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사태 덕분에 6, 7월에 걸쳐 개최된 2020 F/W 쿠튀르, 2021 S/S 남성복과 리조트 시즌은 전통적인 형식의 패션쇼 대신 디지털로 공유되었다. 그동안 깨지 못한 패션쇼라는 관습을 대체한 디지털 패션위크를 미래에 뒤돌아본다면 패션계의 모든 것이 새롭게 정의되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2020년 2월, COVID-19 감염 환자가 폭증하는 가운데 패션 인파가 밀라노를 떠나면서,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런웨이 쇼는 고객과 직원들을 위험에 빠뜨릴 것을 우려해 관객 없이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쇼를 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6월과 7월, 국제적인 봉쇄 속에 남성복과 쿠튀르 쇼는 취소되었다. 업계에는 언제 다시 오프라인 만남이 이루어질지 커다란 물음표가 드리워졌다. 전대미문의 상황을 맞이해 패션계에서는 비논리적인 계절적 일정부터 다양성의 부족, 공급망 윤리, 투명성, 지속 가능성, 새로운 옷의 제시 방식 등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검토가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패션은 쇼 없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전염병이 강요한 극심한 경기 침체는 낡은 관행과 제도에 대한 패션업계 종사자들이 겪어온 좌절의 아우성을 봇물 터지듯 분출시켰다.
변화의 물꼬를 튼 가시적인 움직임 중 하나는 유럽의 디지털 패션 주간이었다. 에디터, 바이어, 인플루언서를 초청해 자신의 실제 컬렉션을 보여줄 기회를 박탈당한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컬렉션을 전달할 매체가 필요했다. 어떻게 하면 공연장의 화려함 없이 장관을 연출할 수 있을까? 이제 모든 시선이 그들이 선택할 매체와 그들이 선점할 디지털 언어에 쏠렸다. 물론, 새롭게 보여줄 것이 있다면 말이다. 거의 즉각적으로 아틀리에 폐쇄와 더불어 생명을 위협하는 팬데믹 상황이 가져온 심리적 충격은 각 브랜드의 컬렉션 제작 진행 자체를 어렵게 만들었다. 그 결과, 많은 브랜드가 6월과 7월의 일정을 포기하고, 2021 S/S 시즌을 발표할 9월을 기약했다.
실제로든 은유적으로든 쇼를 하는 것은 여전히 화급한 관심사였다. 9월 일정인 이들은 먼저 발표하기로 한 사람들이 독약을 마시도록 내버려두었다.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 평소처럼 쇼를 펼칠까? 아니면 다른 방법을 탐색할까? 어떤 브랜드는 창조적이고 유연한 대처로 그들의 브랜드를 더 넓은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한 새로운 기회를 잡았고, 어떤 브랜드는 디지털의 광폭한 물결에 저항하기도 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업계가 변화할 의지가 있는 곳, 그리고 아직도 예전 방식에 묶여 있는 곳, 양 갈래의 길이 더욱 선명해졌다.
쇼 포맷을 고수하고 라이브 스트리밍을 하는 것은 그나마 안전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에트로와 돌체&가바나는 모델들이 관객(일부 마스크를 쓴 사람과 민낯의 사람이 섞인) 사이를 걸어 다닐 때 그 비즈니스를 보는 것이 불편했다. 거리 두기라는 사회적 약속이 엄중한 가운데 관중을 허용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전염에 노출시킬 위험은 여러모로 무모해 보였다. 파리 외곽의 밀밭에서 펼쳐진 자크뮈스의 라이브 스트리밍 쇼는 프로방스의 라벤더밭에서 열린 2020 S/S 시즌이나 마르세유로 달려간 2019 S/S보다 더욱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는 패션 필름을 통해 프랑스 남부에서의 랑데부가 햇볕을 사랑하는 브랜드의 비전을 사람들의 마음에 더욱 잘 전달할 것인지 테스트한 듯 보였다.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숲을 가로지르는 캣워크를 설치했지만 관객 있는 쇼를 연 것은 아니었다. 제냐는 변형적인 쇼 공간을 선보이는 데에 대한 평판에 충실하면서, 모델들이 제냐 소유의 숲에서 발밑에 흙을 밟고 본사 건물에 이르기까지, 드론이 포착한 아름다운 남성들의 행방을 계속 추측하게 했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디올 크루즈 2021 컬렉션을 위해 향한 곳은 이탈리아 부츠의 뒷굽에 자리한 푸글리아의 레체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마리아는 이탈리아의 유구한 장인 정신을 강조했고, 스크린을 통해 ‘라 노테 델라 타란타’ 공연팀의 강렬한 퍼포먼스가 26분간 이어졌다.
벨기에의 악동 발터르 판 베이렌동크는 그의 전 제자이자 도쿄에서 활동하는 엘 에펜버그와 비디오를 만들었다. 디지털 쇼에 나올 최종 의류 제작이 늦어지자 그는 전후 패션 산업의 부흥을 위해 쿠튀리에들이 시도한 ‘Theatre de la Mode’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미니어처로 컬렉션을 만들고, 메이크업을 한 금색 인형에 옷을 입혀 촬영했다. 코로나 시대에 어울리게 평소와 달리 복잡함 대신 단순한 옷을 선보인 채로. 밀라노의 선네이는 디지털 시대의 맞춤 기성복을 제안했다. 3D로 렌더링된 모델이 입은 의복은 모두 흰색으로 표시되지만, 바이어가 원하는 패턴, 색상에 맞춰 옷을 제작한다는 파격적인 기획. 이는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기 때문에 지속가능성 측면에도 타당하며, 바이어와의 과정이 순조롭다면 고객을 위한 다음 단계를 밟을 의향도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최근 AR과 VR을 통해 3D 가능성에 대한 다양한 실험과 모험(버버리의 최근 토머스 버버리 서머 모노그램 캠페인에서 보듯이, CGI로 만든 켄들 제너의 아바타)이 구체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시즌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이 현대적인 매체를 시도하지 않은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다만 버질 아블로의 루이 비통 남성복은 소비자 및 패션 팬들과 어울리는 데 성공했다. 상하이에서 쇼를 열지만 미국 시카고에 있는 버질 아블로나 파리 본사에서 아무도 중국으로 가지 않은, 옷을 실은 컨테이너만이 대륙을 가로지른 경우였다. 여기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됐는데, 버질이 액션 피규어 스타일리스트 레지 노우에게 의뢰해 만든 유쾌한 동물 캐릭터가 등장하는 인기 유튜브 영상 ‘The Adventures of Zoooom with Friends’는 그들이 탑승한 컨테이너 바지선이 센강을 떠내려가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그 바지선이 상하이에 정박한 것이다. 다음 행선지 도쿄를 위해 만든 영화감독 미이케 다카시와 칼렙 페미가 합심해 만든 패션 필름은 816만 뷰라는 아찔한 조회수를 기록했다.
아니나 다를까, 가장 빛난 것은 영화라는 매체였다. 프라다는 ‘The Show Never Happened’라는 명제 아래 테렌스 낸스, 요안나 피오트로프스카, 마르틴 심스, 유르겐 텔러, 윌리 반데페르가 각각 찍은 다섯 편의 11분짜리 패션 영화를 잇따라 상영했다. 밀라노 폰다치오네의 엔진룸에서 촬영한 텔러의 적나라한 영상은 프라다의 가장 순수한 본질을 포착했다. 쇼 노트는 “시대가 점점 복잡해지면서 의복은 직설적이고, 젠체하지 않으며, 생활과 활동을 위한 기계적 도구가 된다”고 말한다. 이번 쇼는 미우치아 프라다 단독 체제의 마지막 쇼였고, 9월이 오기 전에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데뷔할 라프 시몬스에 대한 일종의 힌트였다. 에르메스의 베로니크 니샤니앙은 스트리밍 영상으로 라이브 퍼포먼스를 하는 그룹 ‘콜렉티프 MxM’의 감독 시릴 테스트를 기용해 쇼가 시작되기 직전 백스테이지에서 벌어지는 짧고 아름다운 찰나를 시적인 원테이크로 담담하게 담아냈다.
파리와 밀라노에서는 물리적인 쇼를 보여주려는 브랜드가 여전히 많았지만, 브랜드 고유의 정체성을 패션 필름을 통해 명징하게 전달하려는 시도는 계속됐다. 지금 가장 유행하는 실크 셔츠로 명성을 쌓은 디자이너 샤라프 타헤르의 브랜드 카사블랑카(Casablanca)의 비디오는 우리가 갈망하는 태양을 향한 탈출구를 보여줬고, 재즈 뮤지션 이드리스 무하마드의 ‘Could Heaven Ever Be Like This’가 사운드트랙으로 깔렸다. 또 누가 무엇을 보여주었나. MSGM은 소수자 커뮤니티와 사랑을 주제로 했는데, 이는 락다운 시기를 힘들게 건너고 있을 독신자들에게 위로를 건넸을 것이다. 릭 오웬스는 뮤즈 타이론과 함께 밤새 작업하는 모습을 비디오로 공개해 그들의 우주 속을 엿보게 했다. 가죽 탱크톱, 덧댄 토르소, 강렬한 테일러링, 플랫폼 부츠는 그 자체로 릭의 분신 같았고, 세계를 뒤덮은 어두운 분위기와 기묘하게 어울렸다.
와이프로젝트의 스타일링 비디오는 브랜드의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데, 와이프로젝트를 입는 방법이 얼마나 다양한지 놀랄 것이다. 와이프로젝트의 글렌 마르탱은 영화 <위험한 관계>에서 사교계 여왕 메르퇴이유 부인의 드레스에 코르셋을 장착하는 것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벨루티와 디올 맨은 이번 시즌 LA의 도예가 브라이언 로슈포트와 가나 출신 아티스트 아모아코 보아포와 함께 새로운 컬렉션을 세밀하게 작업한 과정을 보여줬다.
디지털과 피지컬이 공존하는, 이른바 피지털(Physital) 방식에 대해서는 조너선 앤더슨이 가장 뛰어났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듯하다. 로에베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새 컬렉션을 상세히 설명한 아름다운 꾸러미를 받았다. M/M 파리스가 개념부터 디자인한 리본으로 묶인 박스가 그것으로, 그 안에는 앤더슨이 설명한 ‘문서’가 화가 폴 앙글라다가 그린 얼굴 마스크와 버트잔 팟과 협업해 만든 룩북 이미지가 함께 담겨있었다. 이러한 ‘쇼 인 박스’라는 경험은 의복 패턴, 런웨이 세트를 재현한 팝업북, 컬렉션의 내레이션을 담은 미니 레코드 플레이어로 완결된 완벽한 피지털 쇼였다. 쇼를 보러 가는 사람들은 어린아이처럼 옷의 구렁텅이에 빠져들 수 있고, 누구라도 앤더슨이 이 박스를 통해 말하는 것과 이 ‘새로워진 패션쇼 형식에 대한 기회’를 담은 수집 영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디지털과 물리적, 배타적, 포괄적 관계를 연결하는 태도가 아닐까.
닉 나이트와 발렌티노의 협업은 물리적 프레젠테이션이 디지털과 어떻게 나란히 설 수 있는지에 대한 또 다른 모범 사례였다. 소수의 관객이 참석한 로마에서의 공연은 닉 나이트의 패션 영화 상영으로 시작되었는데, 자연의 이미지가 투영된 20피트 길이에 달하는 드레스 15벌의 등장은 감탄을 자아냈고, 드레스는 생방송으로 대중에 공개되었다. 발렌티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에르파올로 피촐리는 웅장한 디스플레이로 쇼맨십과 스펙터클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제시했다. 메종 마르지엘라의 존 갈리아노 역시 변경된 형태의 일정 아래 새로운 청사진을 작성했다. 디올 재임 기간 동안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열린 살롱 모임부터 대규모 행사까지 패션의 볼거리가 갖는 의미를 실험해온 그답게 코로나19로 인한 패션쇼 종료를 애도했고, 닉 나이트와의 협업을 통해 ‘S.W.A.L.K’라는 제목의 패션 필름을 공개했다. 필름은 1980년대 뉴 로맨틱스와 블리츠 키즈 시대의 대표 디자이너 갈리아노가 개발한 원형 절단 기술을 통해 룩을 어떻게 절단하고 천을 커팅하는지 보여준다. S.W.A.L.K는 캣워크 쇼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설득력 있게 쿠튀르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관음주의 영화다. 구경거리가 집 앞에만 있을 필요는 없다. 이렇듯 비하인드 룩도 매력적일 수 있다.
구찌의 크루즈 컬렉션은 우리가 이번 시즌에 목도한, 비가역적 변화를 향한 아주 구체적인 움직임 중 하나였다. 구찌는 물리적, 디지털, 아카이브, 그리고 새로운 것을 하나의 맥시멀리스트 패키지에 결합하는 데 성공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에필로그’라 이름 붙인 이번 컬렉션을 크루즈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 좋겠다면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데 확고한 신념을 드러냈다. 구찌는 16세기 마니에리즘 양식의 로마 팔라초 사케티 빌딩에서 생중계된 에필로그 캠페인 촬영을 앞두고 손님들에게 과일과 채소가 담긴 상자를 보내 캠페인 일부의 근거지가 보아리움 포럼(로마의 원래 부두 부지이자 최대 식품 시장)임을 암시했다. 구찌의 라이브 스트리밍은 컬트 영화를 보는 듯했다. 관중들은 지연을 감내하며 소파에 앉아 부채질을 하는 알레산드로 미켈레와 모델인 닭을 구석으로 데려가는 카메라맨이 이번 쇼의 하이라이트인 놀라운 부조리에 미소를 머금었다. 스트리밍 중반부쯤 들어가자 룩북으로 새로운 컬렉션이 공개되었는데, 2001년 식의 컴퓨터 팝업 화면을 통해 구찌 디자인팀이 착 용한 컬렉션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구찌는 일반적인 유명 포토그래퍼가 캠페인을 촬영하는 과정을 지양하고, 구찌 동료들이 함께 찍은 이미지를 공개했다. 백스테이지가 이렇게 매력적일 때 누가 쇼가 필요할까? “물리적인 컬렉션을 축소한 채 언론, 외부 세계에 광고 캠페인의 메커니즘 안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은 패션의 서사를 쇼와 그 자체의 표현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요소로 나에게는 아주 흥미로웠다”고 미켈레는 말했다. 구찌 같은 브랜드가 이렇게 멋진 선례를 남기며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는 것은 그 자체로 패션 역사에 기록될 만한 사건이지 않을까.
패션쇼의 스펙터클과 물리적 연결만이 제공할 수 있는 경험을 하지 못한다는 건 애석한 일이지만 패션 역시 거대한 변화에 부응하고 귀 기울여야 한다. 이번 시즌은 패션의 미래 가능성이 비록 초기 단계에 불과할지라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브랜드들은 이제 새로운 방식이 얼마나 잘 작동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대안 모색이 그들의 오랜 고객, 새로운 고객과 얼마나 잘 소통했는지, 면밀하게 살피고 점검해야 할 것이다. 9월, 디자이너들이 어떤 길을 택할지 지켜보는 것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미래의 사람들은 분명히 2020년의 지금을 모든 것이 다시 정의되는 거대한 전환이 일어난 시간으로 기억할 것이다.
- 패션 에디터
- 이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