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돌아온 2022 S/S 패션쇼에서 더블유 패션팀이 캐치한 결정적 순간들.
슈퍼 쇼 마스터
환상적인 쇼 무대 연출로 명성이 자자한 프로덕션 뷰로 베탁의 마법 같은 손길은 이번 시즌에도 여전했다. 에펠탑을 배경으로 아스라한 물줄기가 쏟아진 생 로랑의 건축적인 세트부터, 디올의 60년대 식 모즈 팝 무드의 보드게임 세트, 센강을 무대로 연출한 끌로에 쇼까지!
환희의 장
프랑스 하우스를 이끈 최초의 흑인 수장으로 세상의 편견에 거침없이 맞서온 올리비에 루스테잉이 발망 하우스를 이끈 지 10년이 되었다. 이를 기념해 발망은 이틀에 걸쳐 ‘발망 더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캣워크 말미 비욘세가 음성으로 축하 인사를 전했고, 도자 캣이 앙큼한 몸짓으로 축하 공연을 펼쳤다. 런웨이 마지막에 등장한 스킨 톤 의상들은 최근 셧다운 기간 동안 벽난로 폭발 사고로 화상을 입은 루스테잉이 피부 색소가 변화해온 사실을 공개한 것을 반영한 것이라고.
발렌시아가의 특별한 시사회
기존 런웨이 방식 대신 ‘더 심슨 발렌시아가’ 스페셜 에피소드를 공개한 시사회 형식과 그에 따른 레드카펫 포토콜 형식으로 진행된 발렌시아가의 2022 S/S 컬렉션. 스토리는 호머 심슨이 아내 마지의 생일을 잊어버린 후 발렌시아가에 선물을 보내달라고 메일을 보내고, 이에 감동을 받은 뎀나 바잘리아가 호머 심슨에게 드레스를 보내며 시작된다. 영상은 유튜브에서 시청할 수 있다.
알버를 기리며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알버 엘바즈를 추모하는 컬렉션을 진행한 AZ Factory. ‘Love Brings Love(사랑은 사랑을 가져온다)’라는 테마 아래 드리스 반 노튼, 릭 오웬스, 장 폴 고티에, 올리비에 루스테잉 등 45명의 디자이너들이 뭉쳤다. 알버의 모습을 일러스트한 프린트, 리본 장식, 커다란 러플 드레스, 볼륨과 웅장한 볼가운 등등 알버의 아이코닉 룩의 행렬은 가슴 벅찬 감동을 남겼다. 코로나 이후 일부 예전의 모습을 되찾은 파리 패션위크는 그의 창의적이고 낭만적인 작품을 회상하며 막을 내렸다.
개선문과 퀸
돌아온 파리 패션위크에서 파리의 풍경이 달라진 이유는 대지를 캔버스 삼아 작업해온 패킹 아트의 대가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 부부의 유작 ‘개선문, 포장’ 덕분이다. 높이 50m, 폭 45m의 개선문이 은색 천으로 뒤덮였는데, 이는 아이디어가 구상된 지 60년 만에 실행된 것이라고. 개선문을 방문해 사진을 남긴 카디비는 “고인이 된 예술가들이 남긴 개선문을 볼 기회가 주어졌다니 믿을 수 없어요. 이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라며 감동 어린 코멘트를 남겼다. 그녀가 입은 녹색 보디슈트는 런던에서 발표된 리처드 퀸의 가장 최신작이다.
아시아에 대한 향수
준야 와타나베는 일본, 중국, 네팔, 그리고 태국의 현대 아티스트들과 협업해 천에 작품을 프린트하고 도금을 했다. 그는 이를 ‘동부에 대한 회상’이라고 불렀다. 팬데믹 이전의 여행에 대한 기억을 그리워하는 그는 사진가 제이미 호크스워스가 부탄, 인도, 카슈미르 등지를 여행하며 촬영한 사진을 배경으로 쇼를 펼쳤고, “사람들의 순수한 마음”을 그곳에서 보았다고 전했다.
프런트로의 샛별들
라프 시몬스 쇼에 참석한 에반 모크, 발렌시아가 쇼에서 포착된 파리를 점령한 카디비와 오프셋, 루이 비통의 사랑을 받는 10대 유튜버 엠마 체임벌린과 <브리저튼>의 주인공 피비 디네버, 디올 쇼에 참석한, 패셔니스타로 급부상 중인 주드 로의 딸 이리스 로.
창의적이게! 더 창의적으로!
다시 런웨이로 돌아온 조나단 앤더슨의 로에베 컬렉션에는 온갖 실험적인 것들이 가득했다. 아티스틱한 옷 사이에서 존재감을 발휘한 건 바로 초현실적으로 만든 생일 초, 매니큐어 병, 비누, 장미꽃 굽이 달린 신발들. 마치 인스타그램의 아티스트가 장난스럽게 만들어 피드에 올려놓았을 법한 신발들은 런웨이를 지배했다. 한동안 잘 팔리는 것에 집중했던 시절을 반성하듯 패션 판타지에 대한 그의 깊은 고민이 엿보이는 쇼였다. 이치에 맞는 것은 없었지만 그 초현실적인 매력에 우리는 모두 매료되었다. 조나단 앤더슨이 찾아낸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런웨이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숫자로 보는 모델 이야기
33 이번 시즌 가장 많은 런웨이에 선 동양 모델 미카 슈나이더 @mikaschndr
2020년 프라다 쇼로 커리어를 시작해 2021 시즌 모든 모델을 통틀어 가장 많은 런웨이에 선 프랑스계 일본인 모델이다. 33개 쇼에 선 그녀는 까만 머리, 하얀 피부, 살짝 올라간 코끝과 이국적인 눈매로 국적 불문의 신비로움이 매력이다.
24 이번 시즌 가장 많은 쇼에 선 한국 모델, 클로이 오 @chlocloh
도화지 같은 맑은 얼굴을 가진 클로이 오는 2021시즌 가장 핫한 한국 모델이다. 코로나 로 인해 동양 모델이 뜸했던 시기에 클로이 는 해외 컬렉션의 문을 두드렸고, 한 시즌 만에 프라다 쇼로 데뷔하며 혜성처 럼 등장, 이번 시즌 디올, 발렌티노, 프라다 등 24번의 런웨이에 등장하며 한국 모델 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여줬다.
7 이번 시즌 새롭게 데뷔한 한국 모델 조안 박 @joan_jay_park
해외 활동 이름은 제이 팍(Jay Park), 한국 활동명은 조안 박. 모델을 시작한 지는 꽤 되었지만, 1~2년 사이 체중 감량 후 제 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그녀는 유령신부를 연상시키는 유니크한 마스크와 깡마른 몸이 특징이다. 이번 시즌 처음으로 해외 컬렉션 에 도전했고, 루이 비통, 미우미우 등 굵직한 쇼 7개를 통해 성공적인 데뷔를 마쳤다.
슈퍼 콤비네이션
베르사체와 펜디, 펜디와 베르사체. 이름하여 ‘펜다체(Fendace)’ 쇼가 성사됐다. 협업을 넘어 서로의 역할을 바꾸는 스와핑 방식으로 선보인 전대미문의 컬렉션에는 킴 존스가 베르사체를, 베르사체가 킴 존스를 디자인한 피스들이 줄지어 나왔다. 펜디 모노그램과 베르사체 그리스 키 상징은 하나의 아이템에 자유롭게 섞여 있는데, 펜디의 FF위에 Versace 로고나 메두사가 올라와 있는 식이다. 마치 몇 시즌을 거듭한 협업처럼 자연스럽고 완전하게 어우러진 이들의 만남은 아주 오래 기억될 듯!
쿠튀리에 매튜
오는 1월, 쿠튀르 데뷔를 앞둔 지방시의 매튜 윌리엄스는 전통에 기반한 하우스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자신이 평소 존경해 마지않던 뉴욕 아티스트 조쉬 스미스와 손을 잡았다. 반추상적인 그림은 니트로 다시 태어났고, 약간은 무서운 미소를 짓는 심벌들이 데님 팬츠에 프린트되거나 도자기 질감의 가방이 되었다. 예술적이고 공예적인 터치를 더함으로써 스트리트 웨어 디자이너가 쿠튀리에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 것이다.
블랙핑크의 위상
이번 파리 패션위크는 블랙핑크의 제니, 지수, 로제가 참석하며 큰 화제가 되었다. 디올 쇼에 참석한 지수는 이국적인 패턴의 미니드레스를, 로제는 생로랑의 얇은 검정 시폰 드레스를, 제니는 샤넬의 빨간색 트위드 투피스를 입었다. 리사의 부재로 완전체를 볼 수 없어 아쉬움을 남겼지만, 오랜만에 프런트로에서 한국 셀레브리티들을 만날 수 있어 감회가 새로운 시즌이었다.
타임 트래블
과거를 회상한 파리의 디자이너들. 1990년대 샤넬 언더웨어를 런웨이에 선보이면서 충격을 안긴 칼 라거펠트. 여기에 착안한 버지니 비아르는 90년대 식 수영복을 입은 모델들이 런웨이의 톱에서 뱅글뱅글 돌며 활기찬 캣워크를 선보이도록 했다. 한편, 미우미우는 2000년대 초 제시카 심슨,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옷차림에서 본 듯한 아슬아슬한 로라이즈 스커트로 화제를 모았고, 시간과 패션이 교차하는 방식에 매료된 루이 비통의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하우스 설립자의 200주년을 기념해 19세기 스타일의 허리 양쪽이 잔뜩 솟아오른 패니어 실루엣 스커트와 이국적인 구슬 헤드피스를 매칭했다.
위 아더 월드
지구 반대편의 패션 도시에서 동시에 열린 프라다 쇼는 시도만으로 충분한 화제가 되었다. 밀라노 폰다치오네 프라다의 데포지토와 상하이 번드 1에서는 같은 시각, 같은 옷을 입은 다른 모델이 런웨이에 올랐다. 미우치아 프라다와 라프 시몬스는 코르셋의 형태나 가슴의 곡선과 같은 형태를 뼈대로 삼는가 하면, 치마 뒤쪽을 꼬리처럼 길게 늘어뜨리며 옷을 통한 섹슈얼리티를 표현했다. 세계 양끝의 우리들을 하나의 채널로 모이게 한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 기념비적인 쇼였다.
파리의 거리에서
평소 같았다면, 아마 파리의 거리에서 쇼를 펼친 것은 전혀 이슈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런웨이로 돌아온 지금은 다르다. 발렌티노의 피에르파올로 피촐리는 카로 뒤 텅플(Carreau du Temple)의 공간과 거리를 캣워크 삼아 ‘발렌티노 랑데부’ 패션쇼를 열었다. 그는 코로나로 격리된 삶을 맞닥뜨리며 순간적인 아름다움으로 사라지지 않으려면 일상적인 삶이 필요하다고 깨달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일상을 함께했던 평범한 거리를 모델들이 활보했다는 건 많은 의미를 갖는다. “패션은 스튜디오 공간에서 상상으로 시작하여 아틀리에 공간에서 창작되지만 거리에서 비로소 생명력을 얻어 실존하게 된다”는 그의 말처럼.
- 패션 에디터
- 김신, 이예진, 이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