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페 2019 미리보기.
5월이 오면 음악 애호가들을 설레게 하는 축제, 제13회 서울재즈페스티벌이 5월 25일과 26일 올림픽공원에서 열린다. 공식 미디어 파트너인 <더블유>는 지금이 아니면 만나기 어려운 보석 같은 내한 뮤지션과 오랜만에 만나는 국내 실력파 뮤지션 삼인방의 어느 멋진 순간을 촘촘하게 담았다. 선선한 바람, 황홀한 음악, 취향 좋은 사람들이 모이는 최고의 음악 축제 속으로 떠날 시간!
서재페 2019가 아니면 보기 힘든 그들
말은 이렇게 해도 또 봤으면 좋겠다. 올해 서울재즈페스티벌(이하 서재페)이 지나면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다시 볼 수 있을지 알기 힘든 아티스트들이 있다.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살아 있는 전설 오마라 포르투온도 OMARA PORTUONDO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을 아는 사람이라면 오마라 포르투온도를 당연히 알 것이다. 사실상 유일한 여성 멤버이며, 원년 멤버가 모두 세상을 떠난 지금 남아 있는 유일한 멤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음악에 깔린 쿠바의 역사와 아픔을 제대로 모른 채 음악을 즐겼지만, 분명한 것은 음악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정도로 뛰어났다는 것이다. 쿠바의 음악, 쿠바의 재즈에는 고유의 에너지와 분위기가 존재한다. 단순히 멋지다고 표현하기에는 입체적이고, 극적인 요소로 쾌감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깊이와 흥이 동시에 있다. 쿠바의 위대한 음악가 중 1930년생인 오마라 포르투온도가 서재페를 위해 한국에 온다. 전설을 눈과 귀로 직접 담고 싶은 이에게는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당신을 눈뜨게 할 그루브 앨로 블랙 ALOE BLACC
EDM 팬이라면 고인이 된 아비치의 ‘Wake Me Up’을 통해 이 사람을 알 테고, 미드의 광팬이라면 키드 커디가 출연한 <How to Make It in America>의 오프닝 곡인 ‘I Need a Dollar’를 통해 이 사람을 알 것이다. 앨로 블랙은 2013년 발표한 자신의 세 번째 정규 앨범이자 첫 메이저 앨범인 <Lift Your Spirit>을 통해 그래미 어워드에 후보로 오르는 등 진가를 인정받으며 대중에게 알려졌다. 솔풀한 음색은 가장 큰 장점이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지난 세기의 보컬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원숙한데, 그렇다고 곡을 풀어내는 방식이 고리타분한 것도 아니다. 아비치, 티에스토 등 여러 디제이들과 함께한 곡은 물론 퍼렐의 프로덕션과도 잘 어울리는 것, 수많은 페스티벌과 이벤트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증거다. 그가 두 번 오지 못할 이유는 없다. 다만 한국에서의 인지도, 관객의 반응이 관건이다.
솔 음악의 미래 리온 브리지스 LEON BRIDGES
진정 ‘솔 음악의 미래’라고 부를 만하다. 그는 과거의 멋을 재현하면서도 현재의 멋을 은근히 담아낸다. 음악을 만들고 선보이는 데 있어서 다양한 플랫폼을 쓸 줄 알고, 음악이 보여지는 부분에 있어서도 고민을 많이 하는 만큼 멋진 모습을 유지한다. <Nowness>를 비롯한 힙합 매체에 음악이나 영상을 선공개하는가 하면, 유명 감독들과 수준 높은 뮤직비디오 작업을 해 호평을 받는 행보가 그렇다. 첫 번째 앨범 <Coming Home>은 1950~60년대 솔 음악에 초점을 두었고, 두 번째 앨범 <Good Thing>은 레트로한 감성을 유지하면서도 조금씩 확장을 시도했다. 샘 쿡이나 오티스 레딩 같은 옛 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세대를 불문하고 리온 브리지스의 내한을 두 손 들어 환영할 것.
‘요즘 음악’을 들려주마 라우브 LAUV
한국에서는 확실한 인지도를 구축하지는 못했지만, 그에겐 멋진 이미지가 있다. 2017년 에드 시런의 눈에 띄어 에드 시런 월드 투어에서 오프닝을 맡은 그는 이후 줄리아 마이클스, 트로이 시반, 디제이 스네이크 등과 함께 곡을 발표하며 인지도를 끌어올렸다. 딱 ‘요즘 음악’을 한다. 어릴 때 밴드를 경험했고, 재즈를 공부했으며, 전자음악에 관심을 가졌다고. 대학에서도 음악을 공부한 덕분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자연스레 섞고 넘나들며 제작할 수 있다. 특히 대중적인 감각과 프로듀서, 송라이터로서의 능력이 탁월하다. 찰리 XCX부터 캐시 캐시(Cash Cash)까지 꽤 다양한 이들에게 곡을 줬고, 자신의 곡인 ‘I Like Me Better’도 미국에서 1백만 장 이상 팔렸다. 여러모로 재주 많고 활동도 열심히 하는 인물인데 한국에서는 대중적이기보다 매력적인 아티스트로서의 느낌이 더 강한 듯하다. 아무려면 어떤가. 반갑게 맞아 그를 또 오게 해보자. 이 매력, 한 번만 보고 끝내긴 아쉬우니까.
베드룸 팝 & 오리지널 힙스터 닉 하킴 NICK HAKIM
닉 하킴, 낯선 이름일 수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사운드 클라우드를 중심으로 생겨나는 ‘베드룸 팝’(침실에서 랩톱으로 혼자 좋아하는 스타일을 섞어 만든 음악)을 즐겨 듣는 이들이라면, 리버 티베르나 퓨마 블루, 렉스 오렌지 카운티 등 힙스터들의 음악을 탐닉하는 이들이라면, 서재페 라인업에 오른 닉 하킴의 이름이 더없이 반가웠을 터다. 그의 음악은 ‘얼터너티브 R&B’에 가깝다. 페루와 칠레, 그리고 미국의 음악에서 영향을 받은 그는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사이키델릭 원조 맛집’이다. 모타운 전성기 사운드에서 사이키델릭 솔로 넘어가는 과정의 음악을 기반으로 다양한 변주를 선보이는데, 이 변주 자체가 쉽게 설명할 수 없는 큰 매력이다. 어렵게 썼지만, 그의 음악은 한마디로 과감하면서도 서정적이다. 이번 서재페를, 올림픽공원 일대를 한국에서 가장 힙한 곳으로 만들어줄 인물.
루시드폴의 새로운 앙상블 루시드폴 모르폴린 앙상블 LUCID FALL MORPHOLINE ENSEMBLE
화학 물질 중 하나인 ‘모르폴린’은 전공생이 아니고서야 살면서 들어볼 일이 없을 테지만, 생명공학 박사인 루시드폴에게는 익숙한 단어라 자신의 앙상블에 이름 붙인 것 아닐까 싶다. 그는 지금까지 루시드폴 트리오, 루시드폴 퀸텟, 루시드폴 세미-심포닉 앙상블 등 다양한 편성과 이름으로 공연을 했는데, 모르폴린 앙상블로 공연하는 건 처음이다. 긴 시간 호흡을 맞춰온 피아니스트 조윤성을 비롯해 베이시스트 황호규, 드러머 신동진 등 뛰어난 재즈 음악가들이 모였다. 앙상블 편성도, 멤버 구성도 훌륭하다. 루시드폴이 자주 공연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 조합을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를 일이다. 실내 공연 때면 늘 관객이 대기하는 긴 줄을 만든다는 루시드폴의 명성이 이번 서재페에서도 계속될까?
선우정아의 에너지
투애니원과 GD&TOP에게 히트곡을 써준 작곡가. 하지만 그런 수식 없이 자기 목소리만으로도 승부를 볼 수 있는 보컬리스트. 개성이라는 말이 흔한 세상에서 그 말의 진짜 의미를 되새기게 만드는 음악인. 선우정아는 휘몰아치는 속의 에너지로 음악이라는 생기를 일으킨다.
바로 이틀 전까지 한 달간 소극장 공연 12회를 치렀다. 컨디션은 어떤 상태인가? 매주 목금토일에 공연을 했다. 에너지가 소진됐다고 느낄 새도 없었다. 어제는 오후 3시부터 자정 이후까지 <복면가왕> 특집 녹화를 했다. 길게 달리고서도 공연을 마친 소회를 느낄 여유가 없었으니, 아직 뭔가 끝난 것 같지가 않다.
2017년 <복면가왕>에서 ‘레드마우스’라는 캐릭터로 5연승 가왕의 자리를 지키며 이름을 더욱 알렸다. 선우정아에게 <복면가왕>이란? 아이러니하게 찾아온 인생의 큰 선물. 데뷔 앨범은 2006년에 냈지만, 본격적으로 가수 활동을 한 지는 5년 정도다. 오로지 혼자서 모든 걸 하던 음악 인생이 회사를 만나 한 번 도약했고, <복면가왕> 덕분에 또 한 번 크게 도약했다.
언젠가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했을 때 “제 음악이 대중에겐 너무 어렵나 봐요” 라고 했다.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나? 지금은 그때보다 상황을 좀 이해했다는 점이 다르다. 독립적으로 음악 활동을 할 때부터 내 음악이 어려울 거라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가사나 음악이 난해하다는 반응을 들으면서 왜 그런 말이 나오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럴 수도 있겠네’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활동을 활발하게 하면서, 그동안 내가 대중과 접점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다수에게 다가가기에는 내 음악에 다소 어려운 구석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대중과의 접점 여부 외에 선우정아의 음악이 풍기는 난해함의 이유를 분석해본 적 있나? 보통 가요는 정해진 박자 안에서 음악이 흘러간다. 나는 그런 걸 못 견뎌서 박자를 꼬거나 이상한 소리를 집어넣는다. 최근에는 음악 자체가 아닌, 내 목소리나 외양이 다소 난해한 인상인 것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익숙하고 친숙한 외모라는 게 있지 않나? 그렇다면 나라는 사람의 목소리와 얼굴과 몸으로 어떻게 하면 보다 편안하고 대중적인 이미지를 갖출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그게 요즘 가장 큰 음악적 화두다. 음악이 문제라기보다 음악을 감싸고 있는 포장지가 관건일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음악 생활을 한 유희열 같은 인물도, 아이돌도 선우정아의 음악을 처음 듣고 충격을 받았다는 말을 했다. 솔직한 가사를 포함한 당신의 뚜렷한 개성 때문일 텐데, 선우정아의 뿌리를 구성하는 음악적 체험과 역사가 궁금하다. 가장 처음에는 뮤지컬 영화가 있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본 <사운드 오브 뮤직>처럼 말이 안 통해도 음악으로 통하는 영화의 세계가 내게 미친 영향이 크다. 이후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내 삶이 저렇게 음악으로 가득 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어릴 적 클래식 피아노를 배운 경험은 재즈의 바탕으로 연결된 듯하다. 트렌디한 음악을 물론 좋아하지만, 여전히 내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장르는 클래식과 재즈 풍이다. 10대 시절에는 내 인생의 대부분을 HOT가 차지했지. 특히 문희준의 팬이었다. 아이돌 가수가 라이브 콘서트를 하면서 원곡의 에너지를 내려면 밴드 사운드 같은 요소를 넣을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록으로, 또 힙합 기반의 EDM과 팝 등등으로 내 관심사를 넓혀갔다.
최근 발표한 곡 ‘백년해로’에 이런 가사가 있다. ‘지겹게 있어줘 절대 먼저 떠나지 말아줘 우리 같이 영원을 꿈꾸자.’ 늘 생각하던 바이지만, 어느 날 문득 옆에 있는 사람이 ‘사라지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떠올려보다 이 가사가 나왔다. 지긋지긋할 때도 있지만, 사랑하는 사이의 사람들은 지겹게라도 서로 곁에 있어줘야 한다.
‘백년해로’를 녹음하며 주마등처럼 스쳐간 장면은 뭔가? 일단 ‘19금’ 장면이 생각났다(웃음). 그런 순간을 성스럽게 음악으로 풀고 싶었다. 노래에 당신과의 모든 걸 기록하고 새기고 싶다, 조금도 틈이 없고 싶다는 가사도 있다. 남편과 결혼을 결심한 결정적 계기가 그의 “너는 나의 가장 가까운 영혼”이라는 말이다. 단지 내게 최고의 남자가 아니라 최고의 존재, 고유한 그 하나의 대상이 지닌 친밀도와 신뢰를 표현하는 말 같았다.
어느 인터뷰에서 남편을 만나고 더 훌륭한 음악을 할 수 있게 됐다고 고백했다. 어쩌면 모든 예술가에게 ‘사랑’이야말로 예술을 구성하는 가장 강력한 감정이 아닐까? 남편과는 고3 때 만나 연애하고 결혼했으니, 내 음악적 발전과 활동에 자연스럽게 그가 존재했다. 각자의 일로 바쁜 나머지 대화는 예전보다 줄어들었을지라도 그와 한번 대화를 하면 근본 자체가 바뀌는 경험을 한다. 아무리 친한 사람과도 나눌 수 없는 이야기를 다 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근본이 흔들리거나 감정이 요동치는 경험을 꼭 좋다고만 할 수는 없는데, 적어도 그 경험들이 나를 고여 있게 만들지 않는다.
예술을, 음악 활동을 꾸준히 지속하게 하는 당신의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나? 결핍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기의 결핍, 스타일 같은 비주얼 면에서의 결핍은 남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직업을 가진 이상 늘 존재한다. 성격으로 인한 용기나 배려심의 결핍마저 에너지로 이어진다. 화가 나고 스스로를 달래줄 필요가 있을 때 파괴적인 창조력이 나오기도 하니까.
결핍이나 열등감 역시 예술가와 직장인을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의 힘으로 작용한다. 누군가는 노력으로 가질 수 없는 선우정아의 재능에 열등감과 질투심을 느낄 테고. 열등감은 유치원 시절부터 나를 움직였다. 그때부터 선생님과 대부분의 아이들이 예쁜 아이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걸 느꼈고, 기질적으로 관심받고 싶은 나는 서러웠다. ‘내가 공주 같은 옷을 입어도 저 아이처럼 될 수 없구나, 그럼 외모와 상관없는 모든 걸 잘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거다. 연습과 집중으로 잘할 수 있는 것들에 노력했다, 사랑받고 싶어서.
5월에 EP를 발매할 예정이다. 어떤 앨범인지 힌트를 준다면? 올해 말, 오랜만에 정규 앨범을 내기 전에 선보일 첫 EP다. 2013년에 낸 2집 <It’s Okay, Dear>로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수우 팝 음반상과 올해의 음악인 상을 받았다. 그 동안 큰 상을 두 개나 받았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거침없이 자유롭고 순수했는데, 여러 상황이 바뀐 지금은? 지금 만든 음악은 어떨까? 온갖 고민이 든다. 그저께 마친 소극장 공연 타이틀이 ‘note’인데, 노트 메모를 뒤적이며 과거 음악 하던 때의 기억을 꺼내보는 콘셉트였다. 과거와 지금의 나는 아무래도 좀 다르지만, 공연을 할 때나 음반 작업을 할 때도 어릴 적 마음가짐을 되새기곤 했다.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서는 어떤 무대를 보여줄 예정인가? 우선 앨범에 실릴 신곡을 외부에 들려드리는 첫 무대가 될 것이다. 브라스가 포함된 편성이 될 것이고, 피아니스트 송영주 쿼텟 무대에도 게스트로 선다. 예전 서재페 무대에 처음 섰을 때도 브라스 밴드와 함께했다. 그때 마음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 것 같아서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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