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이준기]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이준기]

2022-03-31T17:11:40+00:002022.03.22|FASHION, FEATURE, 피플, 화보|

이준기라는 이름에서 떠오르는 심상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여전히 충실하고, 또 놀라울 정도로과 거의 어느 시점과 다른 사람으로 살고 있었다. 

재킷과 팬츠는 디올맨, 안에 입은 프린트 셔츠는 아워 레거시 제품.

<W Korea> 문채원 배우와 연기한 tvN <악의 꽃>, 흥미롭게 봤다. 사이코패스에 연쇄 살인마로 의심되는 남자의 이야기에 멜로도 가미되어 있었다. 2020년 9월 그 드라마가 종영한 이후 최근까지 대체로 어떤 시간을 보냈나? 

이준기 무료하게 나만의 시간을 보냈다. 집 안에서 보내는 건 내게 무료한 일이다. 운동하고, 누워서 OTT로 뭘 보거나 인터넷 서핑하고, 청소하고. 그런 거 외에 딱히 하는 게 없다.

 

그 정도면 딱히 뭘 안 하는 건 아니지 않나?(웃음)

현장에 나가는 게 훨씬 더 행복하다. 집에 있으면 나라는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나 외의 다른 존재들을 인지하는 시간이지. 활동을 하면 오롯이 배우인 나에게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나에 대한 평가도 받고, 다양한 시선을 느끼면서.

 

그 평가와 시선을, 배우는 자신에게 들어오는 작품과 여러 제안을 통해 일차적으로 확인한다. 당신에게 들어오는 기회가 마음에 드는 편인가?

나에겐 확실히 장르물, 시대극, 판타지 작품이 많이 들어온다. 내가 우락부락한 몸이나 거친 외모를 가진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상하게도 거친 장르에서 나를 찾는다. 쉬는 동안 꽤 많은 시놉시스를 받았지만 멜로나 로맨스, 혹은 생활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에 목이 말랐다. 원하는 작품을 찾느라 시간이 흘렀고.

 

왜 감독과 작가들은 거친 색깔 하면 이준기를 연상하는 걸까? 몸 쓰는 연기를 소화할 수 있는 인재가 한정돼 있기 때문일까?

그렇게, 나에 대한 칭찬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떤 장르에 특화된 배우라는 평가를 쉽게 얻는 건 아니니까. 이번 드라마인 SBS <어게인 마이 라이프>를 하기로 마음먹으면서 관점을 바꿨다. 나를 찾아주는 작품을 왜 멀리하려고만 했을까? 사람이 한 가지 생각에 꽂히면 정작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걸 배제하게 되더라. 내가 언제까지 지금처럼 뛰고 구르고 할 수는 없을 거다. 이렇게 내 몸이 충분히 따라줄 때 잘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나를 선택한 이들에게 보답하는 길인 것 같다.

 

몇 년 전 예능 <아는 형님>에서 당신이 아무렇지 않게 다리를 180도로 들어 올리거나 찢을 때, 드물게 ‘인정’하던 강호동의 표정을 기억한다. 그가 말했지. “몸이 차돌이야, 차돌.”

하하. 내 몸이 그렇게 근육질은 아니다. 나는 날렵하고 섬세하고 유연한 몸 쓰기를 좋아한다. 몸집부터 크고 파워 있는 쪽이 있는가 하면, 내 경우는 이소룡 스타일에 가까운 것 같다. 액션의 합을 짤 때도 속도와 섬세함이 돋보이도록 짠다.

 

사실 배우의 액션이란 액션 ‘연기’다. 몸 쓰는 것과 연기하는 것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데.

그렇다, 연기의 연장선이니까. 그 연기가 돋보일 수 있어야 하고, 캐릭터와 캐릭터가 처한 상황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하고. 단순히 동작만 잘하는 액션을 좋은 액션 연기라고 말하진 않는다.

 

이소룡과 마동석 스타일이 다르듯이, 액션 연기에도 다른 결과 디테일이 있을 것 같다.

판타지나 히어로물에서 천하무적처럼 화려하게 싸워야 할 때도 있고, 인물이 처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맞고 피하고 구르면서 날것 같은 액션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예전에 <투윅스>라는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절벽에서 떨어져 익사 직전까지 가고, 또 흙에 파묻혀서 숨 쉬기도 어려운 상황들이 있었다. 매일 구르고 깨지면서 찍었다. 정말 죽을 뻔한 순간도 겪었고. 그런 액션 연기는 인물의 처절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처절하게 보이고 싶으면 내가 진짜 처절해야 한다. 골절상을 입든 죽기 직전까지 가든, 그 정도여야 처절함이 나온다.

 

지금 뭔가 어마어마한 얘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데…(웃음). 그럼 좀 덜 처절한 액션 연기는 어떤 식인가?

TV 사극에서의 액션은 판타지인 경우가 많아서 아름답고 유려해야 하는 편이다.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나 <밤을 걷는 선비>에서는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시각적으로도 만족을 줄 수 있는 액션이 필요했다. 한복 자락의 움직임을 이용하거나 인물의 잔상이 남는 듯 연출하기도 하고. 현대물의 직선적인 액션과 비교하면 좀 유치해 보일 수도 있지만, 사극의 판타지에 빠진 채로 보면 그 자체가 하나의 꿈같은 장면들이다. <조선 총잡이>는 말 타고 달리면서 거칠고 투박하게 간 사극이지. 이런 얘기로 나는 밤을 새울 수도 있다(웃음).

데님 재킷은 디올맨, 안에 입은 셔츠와 팬츠는 버버리, 슈즈는 손신발 제품.

4월부터 방영되는 <어게인 마이 라이프>는 검사인 당신이 살해당했다가 고등학생 시절로 다시 태어나 복수를 향해 간다는 내용이다. 이번에도 처절한가?

모든 것을 다 잃은 자가 복수의 화신처럼 변한다거나 상처받은 짐승 같은 느낌은 아니다. 검사로서 내가 목표로 하는 정의에 집중하는 게 먼저고, 복수는 두 번째다. 처연함이나 ‘짠내’ 쪽은 아니고 시원시원할 거다.

 

웹툰과 웹소설 원작의 회귀물인데, 주인공이 15년 전 시점으로 돌아가 환생한다는 게 특이하다.

우리는 ‘인생 2회차’라고 표현한다. 인생의 어느 시점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거지. 전생의 기억을, 그 데이터를 다 가진 채로 환생하기 때문에 주인공이 해야 할 것과 준비할 것이 명확히 있는 셈이다.

 

이준기의 인생이 15년 전부터 다시 시작된다고 상상하면 어떤가?

감독님과 스태프들과도 그 이야길 좀 해봤다. 나라면 괴로울 것 같다. 지금까지 어떻게 일궈온 삶인데!(웃음) 나는 그 일련의 과정을 다시 견딜 자신이 없다. 수많은 오디션들에 다시 붙을 자신도 없고. 힘든 그 시간을 거치고 잘 쌓아온 결과 지금의 내가 있다. 현재가 좋다.

 

한 작품을 마친 후 본래의 자신으로 회복하는 데 좋은 방법은 뭔가?

많이 쉴수록 좋다고, 최근까지는 생각했다. 나는 작품을 쉬는 동안 팬미팅이나 콘서트를 하면서 전 작품의 흔적을 차츰 지운다고 느꼈다. 그런데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현실을 좀 직시하게 됐달까?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을 일시적으로 못하는 게 아니라, 코로나19 이후에는 세상이 바뀌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내가 그런 세상에 맞게 시스템화되면 좋겠다. 그 답이 뭔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뭔가를 심사숙고하면서 엄중하게 접근하는 스타일만은 이제 바꾸고 싶다(웃음). 쓸데없는 고민까지 안고 깊게 빠져드는 기분이라서. 차라리 어서 다음 현장의 고민거리를 새로 가져오는 게 낫겠더라.

카디건은 살바토레 페라가모, 실크 셔츠는 발렌티노, 안에 입은 민소매 톱은 엑스페리먼트, 팬츠는 우영미, 슈즈는 프라다, 목걸이는 베루툼 제품.

페스티벌 같은 이준기의 팬미팅에 대해 들은 바 있다. 아이유, 강하늘, 남주혁, 백현 등등이 출연한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이후 예전보다 눈에 띄게 해외 팬이 늘었나?

놀랄 정도로. 사실 국내 성적은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많이 아쉬웠는데, 방영하고 1년 후부터인가 해외에서 피드백이 오기 시작했다. 아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반응이 있었다. 동남아, 중동, 남미….

 

한 작품이 끝나면 배우와 제작진의 손을 떠난 일이 되는데, 갈수록 언제 어디에서 무슨 소식이 들릴지 모르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래서 현장에 있을 때마다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당장에 모든 가능한 걸 다 쏟아붓고 싶다. 사람의 감정을 온전히 담아 표현하는 일을 하고 살면서 그 현장을 그저 비즈니스라고 생각하기도 싫다. 같이 작업하는 인연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열심히 살면 지나서도 후회가 없다.

 

열심히 사는 당신이 ‘이거 하나는 제일 잘한다’ 할 만한 건 뭔가?

글쎄, 뭐든 하면 다 잘하려는 것 같은데. 사람들을 관찰하는 게 몸에 배긴 했다. 폐가 되는 게 싫고 다른 이들에게 사소한 불편을 주는 것도 싫어서 주변 상황을 계속 살핀다. 상대방이 느끼지 못하는 순간에도 눈치 보고 관찰하는 편이다.

 

연예인은 인성 문제 때문이 아니라 직업적 특성 때문에라도 남보다 자신이 중심이 되기 쉬운데. 아무래도 주변의 케어를 받고, 주목도 받는 존재니까.

나를 바꾸고 싶어서 변화를 주다 보니 이렇게 됐다. 처음 인기를 얻었을 때, 내가 변하지 않으면 오래 살아남기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 어쩌다 과거 자료를 보면 내 모습이 낯설다. 스물넷의 이준기와 30대 이후의 이준기는 완전히 다른 인격이다.

 

사람은 잘 안 변한다고들 한다. 정말 변했다면 그만큼 큰 계기나 노력이 따랐다는 뜻인가?

사람, 변할 수 있다. 변한다. 내 자아를 깰 수 있을 만큼의 사건이 있고, 깨부술 의지가 있다면. 나는 ‘사람이 정말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나 자신을 통해 알았다. 왜 누구나 어떤 상황에 처하면 길들여지거나 세뇌당하는 일이 있지 않나? 내 경우 스스로 세뇌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변화한 거니까 얼마나 다행인지(웃음).

 

변해야 한다는 그 큰 깨달음은 자신의 인성과 태도에 관한 것이었나?

그런 주제도 없이, 차츰 찾아갔다. 왜냐면 바뀌기 전에는 나도 정확히 뭐가 잘못된 건지, 어떤 부분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작은 것부터 기존과 다르게 해보자는 식이었다. ‘내가 어떻게 살고 있지? 누군가를 잘 안 만나고 살았나?’ 그럼 만나는 것부터 시작하고. ‘남의 이야기를 제대로 안 듣나?’ 싶으면 듣는 일부터 시작하고, ‘리액션을 안 하고 그저 듣기만 하는 건 의미가 없구나’ 느끼면 리액션을 좀 더 하게 되고. 단계적으로 작은 변화를 추가해갔다. 어느 순간 그런 변화와 노력이 더는 불편하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가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당신의 20대에는 쇼비즈니스의 다사다난함과 우여곡절이 있었던 것 같다. ‘연예인’의 생활 반경을 벗어나기 위한 작은 노력이나 즐거움이 있다면 뭔가?

걷는 걸 좋아해서 많이 걷는다.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여러 풍경을 보면서 한강까지 몇 시간이고 걷다 보면 아주 재밌다. 걸으면서 세상을 좀 더 보게 된다는 느낌이다.

꽃무늬 데님 재킷은 김서룡, 안에 입은 하얀색 민소매 톱은 엑스페리먼트, 데님 팬츠는 디올맨, 슈즈는 마그리아노 제품.

외로움은 잘 견디는 편인가?

아니, 외로움이 속에서 끓어오른다(웃음). 나이가 드니까 외로움이라는 게 어마어마하게 온다. 같이 부대끼며 작업을 하든, 연애를 하든, 사람의 온기를 느끼고 싶을 때가 많다. 일하면서 가장 어려운 건 아직도 연기 그 자체다. 배우는 인간사를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주로 상상하는 힘으로 연기한다.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다른 세상도 알아가는 생활이 나에겐 없는 편이라…. 가까운 소수만 있을 뿐 인간관계의 폭이 좁다.

 

이준기에게 ‘걷기’란 리프레시이면서 세상 구경하는 일이고, 또 끓어오르는 외로움을 푸는 방책인 셈인가?

마라토너나 신는 비싼 운동화가 왜 필요한지, 그 세계에 눈떠버렸다(웃음). 얼리어답터라도 된 양 전자기기를 사들이거나 집 안 분위기를 확 바꿔보기도 한다. ‘언박싱’과 ‘리모델링’에서 즐거움을 찾고 있지. 별 필요성도 못 느꼈던 프로젝터를 사서 괜히 벽에다 영상을 쏘고(웃음). 그럼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걸 벽에 쏘면서 왜 혼자 보고 있어….’ 리모델링을 알아보다가 예쁜 집 사진을 보면 ‘이렇게 예쁜 집에서 가정을 꾸리면 좋겠다….’ 그러다가 나가서 또 걷고. 나는 그렇게 살고 있다.

 

결혼을 하면 인간사를 좀 더 알고, 개인적으로나 일적으로도 크게 달라질 거라고 기대하나?

행복, 고통, 슬픔, 갖가지 감정과 경험을 얻게 될 테니까. 나,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자랐다. 한 인간으로서 나도 그런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게 인생의 큰 목표다. 그건 한 배우로서 앞으로도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정도만큼 살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그래프가 나이 들며 내려간다고 하면, 내려갈 때도 아름답게 잘 가고 싶다. 천천히, 멋지게, 잘 착륙하기까지는 긴 여정이 되겠지. 그 여정에 나 혼자라면 불안하게 착륙할 것 같다.

 

어떤 동반자를 만나고 싶나?

글쎄. 상대를 만나면 끌림이나 느낌이 있지 않을까? 이렇게 철없는 사람처럼 말하긴 싫지만, 철이 없는 게 사실인 것도 같고(웃음). 40대가 되기 전엔 이 나이가 조금은 두려웠는데 막상 되고 보니까 나는 전과 똑같다. 체력마저 별 변함이 없다. 20대 친구들도 내 체력과 에너지를 신기해한다구! 왜지? 아마 에너지를 오롯이 나 자신만을 위해 써서 그런 게 아닐까? 에너지가 분산될 인간관계나 가정 등등이 없는 거지(웃음).

 

이준기에게는 결혼에 대한 갈증이 있고, 한편 배우로서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는 뿌듯함도 느껴진다.

착실하게 살았다. 배우란 쓰임새가 정확히 있는 직업이다. 대박을 연달아 안겨주는 배우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상을 충족시켰기 때문에 지금까지 날 찾아주는 곳이 있겠지. 또 이런저런 쓸데없는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도록 나를 지지해준 사람들도 있고. 나뿐 아니라 누군가 그렇게 살아올 수 있었다면,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준 다른 사람들 역시 박수받아야 한다. 그만큼 책임감이 있었다는 뜻이니까.

 

인생의 어느 시점에 연착륙하면서 스스로에게 박수 칠 날이 오겠지?

인생 별거 없는 것 같다. 현재에 충실하고 만족하면서 또 다른 운명을 기다리는 것이 인생 아닐까? 그 또 다른 운명이 인연이든, 일이든, 그 무엇이든.

재킷, 팬츠, 슈즈는 모두 알렉산더 맥퀸, 피케 셔츠는 에르메네질도 제냐, 목걸이는 토마르×아몬즈, 반지는 쿼르코어×아몬즈 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