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망가져야 되는 것? 25 SS 발렌시아가 컬렉션

명수진

BALENCIAGA 2025 SS 컬렉션

발렌시아가 25 SS 컬렉션을 위해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긴 테이블이 설치됐다. 온통 검은 베뉴에 광택 나는 나무 테이블이 설치됐고 여기에 니콜 키드먼, 케이티 페리, 린제이 로한, 애슐리 그레이엄 등의 셀럽과 케어링 그룹의 임원진들이 나란히 앉았다. 이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 바질리아가 어린 시절, 패션 관심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곳, 바로 식탁을 재현한 것이다. 뎀나는 쇼노트를 통해 ‘패션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내가 골판지에 옷을 그린 다음 잘라내고 패션쇼를 만든 것에서 시작되었다’며 ‘35년 후, 이 쇼는 나를 비전의 시작과 다시 연결해 준다’고 밝혔다.

뎀나 바잘리아는 내면의 어린아이를 다시 만나려고 했다지만 컬렉션은 관능적인 룩으로 시작했다. 사운드트랙 ‘와이 돈 유 두 라이트(Why Don’t You Do Right)’가 흘러나오고 오프닝은 란제리 스타일로 열었다. 하지만 란제리는 스킨 컬러의 보디 스타킹 위에 브래지어와 가터벨트를 레이어링 하거나 자수를 놓아서 트롱프뢰유 기법으로 재해석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일종의 란제리 스타일의 보디슈트였던 것! 이를 두고 뎀나는 ‘나의 미학은 매우 직접적인 성적 매력에 기반을 두지 않는다’고 부연 설명했다. 곧이어 40년대 할머니가 입었을 것 같은 빈티지한 실크 원피스와 블라우스, 더블 데님은 백리스 스타일로 뒷면을 대담하게 컷오프하고 여기에 코르셋을 연상케하는 블랙 레이스업 리본으로 반전을 줬다. 모델들은 모두 로데오(Rodeo) 백의 업데이트된 버전을 들고 있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김미 모어(Gimme More)’ 테크노 리믹스 버전 사운드트랙이 흘러나왔고, 본격적으로 정찬의 메인 디쉬가 등장했다. 캐주얼한 크롭 푸퍼와 보머는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아이코닉한 디자인인 코쿤 실루엣으로 선보였다. 재킷에는 ‘HUMAN BEING’과 ‘FASHION DESIGNE’이라는 문구를 프린트해서 패션은 완벽한 것이 아니라는 뎀나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는 빈티지 스타일의 범스터 데님 팬츠와 매치했다. 모델들은 발렌시아가 케이스를 더한 아이폰을 손목에 매달고, 충전기는 가방에 덜렁덜렁 꽂아두었다. 구제 옷을 활용한 듯한 그런지한 스타일은 이번 시즌에도 등장했다. 딱딱하게 풀을 먹여 형태를 고정한 뒤 목에 옷깃처럼 두른 데님 팬츠나 코르셋을 목 부분에 높이 세워 만든 일명 메디치(Medici) 칼라 재킷, 레더 재킷을 엮어서 만든 원피스 등 독특함과 기괴함을 오가는 아이디어를 볼 수 있었다. 동시에 컬렉션은 익명성이라는 개념을 탐구했는데, 모자와 고글이 모델의 얼굴 대부분을 가리도록 했다. 발렌시아가 by 뎀나의 시그니처인 팬타슈즈(Pantashoes)와 와이드 숄더의 블랙 새틴 드레스를 마지막으로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김미 모어(Gimme More)’ 사운드트랙이 갑자기 중단됐다. 발렌시아가 다운 임팩트 있는 마무리였다.

“패션은 망가져야 하는 것이다. 나는 엉망진창을 좋아한다. 패션계는 모든 면에서 완벽하고 세련되고 흠잡을 데가 없어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하지만 패션은 나에게 그런 게 아니다. 패션은 엉망진창이 되어야 한다. 망가져야 한다. 두려움에 기반을 두어서는 안된다.”라는 뎀나 바잘리아의 메시지가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영상
Courtesy of Balencia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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