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시아가 쿠튀르의 새로운 시작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The shape of things to come

2022-01-30T09:50:52+00:002022.01.30|FASHION, 뉴스|

발렌시아가 쿠튀르의 새로운 시작. 뎀나 바잘리아, 패션의 최고 무대에 입성한 그가 자신만의 코드로 새 역사를 쓰고 있다. 

모든 의상과 아이웨어, 주얼리, 글러브, 슈즈는 Balenciaga Couture. 모든 모자는 Philip Treacy for Balenciaga Couture.

지난 7월, 발렌시아가의 쿠튀르 쇼가 50여 년 만에 다시 열려 그 모습을 드러냈다. 쿠튀르 쇼 데뷔를 성공리에 마치고 두 달 정도 지났을까. 취리히의 자택에서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 바잘리아를 만났다. 지난 10년간, 전 세계 패션 트렌드를 견인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조지아 출신의 이 영민한 디자이너의 쿠튀르 데뷔 여정을 좇은 인터뷰.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간결하면서도 불가사의한 매력이 넘치는 수수께끼 같았다.

뎀나가 이끈 발렌시아가 쿠튀르의 부활이 완벽한 승리였음은 명확했다. 평론가들은 쇼가 끝나자마자 잇따라 이 유서 깊은 브랜드의 설립자와 현 디렉터의 철학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성공적 결과물이라는 찬사를 쏟아냈다. 그렇지만 우리는 똑같은 찬사를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걸출한 브랜드를 지휘한 두 디자이너의 시공을 초월한 만남, 그 시작점부터 되짚어보고 싶었다. 여기서, 뎀나는 1968년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은퇴하기 전 마지막으로 선보인 웨딩드레스의 오마주인 N0.63 룩을 언급했다. 원형 드레스 자락과 대칭을 이루는 원형 베일이 인상적이었던 룩 말이다. No.63 드레스는 바잘리아에겐 어떤 계시와 같았다고 한다. 그는 새로운 버전의 웨딩드레스를 재탄생시키기 위해 4개월 동안 솔기를 더 줄이고 더 많은 바이어스를 넣는 등 수도 없이 패턴을 변형해보았다고 했다. 무수한 시도 끝에 그가 깨달은 사실은 50여 년 전 발렌시아가보다 결코 더 나은 패턴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겸허한 자각이 온 바로 그 순간 어떤 울림이 왔다고 한다. 뎀나 버전에서 줄 수 있는 유일한 변형은 소재뿐이라는 것. 그리하여 그는 오리지널 버전의 가자르보다 부드러운 양털로 변화를 주기로 했다.

“재단에 있어서는 완벽에 가까웠어요. 제가 할 수 없는 수준이었죠. 그러니 소재에 변화를 줘 스웨트셔츠 퀄리티로 만들었다 해도, 그건 제 드레스라고 할 수 없어요. 볼륨, 셰이프, 패턴 자체는 1968년 발렌시아가가 했던 것과 동일합니다. 그가 디자인한 드레스를 더 이상 뛰어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자각. 이번 여정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었어요.”

많은 디자이너들이 그렇듯, 뎀나 역시 옛이야기나 하며 시간 보내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2015년은 그의 패션 커리어에서 잊지 못할 해이기에 짚고 넘어가야겠다. 그해 뎀나는 발렌시아가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발탁되었고, 그의 패션 세계를 이루는 상당 부분을 그 시기에 발전시켰다. 예를 들면 그의 쇼의 디스토피아적 세트, 오버사이즈 핏의 테일러링, 금형 장식, 미래적인 소재 그리고 지난해 가을 <사후세계; 내일의 시대(Afterworld; The Age of Tomorrow)>라는 가상현실 게임을 통해 소개한 유비쿼터스한 중세 분위기의 메탈 부츠 등이 그러하다. “저는 가끔 우리 고객 중 발렌시아가를 2015년 스니커즈로 처음 시작한 브랜드로 아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해요. 발렌시아가의 놀라운 헤리티지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게 무척 안타까워요.”

뎀나는 2014년 자신의 브랜드 베트멍을 설립하고 확고한 안티 패션적 접근 방식으로 상업적 강자로 떠올랐다. 그는 고루함, 범용성이라는 단어로 평가해온 스트리트 웨어가 밀레니얼 친화적이며 아이러니의 상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그 위상을 단숨에 승격시킨다. 그에 의해 발렌시아가라는 하이엔드 브랜드에 이케아 쇼핑백, 크록스와 같은 평범함의 아이콘들이 적극 결합된다. 강렬한 네온핑크 발렌시아가 로고 양말과 챙에 로고를 수놓은 야구모자는 이제 스케이터부터 은행가까지 애용하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패션 아이템이 되었다.

파격과 도전, 모험으로 상징되는 혁신가 뎀나는 패션계에서 이미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때문에 그가 40세에 쿠튀리에가 되어 패션계에서 궁극적 성공의 기회를 반드시 손에 쥐려 하는 자인지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그가 진중한 사람인지 괴팍한 사람인지도 구분하기 쉽지 않다. 지난해 4월 발렌시아가와 구찌는 디자인 매시업을 위한 전례 없는 협업을 진행했다. 또, 지난 10월 바잘리아는 파리의 한 영화관을 빌려 <심슨 가족(The Simpsons)의 발렌시아가 에피소드>를 10분 분량으로 구성해 2022년 발렌시아가 레디투웨어 컬렉션을 공개했다. 화면에서는 바트, 리사, 마지, 호머 그리고 스키너 교장의 어머니가 런웨이를 걸었고, 레드카펫 위에서는 나오미 캠벨, 엘리엇 페이지, 카디 비, 이사벨 위페르와 뎀나의 아틀리에 군단이 그의 새 옷을 입고 포즈를 취했다. 뭐라 지적할 수 없을 만큼 충분히 부드러운 메시지를 담아낸 신랄하면서도 유쾌한 그다운 쇼였다.

2년 전, 뎀나가 발렌시아가아의 소유주 케어링 그룹에 컬렉션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했을 때, 의심할 여지 없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라며 전폭적으로 지원을 보냈다. 그도 그럴 것이, 뎀나의 합류 이후, 발렌시아가의 매출은 2019년 처음으로 10억 달러를 달성했다. 그리고 그의 창의적인 시도는 적중하기 시작한다. 큐레이터이자 패션 역사가인 파멜라 골빈은 “쿠튀르야말로 패션에 반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가장 장기적인 시선을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확립하기 때문이다. “수시로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클라이언트의 치수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진 특이한 세계의 옷이다”라고 말했다.

아카이브를 샅샅이 뒤지던 뎀나는 1960년대의 쿠튀르 프레젠테이션 필름을 발견했다. 이것은 쿠튀르 쇼에 대한 전반적인 인사이트뿐 아니라 바잘리아 스스로 목표를 찾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아틀리에를 새로 짓고 새 팀을 꾸려, 쿠튀르 의상을 면밀히 연구했다. 바잘리아는 평소 기성복에서 해온 4가지 피팅이라는 규칙과 달리 쿠튀르는 비교적 자유가 더 많이 주어진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는 독립의 사인으로 쿠튀르 컬렉션을 1년에 두 번이 아닌 한 번만 선보이기로 결정한다. “요즘 디자이너들에게 쿠튀르가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그것이 디자이너들이 원하는 바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속도가 느려지죠. 쿠튀르의 속도는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 그 가치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이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거든요.”

“초기엔 기존 프로토타입 일부를 ‘성형수술을 하듯’ 핀발이와 재단질로 대학살했죠”라고 그가 이야기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팬데믹으로 첫 번째 컬렉션이 1년여 연기되며 다행히 작업에 완벽을 기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이 컬렉션은 발렌시아가 하우스의 헤리티지와 뎀나만의 패브릭 개발 능력 및 컨템퍼러리한 스타일이 어우러진 정교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진화했다. 눈에 띄는 제품으로는 쿠튀르 버전의 후디와 포켓 진, 드라마틱한 오페라 코트와 세련된 턱시도 재킷 등이다. 뎀나는 또한 수년간 창고로만 사용되던 발렌시아가의 10 Avenue George V 살롱을 복원하기로 결심하고 원래 공간의 컬러와 커튼 디자인을 재현했다. 고객들은 마치 수십 년 동안 봉인되었던 타임캡슐에 들어가보는 것처럼 커튼에는 먼지가 자욱했고 천장에는 누수의 흔적이 있었다. 골빈이 말했다. “그 공간이 들어선 순간 깊이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옆에 있는 과거와 함께한 채 저를 표현할 때 편안함을 느껴요. 과거는 지우는 것이 아닙니다. 더 끌어내줘야 해요.”

이 말이야말로 갈수록 축소되고 점점 더 구시대 유물처럼 보이는 쿠튀르 산업의 부활과 갱신을 위해 뎀나가 한 일에 대한 더없이 적절한 비유다. 극소수 특권층만이 쿠튀르의 정교한 핸드메이드 디자인을 즐길 수 있었으니까. 현존하는 메인 하우스 중, 피에르파올로 피촐리가 이끄는 발렌티노는 쿠튀르에 내재한 패션의 본질에 천착하며, 버지니 비아르가 이끄는 샤넬은 시대를 넘어 전해 내려오는 하우스의 유산과 마드무아젤 샤넬의 정신을 이어간다. 하지만, 뎀나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근원적인 힘에 다가가려 한다. 그의 세계를 따르는 고객 대부분은 쿠튀르를 처음 구입하는 고객이라고 그는 말한다. “1950년대에는 발렌시아가 살롱에 출입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단지 행색이 맘에 안 든다든지, 어느 가문을 대표해 왔는지에 따라 입장 여부를 결정했을 정도로 폐쇄적이었다고 해요. 제 생각에는 저희가 하는 일에 성별이나 특권 의식이라는 개념이 필수는 아니라고 봐요. 2021 발렌시아가 쿠튀르를 재개한 이유도 두 손에 꼽을 수 있는 수의 고객을 즐겁게 해드리려 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무엇보다 제가 관심을 두는 새로운 관객들과 새로운 대화를 나누는 것이 목표였죠.”

쇼 자체는 13분 조금 넘게 지속되었으며, 고요한 가운데 워킹하는 모델들의 가운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바잘리아는 무대 백스테이지에서 기자들에게 그 숨죽이는 듯한 분위기가 발렌시아가 헤리티지에 대한 찬사이자 경의인 동시에 패션업계의 모든 소음에서 벗어나 “잠시 입을 다물고 고요를 즐기는 순간”이라고 했다. “저는 제가 하는 일에 굉장히 비판적입니다. 쿠튀르 작업을 하는 도중, 레디투웨어를 하며 제가 싫어한 것들이 뭔지 깨닫게 되었죠. 가장 중요한 것은 옷을 만든다는 본질입니다. 하지만, 그저 기한을 맞추고 재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따듯한 온실 속에서 컬렉션 플랜만 짜고 있다면 본질에 대한 흥미를 잃을 수 있어요. 그런 것을 하려고 제가 여기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런 태도로는 패션 산업이 발전하거나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쿠튀르를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 혹은 메트갈라 같은 럭셔리한 행사의 레드카펫 사진을 통해 접한다. 뎀나 역시 지난 9월 메트갈라 행사 때 리한나에게 과거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쿠튀르 작품을 연상시키는 블랙 새틴 파유 오페라 코트를 커스텀 제작해 입힌 후, 애프터 파티에 처음 참석했다. 킴 카다시안이 메트갈라에 발렌시아가를 입고 싶다고 연락이 왔을 때, 그는 패션의 개념적 표현을 떠올렸다. 치맛자락이 양쪽으로 끌리는 몸에 꼭 맞는 긴소매 보디슈트 드레스에 머리카락을 제외한 모든 것을 덮는 검정 패브릭 마스크로 그녀를 감싸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킴과 카니예 웨스트가 지난여름 리스닝 파티에서 착용한 가면과 유사한 디자인이다. 그는 메트갈라에 등장한 킴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그녀의 얼굴은 완벽히 가렸지만, 모두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채죠. 오늘날 셀럽의 영향력은 이렇게 대단합니다. 그들의 몸이 브랜드이며, 어떤 장식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머리에 샹들리에라도 얹었으면 오히려 재미없었을 거예요.”

뎀나 역시 비슷한 마스크를 쓰고 얼굴을 완벽히 가린 채 행사에 참석했지만, 킴 카다시안과는 완전히 다른 이유에서다. 얼굴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였다. “저는 그곳에 그림자처럼 참석한 겁니다.” 그는 메종 마르지엘라와 루이 비통에서 일하며 만났던 친구들과 함께 베트멍이라는 브랜드를 시작했다. 마르탱 마르지엘라와 그가 겹치진 않지만, 뎀나는 드러내지 않는 유명 디자이너들의 명맥을 이어왔다. 그의 안티 패션 스탠스 역시 그의 아웃사이더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빛나게 했다.

하지만 사실 그는 따뜻하고 매력적이며 다가가기 어렵지 않은 사람이다. 스위스에 살며 파리로 출퇴근하고, 남편인 작곡가 로익 고메즈와 두 애완견 치키타&쿠키와 함께 조용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좀 진부해 보일 수 있는데, 강아지들과 어디든 잘 다니는 편입니다. 근데 얘들이 너무 거만해요. 제 삶에 있어서 가장 위계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이가 바로 우리 집 강아지들이죠. 녀석들은 말 그대로 저를 제대로 부려먹어요.” 뎀나에게 지난 5년이 디자이너로서 자신감을 키우는 시기였다면, 최근에는 감사의 힘을 깨닫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금은 영적 수양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자신을 더 많이 돌아보고, 수시로 명상하며, 기분이 좋아지는 모든 것들을 하려 해요. 감사의 기운을 느껴보는 것. 타인들뿐만 아니라 저 자신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을 해요.” 이것이 뎀나가 지난 여름휴가 중 카니예 웨스트가 그의 리스닝 파티 세트 디자인을 요청했을 때 여름휴가를 포기하고 달려간 이유이기도 하다.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2가지 있어요. 네 살 때부터 옷 만들기가 1번이었고, 2번이 세트 디자인이죠. 집에 세트를 만들어놓고 부모님께 저의 상상의 세계를 걷게 하곤 했죠. 그래서 카니예가 전화했을 때, 그 유혹을 거부할 수가 없더라고요. 미학적 관점에서 그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고, 그와 나 사이에는 창작하는 사람들 간의 우정 같은 것이 있고요.”

뎀나는 가면을 통해 배운 점이 하나 있다고 말한다. 가면을 쓴 사람 역시 밖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메트갈라의 계단을 걷는 내내 어렴풋한 실루엣만 알아볼 뿐, 누가 누구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고. 이제 뎀나는 더는 가면 속에 머물러 있고 싶지 않다. 쿠튀르 쇼가 끝난 후, 그는 마크 제이콥스와 라프 시몬스 같은 선배 디자이너들과 심지어 이전에 그를 해고한 몇몇 사람들로부터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던 일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제 일과 비전에 대해 높이 평가해주는 것이 저에게 얼마나 필요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마침내 제가 제 패션 옷장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느낌이 들어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쿠튀르를 만들기 전까지는 저는 그저 그림자였다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