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기를 맞이한 스케이트보드 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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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 세계 스케이트보드 신은 유례없는 황금기를 맞고 있다. 팬데믹이 세상을 휩쓴 사이 최고의 ‘쿼런틴 취미’로 떠오른 데에서 나아가 올림픽 공식 종목으로 채택되며 비주류 서브 컬처란 획일적인 시선에서 저만치 벗어나고 있다. 여기에 스케이트보딩의 ‘쿨’함에 매혹된 하이패션 브랜드의 지속적인 러브콜까지. 지금 스케이트보드를 둘러싼 이야기와 서울 보드 신을 흥미롭게 물들이고 있는 인물 5팀을 펼쳐 보인다.

“지난 200년 동안 미국은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거대한 시멘트 놀이터를 별생각 없이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에서 가능성을 발견한 것은 고작 11살배기의 어린 소년들이었다.” 모던 스케이트보딩의 창시자로 불리는 미국 출신의 스케이터 스테이시 페랄타가 2001년 연출한 자전적 다큐멘터리 영화 <독타운과 Z 보이즈>는 이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2001년 선댄스영화제에서 감독상과 관객상을 수상한 영화는 이후 2005년 캐서린 하드윅의 영화 <독타운의 제왕들>을 통해 픽션 버전으로 재구성되기도 했는데, 두 작품은 모두 1970년대 중반 해안가 슬럼에 불과했던 미국 캘리포니아의 작은 마을 독타운이 스테이시 페랄타를 비롯한 12명의 제파 스케이트보드 팀, 일명 ‘Z-보이즈’에 의해 어떻게 진보적 스케이트보드 문화의 발상지로 거듭나게 됐는지를 좇는다. 특히 <독타운의 제왕들>은 당대 캘리포니아의 오렌지빛 햇살을 고스란히 담은 노스탤직한 화면, 청년 시절의 히스 레저를 만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높은 점수를 쳐줄 수 있지만, 그보다 모던 스케이트보딩의 역사를 2시간 남짓한 러닝타임으로, 그것도 재치 넘치는 대사로 가득 채워 제시한다는 점에서 스케이트보드 필름의 ‘클래식’으로 부를 만하다. 이를테면 영화는 스케이트보드의 역사를 바꾼 사건을 몇 줄의 대사를 통해 영리하게 전한다. “이게 바로 우레탄으로 만든 스케이트보드 휠이야. 이것만 있으면 서프보드처럼 어려운 턴 동작을 할 수 있지.” 1950년대 말 서퍼들이 파도가 없는 비수기에도 즐길 수 있는 레포츠를 생각하다 탄생한 스케이트보드는 영화 속 대사에서 알 수 있듯 1970년대 접지력이 좋은 우레탄 재질의 휠이 등장하며 큰 변화를 맞았다. 질기고 신축성 좋은 우레탄 휠의 등장은 곧 기존 금속 혹은 나무 휠이 내던 ‘소음’으로부터의 해방이자, 스케이터들이 다양한 현대적 트릭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1981년 세계적 스케이트보드 매거진 <트래셔>가 창간했고, 스케이트 비디오를 통해 ‘슈퍼스타’가 탄생할 수 있는 초석을 닦은 최초의 가정용 캠코더 ‘베타무비’가 1983년 소니에서 처음 출시됐으며,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걸, 버드하우스, 에일리언 워크숍 등과 같은 스케이트보드 브랜드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993년 미국의 스포츠 전문 채널 ESPN이 스케이트보드를 종목으로 한 익스트림 스포츠 대회 ‘X 게임즈’를 개최하며 스케이터들의 인기가 대중적으로 높아지기 시작했으며, 대회 상금과 스폰서십을 통해 토니 호크와 같이 세계적 명성을 거느리며 큰돈을 손에 쥐게 되는 ‘프로 스케이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독타운과 Z 보이즈>와 <독타운의 황제들>이 담지하는 시대상은 앞서 말한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다. 그렇다면 지금 스케이트보드를 둘러싼 이야기는 어떻게 펼쳐지고 있을까? 배우 조나 힐의 감독 데뷔작이자 2018년 개봉한 스케이트보드 소재의 영화 <미드 90>에선 이런 장면이 등장한다. 길거리를 제멋대로 활보하며 보드를 타던 소년 무리 중 하나가 “누가 떴다고 외치면 냅다 튀어야 돼”라고 말하기 무섭게 경찰의 등장으로 부리나케 줄행랑치는 소년들. 서로 뒤엉켜 도망치는 와중에도 경찰을 향한 선물, 가운뎃손가락만큼은 잊지 않는다. 사실 스케이트보드 문화가 본격적으로 싹튼 1970~90년대나 지금이나 스케이트보드가 자유와 저항 정신이 깃든 유스 컬처의 상징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스케이트보드는 그 어떤 것과도 연관이 없어요. 유니폼이나 심판도 없고 무엇보다 규칙이 없었습니다.” 언젠가 스테이시 페랄타가 말했듯 무엇 하나 정해진 규칙 없이, 자신만의 자유로운 방식으로 길거리에서 보드를 타는 것은 시대 변화와 상관없이 영속할, 스케이트보드 고유의 문화 코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스케이트보드가 비주류 서브 컬처의 범주 안에서 이해되는 것과 별개로, 스케이트보드를 둘러싼 지위나 시장 규모가 날로 성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그랜드 뷰 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스케이트보드 시장 규모는 2025년 24억 달러, 한화로 약 3조15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루이 비통, 프라다 등과 같은 하이엔드 패션 하우스가 스케이트보드 문화에서 영감을 얻은 컬렉션을 출시한 것은 시장의 성장에 거대한 가속을 붙였다. 2017년 6월, 루이 비통과 1994년 뉴욕 소호 거리의 스케이터들과 펑크 키즈들의 사랑방으로 출발한 메가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이 합작한 ‘슈프림 X 루이 비통’ 컬렉션은 하이패션과 스트리트 컬처가 서로 교차하는 신호탄 같았던 사건으로, 이후 루이 비통은 2018년 수석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를 영입하며 스트리트 신에 꾸준히 찬사를 보내다 2021 프리 스프링 컬렉션의 일환으로 프로 스케이터 루시엔 클라크와 협업한 스케이트 슈즈 ‘관점(A View)’을 출시했고, 나아가 최근 버질 아블로의 유작인 2022 S/S 쇼에는 영화 <미드 90>의 주연 배우이자 스케이터인 라이더 맥로린을 모델로 등장시켰다. 이 밖에 2018년 스케이트보드 브랜드 팔라스와 폴로 랄프 로렌의 획기적 만남이었던 ‘팔라스 랄프 로렌 컬렉션’, 스케이트보드 문화를 아우르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컬렉션을 펼친 셀린느 옴므의 2021 S/S 컬렉션 ‘The Dancing Kid’, 최근 버버리와 슈프림이 협업한 ‘버버리 X 슈프림’ 2022 S/S 컬렉션까지. 하이패션과 스케이트보드의 만남은 지금도 꾸준히 순항 중이다.

북미는 전 세계 스케이트보드 시장 수익의 31.7%를 차지하는 가장 큰 지역으로 꼽히는데, 2021년 미국의 액션 스포츠 산업 데이터 제공업체 ‘액션워치’에 따르면 작년 6월에만 미국에서 스케이트보드 장비 판매가 전년도 대비 118% 증가했다. 작년 한 해, 스케이트보드 시장은 이제까지 본 적 없는 폭발적인 매출 성장을 기록했는데 전문가들은 이를 둘러싼 가장 큰 이유로 팬데믹과 올림픽을 꼽는다. 팬데믹이 지속되며 실내 스포츠를 즐기는 인구가 줄고, 야외 스포츠이자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스케이트보드가 최고의 ‘쿼런틴 취미’로 떠올랐다는 것. 이를 방증하듯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같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선 ‘#SkateTok’이란 해시태그가 한동안 유행했다. 나아가 스케이트보드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데 이어 작년 2020 도쿄올림픽에서도 채택·신설되며 말 그대로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됐다. 도쿄올림픽 아리아케 경기장에 깜짝 모습을 나타낸 1968년생 전설적 스케이터 토니 호크는 당시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런 소회를 남겼을 정도. “스케이트보드를 향한 열정 때문에 질타를 받기 일쑤였던 어린 시절, 훗날 스케이트보드가 올림픽 경기의 일부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러한 변화는 전 세계적 흐름이자 곧 한국에도 그 바람이 일었다. 대한롤러스포츠연맹은 1980년대 말부터 한국에서 스케이트보드 문화가 싹트기 시작했다 전하는데, 특히 2003년 LG전자 주최의 ‘LG 액션스포츠 월드투어’, 2005년 ESPN 주최의 ‘X-game Asian Seoul’ 같은 대규모 스케이트보드 대회가 서울에서 열리며 국내의 스케이트보드 문화를 깜짝 조명하기도 했다. 2012년엔 최재승이 레드불이 후원하는 전 세계 30여 명의 스케이트보드 선수 가운데 최초의 한국인 선수로 이름을 올리며 국내에도 프로 스케이터가 탄생했고, 작년 강준서가 국내 최초로 스케이트보드 특기생으로 한체대에 입학하며 ‘스케이트보드로 대학도 갈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현재 전원 10대로 구성된 스케이트보드 한국 국가대표 팀은 2024 파리올림픽 출전을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는 상태다. 지금 가장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 스케이트보드 신, 자그마한 데크 위에 몸을 실은 스케이터들이 과연 어디까지 질주할 수 있는지 이제 흥미롭게 지켜볼 일만 남았다.

안대근, 이민혁, 최호진, 최유진, 김준영 칼하트 WIP 스케이트 팀

지금 국내에서 가장 ‘멋있게’ 타는 스케이트 팀을 꼽는다면, 단연 칼하트 WIP 스케이트 팀이 떠오른다. 작년 국내 스케이트보드 신에서 잔뼈 굵은 스케이터 안대근을 시작으로 팀이 결성됐으며, 이후 전 국가대표 최호진을 비롯한 4명이 합류하며 지금의 팀을 갖추게 됐다. 칼하트 WIP 이창훈 팀장에 따르면 이들의 선발 기준은 “무조건 멋있어야 한다”는 것. 스케이트보딩 스킬, 애티튜드, 스타일까지 두루 갖춘 이들을 국내 스케이트 스팟의 성지 중 하나로 통하는 ‘수내역’ 인근에서 만났다.

<W Korea> 반스, LMC 등 국내에 패션 브랜드가 후원하는 스케이트 팀이 여럿 있다. 그중 칼하트 WIP 스케이트 팀만의 고유한 색깔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김준영 개인적으로 저마다 다른 스타일을 가진 스케이터들이 모인 팀을 좋아하는데, 칼하트 WIP 팀이 딱 그렇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보드 타는 걸 보면서 동기 부여도 되고, 서로의 스타일에 영향 받아 자기 것으로 체화하기도 한다. 아주 좋은 시너지가 있는 것 같다.

최유진 맞다. 그러다 보니 같은 스폿에 가더라도 굉장히 다양한 그림이 나온다. 나 같은 경우는 유럽의 테크니컬한 스케이팅에 영향을 받았고, 민혁이 형은 일단 스케이팅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또 보드를 타면서 다양한 트릭을 자연스럽게 이어가며 ‘플로우’ 있게 타는 편이다. 준영이 형은 ‘본네스’처럼 현대 스케이트보딩에선 자주 쓰지 않는 손 기술을 많이 사용하는 올드스쿨 트릭을 즐긴다. 호진이 형은 ‘깡’이 있다. 용기 있게 한 방에 밀고 나가야 하는 트릭을 파워 있게 잘한다. 마지막으로 대근이 형은 ‘어나더 레벨’이다(웃음). 어떤 스폿에 갔을 때 ‘여기선 이 트릭 하겠네’ 하는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서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트릭을 많이 시도한다.

처음 스케이트보드를 접한 계기가 있었나?

최호진 유진이와 형제다. 초등학생 때 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형제에게 똑같이 스케이트보드를 선물해주시면서 시작했다.

김준영 고3 때 우연히 유튜브에서 미국의 스케이터 라이언 셰클러의 영상을 보면서. 지금 막 찾아보는 스케이터는 아닌데, 그때 당시엔 MTV 쇼에도 나오고 마치 연예인처럼 활동했다. 멋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길로 비기너용 컴플릿(완성형) 보드를 싼값에 사서 시작했다.

안대근 2000년대 초 핑거보드가 유행했다. 그때 스케이트보드란 게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중학생 때 처음 보드를 마련해서 당시 주말마다 고향 원주에서 서울로 원정을 나갔다.

이민혁 초등학생 때 아버지에게 스노보드를 배웠는데 그때 데크를 탄다는 재미에 푹 꽂혔다. 겨울이 아닐 때도 스노보드를 탈 방법을 고민하다 스케이트보드를 접했다. 부모님을 졸라 생인 선물로 데크를 받은 게 시작이다.

대부분 2010년대 전후에 스케이트보딩을 시작한 셈이다. 그때 당시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스케이트 컬처의 어떤 점이 변화했다고 느끼나?

김준영 그때 당시만 해도 소수의 사람만 타는 마니악한 문화였는데, 요즘은 많이 대중화된 것 같다. 그리고 소셜미디어의 발전으로 각 나라만의 스케이트보딩 특색이 옅어진 것 같다. 지금은 대부분의 스케이터가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기술을 한다.

최유진 보드 타는 사람이 늘었다는 걸 스폿에 나갈 때마다 새삼 느낀다. 또 전반적인 스케이팅 레벨이 불과 몇 년 전과 비교했을 때 눈에 띄게 늘었다.

이민혁 맞다. 처음 스폿에 나갔을 땐 타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길에 보드를 들고 다니기만 해도 서로 알아보는 경우가 많을 정도였다.

해외와 비교했을 때 한국 스케이트보딩만이 가진 특징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최유진 사실 국내에 스케이트보드 문화가 자리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아직 우리 고유의 스케이팅 스타일이 확립되진 않은 것 같다. 지금 한국에서 보드 문화는 ‘유행’에 가깝지만, 가까운 일본이나 유럽에 나가면 국민 스포츠의 하나로 보일 정도로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보드 타는 사람이 자주 눈에 띈다. 우리나라 신은 지금이야 좀 넓어지긴 했어도 여전히 좁다. 서로 누가 있는지 다 알 정도니까. 하지만 부족한 만큼 발전하고 성장할 부분이기 때문에 절대 나쁜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지금 한국의 스케이트보드 신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최유진 보드를 타는 인구가 계속 늘고 있는 반면, 제대로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나지 않는 게 제일 아쉽다. 열심히 타고 잘 타는 친구가 지금 얼마나 많은데!

김준영 딱히? 요즘 어린 친구들이 정말 잘해주고 있다. 세대 교체가 좋은 방향으로 이뤄지는 것 같다. 굳이 하나 고르자면, 좀 더 다양한 스타일로 타는 스케이터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것?

지난 도쿄올림픽에서 스케이트보드가 공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이처럼 문화로서의 스케이트보드와는 다른, 스포츠로서의 스케이트보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최유진 올림픽이나 SLS와 같이 스케이트보드를 이용해 대회를 여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만큼 스케이트보드가 많이 알려지고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그러나 대회를 통해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것도 좋지만 다 같이 스폿에 모여 맥주 한 캔 마시며 떠드는 것이나 서로가 모르는 트릭을 알려주는 것과 같은 스케이트보드의 본질적 가치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 선호하는 패션 스타일, 음악은 무엇인가?

김준영 ‘빵꾸’ 날 걱정 없는 튼튼한 옷. 넘어졌을 때 금방 찢어질 것 같은 옷을 입으면 불안해서 트릭이 잘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음악은 주로 포스트 펑크나 콜드웨이브 장르를 듣는다. 토킹 헤즈, 픽시즈 같은 괴짜들의 음악을 좋아한다.

이민혁 튼튼하고 통 큰 옷. 내가 칼하트 WIP 팀이라서가 아니라, 칼하트 옷이 보드 타기에 진짜괜찮다(웃음). 음악은 딥하우스나 올드스쿨 하우스 장르를 주로 듣는다.

최유진 피 묻어도 티 나지 않을 어두운 색감의 옷?(웃음) 온종일 넘어지고 구르다 보니까. 또 더 스미스, 스매싱 펌킨즈 같은 록이나 빌 위더스, 로이 에이어스 같은 재즈 뮤지션을 좋아한다.

스케이트보드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

안대근 경쟁하지 않고 즐길 수 있다는 것. 서로의 스케이팅이 다르다는 것. 다양한 문화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

최호진 나이 상관없이 스케이트보드를 사랑한다면 모두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

김준영 개인적으로 팀 스포츠를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인데, 스케이트보드는 혼자서도 즐길 수 있기에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모두가 똑같이 바퀴 달린 나무 판때기를 타는 것임에도, 저마다 다른 기술로 다른 스타일을 보여준다는 것.

지금 스케이트보드를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최호진 다치지 말고 재미있게 보드 타세요!

최유진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김준영 탈 생각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일찍 시작하는 편이 좋습니다. 나이 먹고 타면 몸 굳으니까요.

안대근 혼자 타야 하는 상황이라면 인터넷에 정보가 많으니 잘 찾아보세요. 휴대폰으로 타는 모습을 기록해 비교하는 것도 많이 도움 됩니다.

이민혁 파이팅!

서울의 스케이트 파크 

옆구리 한쪽에 보드를 낀 채, 지금 떠나는 서울의 대표적 스폿 3곳. 

난지 스케이트 파크 서울한강공원에 위치한 스폿으로 계단, 난간, 뱅크 등으로 구성된 스트리트 기반의 파크다. 바닥이 시멘트로 이뤄져 있으며 규모가 큰 ‘매뉴얼 패드’, 곡선 경사면 구조의 ‘런치 램프’ 등이 있다. 파크 인근에 편의점이 있어 보드를 탄 후 주린 배를 채우기 딱 좋다. 

동대문 훈련원 공원 일명 ‘컬트’. 국내 스케이트 파크의 성지로 통한다. 1997년 일반 공원으로 조성된 장소지만, 그 초창기부터 각종 대회나 해외 프로 스케이터들의 데모 행사가 개최된 역사 깊은 스폿이다. 과거 ‘쿼터’ 뒷면을 양쪽으로 이어 붙인 형태의 ‘스파인’, 여러 기물을 조합한 ‘피라미드’ 등 큰 기물이 있었으나 올해 리뉴얼을 거치며 업, 다운 기술을 연습할 수 있는 작은 크기의 ‘매뉴얼 패드’ 등 소형 기물만 남게 됐다. 

뚝섬한강공원 X게임장 스케이트보드, 인라인, BMX 등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스폿. 비기너를 위한 플랫 존부터 파크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경사면 구조의 ‘뱅크’와 ‘쿼터 파이프’ 등 중상급자를 위한 큰 기물까지 있다. 올해 6월 한-콜롬비아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콜롬비아의 벽화 창작 팀 ‘베르티고 그라피티’가 파크에 대형 벽화를 그려 더욱 다채롭게 변신했다. 

강준이 스케이터 

강준이를 처음 본 것은 2019SBS <영재 발군단>을 통해서다. 당시 강준이는 12세 천재 스케이터’로 방송에 소개됐는데, 촬영 기간에 열린 대회에서 아쉽게 3위 수상에 그쳤을 때 울먹이는 목소리로 스스로 자문하던 말을 기억한다. “연습이 부족했던 거야?” 그리고 지난해 11월, 강준이는 스케이트보드 스트리트 부문 국가대표로 당당히 선발됐다. 2008년생으로 올해 나이 15세, 대표팀 최연소 선수다. 지금 강준이의 목표는 하나, 세계 1등이 되는 것이다. 

<W Korea> 지금 부상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강준이 무릎슬개건염 때문에 고생 중이죠. 의사 선생님이 푹 쉬래요. 많이 답답하죠. 그런데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어요. 당분간 쉬자, 생각하려고요.

올림픽에서 스케이트보드는 ‘스트리트’와 ‘파크’ 종목으로 나뉘죠. 둘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우선 저는 ‘스트리트’ 종목이에요. 애초 ‘쌩스트리트’에서 보드를 타기 시작해서 이 종목으로 지원했어요. 스트리트는 계단, 난간, 경사면 레일 같은 경기장에 설치된 장애물을 이용해서 다양한 트릭을 구사하는 종목이에요. 반면 파크는 ‘볼’이라고 부르는 움푹 파인 굴곡이 있는 경기장에서 펼쳐지고요. 물을 굴곡진 비운 수영장을 생각하면 돼요. 이런 볼에서 점프, 그라인드, 스핀 등의 기술을 하면서 연기를 펼치는 종목이 바로 파크예요.

지금 한창 대표팀 훈련으로 바쁘죠?

매달 훈련 기간이 되면 보드 타고 체력 훈련하는 일의 연속이죠. 다 같이 모여 합숙도 하고요. 그런데 아직 선수촌에 스케이트 파크가 없어서 주로 외부로 나가서 훈련해요. 선수촌에도 실내 파크가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어요. 그러면 날씨 상관없이 매일 연습할 수 있을 테니까요.

스케이트보드를 시작한 계기는 뭐였어요?

여덟 살 무렵 어느 날 친구가 놀이터에 스케이트보드를 가져와서 한번 빌려 타봤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꾸준히 타다 보니까 대회에도 나가게 됐고요. 처음엔 초등부로 경기에 지원하다가 실력이 확 뛰면서 일반부에서 형들과 함께 경기를 뛰기도 했어요.

부상 위험이 큰 스포츠지만, 계속해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이유는 뭐예요?

새로운 기술에성공했을 때의 성취감 때문에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건 직접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예요. 그리고 저는 긍정의 힘을 믿거든요. 뭐든 좋게 생각하면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늘 ‘열심히 해야지’를 주문처럼 외워요.

가장 좋아하는 스케이터가 있나요?

유토 호리고메. 지난 도쿄올림픽에 출전해서 금메달을 딴 일본 선수예요. 그냥, 너무 잘 타요. 호리고메의 기술을 워낙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360 휠 플립 립 슬라이드라는 기술이 있거든요. 노즈로 360도 돈 다음에 레일에 걸고 밀고 나가는 기술이에요. 진짜 멋있어요. 언젠가 그 기술을 꼭 성공해내고 싶어요.

스케이트보드를 타면서 스스로 가장 변화한 지점은 무엇인가요?

굉장히 다혈질이 됐어요 (웃음). 기분이 좋다가도 기술이 잘 안 되면 갑자기 짜증 나니까요.

스케이터로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세계 1등. 프로 스케이터가 되는 것. 제 이름을 딴 데크가 나오는 것. 그리고 스케이트보드로 돈도 잘 벌고, 오랫동안 행복하게 타는 것.

조광훈 웹 매거진 <데일리 그라인드> 편집장 

미국의 <트래셔>, 영국의 <프리 스케이트> 등 해외엔 다양한 스케이트보드 전문 매체가 존재하지만, 국내에선 <데일리 그라인드>가 유일하게 스케이터들을 위한 미디어 및 커뮤니티 창구로 활약하고 있다. 이곳의 편집장 조광훈은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 스케이트보드 신에 몸담아온 인물이다. 한 매체의 편집장, 올 초 국내 스케이트 파크의 성지로 통하는 ‘컬트’ 철거 반대 운동의 선봉적 스피커, 각종 보드 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있는 그는 어쩌면 지금 한국의 스케이트보드 신을 가장 대표하는 인물이라 말할 수 있다. 

<W Korea> 2015년 웹 매거진 <데일리 그라인드>가 창간했다. 특별한 창간 계기가 있었나?

조광훈 원래는 초창기 2008년 블로그로 시작했다. 당시 국내에 ‘플래틴’을 비롯해 스케이터들이 자신의 글이나 영상을 올리고 중고 장비를 사고팔 수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2개 존재했다. 그런데 회원 수가 몇만 명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운영자가 돈을 받고 타 업체에 사이트를 팔아버렸다. 어느 순간 들어가니 맘 카페나 호찌민 여행 카페로 변해 있었다(웃음). 유일했던 두 커뮤니티가 사라진 것에 아쉬움을 느끼다 시작하게 된 게 <데일리 그라인드>다.

국내에선 <데일리 그라인드>가 유일한 스케이트보드 전문 매거진이다. 이는 한국 스케이트보드 시장이 아직은 걸음마 단계임을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한데.

아무래도 그렇지. 국내 스케이트보드 시장이 작다 보니 매거진을 통해 금전적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다. 여태 몇 차례 매거진 창간 시도가 있었는데, 결국엔 오래가지 못하고 끝나는 경우를 종종 봤다. 매거진만으로 수익을 보장받기 어려우니, 다들 주 수입원이 다른 데 있고 매거진을 사이드 잡으로 갖는 형태였는데 사실 그게 가장 큰 문제였던 것 같다. 또 스케이트 컬처를 깊게 이해하는 필자가 턱없이 적다는 문제도 있고.

올해 5월, 런웨이에 여성 스케이터를 깜짝 등장시킨 디올 2022 가을 여성 컬렉션 쇼의 연출에 참여했다 들었다. 어떻게 성사된 프로젝트였나?

애초 디올에서 이번 패션쇼의 콘셉트가 스케이트보드고, 여성 스케이터 10명을 내세워 런웨이를 스케이트 파크로 구성할 거라는 가이드라인이 있었다. 에이전시를 통해 연출 제안이 들어와서 실제 파크에서 스케이터들이 보드를 탈 수 있는지 검수하고, 여성 스케이터를 섭외하고 쇼를 연출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걸 경험하며 많은 걸 배운 느낌이다. 한편으로 아쉬운 건 퍼포먼스에서 코어한 트릭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스케이터 친구들이 100% 소화할 수 있는 기술 안에서 화려하게 날아다니는 과격한 기술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안전상의 문제로 원래 계획했던 퍼포먼스를 단순히 런웨이를 왔다 갔다 하는 방향으로 바꾸었다. 기술을 맘껏 펼칠 수 있었다면 쇼를 보는 입장에서 ‘와 진짜 멋있다’ 하는 걸 느낄 수 있었을 텐데.

한편 올 초엔 국내 스케이트 파크의 성지로 통하는 동대문 훈련원 공원, 일명 ‘컬트’ 철거 반대 운동으로 분주하지 않았나? 이와 관련해 지난 4월 <데일리 그라인드>에 ‘이제는 스케이터들이 직접 일어나야 할 때’라는 칼럼을 직접 쓰기도 했는데, 우선 컬트는 스케이터들 사이 어떤 의미를 가진 공간인가?

컬트는 1997년 조성된 공원인데, 초창기부터 스케이터들이 보드를 타기 시작한 역사 깊은 스폿이다. 2010년대 들어 리뉴얼되기 전까지 컬트는 굉장히 흥미로운 공간이었다. 주변엔 전부 공구 상가뿐이고, 누구의 방해도 없다 보니 당시 노숙자도 굉장히 많았다. 스케이터들은 그 아저씨들과 안면 트고 지내면서 가끔 아저씨들이 주는 간식을 얻어먹기도 했고. 또 재미있는 게, 한쪽에선 코스프레하며 노는 친구도 많았다.

그렇다면 올해 ‘컬트’ 철거 반대 운동이 점화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사실 컬트는 이전부터 부침이 많은 공간이었다. 스케이트보드가 거리의 불청객 취급을 받는 일이 다반사다 보니. 2011년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버스 전용 주차장으로 용도 변경되며 컬트가 한 차례 철거될 위기에 처했는데 당시 스케이터들이 ‘프리 컬트(Free Cult)’를 결성해 주차장 설립 반대 캠페인을 펼쳤다. 그런데 올해 4월 또 갑작스레 중구청으로부터 자진 철거 요청이 들어왔다. 당시 제주도로 출장을 간 상황이었는데 친구들에게 엄청 연락이 오더라고. ‘형 그 소식 들었어요?’ 하면서. 부랴부랴 TF를 만들고 SNS를 통해 문제를 공론화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가장 큰 소음이 발생하는 기물 두 개를 철거하는 방향으로 마무리되긴 했지만, 그사이 중구청과 지난한 논의 과정이 있었다. ‘프리 컬트’ 당시만 해도 윗 세대 형들이 운동을 주도했는데, 어느덧 내가 동호인의 장 아닌 장이 되어 목소리를 낸 사건이다.

해외 스케이트보드 신과는 다른, 한국의 스케이트보드 신만의 특징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한국만의 특징이라기보다 아쉬움인데, 해외에서는 스케이트보드가 라이프스타일로 받아들여지는 반면 한국은 모 아니면 도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해외 같은 경우 어릴 때 자전거를 타듯 스케이트보드를 접하고 수많은 사람이 스케이트 브랜드를 입는다. 스케이트보드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문화의 일부인 셈이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프라가 형성되고 그에 따라 선수 양성이 잘 될 수밖에 없다. 반면 한국에서는 스케이트 컬처를 접할 기회가 별로 없다 보니 스케이트보드를 시작하는 나이도 늦다. 그런데 늦은 나이에 시작하면 기본적으로 겁이 내재되어 있기 마련이고 속도나 기술을 하는 데 있어서 과감하게 할 수가 없다. 이건 지금 한국 대표팀 선수 여섯 명이 전부 어린 10대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재작년을 기점으로 전 세계 스케이트보드 시장이 급성장했다. 그 이유를 무엇이라 바라보나?

아무래도 코로나19 영향이 제일 크지. 팬데믹을 기점으로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즐길 수 있는 레저, 스포츠에 눈을 돌리지 않았나. 캠핑, 자전거, 골프의 유행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요즘엔 웬만큼 보드 타던 친구들이 전부 강습으로 제법 많은 돈을 벌고 있다. 또 작년 올림픽 공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많은 이들이 스케이트보드에 주목한 것은 두말할 것 없고. 그런데 팬데믹으로 록다운이 시작되자 스케이트보드 장비를 공급하는 공장이 많이 문을 닫았고, 그러면서 물량 확보가 굉장히 힘들어졌다. 그래서 코로나19 초창기 땐 전 세계 스케이트보드 숍의 상황이 그야말로 ‘헬’이었지.

이런 유행이 장기화할 거라 바라보나?

사실 그게 좀 걱정이다. 한국에서 스케이트보드 유행이 급물살을 탔다가 금방 사그라지는 경우를 워낙 많이 봐서. 2010년대 초 플라스틱 크루저보드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였을 때, 당시 크루저보드를 타던 사람들이 스케이트보드로 반짝 유입됐다.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도 지드래곤이 공항에 크루저보드를 들고 등장해 깜짝 유행이 시작됐고. 크루저보드가 알록달록하다 보니 ‘패션’이 된 거다. 이런 식으로 메가 유행이 있을 때마다 스케이트보드가 일시적으로 크게 주목받은 적은 있는데, 그게 오랫동안 지속되었다는 느낌은 안 든다. 그래서 지금의 유행도 반신반의하면서 잘되길 바라고 있을 뿐이다.

작년 스케이트보드가 올림픽 공식 종목으로 채택됐는데, 이를 둘러싼 시선이 엇갈리는 것 같다. 마침내 공식 스포츠로 인정받게 됐다는 시선이 있는가 하면, 스케이트보드의 뿌리가 대결이나 경쟁이 아닌 길거리에서 파생된 문화 그 자체인데 이를 어떻게 ‘점수’로 순위 매길 수 있느냐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개인적으론 스포츠적 관점도 스케이트보드 문화에 속한 하나의 측면이라고 생각한다. 전에는 스포츠로서의 스케이트보드와 문화로서의 스케이트보드를 구분하고 뭐가 구리니 마니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지금은 모든 것을 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스포츠로 보더라도 스케이트보드가 가진 호미(Homie) 문화나 친구끼리 놀면서 누가 뭘 했을 때 응원해주고 서로 맥주 한 잔 기울이는 식의 즐거움은 절대 빼놓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기려고 하는 스케이트보딩은 기술 향상을 위한 원동력이 될지는 모르지만, 진정한 호미들이나 즐거움과는 멀어지게도 하니까.

마지막으로 스케이트보드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틀에 얽매이지 않는 모습. 그게 스케이트보드의 전부이자 가장 큰 매력이다.

스케이터를 위한 목적지 

정교한 큐레이션으로 선별한 스케이트보드 하드웨어, 의류, 액세서리를 만날 수 있는 서울의 스케이트보드 숍 3곳. 

워스트 스케이트샵 2016년 국내 스케이트보드 신에서 잔뼈 굵은 스케이터 지승욱과 그의 친구들이 ‘컬트’에서 열었던 플리마켓에서 시작한 숍이자 브랜드다. 워스트에서 자체 제작한 의류, 액세서리, 하드웨어 등의 컬렉션을 선보여 스케이터뿐 아니라 패션 피플에게도 환영받는 곳이다. 지승욱 대표에 따르면 “우리가 보기에 멋있는 브랜드”가 큐레이팅의 기준. 팔라스, 퍼킹어썸처럼 세계적인 스케이트보드 브랜드는 물론 지금 스케이터들 사이에서 가장 뜨겁게 떠오르는 프로그, 그리고 야드세일, 지초이 같은 패션 브랜드도 다룬다. 매장에 커피와 베이커리를 즐길 수 있는 카페도 마련되어 있다. 

팔팔 스케이트 2018년 말 카시나 대표이자 국내 1세대 스케이터 이은혁이 오픈한 숍이다. 동양에서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숫자 ‘ 8’, 팔팔하고 힘차게 보드를 타자는 의미에서 ‘팔팔 스케이트’로 이름 지었다. GX1000, WKND, 스케이트멘탈, 포에츠의 공식 취급점이자 <릴리패드>, <스니즈> 등의 매거진도 만날 수 있다. 매장에 데크, 휠, 트럭 등의 하드웨어를 조립해주는 커스텀 작업대가 있으며 자체 스케이트 팀을 운영 중이다. 

팀버샵 올해로 오픈 10주년을 맞이한 서울을 대표하는 스케이트보드 숍. 전 세계 50개 이상의 스케이트보드 브랜드를 취급하는데, 인디펜던트 트럭, FTC, 그리즐리 그립테이프 등 스케이터들 사이 인지도 높은 브랜드 상품을 여럿 만날 수 있다. 또 데크, 휠, 트럭 등을 조립해 사용해야 하는커 스텀 보드뿐 아니라 비기너용으로 나온 완성형 컴플릿 보드도 다룬다. 최재승, 최유진 등으로 구성된 자체 스케이트 팀을 운영하고 있으며, 올해 최재승의 프로 데크 모델 ‘울프’를 출시하기도 했다. 

이한민 필르머 

언젠가 필르머 이한민이 촬영한 스케이트 비디오를 봤을 때 ‘온몸으로 찍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세기말과 함께 유물이 되어버린, 2000년 단종한 소니 VX1000 캠코더로 기록한 영상은 지독히도 스케이터를 좇으며 그 자취를 따라갔다. 빈티지 캠코더 특유의 거친 질감과 어안렌즈로 담아낸 둥그런 길거리, 로우한 편집 스타일, 그것보다 더 로우한 취향으로 선별된 배경음악까지. 지금 이한민은 한국에 몇 없는 스케이트 비디오 필르머이자, 어쩌면 가장 ‘변태’같이 ‘쿨’함에 집착하는 필르머이다. 

<W Korea> 사실 본명보다 별명이자 인스타그램 아이디인 ‘핫미네이터’(Hotminatior)로 더 유명하지 않나. 어떤 뜻을 가진 이름인가?

이한민 본명인 이한민과 터미네이터의 합성어인데, 스케이터 친구들이 붙여준 닉네임이다. 촬영할 때마다 애들이 하도 “저 형 체력이 강철이다”란 소리를 해서(웃음). 사실 스케이트 비디오에서 가장 중요한 게 체력이다. 촬영 시 스케이터와 필르머 사이 거리가 멀어지면 안 되는데, 그러려면 스케이터의 템포에 맞추면서도 끈질기게 ‘팔로잉’하며 찍어야 한다. 보통 싱글 트랙 하나를 찍으려면 수십, 수백 번의 트라이를 하게 되는데, 대개는 필르머가 먼저 지친다. 그런데 내가 찍을 땐 애들이 먼저 ‘기브업’하더라고(웃음). 데크 위 한 발을 올리고 다른 발로 땅을 밀면서 나가는 ‘푸시 오프’를 기본 동작으로, 내내 땅바닥에 카메라가 닿을 정도로 허리를 구부린 채 찍기 때문에 체력 단련이 필수다. 그래서 매일매일 기본적으로 턱걸이 300개, 스쿼트 2000개를 한다. 늙어서도 찍고 싶으니까.

처음 스케이트 비디오를 찍기 시작한 계기가 있었나?

원래는 보드를 타다가 6~7년 전부터 필르밍을 하게 됐다. 오래전부터 해외 유명 스케이트 비디오를 보면서 ‘멋있다’란 생각을 했거든. 그런데 어디서 영상을 배운 적도 없고, 스케이트 비디오 같은 경우는 어떤 카메라에 어떤 렌즈를 껴야 한다는 규격화된 조합도 있어서 처음엔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무작정 인터넷에서 카메라를 사서 외국 친구들이 한국에 오면 조작법을 물으면서 독학으로 배웠다. 또 내가 좋아하는 비디오를 보면 거기에 해답이 있더라고. 하루아침에 찍게 된 게 아니라, 천천히 내 스타일을 찾아갔다.

처음 스케이트 비디오를 찍기 시작했을 당시 국내에 몇 명의 필르머가 있었나?

있어봤자 2~3명이었는데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스케이트 비디오란 장르가 촬영하기에 쉽지 않으니까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또 보통 스케이터가 자신의 실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다양한 트릭을 보여주는 ‘개인 파트’ 영상의 경우는 수개월 동안 전국 방방곡곡의 스폿을 돌며 촬영하기 마련인데, 그러려면 그만큼 시간 투자를 해야 한다. 그런데 그 클립을 보통 브랜드에서 비싼 값에 사진 않거든. 쉽게 말해 돈이 안 되는 거다. 흔치 않은 장비에, 시간 투자에, 금전적 이유까지 섞여서 섣불리 이 신에 입문하려는 필르머가 많지 않다.

2020년 스케이터 최유진과 함께 ‘손카리나’라는 영상을 촬영했다. 당시 최유진의 반스 팀 합류를 기념하는 웰컴 파트였는데, 그 영상의 비하인드 신을 보면 길거리에서 촬영하다 경비원을 만나 쫓겨나기 일쑤더라.

그렇지. 스트리트에서 찍다 보면 쫓겨나는 일이 다반사다. 그래서 외국에선 어떤 경우가 있냐면, 보드를 다 타고 나면 거리에 페인트를 칠한다. ‘미안하다 우리 여기서 탔다’란 표시다. 그런 식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사실 스케이트 비디오 촬영에는 별의별 난관이 다 있다. 일단 스케이터들이 약속을 잘 안 지킨다(웃음). 또 어렵사리 스폿에 나가도 제한이 많다. 이를테면 이런 룰이 있는데, 한 스폿의 어느 계단에서 스케이터가 무슨 트릭을 성공해서 찍었다, 그럼 그 트릭은 더 이상 촬영하지 못한다. ‘히스토리’가 된 셈이니까. 쉽게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게 암묵적 룰이다. 해외 스케이터들이 한국의 어느 스폿에 와서도 뭔가를 하기 전에 ‘여기서 어떤 트릭 나왔어?’라고 꼬치꼬치 물을 정도니까.

당신 하면 VX 컬렉션도 빼놓을 수 없지 않나. 지금은 단종됐지만 1995년 소니에서 출시한 최초의 디지털 캠코더 ‘VX1000’을 수십 대 보유한 것으로 유명하다 들었다.

여태 모은 게 110대 정도일 거다. 아마 전 세계 통틀어 내가 VX1000을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닐까 싶다(웃음). 사실 VX1000에 센추리에서 나온 어안렌즈인 MK1 조합이 스케이트 비디오에 있어서 ‘환상의 셋업’이다. 웬만큼 유명하다 싶은 스케이트 비디오는 열이면 열 다 이 조합으로 찍었다. 한마디로 ‘No Doubt’이란 얘기지.

선호하는 편집 스타일이 있나? 또 스케이트 비디오에선 배경음악이 큰 몫을 하는데, 어떤 장르의 음악을 주로 사용하는 편인가?

나는 복잡한 편집을 좋아하지 않는다. ‘로우’하게 담백하게 가는 걸 선호하는 편이다. 음악도 남들이 좀처럼 들어보지 못했을 법한 것을 사용한다. 보통 1970~90년대 노래를 많이 디깅한다. 힙합이든 록이든 펑크, 소울, 재즈든. 그래서 언제 한번 이판근과 코리안째즈퀸텟 ‘78의 ‘아리랑’ 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적도 있다. 재즈 버전의 아리랑이라니, 어딘가 존 콜트레인 느낌도 나는 것 같아서.

필르머로서, 또 한 명의 스케이터로서 목표가 있나?

언젠가 스케이트 파크를 차리는 것. 한국에 DIY 스타일의 파크가 없다. 언젠가 그런 파크를 꼭 짓고 싶다.

The Director’s Commentary 

필르머 이한민이 직접 자신의 영상 4가지를 꼽고 코멘터리를 남겼다. 

우원재 ‘StretchMV(2017) “우원재의 MV를 제작하자며 어느 날 프로듀서 말립에게 연락이 왔다. ‘상업 영상’이란 틀에서 벗어난 프로젝트란 말에 큰 매력을 느꼈고 스케이트 비디오이자M V를 촬영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영상엔 내가 그동안 아껴둔 클립이 대거 등장한다. 그렇게2 0명에 가까운 서울 로컬 스케이터들이 주축이 되는 영상이 완성됐다. 아, 그리고 우원재도 한때 신촌에서 보드를 탔다고 한다.” 

Pali Pali(2020) 2020년 생애 처음으로 한국에 온 하와이언 스케이터 제이슨 팍을 우연히 만났는데, 그의 바이브가 너무 좋았고 그냥 찍고 싶었다. 정말 더운 7월이었고, 한 달 뒤 하와이로 돌아가야 하는 일정이었기에 시간이 없어 빨리 찍어야 했다. 그래서 파트 제목도 ‘Pali Pali’. 뜨거운 여름 햇빛 아래서 매일 만나 열사병과 싸우며 촬영했다. 솔직히 한 달 만에 이런 파트를 내다니, 내가 봐도 미쳤다.” 

손카리나(2020) “국내 떠오르는 샛별 스케이터 최유진은 ‘호미’이자 멋진 동생이다. 그의 스케이팅은 유니크하고 시원시원하다. 코로나19로 휑해진 2020년의 스트리트는 보드 타기에 더할 나위 없이 편했다. 6개월 넘게 무작정 대한민국 팔도를 누비면서 촬영에 매진했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늘 그랬듯 스트리트 스케이팅은 담기 어렵고 힘들다. 근처 건물 시큐리티들에게 쫒겨나기 일쑤다.” 

염따 ‘존시나’ MV (2021) “염따 형은 스케이트보드를 좋아한다. 그리고 날것 그대로의 느낌을 좋아하기에 선명한 HD4K, 8K 해상도가 아닌 거친 느낌의 VX 4:3 비율의 화면에 담아냈다. 가공되지 않은 이런 게, 순수 ‘찐’ 멋이다.” 

하시예 스케이터 

하이패션과 스케이트보드의 만남은 그간 여럿 있어왔지만, 올해 5 유독 더 반가운 그 만남이 서울에서 펼쳐졌다. 이화여대에서 열린 디올 2022 가을 여성 컬렉션 쇼는 런웨이를 스케이트 파크로 구성하고 여성 스케이터 10명의 퍼포먼스로 포문을 연 이례적인 쇼였는데, 이곳에서 최연소로 자신의 스케이트보딩 스타일을 선보인 스케이터가 있다. 2007년생, 올해 나이 16세의 하시예다. 지금 가장 주목해야 하는 걸 스케이터, 하시예의 목표는 훗날 올림픽에서 메달을 손에 넣는 것이다. 

<W Korea> 지난 5월 디올 쇼에 스케이터로 참가했어요. 어떤 경험이었나요?

하시예 여태 겪은 적 없는 경험이다 보니 굉장히 색달랐어요. 전부 스폿에 가면 만나는 여자 스케이터들과 함께 무대에 섰는데, 저와 곽민지 스케이터가 동갑으로 제일 어렸거든요. 사전에 개인 인터뷰 영상도 찍고 쇼 당일엔 긴장을 엄청나게 했는데 그래도 잘 끝낸 것 같아요. 원래 다양한 트릭을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안전상의 이유로 ‘알리’밖에 보여주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도 있어요.

한국에선 특히 걸 스케이터를 만나보기 힘든 것 같아요. 동료 걸 스케이터가 적다는 사실에 대한 아쉬움은 없어요?

그래도 예전보다는 많아진 거예요. 4~5년 전 제가 처음 스케이트보드를 시작했을 땐 지금보다 더 손에 꼽았거든요. 요즘 파크에 나가면 초등학생인 여자 친구들을 자주 보게 돼요. 보통 어릴 때 스케이트보드를 시작하면 속도도 남자 친구들처럼 빨리 낼 수 있죠. 그래서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것 같아요. 한국에도 실력 있는 걸 스케이터가 더 많이 나올 것 같거든요.

좋아하는 해외 스케이터가 있나요?

브라질의 걸 스케이터 하이샤 레아우. 지난 도쿄올림픽 여자 스트리트 종목에서 은메달을 딴 친구이기도 해요. 올해 열네 살로 저보다 어린데, 높은 레일도 가볍게 잘 타고 무엇보다 스케이트보딩 스타일이 파워풀해요. 그게 너무 멋있어서 요즘엔 그 친구 영상만 찾아 보는 것 같아요.

처음 스케이트보드를 시작한 계기는 뭐였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마트에 갔는데 우연히 보드를 발견했어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운동 기구 있는 쪽으로 제가 발길을 돌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처음엔 엄마가 보드를 못 타게 하셨거든요. 아무래도 부상 위험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보다 체계적으로 보드를 배울 수 있는 강습을 시작하게 됐는데, 타다 보니 너무 재미있고 언젠가 프로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들면서 올해 김해에서 경기도로 이사를 오게 됐어요. 국내엔 제대로 된 파크가 수도권에만 있거든요.

보통 하루가 어떻게 흐르나요?

학교 갈 땐 보통 4~5시간 타고 주말에는 7시간 정도 타요. 대회를 앞둘 땐 이것보다 더 길게 탈 때도 많죠. 힘들긴 한데 그래도 재미있어요.

스케이트보드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이에요?

다칠지언정 오래 연습했던 기술을 성공적으로 했을 때 성취감. 그것 때문에 보드를 계속 타는 것 같아요. 또 스릴도 있잖아요.

스케이터로서 목표가 있나요?

올림픽에 나가서 메달 따는 것. 지난해 도쿄올림픽을 열심히 봤는데 ‘나도 가서 타고 싶다’는 생각만 들더라고요. 경기장 레일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고 크다 보니까 겁이 나긴 하는데, 그래도 언젠가 꼭 그 무대에 서고 싶어요.

걸 스케이터를 찾아서 

남성이 주류인 스케이트보드 세계에서 편견을 깨뜨리며 그 세계를 헤쳐 나가는 걸 스케이터들이 있다. 이들의 도전과 우정을 담은 걸 스케이팅 영화 및 드라마 3편. 

1. <스케이터 걸>(2021) 인도 라자스탄 지역의 외딴 시골 마을 켐푸르, 그곳에서 전국 스케이트보드 챔피언십에 출전하려는 열망을 품은 10대 소녀 프레르나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인도의 여성 감독 만자리 마키자니가 연출했으며 배우 레이철 산치타 굽타의 첫 데뷔작으로, 걸 스케이터의 꿈을 품은 주인공 프레르나와 마을에 스케이트 컬처를 처음 전파한 인도계 영국인 제시카 두 명의 여성이 서사를 끌어간다. 프레르나를 얽매는 인도의 취약한 여성 인권, 법적으론 금지됐지만 여전히 인도 사회 전반에 남아 있는 카스트 제도의 폐단을 담은 영화로, 장애물 가득한 현실을 제 손으로 헤쳐 나가는 주인공의 성장 스토리를 만날 수 있다. 

2. <베티>(2020) 2020년 미국 HBO에서 방영한 6부작 드라마로, 뉴욕에서 스케이터를 꿈꾸는 Z세대 소녀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 <스케이트 키친>을 드라마로 각색한 작품으로, 여성 스케이터를 지칭하는 차별적 표현 ‘베티’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이야기는 주인공 자네이와 커트가 어느 날 인터넷에 ‘여자들끼리 스케이트보드를 타자’란 글을 올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10대 걸 스케이터의 우정과 일상을 재치 있게 담아내는 한편, 이들을 둘러싼 성차별, 가스라이팅 같은 민감한 이슈도 다루며 <뉴욕 타임스> 등에서 호평을 받았다. 지난해 시즌2를 방영하기도 했으며 국내에선 웨이브에서 시청할 수 있다. 

3. <스케이트 키친>(2018) 2015년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다큐멘터리 영화 <더 울프백>을 연출한 감독 크리스탈 모셀의 첫 장편 영화다. 미국 롱아일랜드에 기반을 둔 실제 여성 스케이트 팀 ‘스케이트 키친’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했으며, 영화에선 일곱 멤버가 가상의 자신을 연기한다. 스케이트 키친은 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어느 날 인터넷에서 본 차별적 댓글 ‘스케이트는 무슨, 주방에서 샌드위치나 만들어’를 보고 자극받아 결성했다. 출연진이 실제 스케이터인 만큼 작품에서 화려한 스케이트보딩 실력을 뽐내는데, 이를 담은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는 영상이 돋보인다. 

피처 에디터
전여울
포토그래퍼
최영모, 정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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