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리플라이가 6년 만의 앨범으로 돌아왔다. 그사이 30대가 된 두 사람은 멀리 닿지 못한 꿈을 아쉬워하기보다 곁에 있는 아름다움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CD 포장이 잘 뜯어지지 않아 초조하게 비닐을 벗기고, 두근거리며 플레이어에 넣고서 소리가 흘러나오길 기다렸다가 트랙이 넘어가는 한 곡씩 순서대로 가사집을 꺼내 읽으며 듣는 일. 2017년에 웬 응답하라 시절 이야기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고전적인 방식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을 수신자로 상정하고 묵묵히 자신들의 음악을 띄워 보내는 뮤지션이 바로 노리플라이다. 악기 연주는 반년, 보컬은 4개월 이상 녹음해서 13곡을 꽉 채워 넣은 앨범에, 러닝타임 5분이 넘는 곡이 네 개나 된다. 기승전결로 이야기를 펼쳐가면서 이전 앨범과의 연결고리까지 염두에 두었으며, 엘지 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발매 공연에서는 20인조 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에 선다.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작업해 6년 만에 세상과 만나는 노리플라이 3집 <Beautiful>은 천천히 공들여 세상에 도착했다. 전주 10초로 곡을 판단해 스트리밍을 멈추고, 시간 단위로 차트가 바뀌는 시대에 아주 구식으로 진지하게 말이다. 진득하고 충실한 두 사람은 중학생 때 동네 형 동생 사이로 만난 20년지기다. 피아노를 치는 권순관이 나뭇잎 하나하나의 다른 초록을 세밀하게 그려가는 타입이라면 기타를 맡는 정욱재는 숲의 전체를 조망하고 길을 잃지 않게 지도를 본다. “음악은 한순간에 결정 나는 게 아니라고 믿어요. 듣고 또 들었을 때 마음을 움직이는 곡을 제가 좋아하는 것처럼 누군가는 그렇게 느낄 거라 기대하구요.” 권순관의 말처럼 노래는 누군가를 찾아갈 것이다. 느리게, 하지만 틀림없이.
W Korea 3집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를 2년 전부터 들은 듯 한데 드디어 완성이다.
권순관(이하 권) 큰 그림에서 세부로 나아가며 시간 배분까지 고려하는 걸 어려워하는 스타일이다. 처음에 구상한 숲이 있어도 쪼개서 시작하는 게 편하고, 나무 하나하나의 디테일에 꽂혀서 그걸 해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가 있는데, 넘어가서도 자꾸 뒤를 돌아보며 의심하는 편이라고 할까. 그러다 아니다 싶으면 엎기도 하고. 그러면 아무래도 진도를 나가기 어렵겠다. 꼼꼼하게 작업하느라 오래 걸렸나 보다.
정욱재(이하 정) 형이 세부적인 데 집착하는 면이 있다면 그 부분을 걷어내려고 커뮤니케이션하는 게 내 역할이었다. 그러다 서로 감정이 상할 때도 있었지만 둘 중 한 사람은 그런 역할을 하는 게 바람직하니까.
3집 발매에 대해 ‘대작의 향기가 느껴진다’는 기사가 뜨기 시작했더라. 제작비를 많이 썼다는 다른 표현은 아닐까 싶기도 했는데.
권 계산은 안 해봤지만 우리로서는 내 솔로 앨범을 포함해서 역대 가장 많이 쓴 거 같긴 하다. 대작이라는 표현은 아마 우리가 앨범에 담고 싶은 세계의 규모가 커졌다는 데서 왔을 것이다. 머릿속에 있는 큰 세계를 어떻게 하면 음악으로 그려내 설득력 있게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길었다. 그러다 보니 미니멀하지 않은 음악이 많이 담겼다. 5분 넘는 곡이 네 개나 있기도 하고. 우리가 오랜만에 다시 만나서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부담감도 컸던 거 같다. 지금의 음악 시장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러고 싶었다. 대화하듯이 솔직한 구어체 어투와 화법에 사람들이 공감하는 미덕이 있을 거다. 하지만 그런 즉각적인 공감과는 다른 편에서 좀 오래 걸리더라도 돌아서, 깊은 내면적인 이야기를 폭넓게 담아보려고 했다.
정 앨범으로서 가치를 담고 싶었다. 한 곡 한 곡 쉽고 빠르게 소비되는 것보다는 서술적이더라도 이야기를 많이 담을 수 있는 방식인 앨범으로서 우리 30대의 첫 이야기들을 전하고 싶었다.
앨범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겠다는 생각이야말로 디지털 싱글 위주인 요즘 음악의 트렌드와는 역행하는 것 같은데.
정 내 경우 아이튠즈 랜덤으로 플레이하다가 귀에 들어오는 좋은 곡이 있을 때 그 앨범을 쭉 다시 듣는다. 음악의 흐름이나 메시지가 전개되는 게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소설을 읽는 것 같기도 하다. 음악에 있어서는 앨범이라는 게 하나의 최적화된 예술 포맷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아이돌도 아니고 곡을 받아서 내는 가수도 아니다. 스스로 음악을 만드는 아티스트로서 자신을 보여주기에 가장 좋은 형식이 내겐 앨범이다.
권 영화도 아주 짧은 단편이 있지만 장편이 전달할 수 있는 서술의 규모가 있고 남기는 여운도 다르지 않나. 사람도 한 순간에 반하기도 하지만 오래 대화를 나눠봐야 내면을 알 수 있듯이 앨범은 한 음악가에 대해 진하게 알 수 있는 방식이다. 나 역시 음악을 들을 때 앨범을 걸어놓고 다른 일을 할지언정, 한 색채를 쭉 경험하는 걸 좋아한다. 이번에 한 보컬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고 한 엔지니어에게 작업을 맡긴 이유 또한 연결점을 처음부터 끝까지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촘촘히 연결된 부분들을 끝까지 듣는다면 우리의 세계를 좀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지 않을까. 단순히 하나의 노래에 꽂힐 수도 있지만 이 사람들의 음악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깊이 느낄 수 있는 형식일 것 같다.
마스터링을 영국으로 보냈다고 들었다. 녹음은 한국 대중 음악사에서 의미 있는 전통을 가진 서울 스튜디오에서 했고. 이렇게 작업 과정에 공을 들이며 어떤 소리를 구현하고 싶었나?
권 소리도 그림처럼 펼쳐놓으면 제각각 위치가 있는 것 같다. 베이스, 보컬이나 각 악기의 소리가 어디에 자기 자리를 잡는지가 질감을 결정한다면, 귀로 들었을 때 가장 자연스러운 소리의 위치를 찾으려 했다.
정 악기 고유의 소리가 방해받지 않고 들리게 하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3집이기도 해서 우리의 노하우도 쌓여 있었고, 스튜디오도 궁합이 잘 맞았던 거 같다.
권 소리는 감정적인 것과 연결된다. 좋은 환경에서 공들여 만들어낸 소리일수록 더 따뜻하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다. 홈레코딩이나 소규모 저예산 작업이 어울리는 결과물도 분명 있지만, 우리가 이번 3집에서 준비한 음악은 좀 더 거대했다. 더 멀리 가야 닿을 수 있고 크게 봐야 보이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하나하나 신경 쓰지 않으면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천천히 공을 들여서 탑을 쌓으려 했다.
정 나일론 기타로 한 첫 녹음이 재작년 겨울쯤이었으니까 꽤 오래 걸렸다. 출근하듯이 스튜디오에 가서 악기 녹음에만 반년 이상, 보컬 녹음에도 4~5개월이 걸릴 정도로 공을 들였다. 작년에는 녹음 외에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다.
1집 <로드>, 2집 <드림>이 20대의 방황이나 이상을 이야기 했다면 <뷰티풀>이라는 앨범 타이틀은 좀 더 넓어진 화두를 던지는 것 같다.
권 앨범 제목은 3년 전에 정했다. 이전의 노리플라이 음악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향점이 멀고, 그래서 헤매기도 하고. 여전히 방황은 있지만,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 바뀐 것 같다. 먼 꿈을 쫓아다니느라 가까운 곳을 보지 못했다.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욕구가 컸다면, 지금은 내가 누리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임을 알게 됐다.
정 여행을 하다 보면 먼 곳에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볼 수 있다.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 일상의 작은 것에 가치를 두고 감사하는 태도가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 같다.
앨범 발매 공연을 엘지아트센터에서 연다. 대중음악 공연이 자주 열리는 곳이 아닌데 감회나 각오가 다르겠다.
권 거기서 김동률, 팻 메스니 같은 좋은 공연을 많이 봤다. 음악이 전해주는 감동이 있는 공연장이라 생각하는데 우리가 공연할 때는 어떨지 지금도 상상이 어렵다.
정 <페스트>라는 뮤지컬을 보러 엘지아트센터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잘 들리더라. 그때는 내가 그곳에서 공연하게 될 줄 몰랐는데 지금은 부담이 되기도 한다. 새로운 곡이 많아서 모두 연습을 새로 해야 하니까 막막한 기분이 들긴 한다.
권 조명이나 공연의 콘셉트와 흐름에서 새롭게 시도하고 투자하는 요소가 많다. 하지만 곡 작업이 길어지면서 그 곡에 대한 노련함이나 이해도가 높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점은 믿는 구석이다. 여러 번 합을 맞춰온 연주자들이고,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도 1집 때부터 함께해온 교수님이다. 음악 자체로는 자신이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무대에서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면서 서로 시너지를 내다 보면 연주자들이 한 덩이가 되는 느낌이 온다. 처음부터 그게 발동이 되면 그 공연은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다. 그럴 때 어떤 의미에서는 앨범을 뛰어넘는 공연이 나오는 것 같다.
그 한 덩이가 쉽게 오진 않는다는 얘기일까?
권 많은 연습과 자신감이 있어야 가능하다. 단독 공연은 40~50퍼센트 정도는 오는데, 페스티벌 같은 무대에서는 그 무대가 주는 집중도가 다르기 때문에 자주 오진 않는다. 여섯 곡쯤 연주하고 나서 찾아오기도 한다.
앨범 준비하며 두 사람이 서로 부딪치고 충돌한 건 어떤 경우였나?
정 각자 곡을 쓰는 사람이다 보니까 가사를 두고 서로 많이 물어보지만 양보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코어한 부분의 콘셉트는 스스로 잡았던 부분으로 가려 하기 때문에 조금씩 부딪치는 경우가 생기는데, 서로 설득하려고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가진다.
권 욱재는 일을 계획적으로 해야 되는 타입인데 그 계획을 내가 따라가주지 않으니까 답답할 것이다. 시간 개념보다는 결과를 생각하는 주의라서 나 때문에 스태프들이 지치는 상황이 빈번했던 거 같다. 게다가 과묵한 욱재가 힘든 걸 내색하지 않다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있다.
앨범 마지막 트랙인 ‘여정’이 가장 먼저 공개된다.
권 익숙한 곳을 떠나야만 하는 여정을 담은 노래다. 누구나 각자의 자아를 떠나 더 큰 삶으로 나아가야 하는 시점이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편한 환경을 누리면서 음악을 하며 살고 있는데,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을 떠나 다른 사명을 따라 살아야 하는 시기가 올 거라는 생각을 하며 만든 곡이다.
‘끝나지 않은 노래’ ‘노래할게’ 그리고 이번 앨범의 ‘Reply’까지 노래에 대한 노래가 항상 들어간다.
권 앨범과 앨범 사이의 연결 고리를 염두에 뒀다. ‘Reply’는 2집 ‘노래할게’라는 곡을 상기시켜준다. 음악도 삶도, 지난 시간이 다져져서 지금의 시간이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정 제주도에서 엄청난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는데 그 노래 멜로디가 떠올랐다. 우리는 음악인이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바로 노래 만드는 거다. 그 노래를 통해서 내 자신이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계속 노래하는 우리의 과업 같은 거니까, 노래에 대한 메타포가 계속 이어지는 거 같다.
더 자세한 인터뷰는 더블유 4월호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 에디터
- 황선우
- 포토그래퍼
- YOON MYUNG SUB
- 스타일리스트
- 차주연
- 헤어
- 오종오
- 메이크업
- 백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