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에베 서점

사공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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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에 방문해 그에게 영감을 주는 것들을 사 모으기를 망설이지 않는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너선 앤더슨은 지난해 11월 아시아 최초로 로에베 프리뷰와 파티를 위해 한국에 방문. 바쁜 시간을 쪼개 더블유와 조금 독특한 여정으로 한국을 탐험하는 시간을 보냈다. 서울의 패션 디자이너를 만나지도, 전통 의상인 한복을 보러 간 것도 아닌 황학동 시장을 향했고. 오리 나뭇조각과 한국 밥상인 소반을 구매했다. 코가 시린 날씨 탓에 짙은 색 패딩 점퍼를 걸친 그는 낯선 곳을 탐구하는 탐험가의 모습과 같아 보였다.

한국을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 직접 민속박물관을 다녀와 전통사물들에 담긴 의미와 활용방법을 충분히 이해하고 인사동 골동품 거리와 황학동 도깨비 시장을 향했듯 그는 단순히 사 모으는 행위를 뛰어넘어 새로운 것의 의미와 가치를 수집하는 좋은 취향을 가졌다. 그렇게 양병용 작가의 소반을 사고, 도자기에 꽃을 꽂아 둔다.

그렇기에 조너선 앤더슨을 패션 디자이너로 한정 지어 소개하기 아쉬운 인물이다. 그는 대단히 열정적인 예술품 컬렉터이자 로에베 옷을 디자인하고 특히나 요즘은 매거진을 만드는 편집자에 고전문학 전집을 소개하는 큐레이터 역할까지 소화한다. 패션 브랜드를 이끄는 디자이너가 어떤 이유로 책을 만들게 되었는지, 그가 만든 책 속에는 어떤 내용과 사진이 담겼는지 궁금해졌다.

일주일 전 로에베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새롭게 나온 로에베 팬진(Fanzine) <EYE/LOEWE/YOU>의 세 번째 이슈 출간을 기념해 하루를 꽉 채워 스토리즈와 사진 게시물로 이를 알렸고 홈페이지에도 팬진의 제작 과정과 일부 사진을 공개했다. 로에베 매거진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책은 포토그래퍼 스티븐 마이젤이 찍은 사진으로 분기별로 출간되며 조너선 앤더슨이 직접 구성에 참여해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첫 번째 이슈가 출간되었을 때 ‘잠잘 시간도 부족할 것 같은 그가 직접 매거진까지 만든다고 하니, 이것이 지속적으로 출간될 수 있을까’라는 쓸데없는 염려를 잠재우듯 두 번째에 이어 세 번째 이슈가 출간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고전문학 6권 시리즈를 엮은 ‘로에베 클래식’도 소개되었다. 슬리브에 들어간 감각적인 사진은 스티븐 마이젤의 아카이브 사진으로 탄탄한 하드커버로 구성됐다며 올여름 독서 리스트로 소개한 것. 하마터면 서점 또는 출판사의 계정인 줄 착각할 뻔했다.

지난 1월 2018 가을 남성 캠페인을 통해 조너선 앤더슨과 포토그래퍼 스티븐 마이젤의 고전 시리즈 출간 프로젝트에 관한 힌트를 첫 번째로 공개한 셈인데, 영국 배우 조시 오코너(Josh O’Connor)가 읽고 있는 보바리 부인(Madame Bovary)(1857)이라는 소설책의 슬리브엔 2006년 스티븐 마이젤이 찍은 미국 <보그> 사진이 숨은 그림 찾기처럼 자리 잡았다. 얼핏 보기엔 따뜻한 햇살 아래 잘생긴 청년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국 독립 필름 어워드에서 베스트 배우 상을 받은 라이징 스타와 1800년대 완성된 고전 소설, 그리고 영향력 있는 사진가의 에디토리얼 이미지의 만남. 즉 200년을 뛰어넘는 시대를 초월했지만 원래부터 함께 였듯 클래식한 무드를 이어가는 것이 오묘하게 느껴져 감탄하게 된다. 이 모든 비하인드를 알게 되면 조너선 앤더슨의 좋은 취향과 감각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실제 지난 2018 F/W 컬렉션에 초대된 패션피플과 인플루언서의 좌석엔 6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고전 소설 돈키호테(Don Quixote)가 한 권씩 놓여있었다. 발 빠르게 변화하고 새로움을 지향하는 패션계의 트렌드 흐름 속에서 조너선 앤더슨이 고전을 말하는 이유는 인터넷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독서 자체가 주는 이점에 주목한다. 기억에 더 오래 남을 뿐만 아니라, 옛 글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현대를 살아가는 관점과 재치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너선 앤더슨이 선택한 여섯 권의 로에베 고전 소설 시리즈의 라인업은 <폭풍의 언덕>(1847),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1891), <드라큘라>(1979), <어둠 속>(1902), <보바리 부인>(1857), <돈키호테>(1605)로 총 6권이며 보바리 부인과 돈키호테는 각각의 원어인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로 출간됐다.

<EYE/LOEWE/YOU>는 한정판 인쇄물로, 스티븐 마이젤이 찍은 2018 F/W 캠페인과 콜라보레이션 이슈에 관한 내용이 들어가 있으며 로에베 매장에서 만 날 수 있다.

지난 더블유와의 인터뷰에서 로에베를 문화적인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는 목표를 말하며 럭셔리는 그저 좋은 옷을 파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문화 예술과 소통하는 것 이라던 그의 방향성과 일맥상통한 행보를 증명하고 있다. 고전 시리즈를 소개하고 브랜드 자체 팬진 <EYE/ LOEWE/ YOU>를 묵묵히 만들어가는 것. 로에베가 책을 만들고 소개하는 것이 새롭지만 로에베스러운, 조너선 앤더슨 다운 행보임엔 틀림없어 보인다.

프리랜스 에디터
오지은
사진
Courtesy of Loe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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