가 끝난 후 나뭇가지를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고온으로 찐 뒤 접착제 없이 엮었다고도 했다.

이솝은 제품 개발 시 단순히 원료의 효능만을 생각하지 않는다. 지역사회, 나아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까지 다차원적으로 고려한다. 대표적으로 화장품에 주로 쓰이는 식물성 기름인 팜유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우림을 자랑하는 보르네오에서 채집한다. 하지만 무분별한 벌목으로 멸종 위기 동물과 원주민은 숲과 함께 점점 자취를 감추고, 기후 변화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문제를 인식한 이솝은 지속가능한 팜유 라운드테이블(Roundtable on Sustainable Palm Oil) 인증을 받은 팜유만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다른 식물성 기름으로의 전환이 더 많은 땅이 소모되는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편안함을 담당하는 아로마 향료인 샌들우드 오일의 공급을 위해서는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에 위치한 증류 업체인 두트얀 샌달 오일과 파트너십을 체결한다. 원주민 공동체가 소유하고 관리하는 두트얀 샌달 오일은 이솝의 엄격한 품질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윤리적이고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생산된다. 또한 이솝의 모든 클렌징 제품에는 EU의 지침 중 ‘최종 생분해(Ultimate biodegradation)’ 상태에 준하는 계면활성제만 담긴다. 물, 이산화탄소 등으로 생분해돼 지구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기 위함이다. 이솝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천연 원료 또는 재생 가능한 원료의 비중을 95%까지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컴컴한 둥지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갔다. 얼기설기 엮은 나뭇가지 사이로 새어든 빛이 바닥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고온의 수증기에 찜 쪄졌을 나뭇가지에서 난생처음 맡아보는 ‘꼬순내’가 났다. 묘한 아늑함. 바닥에 대자로 누워 명상 시간을 가질 수 없는 게 못내 아쉬웠다. 사용한 재료를 다시 자연으로 되돌려 자연의 재생 주기를 반영하는 것. 지혜는 공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프루스트의 명언을 상기하며 이솝이 가로수길 스토어에 그린 웨이스트로 만든 둥지를 설치한 이유를 짐작했다. 이솝은 까다롭기로 유명한 비콥(B Corp) 인증을 획득했다. 비콥은 재무적 성과와 사회적 성과를 균형 있게 추구하는 기업에 부여되는 글로벌 비영리네트워크 비랩(B Lab)의 인증으로 기업의 사회적, 환경적 책임을 평가한다. 목욕물을 데우는 데 드는 에너지가 샤워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바스 솔트 출시를 포기한 일화는 이솝의 신실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둥지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크게 심호흡을 했다.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는 길, 그토록 싫어하던 비둘기 떼가 어쩐지 반가워 보였다. 가까운 곳에서 자연을 보고, 화장대 위에 숲의 향을 둘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도 알아차렸다.

 

순환형 패키징 이솝 삼청

마지막은 이솝 삼청. 한옥을 닮은 고즈넉한 매장의 문을 열었다. 아담한 내부에는 도자기 형태의 오브제가 천장에 매달려 모빌처럼 잔잔히 흔들리고 있었다. 재료는 북카페, 옷 가게 등 삼청 지역 상점에서 사용한 폐비닐로, 김지선 작가가 이를 다리미로 한 장 한 장 펴고, 자르고, 접어 완성한 화병이라고 했다. 전시를 마친 화병은 고객 선물용으로 추후 사용될 예정이다.

이솝의 패키징 방식은 수년간 거의 변하지 않았다. 다수의 화장품 브랜드에서 ‘한정판’, 또는 ‘리뉴얼’, ‘콜라보레이션’이라는 이름으로 패키지만 바꾼 제품을 반짝 판매하는 것과는 사뭇 결이 다른 행보다. 용기는 기능적이고, 미니멀하며,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단순 명료한 원칙에 따라 제품 용기의 대부분은 알루미늄과 유리, 재활용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이하 재활용 페트, rPET)로 제작된다. 알루미늄은 무한정으로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로 가볍고 양조절이 용이해 휴대성이 뛰어나다. 페이셜 클렌저와 향수 제품에 주로 사용되는 갈색 유리는 자외선을 차단해 방부제 사용량을 최소화한다. 재활용 페트는 재활용 원료를 최소 97% 함유한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플라스틱이 매립지에 폐기되지 않도록 돕는다. 플라스틱을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이 더 좋지 않으냐고? 재활용 페트는 유리처럼 무거운 소재와 비교했을 때 파손으로 인한 제품 낭비와 운송에 따른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는 관점에서 에너지 절약과 환경보호에 일조한다. 여행용, 또는 미끄러운 샤워실에서 놓치기 쉬운 제품은 안전해야 한다는 원칙에 입각한 특단의 조치인 셈이다. 보틀뿐만이 아니다. 이솝은 향수, 기프트 세트와 같은 일부 제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제품을 상자나 쇼핑백 없이 판매한다. 이솝 로고와 스트링이 전부인 간결한 디자인의 코튼 백이 이를 대신한다. 이솝 코튼 백은 다른 브랜드로부터 증정 받은 에코백이나 화려한 파우치와 달리 좀처럼 버린 적이 없다. 그중 몇 개는 사용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속옷이나 양말, 위생용품을 담는 파우치로, 특히 여행 갈 때 무척 유용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얇고, 가벼워 온갖 장식이 부착돼 분리수거도 어려운 증정용 파우치와는 차원이 다르게 편리하다. 더욱이 파우치에 이솝 퍼퓸을 스프레이한 후 캐리어를 닫으면 도착지에서도 상쾌함을 느낄 수 있다.

받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돌려주려는 이솝의 접근 방식에 그간 ‘무쓸모’ 증정품과 사자마자 버려지는 과대 포장에 괴로웠던 무수한 순간이 스쳤다.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옷장 속 에코백과 파우치를 보며 내쉬던 한숨, 지인에게 주고, 또 주어도 남아 결국 쓰레기통에 버리며 느낀 죄책감까지…. ‘네가 내어줄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것을 취하지 말라’는 영화 <라이온킹>의 주제가 속 가사가 불현듯 떠올랐다. 이솝은 호주 멜버른에 위치한 이솝 사우스 야라(Aesop South Yarra)스토어를 시작으로 ‘리필 스테이션(Refill Station)’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는 다 쓴 유리병을 가지고 오면 세척, 소독을 거친 새로운 유리병에 내용물을 리필해주는 시스템으로 이솝 코리아 역시 이를 도입할 예정이다. 이 정도면 머지않아 ‘완전 순환형 패키징’을 이룰 날이 오지 않을까? 원고를 마감하는 지금 일회용품 사용을 지양하는 이솝 직원들을 떠올리며 이면지에 자료를 인쇄하고,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에물을 마시고 있다. 이솝이 겸허하게 들려준 브랜드 철학과진정성 있는 여정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