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간 더블유가 만난 남자들.
<더블유 코리아>는 창간 이래 서울과 세계 곳곳에서 쟁쟁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렇게 14년의 유산이 쌓였고, 이따금 들춰보는 인터뷰 아카이브는 고이 묻어두긴 아까운 언어로 가득하다. 인터뷰의 한 대목이 한 사람의 인생을 모두 대변할 수는 없지만, 여기 다시 꺼내놓은 그들의 말에서 통찰과 재치를, 긍지와 아픔을, 그리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엿본다.
폴 오스터( Paul Auster) 2005년 3월호
“글 쓰는 사람은 자신의 길을 선택한다기보다 선택당한다. 쓰고 싶어서 쓴다기보다 써야 하니까 쓸 뿐이다. 쓰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고, 모든 것이 점점 더 나빠지기 때문에. 좁은 방에 틀어박혀 혼자 앉아,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하는 삶의 방식을 즐기려 택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작가로 산다는 것은 거절당하면서 사는 법을 알아가는 것이다.”
14년 여정의 시작인 <더블유> 창간호, 에디터는 눈보라가 치는 뉴욕에서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밭을 걸어 폴 오스터의 아담한 집으로 향했다. 그에게 ‘당신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이라고 물었을 때, 운명론과도 같은 그의 대답이 돌아왔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Bernard Werber) 2005년 7월호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두렵다. 사람들의 군집에서 죽음의 충동을 느낀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을 보는 관점은 단기적으로 염세주의적이며 장기적으로 낙관주의적이다. 매번 인간이 실수를 할 것 같아 보일 때, 꼭 하고 마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 매번의 실수마다 인간이 결국 배우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인간이 두렵다는 그가 ‘장기적으로는 낙관주의’인 이유는, 인간의 본질에는 결국 사랑이 있기 때문이라고. 인간이란 집단으로 있을 때는 사나운 존재가 되지만, 그 개개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오히려 친절하고 선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론 아라드(Ron Arad) 2006년 5월호
“나에게 아이디어란 너무 흔하고 값싼 것이다. 어떤 아이디어를 찾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슨 아이디어를 퇴짜놓을 것인지가 중요하다. 어떤 아이디어가 아무것도 아니며, 쓸모없으며, 어떤 아이디어에 시간을 쏟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이야말로 중요하다. 세계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사람을 찾아내는 게 문제가 아니라 누가 관심을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으며, 누구에게 시간을 투자하고 싶은지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그걸로 뭘 할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의자부터 건축물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디자인을 선보이는 이 거장은 질문이나 단어를 가지고 농을 치길 즐겼다.
피터 그리너웨이( Peter Greenaway) 2006년 8월호
“내가 하고 싶은 건 가장 우선적이고도 중요한 이미지 메이킹이다. 하긴, 이런 말을 하기에도 너무 늦었지. 영화는 이미 사망했다. 그는 1983년 9월 31일, 전 세계의 거실에 리모컨이 등장한 바로 그날 죽었다. 그리고 난 그의 죽음 앞에 눈물 한 방울 안 흘렸다. ”
1980년대에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로 식욕과 성욕을 파격적으로 다룬 영화감독은 지난 1백 년간 우리가 보았던 건 일러스트가 있는 이야기지, 영화가 아니라고 했다.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 같은 영화들이 특히 그렇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김태호 2007년 5월호
“유재석 씨랑도 얘기했다. 차가 어느 정도 달린 것 같은데 엔진이든 외관이든 바꿔야 하지 않겠냐. 근데 내가 보기에 지금 외관(출연자)은 최고인 것 같으니 엔진(제작자들)을 바꾸면 어떨까. 그랬더니 ‘언제까지 우리가 이걸 할 수 있겠니. 가는 데까진 같이 가자’ 하더라.”
김태호 피디와 유재석은 10여 년 전에 이미 이런 대화를 나눴다. 유재석의 말이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무한도전>은 한국 예능에 한 획을 그은 프로그램으로 남았다.
라이언 맥긴리( Ryan McGinley) 2007년 8월호
“누군가가 눈앞에 홀딱 벗고 서 있다고 상상해봐라. 신경이 온통 그 사람에게 집중되지 않겠나?(웃음) 살결의 느낌, 빛이 몸 위에서 부서지는 방식을 사랑한다. 사실 이제 난, 누가 벌거벗기 전에는 카메라를 집지도 않는다. 농담이다. 내가 매료된 건 누드 자체보다 사람들의 벗은 몸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와 감정이다. 나체가 어우러진 순간을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처럼 담아낸다. 내 사진 속의 누드는 충격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라이언 맥긴리는 줄곧 자기 작품을 순수 예술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그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서 ‘당신은 어떤 사진을 찍나요?’라고 묻는다면, ‘나체주의와 초상 사진, 빈티지 포르노와 스포츠 사진을 뒤섞은 무엇’이라 답할 것 같다고.
장기하 2009년 1월호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는 1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노래니까 그런 걸 하겠다는 건 너무 건방진 얘기지만, 그렇게 정말 멋있으면서도 분명히 대중가요인 걸 만들고 싶다”
데뷔 직후의 장기하에게 하고 싶은 게 어떤 음악인지 물었다. 그리고 장기하의 이 말이 그저 허황된 바람이 아니었다는 걸, 장기하와 얼굴들은 10년간 증명했다.
강동원 2009년 6월호
“김상호 선배님(<타짜>에서 박무석 역을 한 배우)이 송강호 선배님에 대해 그런 얘기 하셨다. “그분이 진짜 좋은 배우니까 가서 많이 배우고 오라”고. 술 취해서 내가 대답했다. “배우긴 뭘 배웁니까? 붙어야죠. 후배라고 배우는 마음으로 들어간다면 작품이 재미없어질 거 아닙니까.” 그랬더니 바로 그 자세라며 칭찬해주시더라.”
<전우치>에서는 김윤석, <의형제>에서는 송강호와 연기한 그에게 ‘기가 센 배우들과 붙었는데 잡아먹힌 거 아닌가’ 하고 물었더니, 잡아먹혔는지 어떤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며 그가 한 말.
테디 2009년 8월호
“사람이 가장 조심해야 할 때가 가장 잘될 때라고 생각한다. ‘나쁠 때 너무 슬퍼하지도 말고 좋을 때 너무 기뻐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좋으면 좋은 만큼 나쁜 게 따라오고 나쁘면 나쁜 만큼 좋은 게 따라오는 거니까 너무 슬퍼하거나 기뻐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나도 늘 어떤 상황에서든 덤덤해지려고 한다. 솔직히 말하면 ‘테디신’, 이런 말 듣는 거 너무 민망하다.
이 인터뷰는 빅뱅과 2NE1이 대히트를 치던 무렵에 이뤄졌다. 지금 묻고 싶다. YG의 테디 프로듀서님, 요즘에도 덤덤한가요?
정윤호 2009년 11월호
“매니저 형이 저더러 철인3종 경기 나가도 되겠대요. 웬만한 스턴트는 직접 하거든요. 연기를 처음 시작하는 입장이라 그런지, 열정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동방신기 처음 들어왔을 때도 그 마음이었어요.내가 동방신기니까, 이제 몸이 편하다고 생각하면 이 대본을 읽을 필요도 캐릭터를 이해할 필요도 없는 거잖아요.”
유노윤호 아닌 정윤호로 <맨땅에 헤딩>이라는 드라마에 도전하던 때. 실제 유리창을 깨고 2층에서 뛰어내리거나 한강에 몇 번을 풍덩 빠진 이 신인배우의 자세는 아마 지금도 마찬가지일 거다.
데이비드 린치( David Lynch) 2010년 7월호
“누군가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건 거의 마법과 같은 사건이다. 사실 흥미로운 것은 도처에 존재하고 우리는 그 안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대부분의 시간을 평범한 것들에 젖어 살아가다 가끔 흥미로운 생각과 만나게 되고, 드물게는 소름끼치도록 멋진 걸 떠올리는 식이다. 내가 쓴 책 <데이비드 린치의 빨간 방(원제:Catching The Big Fish)>에도 언급했듯이 아이디어에 대한 갈망은 낚싯바늘 끝에 걸린 미끼와 흡사하다. 무언가를 원하면 그걸 찾을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갈망으로부터 시작되고, 그로 인해 나를 조금이라도 설레게 하는 무언가가 얻어진다면 이 역시 더 큰 발상을 위한 미끼로 쓰인다.”
데이비드 린치, 그는 현존하는 영화감독 중 가장 위대한 감독을 꼽자면 몇 손가락 안에 의심 없이 넣고 싶은 이름이다. <블루 벨벳>, <멀홀랜드 드라이브>, <인랜드 엠파이어> 등 악몽처럼 매혹적인 영화를 만드는 그가 디올과 손잡고 마리옹 코티야르가 출연하는 패션 필름 <레이디 블루 상하이>를 만든 덕에 <더블유 코리아>는 그를 인터뷰할 수 있었다.
방시혁 2011년 2월호
“모든 걸 다 갖춘, 전형적인 본격 아이돌은 더 철저히 준비해서 2012년에 데뷔할 것 같다. 방탄소년단이라는 힙합 크루가 있는데, 언더 힙합 신에서는 이미 기성 래퍼들이 인정하는 친구들이다. 물론 얼굴이나 춤도 되고.” “어느 심리학자가 나를 신기하다고 분석한 일이 있다. 극도의 이상주의자이면서 또 현실을 잘 헤쳐나가는 양면을 갖고 있다고. 모범생에서 출발해서 막장 날라리까지 갔다가, 다시 공부를 해서 교수 되는 줄 알았다가, 지금 음악을 하고 있다. 이런 이율배반적 성격과 경험이 결합해서 나라는 사람을 만든 것 같다.”
방시혁은 애초 ‘음악 한류’라는 게 오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단다. 또 음악 산업의 환경으로 인해 음악이 하찮아진다는 게 서글프지만, ‘상품 생산자’로서는 살아남아야 하니까 슬퍼하고 있을 틈이 없다고.
지드래곤 2011년 4월호
“쉬면서 음악 프로그램들을 봤는데 꼭 어떤 음악 스타일이 문제가 아니라, 음악 자체에 대한 소비가 빠르게 흘러가는 게 아쉬웠다. 예전에는 어떤 노래가 곧 그 음악을 듣던 시절에 대한 추억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음악이 향수나 추억이 되어주지 못한다. 난 그런 걸 만들고 싶었다.”
1970년대를 풍미한 포크송 가수가 한 말이 아니다. <미니앨범 4집>이라는 타이틀로 2년 만에 앨범을 낸 빅뱅이 ‘투나잇’이라는 곡을 발표한 후, GD가 한 말이다. 하기야 K–POP이 향수와 추억이 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서도호 2012년 4월호
“아티스트로 살아남으려면 좀 바보스러운 부분이 있어야 하는 거 같다. 나는 답을 못 구하더라도 계속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만드는 작품이 완성될 때쯤 구하는 답이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동시에 또 다른 질문이 생겨나기도 해서, 작업을 마치면 마음은 딴 데 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애착이 아마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덜할 거다. 가끔 작품이 뱀의 허물 같다. 그 순간에는 분명 작품과 같이 살지만 다음 순간에 나는 다른 데 가 있으니까.”
서울에 오래 부재한 서도호는 환영이나 전설처럼 언급되던 이름이었다. <더블유>는 런던 아틀리에로 찾아가 이 설치미술가를 만났고, 얼마 후 서울 리움에서 오랜만에 열린 서도호의 개인전에서는 그가 유년기를 보낸 성북동의한 옥부터 13년간 살던 뉴욕 아파트까지, 각기 다른 색의 천으로 재현된 실물 사이즈의 집이 세워졌다.
기욤 뮈소(Guillaume Musso) 2012년 7월호
“매일 이야기를 적는 것 역시 상상력을 자극하는 훈련이 된다.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영감이나 상상력이 벼락처럼 닥치기만 기다린다면 글은 영영 쓸 수 없을 거다. 일단 컴퓨터 앞에 앉아 1시간, 혹은 2시간씩 머리를 싸매야 한다. 어쩌면 3시간째에는 기막힌 아이디어가 반짝 떠오를 수 있다.”
사후 세계, 시간 여행, 마약 범죄 같은 다양한 장르적 설정 안에 연인들을 밀어 넣는 이 소설가를 파리에서 만났다. 그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뭔가 쓸 일이 있다면 일단 진득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어야….
류이치 사카모토( Ryuichi Sakamoto) 2012년 8월
“피아노가 처음 나온 시절, 베토벤을 비롯한 당시의 많은 음악가들에겐 피아노가 최첨단의 새로운 테크놀로지였다. 이 신기술을 통해 주옥같은 곡이 탄생했고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가 만일 현재에 살았다면 아마 그들은 컴퓨터나 미디를 이용해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지난해 서울 피크닉에서 열린 <류이치 사카모토 : Life, Life>는 클래식부터 전자 음악과 영화 음악까지, 경계 없는 예술의 산증인인 그의 세계를 종합적으로 조명한 전시다. 2014년 인두암 판정을 받고 모든 공식 활동을 중단했던 그가 내한하여 얼마나 반가웠던지.
시게루 반( Shigeru Ban) 2012년 8월호
“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건축가는 주로 특권 계층을 위해 일하는 직업이었다. 부와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고객이 되는 경우가 잦은데 어찌 보면 당연하다. 내 능력과 지식으로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접한 게 재해 지역의 실상이었다. 살 곳을 잃은 이들만큼 간절하게 건축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또 어디 있겠나. ”
종이 파이프를 활용해 신속하게 조립하고 언제든 해체할 수 있는 집을 짓는 건축가. 전략적으로 설계된 랜드마크들이 도심 한가운데 부리를 박고 서서 높이와 덩치를 과시하는 동안, 시게루 반의 소박한 교회와 콘서트홀, 가설 주택은 도움이 절실한 이들을 찾아 부지런히 움직인다.
이우환 2012년 9월호
“한국사람들이 미술사에서 쓰는 ‘자연스럽다’는 말이야말로 문제가 있다. 전 세계에 자연을 안 가진 나라는 없다. 인공적, 인위적인 게 덜하다는 뜻이겠지만 자연은 일단 문화에 대비되는 개념 아닌가. 많은 서양 사상가들은 자연을 폭력적이고 무질서하고 카오스한 상태로 봤다. 그러니까 이를 통제하기 위한 질서를 제시하고 다시 짜야 한다는 거다.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건 서양인들 사고방식으로는 아무것도 안 했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다. 한국적 미를 설명하는 어휘를 개발해야 한다. 내가 이런 쓴소릴 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늘 욕을 얻어먹는다.”
한 점으로부터 무한으로 뻗어간 화가. 파리 아틀리에에서 진행한 이 인터뷰에서 그는 깊은 문화 역사로 인해 미술사적인 배경을 중요시하는 유럽과 워낙 다인종으로 구성되어 배경 자체보다 ‘미국’이라는 이름 아래서 문화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는 미국적 태도의 차이 등에 대해 자신이 경험한 바를 구체적으로 들려줬다.
웨민쥔(Yue Minjun) 2012년 10월호
“작품 하나만 두고 예술을 이야기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작가의 배경과 관람객이 속한 배경이 그 위에 겹쳐질 때 비로소 예술이 완성된다. 만약 내 그림 속 사람들이 행복해 보인다면 그건 감상자가 행복하기 때문 아닐까? 서글프거나 난처해 보이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중 어느 하나를 오독이라고 규정짓고 싶지는 않다.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하늘과 바다도 아름답게만 보인다.”
이가 다 드러날 정도로 활짝 웃는 인물 군상을 그리는 웨민쥔. 이 화가의 작품 배경에는 중국의 어두운 현대사가 깔려 있지만, 그의 그림을 유쾌한 팝아트로 오독하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가 한 말이다.
송중기 2012년 11월호
“노인네 같은 얘기일 수도 있지만 ‘물 흘러가듯’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예전에는 내 외모의 한계가 상처가 됐다. 예를 들어서 ‘더블유 화보는 찍었지만 지큐랑 에스콰이어는 왜 촬영하자는 얘기가 없을까. 나한테 남자 냄새가 안 풍기나?’ 속상한 거다. ‘나는 왜 누아르가 안 들어오지?’ 이런 느낌인 거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게 지금의 난데 어쩌겠나.”
이제 우리가 아는 송중기는 <더블유>는 물론 <지큐>와 <에스콰이어> 화보도 찍었고, <태양의 후예>와 <군함도>에서 테스토스테론 냄새도 풍겼다. 그는 물 흘러가듯 성장하며 남자가 되고, 배우가 됐다. 중기님, 이제는 안 속상하죠?
- 피처 에디터
- 권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