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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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의 컬처 퀸. 에바 차우는 종종 이렇게 불린다. 사실 그녀를 설명하는 수식은 이로는 부족할 수도 있다. 올해로 10년째 ‘LACMA 아트+필름 갈라’를 이끌어온 LA카운티미술관의 이사이자 과거 패션 레이블 ‘에바 전’을 론칭한 디자이너, 영화 제작 현장의 프로덕션 매니저까지. 그러나 에바 차우는 자신을 단지 아름다움을 좇는 컬렉터라 말한다. 

차우의 집에서 촬영한 프트레이트.

앙상한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어느 겨울날이었다. 서울숲이 한눈에 내다보이는 에바 차우의 집은 그 바깥 풍경을 한가득 담은 통창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천장엔 프랑스 아르데코 양식의 전형을 보여준 디자이너 자크 에밀 룰만의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길게 드리워 있었고, 온통 흰 대리석 타일로 마감된 거실 한쪽엔 얼핏 한국의 단색화처럼 보이는 캘리포니아 출신의 젊은 여성 화가 제니퍼 귀디의 명상적 페인팅이 걸려 있었다. 화병에 탐스럽게 꽂은 연분홍빛 장미에서 풍기는 글래머러스한 향기, 스피커 너머로 잔잔히 느릿하게 클래식 선율. 미니멀한 듯 내밀한 취향에 따라 선택됐을 게 분명한 물건들로 가득한 감각의 요새, 에바 차우의 집에 대한 첫인상이다.

영원한 것을 사랑한다는 그녀의 취향이 드러난 거실. 미니멀한 듯 우아한 곡선의 가구, 집기 등이 배치되어 있다.

서울숲의 풍광을 한가득 담은 통창.

올해로 83세를 맞은 노장 화가 팻 스테어의 회화 작품.

LA카운티미술관(LACMA)의 이사 에바 차우는 지난 11월 열린 ‘2021 LACMA 아트+필름 갈라’를 마치고 막 한국에 도착한 상태였다. 알버 엘바즈가 디자인한 랑방의 실크 드레스를 몸에 걸친 차우가 가슴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갈라가 끝나니 비로소 한숨 돌리게 되네요. 이번 홀리데이는 한국에서 보낼 것 같아요. 그동안은 늘 미국에서 지냈거든요. 딸이 친구들과 여행을 떠난다고 하니 올해는 모처럼 한국에 머물며 시간을 보내려고요.” 2011년 에바 차우와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공동 의장을 맡으며 시작한 ‘LACMA 아트+필름 갈라’는 뮤지엄의 영화 프로그램 확장을 위해 설립한 연례 기금 모금 행사다. 올해로 10년째 이어온 갈라는 행사 티켓 및 테이블 판매금을 통해 기금을 마련하는데, 올해까지 조성된 기금만 약 8,000만 달러에 달한다. 이렇게 모인 기금은 영화 및 예술계에 큰 업적을 남긴 저명인사를 기리고 영화 복원 및 상영, 전시회 개최, 교육 프로그램 설립 등에 쓰인다. 매회 예술, 영화, 패션,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저명인사 6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 행사는 종종 ‘메트 갈라의 서부 버전’이라 불리곤 하는데, 이에 대해 에바는 웃으며 말했다. “제 생각엔 메트 갈라보다 재미있죠(웃음). 영화와 예술의 교차점을 탐구하는 LACMA 아트+필름 갈라는 지극히 ‘개인적’이라 할 수 있어요. 가장 개인적(Personal)이기 때문에 또 가장 보편적(Universal)인 색깔을 띨 수 있고요.”

올해 열린 LACMA 아트+필름 갈라 현장에서 패리스 힐튼과 함께 촬영한 사진.

LACMA 아트+필름 갈라에 참석한 차우와 배우 이정재.

LACMA 아트+필름 갈라에서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 등과 함께.

LACMA 아트+필름 갈라를 말하기 위해선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68년 큐레이터 필 체임벌린이 설립한 LACMA의 필름 디파트먼트는 당시 극심한 예산 부족으로 존폐의 갈림길에 놓여 있었다. 결국 LACMA는 40여 년간 이어온 주말 영화 상영을 중단하기로 했고, 이 소식은 뮤지엄이 자리한 곳이자 할리우드 영화 산업의 본거지인 LA에 빠르게 번져 나갔다. 당시 수많은 영화인이 LACMA의 결정에 비판의 목소리를 제기했는데, 이 중 하나가 바로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이지다. “LACMA와 같이 관객이 다양한 영화를 관람할 장소가 사라진다면 우리는 무엇을 잃게 되는 것일까요? 결국 영화가 가진 강력한 문화적 영향력을 잃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이러한 영화의 장이 사라진 할리우드에서 우리는 영화의 미래에 대해 과연 무슨 이야기를 펼칠 수 있을까요.” 이는 2009년 8월 12일 마틴 스코세이지가 <LA 타임스>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당시의 소란을 차우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LACMA는 현대미술뿐 아니라 수집품의 범위나 주제에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고 모든 분야를 폭넓게 포괄하는 인사이클로피딕(Encyclopedic) 뮤지엄이에요. 필름 디파트먼트도 뮤지엄을 구성하는 여러 부서 중 하나였는데, 당시 이를 탄탄히 지탱해줄 중심이랄 게 없었어요. 그래서 뮤지엄 관장인 마이클 고반에게 모금 활동의 일환으로 갈라를 개최하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죠. 돌아온 대답은 ‘네가 해라. 너밖에 할 사람이 없다’였고요(웃음).” 차우는 혼자 힘으로 갈라를 펼치기보다 영화계에 보다 적극적인 주목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인물을 물색하기로 했다. 그렇게 손잡게 된 인물이 바로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다. “어쨌든 저는 ‘아트 퍼슨’이에요. 갈라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선 ‘필름 퍼슨’이 필요했죠. 그래서 오랜 친구인 레오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힘을 합쳐보자.’ 그게 갈라의 시작이었죠. 그렇게 1회는 영화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개념주의 예술가 존 발데사리를 기리는 내용으로 채워졌어요. 스티비 원더가 라이브 공연을 펼치며 분위기를 한층 열띠게 띄웠고요. 흔히 모금 행사라 하면 지루하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어떻게 하면 재미있고 매년 사람들이 기다리는 행사가 될까 고민하며 지난 10년을 노력하며 달려온 것 같아요.”

LACMA 아트+필름 갈라의 공동 의장인 차우와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모델로도 활동하는 딸 아시아 차우와 함께 촬영한 사진.

LACMA 아트+필름 갈라에서 배우 톰 행크스와 함께한 사진.

갈라 현장에서 배우 강동원과 함께.

갈라 현장에서 배우 이병헌 등과 함께.

사실 차우와 영화의 인연은 아주 깊고 오래되었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녀는 11세에 동양화가 이당 김은호와 소정 변곽식 선생을 사사하며 동양화를 배웠다. 유년기 내내 붓을 들던 차우는 16세가 되던 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고 꿈꾸던 화가의 길을 뒤로해야만 했다. 미국에서 평범한 학생이던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가장 먼저 알리기 시작한 분야는 영화였다. “어려서부터 영화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데이비드 린의 <아라비아의 로렌스>, 브라이언 드 팔마의 <스카페이스>, 빌리 와일더의 <선셋 대로>, 루키노 비스콘티의 <베니스에서의 죽음> 등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였어요. 그런데 학교를 다니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미국의 연예 에이전시 윌리엄모리스엔데버(WME) 회장의 눈에 띄게 돼서 그곳과 계약을 하게 됐어요. 그러던 중 어느 날 에이전시에서 디노 드 로렌티스 영화에 동양인 배역이 필요하니 그를 찾아가보라고 했죠. 그때 인연으로 디노의 어시스턴트가 되어 그와 다양한 작업을 했고, 이후 배우 보 데릭이 나온 영화 <타잔 – 마일스 오키프 편>의 프로덕션 매니저로도 일하게 됐어요.” 그렇게 5년 가까이 영화 제작 분야에 분주히, 또 치열하게 몸담아온 차우는 1988년 패션 신에도 진출한다. 당대 실크와 시폰 소재의 이브닝드레스로 인기를 모은 패션 레이블 ‘에바 전’을 론칭한 것이다. “미국에 도착해 바로 일을 시작해서인지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아요. 영화 현장을 누비며 ‘번아웃’을 경험하기도 했고, 휴식을 취하며 다시 학교에 다니기로 했죠. 그렇게 오티스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 다니며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어느 날 학교에서 컬렉션을 펼쳤는데 우연히 니만 마커스의 눈에 띄었고 그곳에서 상당한 양의 옷을 발주해 본격적으로 회사를 차리기로 했죠.” 차우가 에바 전을 론칭했을 당시 미국의 패션 신은 화려함을 뜻하는 ‘글로시(Glossy)’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을 거다. 여성들 사이에선 어깨를 각지게 디자인한 파워 슈트가 유행했고 나오미 캠벨, 신디 크로퍼드와 같은 슈퍼모델이 전성기를 맞으며 당당하고 힘찬 걸음으로 런웨이를 활보하던 시기였다. “한마디로 섹시하고 화려한 스타일이 당시를 풍미했어요. 그런 시대에 ‘여자들이 밤에 턱시도를 입으면 어떨까?’란 발상으로 레이블을 시작했죠. 턱시도 드레스, 테일러드 슈트, 바이어스 컷 드레스로 쇼룸을 가득 채웠어요. 배우 니콜 키드먼, 킴 베이싱어가 저희 쇼룸의 단골이 되었죠.”

다이닝룸에서 포즈를 취하는 차우.

“에바는 매우 강인하면서도 섹시함을 겸비한 사람이에요. 그녀만큼 유연성을 가진 여성이 많지 않죠. 언제든 패션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있고요. 또 그녀와 함께라면 언제든 ‘미친 짓’을 할 수도 있죠.” 차우의 오랜 친구이자 버버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리카르도 티시는 2015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를 이렇게 회상했다. 어쩌면 그가 언급한 ‘유연성’이란 단어는 예술, 영화, 패션을 막론하고 다양한 필드를 오가며 활동해온 차우를 가장 잘 설명하는 기표일 터다. 실제 <더블유>가 그녀의 집에서 인터뷰를 나눴을 당시에도 차우는 거의 모든 예술 분야를 가로지르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거실 한쪽에 걸린 팻 스테어의 작품 아래서 올해로 83세를 맞는 노장 화가의 회화 세계를 말했고, 에일린 그레이와 샤를로트 페리앙, 장 미셸 프랑크의 가구 디자인을 논했으며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를 얘기했다. “결국엔 ‘호기심’ 인 것 같아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아름다운 것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아름다운 것이 늘 제 안의 무언가를 발동시켰고, 그게 결국 제 삶의 일부가 됐죠. 예술, 영화,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 몸담았지만 누군가 제게 ‘당신은 누구인가’ 물으면 저는 항상 ‘컬렉터’라고 답해요. 아름다운 것, 예술을 사랑하는 컬렉터일 뿐이죠.”

차우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줄리언 슈나벨. 그녀는 5일 동안 드레스를 입고 포즈를 취해야 했다.

화가 쥴리언 슈나벨이 그린 차우의 초상화.

줄리언 슈나벨의 가족과 이탈리아 포시타노로 떠난 여행에서 차우가 그린 슈나벨의 초상화.

오랜 친구이자 버버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리카르도 티시와 촬영한 사진.

차우와 깊은 우정을 나눈 친구이자 올해 고인이 된 랑방의 디자이너 알버 엘바즈.

차우는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것’을 기록했다며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보여줬다. 그녀는 일상에서 마주한 아름다운 순간을 모아둔 인스타그램이 자신에게는 하나의 ‘포토저널’과 다름없다고 말한다. 인스타그램엔 그간 관람했던 전시회, 오랜 취미인 꽃꽂이, 어느 해 화가 줄리언 슈나벨의 가족과 이탈리아 포시타노로 떠난 여행에서 그녀가 그린 슈나벨의 초상화 사진 등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사진에서 가장 잦은 빈도로 등장한 인물, 그녀의 딸이자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아시아 차우가 있었다. “딸은 제게 가장 소중한 존재예요. 아시아는 정열이 가득한 한편 굉장히 배려심이 많고 차분한 성격이에요. 제게는 없는 점이라 더욱 그녀를 존경하고요. 저희 모녀는 취미가 같아요. 언제든 음악, 미술에 대해 대화할 수 있죠. 대화가 없더라도 좋아하는 게 같으니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편안하고요.” 딸이 그녀의 인스타그램의 지분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인물이라면, 가장 최근 LACMA 아트+필름 갈라에서 함께 촬영한 그녀의 친구들 사진도 눈에 띄었다. 배우 강동원과 이정재가 그 주인공으로, 그녀와 오랜 친구 사이인 그들은 <더블유>에 전화와 문자를 통해 차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에바는 통찰력이 좋은 사람이에요. 또 누군가에게는 차가워 보일 수도 있지만 누구보다 따뜻하고 열정적인 사람이죠. 휴머니스트라 할 수 있어요. 제게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저보다 더 화를 내고 걱정해주던 모습이 생각나네요.” 강동원의 말이다. 이어 이정재는 올해 갈라에 참석한 생생한 소감을 전했다. “갈라에서 에바의 스피치는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어요.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러움을 느꼈던 기억으로 제 안에 강하게 남아 있어요.”

올해 차우가 론칭한 한국 전통 소주 브랜드 키의 제품.

차우의 오랜 취미인 꽃꽂이. 테이블엔 아트북이 놓여 있다.

벽에 걸린 추상적 회화 작품이 눈길을 사로잡는 다이닝룸.

올해 그녀는 한국 전통 소주 브랜드 ‘키’를 론칭하며 또다시 새로운 세계를 모색하는 중이다. “미국에서 지내면서 늘 한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또 제가 한국의 어떤 문화를 미국으로 소개해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죠. 그래서 한국의 소주를 저만의 색깔로 표현해보자 생각했어요. 우리나라는 훌륭한 전통주를 많이 보유하고 있지만 해외에 널리 알려지지 않아 늘 아쉬운 마음이 있었거든요.” 차우는 소주를 연구하던 중 현대 한국의 소주가 대규모 양조업자들에 의해 전통 증류 방식이 아닌 고구마와 타피오카 같은 전분으로 만든 주정에 물을 희석시키는 방식으로 대량 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러한 아쉬움을 달래고자 그녀는 전국의 소주 장인을 만나며 전통적 양조 방식을 되살리면서도 새로운 기술을 더한 ‘키’를 생산하기로 했다. 그렇게 인공 첨가물 없이, 쌀과 지하 150m에서 끌어올린 천연암반수를 재료로 180일 동안 옹기에 숙성시켜 탄생한 술이 바로 ‘키’다. 차우는 “그럼 우리 한번 마셔볼까요?”라는 말과 함께 크리스털 잔에 소주를 따라 건넸다. 벨벳과도 같은 부드러운 질감에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상쾌한 향기. 스트레이트로 마셔도 좋지만 다양한 시트러스, 과일을 넣어 칵테일로 만들어 즐기면 좋겠다는 인상이 스친다. “키를 큰 브랜드로 만들고 싶은 꿈이 있어요. 3~4월이면 본격적으로 미국에서 판매를 시작할 거고, 여름 즈음엔 유럽에도 진출할 예정이에요. 앞으로 몇 년간은 키 소주를 통해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에요.” 언제나 아름다움을 좇는 그녀는 예술, 영화, 패션에 이어 한국의 전통 술로 또 다른 여정을 그려간다. 차우만의 방식으로 써가는 이야기의 새로운 장이 이제 막 펼쳐지는 중이다.

피처 에디터
전여울
포토그래퍼
최영모
사진
COURTESY OF LACMA, GETTY IMAGES, EVA C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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