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의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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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아시아에서 하우스 브랜드의 글로벌 앰배서더를 가장 많이 보유할 수 있었던 건, 이제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케이팝이라는 거대 산업의 시류와 반짝이는 별들의 스타일을 완성해주는 동시대적인 한국의 스타일리스트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케이팝의 최전방에서 아티스트와 엔터테인먼트, 거대 팬덤과 함께 호흡하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갖추고 있는 건 스타일에 대한 탁월한 감각, 섬세한 커뮤니케이션 능력, 과감한 의사결정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었다.

스타일리스트 이하정 

스타일리스트 이하정.

전 세계가 주목하는 아티스트 BTS의 스타일링을 도맡고 있는 스타일리스트 이하정. 강력한 파급력을 가진 보이그룹답게 다양한 브랜드를 섭렵하고, 하이패션 브랜드와도 협업하는 폭넓은 경험을 쌓은 그녀는 앞으로 해외 아티스트를 스타일링하고자 하는 큰 포부도 갖고 있다.

BTS가 릴 나스 X와 함께 무대를 펼쳤던 2020 그래미 어워드.

루이 비통 글로벌 앰배서더 BTS 가 참여한 2021 F/W 남성복 쇼. 부천 아트 벙커에서 촬영됐다.

한복을 스타일링한 '아이돌' 뮤직비디오.

이하정의 취향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다고 꼽은 'ON' 뮤직비디오.

한국 디자이너 제이백 쿠튀르와 김서룡 옴므를 착용해 화제가 되었던 BTS의 2019 그래미 어워드 레드카펫 룩.

<W Korea>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다. 스타일리스트로 입문하고 성공한 그간의 과정이 궁금하다.

이하정 우연한 기회에 친구들과 투애니원 스타일링을 담당하면서 스타일리스트 길로 들어섰다. 패션 전공은 아니었지만, 옷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됐고, BTS의 데뷔부터 지금까지 함께 일하고 있다.

루이 비통부터 얘기해보자. BTS가 함께한 루이 비통 2021 F/W 맨즈 쇼는 그간 한국에서 보기 어려웠던 압도적인 스케일의 작업이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워낙 큰 프로젝트라 촬영 당일이 아직도 선명하다. 대규모 세트는 물론 수많은 모델들과 촬영했는데, 파리에서 공수한 재미있고 과감한 룩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어서 뿌듯한 경험이었다.

BTS가 입으면 당연히 화제니까. 한국 디자이너를 해외에 소개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혹시 최근 눈여겨본 한국 디자이너는?

Post Archive Faction(PAF). LVMH 프라이즈 2021 세미 파이널에 진출한 브랜드다.

무대나 뮤직비디오에서 한복 스타일링도 꽤 많이 선보였다. <대취타>의 검은 한복은 특히 파격적인 시도기도 했고, <아이돌> 무대는 화려함을 현대적으로 잘 풀어낸 느낌이다. 한복 스타일링이 쉬운 편은 아닌데 어땠나?

오히려 재밌었다. <아이돌> 같은 경우는 멤버들과 상의 후 한복에 하나씩 다른 브랜드를 믹스하고, 볼드한 주얼리, 스니커즈로 스타일링했는데, 몹시 신선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에디터가 서치해봤을 때 BTS의 팬덤은 확고한 취향을 갖고 있는 것 같다(제복, 슈트 혹은 대학생 오빠룩에 긍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팬들의 피드백을 곧잘 살피는 편인가?

무대는 확실한 콘셉트가 있으니 아무래도 모두 반영하기는 쉽지 않다. 음악, 무대 연출, 세트, 퍼포먼스까지 많은 분들과 다양하게 상의하기 때문이다. 다만 가능한 선에서 의견을 반영하려 노력한다.

BTS는 브랜드의 폭도 굉장히 넓고, 가격대도 대중 적인 브랜드까지 다양하게 섭렵한다. 하이브와는 어떤 식으로 논의하나?

아무래도 활동량이 대단한 그룹이다 보니, 매번 엄청난 양의 옷이 필요하다. 무대 콘셉트와 잘 어울리는 브랜드가 있으면 회사 비주얼팀과 상의해 다양하게 스타일링하고 있다.

스타일리스트로서 당신의 취향이 극명하게 드러난 작업은 무엇인가?

BTS의 <ON> 뮤직비디오다. 음악, 세트, 의상 모든 게 잘 조화를 이룬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패션에 가장 관심이 많은 멤버는?

RM과 뷔.

이하정의 스타일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서로 다른 스타일을 조합하는 믹스 매치를 선호한다.

영감을 얻는 아티스트가 있나?

자유분방하고 사랑스러운 스타일의 해리 스타일스.

앞으로의 목표는?

다양한 해외 아티스트의 스타일링 작업도 해보고 싶다.

스타일리스트 김욱 

스타일리스트 김욱.

목소리가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김욱과 통화하다 보면, 이 사람은 어떤 현장에서도 당황하지 않을 것 같은 견고한 내공이 느껴진다. 케이팝 무대에 적합한 화려함과 트렌드에 예민함을 갖춘 그의 결과물을 보고 있노라면, 왜 그가 케이팝 산업 내 슈퍼엠, 에스파 같은 슈퍼 그룹들을 담당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카이의 첫 번째 솔로 미니 앨범 재킷.

에스파의 'Savage' 티저 비주얼.

태민의 솔로 앨범 'Never Gonna Dance Again : Act2'의 의상들.

태민의 솔로 앨범 'Never Gonna Dance Again : Act2'의 의상들.

전장에 서 있는 모습을 표현한 에스파의 'Savage' 의상.

키의 첫 번째 솔로 미니 앨범 'Bad Love' 또한 김욱 실장의 작품.

<W Korea> 더블유와 4년 만의 인터뷰다. 이렇게 또 얘기를 나눌 수 있어 반갑다. 이제 몇 년 차인가?

김욱 일한 지 8~9년 정도 되었다. 전담으로 슈퍼엠, 엑소, 샤이니, 카이와 태민, 키의 솔로, 우즈를 담당하고, 최근에 에스파를 맡게 되었다.

엑소가 막 데뷔했을 무렵 커리어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때와 비교해서 케이팝 산업이 매우 성장했다. 일적인 면으로 어떻게 달라졌나?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전반적으로 모든 프로세스가 좋아졌다. 의상 수급이나 제작 면에서. 무엇보다 이 신을 만들어가는 사람들과 즐기면서 평가하는 대중들로 인해 문화 자체가 크게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내 아내이자 뛰어난 스타일리스트 중 한 명인 최민혜 실장에게 인정받으려고 더 열심히 했다.

가장 최근의 작품, 에스파의 <Savage> 뮤직비디오는 에스파의 여느 때보다 스타일링이 다양하게 구성됐다고 생각한다. 멤버들의 뮤직비디오 리액션 유튜브를 봤는데, 지젤의 드레스 착장에 ‘Next Level’ 프린트가 있다고 하고, 의상마다 재밌는 디테일이 많다고 멤버들도 좋아했다. 세계관이 중요한 그룹이다 보니 스타일링이 어떤 식으로 사전 기획됐는지 궁금해졌다.

<Savage> 티저로 가장 처음 공개된 룩에도 숨겨진 디테일이 있다. 전장에 서 있는 비주얼을 표현해야 했기 때문에 차분한 컬러 톤을 쓰고, 아웃핏을 깔끔하되 강해 보이게 구성했다. 여기에 유치하지 않은 포인트로 무엇을 넣을지 고민하다가 각자 네오한 심벌을 사용했다. 지젤은 블랙홀, 윈터는 스톰, 카리나는 스파크, 닝닝은 코드를 넣었다. 닝닝의 그린 코드에는 넥스트 레벨 프린트를 사용했다. 작업할 때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나중에 부활절 계란처럼 누군가 발견하면 재밌게 받아들여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요즘 케이팝 뮤직비디오는 간단한 제스처라도 역동적인 카메라 워크를 통해 ‘와우 포인트’를 만들어낸다. 이번 <Savage>는 그런 그림 안에 스타일링이 적재적소에 정확하게 배치됐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를테면 멤버들이 유니크한 핸드피스를 착용했을 때 정확하게 카메라가 캐치한다거나.

보통 뮤직비디오 제작 전 비주얼팀과 뮤직비디오팀이 한자리에 모여 사전 미팅을 한다. 에스파가 워낙 미래적 요소가 중요한 그룹이다 보니, 누드 톤 드레스 착장도 변별성을 주고 싶었다. 드레스 자체에 과한 디테일을 넣으면 예쁘지 않을 것 같아서, 드레스를 제외한 부츠, 핸드피스, 주얼리 등을 미래적이고 메탈릭한 것들로 스타일링했고, 사전에 약속된 신이 이런 디테일을 잘 드러나게 했다고 생각한다.

에스파 멤버들의 각 스타일은 어떻게 구분하나?

아직까지는 멤버별로 스타일을 구분하기보단 그룹으로 보여줄 게 더 많다고 생각한다. 개별 장단점을 커버하는 데 집중하는 정도이고, 그룹으로서 전체 그림이 단단하고 밀도 있어 보이게 애쓰고 있다.

개인적으로 김욱이 하는 보이그룹 스타일을 좋아한다. 아티스트들의 화려하고 남성적인 매력을 돋보이게 해준 것 같다(특히 태민과 합이 진짜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강점은 무엇일까?

스타일링을 하다 보면 유명 브랜드의 볼륨감을 무시할 수 없는데, 비싸고 좋은 브랜드에 의존도가 높은 편은 아니다. 오히려 리폼을 즐긴다. 또 스타일링만 고려하기보다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애티튜드를 연출할지 함께 고민한다. 이런 과정이 잘 조화를 이뤘을 때 비로소 아티스트가 더욱 돋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강점이라기보다 내가 일하는 방식이랄까.

역대급 가장 많은 버짓을 쓸 수 있었던 앨범, 작업은 뭔가?

최근 있지 정규 앨범 일부를 작업했는데, 생각보다 뜻대로 일하기 어려워서 아쉬웠다. 버짓과 시간이 가장 넉넉했는데도.

팬들의 리액션이나 반응을 많이 살피는 편인가?

팀원이 가끔 챙겨주는 편이다. 한번은 지인이 이런저런 링크를 보내줬는데, 부정적인 것보다 좋은 반응이 많아서 놀랐고 기분이 좋기도 했다. 이때 한참 살펴봤는데, 어느 순간 방향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피하기도 했다.

당신이 생각하는 케이팝 스타일리스트의 덕목은?

굉장히 어렵고, 늘 성공할 순 없지만, 엔터테인먼트, 아티스트, 대중, 팬들은 물론 내 욕심까지 충족시킬 수 있는 지점을 잘 찾아서 리스크를 줄이고 모두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드는 것.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어렸을 때는 아무래도 외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케이팝 시장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커진 현시점에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목표가 세 가지인데, 첫째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아티스트가 노력하듯 케이팝 시장이 더 커질 수 있도록 기여하는 것, 둘째는 다음 세대 스타일리스트에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더 노력할 것, 셋째는 아내 최민혜 실장이 일하지 않고 쉴 수 있도록 하는 거다.

스타일리스트 박민희 

파리에서 포트레이트를 찍어 보내온 박민희.

블랙핑크의 스케줄로 파리에 있는 박민희가 어렵게 인터뷰를 수락해 질문지를 전했다. 꼼꼼함과 열정 넘치는 그녀의 답변은 그녀가 이 일과 자신이 담당하는 아티스트에 대해 얼마나 큰 애정을 품고 있는지 짐작하게 했다. 그녀의 방대하고 열성적인 리서치와 좋은 스타일리스트가 되기 위해 하루하루 밟아온 과정은 대형 아티스트를 담당할 자격이 충분함을 방증한다. 

박민희는 블랙핑크의 'How You Like That'으로 2021 가온차트 뮤직 어워드에서 ‘올해의 스타일상’을 수상했다.

박민희가 가장 애착이 가는 룩으로 꼽은 'Lovesick Girls'의 매점 세트 룩.

박민희가 가장 애착이 가는 룩으로 꼽은 'Lovesick Girls'의 매점 세트 룩.

박민희가 가장 애착이 가는 룩으로 꼽은 'Lovesick Girls'의 매점 세트 룩.

박민희가 가장 애착이 가는 룩으로 꼽은 'Lovesick Girls'의 매점 세트 룩.

가장 최근의 앨범 작업인 리사의 'Lalisa' 솔로 앨범.

제니의 스타일링을 위해 박민희가 참여한 샤넬 2022 S/S 쇼 오프닝 필름.

<W Korea> 파리에서 답을 쓰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첫 해외 출장일 것 같은데 감회가 어떤가?

박민희 출국 직전까지 스케줄이 촘촘했기 때문에 비행기에 거의 실려 오다시피 했다. 도착 후 이틀이 지나서야 ‘아, 내가 파리에 왔구나’ 실감이 나더라. 팬데믹 직전에 파리 출장을 갔었는데, 다시 돌아온 파리는 사람도 많지 않고 여러모로 예전하고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이번 샤넬 쇼 오프닝 필름을 위해 이네즈&비누드 듀오와 촬영한 경험은 어땠나? 촬영장 풍경이 궁금하다.

그날의 장면들이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떠오른다. 1980년대 촬영장 백스테이지처럼 꾸민 공간에서 다른 모델들과 제니가 같이 촬영을 진행했는데, 촬영 공간을 파티션으로 가리고 굉장히 집중도 있게 진행하더라. 반면 파티션 너머로는 샤넬 스태프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가운데, 소파에 둘러앉아 모니터링하면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눴다. 그런 모습들이 생경해서 옛날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포토슛 때는 사진가 듀오가 나란히 서서 촬영하더라. 보통은 한 명의 포토그래퍼가 촬영하지 않나. 그 장면도 무척 신선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촬영하며, 포즈 디렉팅을 굉장히 정확하고 디테일하게 주는데 카리스마와 아우라가 굉장했다.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어 무척 행복했다.

스타일리스트 박민희의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중학생 때부터 스타일리스트가 꿈이었고, 꿈을 바꾼 적이 한 번도 없다. 대학에서도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고. 취업 준비를 하면서 크리스탈과 정유미를 담당하던 스타일리스트 최경원을 동경했는데, 무작정 면접을 보고 싶다 보낸 메일 덕분에 어시스턴트로 일을 시작했다. 그때 처음 맡은 아티스트가 블랙핑크였고, 벌써 5년을 함께하고 있다.

블랙핑크 멤버들이 각자 스타일링 의견을 많이 내는 거로 알고 있다.

멤버들이 패션에 정말 관심이 많다. 어떨 땐 내가 배우기도 한다. 패션은 정말 관심 많은 사람이 잘할 수밖에 없는 분야이지 않나. 트렌드가 워낙 빠르게 바뀌다 보니 따라가기 급급해질 수도 있는데, 멤버들은 변화를 즐기면서도 자기에게 무엇이 중요하고 잘 어울리는지를 확실히 아는 듯하다. 콘셉트를 잡을 때부터 의견을 서로 주고받고, 큰 프로젝트가 없는 평소에도 뭔가 멋진 이미지나 의상을 발견했을 때 서로 공유하고 의견을 나눈다.

블랙레이블 테디 대표도 의견을 많이 준다더라. 대체로 어떤 디렉션인가?

스타일리스트가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도록 큰 틀을 만들어준다. 대화 중에 갑자기 떠오른 하나의 이미지를 묘사한다던가, 그가 보여주는 음악이나 영상 덕분에 스타일링이 머릿속에 잘 그려질 때도 있었다. 그런 반면 굉장히 디테일한 디렉션을 줄 때도 있는데, ‘와, 저런 작은 디테일의 차이를 어떻게 아셨지?’ 하고 놀란 적도 많다. 그래서 나도 디테일을 세심하게 살피는 편이다. 내가 해석한 콘셉트와 시안에 대해 신뢰를 많이 주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블랙핑크 스타일리스트는 리폼 장인이라는 말이 팬들 사이에서 떠돌더라. 하이엔드 브랜드 옷을 절반 가까이 잘라내는 과감한 리폼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스타일리스트 최경원에게 배운 점이다. 과감하고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해보았기 때문에 발휘되는 측면일 거다. 어떤 날은 밤새 바느질해서 큐빅 벨트를 만들기도 하고, 옷감으로 신발을 만들기도 하고. 지금은 멤버들의 체형을 신경 쓰는 점도 한몫한다. 이제는 원래 모양 그대로 입으면 재미없고 심심해 보이고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웃음).

그렇다면 무대 의상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불편함이 없는지다. 아무리 예쁜 의상이라도 퍼포먼스를 하기에 불편하다면 완벽한 무대가 나올 수 없으니 말이다. 스타일적으로 예쁜데 안무하기 불편하다면 치마를 바지로 바꾼다거나, 원피스를 잘라 크롭트 톱으로 만드는 식으로 스타일을 유지하되 움직임이 편하도록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한다.

가장 최근의 뮤직비디오는 리사의 <Lalisa>다. 착장 수도 많고, 브랜드 활용 폭도 굉장히 넓더라. 어떤 식으로 리서치했나?

이번 뮤직비디오는 리사의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좀 더 과감하고 실험적인 브랜드부터 아주 러블리한 의상까지 거의 전 세계 브랜드를 뒤지다시피 했다. 요즘은 정말 많은 브랜드가 있으니까 계속 보고 또 봐도 새로운 것이 나온다. 사실 서치를 좋아해서 택시로 이동할 때나, 대기 시간이나 짬이 생길 때마다 검색을 한다. 친구들은 그럴 때마다 또 일하냐고 얘기하지만, 나에겐 그게 아주 편하게 쉬는 방법이랄까(웃음).

그렇다면 새로 발굴한, 최근 주목하는 브랜드는?

좋아하는 브랜드도 워낙 많고, 스타일도 다양하게 좋아하는 편이라 하나를 꼽긴 어렵지만 요즘 최애는 카이트(Khaite)다. 몇 년 전 직구해서 멤버들 의상으로 활용한 적이 있는데, 소재나 핏이 너무 완벽해서 새 컬렉션이 나올 때마다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아이스크림> 뮤직비디오를 준비하면서 알게 된 Mimi Wade의 새 컬렉션이 나올 것 같아 기대 중이고, 그 외에 Rowen Rose, Didu, Gmbh, Maisie Wilen, Ottolinger 등 꽂혀 있는 브랜드가 아주 많다!

스타일링한 룩 중 단 하나의 룩을 고른다면 무엇일까?

가장 애착이 가는 룩은 <Lovesick Girls> 뮤직비디오의 매점 세트에서 찍은 의상들이다. 착장 완성까지 많은 수정을 거치고, 현장에서도 추가 수정을 봐야 했던 터라 기억에 많이 남는다. 다행히 결과물이 세트, 노래, 안무랑 잘 맞아서 현장 분위기도 좋았고, 내가 직접 옷을 다 자르고, 바느질한 것이라 더 애착이 간다.

좀 거창한 질문이긴 하지만, 전 세계가 주목하는 대형 아티스트를 스타일링한다는 것이란?

굉장히 큰 부담이지만, 데뷔 때부터 해온 터라 자부심도 있고,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아 항상 예민한 편이기도 하다. 블랙핑크를 워너비로 생각하는 이들이 워낙 많고 주목도도 크기 때문에, 그 기대를 충족할 수 있도록 매번 최선을 다하고,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더불어 멤버들과 오랫동안 같이해왔기 때문에 너무 친하기도 하고, 멤버들에 대한 애정도 깊어서 잘하고 싶은 욕심도 크다.

박민희의 스타일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절제를 아는 기발함.

커리어적으로 다음 목표는 뭘까?

당장은 너무 바쁘고, 헤쳐나가야 할 스케줄이 가득하지만, 언젠가는 해외로 진출하고 싶은 꿈이 있다. 몇 년 전 월드투어를 하면서 전 세계를 다녔는데, 그때부터 그런 꿈을 품은 것 같다. 해외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기대되고 행복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준비가 되면 내 이름을 건 브랜드를 론칭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패션뿐만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언더웨어까지 갖춘, 내 색깔을 입힌 토털 컬렉션 브랜드를 꿈꾼다.

스타일리스트 김영진 

스타일리스트 김영진.

NCT와 강다니엘 등을 담당하는 김영진은 하이패션을 잘 이해한다고 꼽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스타일리스트 중 한 명이며, 그의 패션에 대한 애정은 작업물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이패션과 컨템퍼러리 브랜드를 자유자재로 믹스하고, 뮤직비디오에서 패션 하우스의 미적 감각이 잘 드러나게 하는 것이 바로 그의 장기다. 

콜드플레이 × BTS 'My Universe' 뮤직비디오 포스터.

NCT 127의 신곡 'Sticker' 뮤직비디오. 미래적인 카우보이 룩을 연출했다.

NCT 127의 신곡 'Sticker' 뮤직비디오. 미래적인 카우보이 룩을 연출했다.

'Sticker'의 앨범 재킷 의상.

김영진이 제작한 'Sticker' 속 태용과 재현의 불꽃 슈트 룩.

패션쇼를 떠올리게 하는 NCT 127의 'Simon Says' 뮤직비디오.

<W Korea> 더블유와 4년 만의 인터뷰다. 반갑다. 그동안 변한 점이 있나?

김영진 크게 체감하지는 않는다. 조금 더 넓어진 사무실, 늘어난 팀원 정도다.

혹시 아는지 모르겠다. 최근 우리가 함께 작업한 NCT 127 × 셀린느 디지털 프로젝트 ‘Nine Knights’ 에서 말 탄 재현이 신은 더비 슈즈에 매치한 흰 양말을 팬들이 무척 좋아했다. 양말, 목걸이 같은 디테일이 기억난다. 작업은 어땠나?

알다시피 무척 더운 여름이지 않았나. 스태프들은, 물론 멤버들도 겨울옷을 입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레이어드가 정말 많은 룩들이어서 입히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또 바지 길이가 중요해서 현장에서 팀원 한 명은 촬영 내내 기장을 잡는 바느질만 했을 정도다. 그래서 양말이 더 잘 보이지 않았을까(웃음). 전 세계에서 옷을 공수한 데 비해 체인 목걸이가 3개 정도였는데, 포인트를 주고 싶어서 멤버들에게 돌아가며 정신없이 스타일링했던 기억도 난다.

그걸 찍고 나서 발표된 NCT 127의 신곡 <Sticker> 앨범 재킷과 뮤직비디오 의상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앨범 재킷은 전반적으로 라프 시몬스 의상이 많았는데, <Sticker>라는 콘셉트와 잘 어울리게 배지 장식을 많이 사용했고, 뮤직비디오 의상은 피터 도, 루도빅 드 생 세르냉, 릭 오웬스, 생로랑, 베트멍 등 다양한 브랜드를 섞었다. (도입부의 태용 불꽃 가죽 슈트는?) 그건 제작이다. 마크의 개인 컷 중 와이프로젝트의 재킷에 LED 전선을 설치해서 불이 들어오는 재킷을 제작하기도 했다.

제작까지 하는 것을 보면 스타일리스트의 업무는 정말 넓다는 생각이 든다. 뮤직비디오 의상이 화려하고 완성도 높게 잘 만들어졌는데, 처음 어떻게 구상됐나?

퓨처, 텍사스, 스페이스 카우보이 같은 키워드가 주어졌다. 첫 번째로 등장하는 단체복은 서부 보안관을 생각하면서 제작한 것인데, 보안관 모자를 제작하는 데 제일 고생했던 것 같다. 몇 번의 수정을 거쳐서 나온 모자다. 구현하기 힘든 콘셉트라 모든 스태프들이 고생했지만 그래도 꽤 만족스럽다.

가장 최근작은 콜드플레이×방탄소년단의 <My Universe>다. 작업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모든 디렉션은 미국 팀과 주고받았고, 당연히 연락이 수월하지 않았다. 초반에 러프한 콘티를 보고 발렌티노 쿠튀르가 떠올라 옷을 다 수급한 상황이었는데, 콘셉트가 뒤바뀌면서 급작스럽게 진행 방향이 바뀌었다. 하루, 이틀 안에 모든 준비를 끝마쳐야 해서 아쉽긴 했다. 모든 작업은 CG로 이루어져 크로마키에서만 촬영하고, 뮤직비디오 감독은 화상으로 감독했던 프로젝트다.

해외 팀과 작업하는 프로세스에 한국과 특별히 다른 점이 있나?

사람이 하는 일이라 별반 다르지 않다.

평소 많은 비주얼을 섭렵하는 거로 안다. 분야를 막론하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조지 나카시마(George Nakashima)가 만든 가구가 좋아졌다. 원래 목제 가구를 좋아하지 않는데, 투박하고 거침없는 마감 처리가 담대하게 느껴졌다.

담당 뮤지션의 앨범이 공개되고 나면 팬들이나 대중의 반응을 살피는 편인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관계자들의 피드백을 가장 먼저 듣는다. 음악 방송 같은 경우는 팬들의 니즈를 최대한 수용하려고 한다.

케이팝 팬들은 항상 적극적이지 않나. 혹시 인상적인 DM이 있었다면?

컬렉션 사진을 보내면서 제안을 주는 팬들도 있고 좋은 시안을 받은 적도 있다. 물론 회사의 니즈와 콘셉트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반영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관심에 감사하다. 가끔 NCT 멤버들의 아웃핏 정보를 알려주는 계정에서 오는 DM에는 브랜드가 뭔지 알려주기도 한다.

김영진이 하면 하우스 브랜드가 전하려는 영감이 잘 드러난다. 본인이 인터뷰에서 만족스러운 작업으로 가장 많이 언급한 NCT 127의 <Simon Says>가 특히 그랬고. 본인이 생각하는 강점은 뭔가?

강점이라기보다는 내가 하는 스타일링 방식인 듯하다. 좋은 옷이 주는 힘이 분명 있다. 좋고 멋진 옷으로 스타일링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가장 리스펙트하는 디자이너로 레이 가와쿠보를 꼽았는데, 최근 새로 궁금해진 디자이너는 없나?

에밀리 애덤스 보디가 하는 Bode. 요즘에는 손맛 들어간 브랜드들이 좋다.

케이팝 산업 자체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산업이 됐다. 당신이 생각하는 케이팝 스타일리스트의 덕목은 무엇일까?

무대에서 아티스트가 자신감을 갖고 최고로 멋질 수 있게 해주는 것.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좀 더 여러 나라에서 한국의 스타일리스트로 일하고 싶다.

패션 에디터
이예지
포토그래퍼
박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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