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한층 트렌디해진 퍼(Fur)의 세계.
리얼 퍼, 일명 ‘모피’는 오랫동안 어른들의 옷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아우터로서의 퍼는 사모님의 전유물로 여겨진 밍크 코트, 입는 순간 ‘음악의 신’ 이상민이 강제 소환되는 길고 풍성한 힙합 풍의 퍼 코트 등으로 대변됐다. 디자인은 하나같이 비슷하고 어두웠고, 20, 30대가 입기에는 가격 부담이 너무 컸다. 자연스레 젊은 층은 가격도 저렴하고 다양한 컬러와 디자인으로 무장한 페이크 퍼로 눈길을 돌렸다. 컬러풀한 색감으로 사랑받은 해외의 쉬림프나 국내의 래비티 등 페이크 퍼는 금세 소비자들의 마음을 훔쳤다. 이때쯤 리얼 퍼 역시 변화에 나섰다. 보수적인 디자인으로 일관하던 리얼 퍼가 점차 경쾌한 컬러를 입고 장식을 더하며 젊은 층을 유혹하기 시작한 것이다. 1910년 모피 사업으로 시작, 프라다, 생로랑 등과 함께하며 모피 역사를 이끌어온 이브 살로몬(Yves Salomon)이 그 변화에 앞장섰다. 브랜드의 뿌리가 되는 메인 컬렉션 외에 패턴, 프린트뿐 아니라 블루종과 같은 다양한 디자인까지 젊은 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캡슐 컬렉션’과 트리밍 방식으로 캐주얼한 디자인을 보여주는 ‘아미(Army) 컬렉션’까지 새롭게 선보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따끈따끈한 신생 브랜드의 움직임이다. 특히 국내에선 젊은 디자이너들이 주도하는 젊은 레이블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추세다. ’00 모피’로 점철되던 기존의 브랜드명에서 벗어난 세련되고 감각적인 이름으로 소비자들을 움직인다. 분더샵, 쿤 등 젊은 층이 주로 찾는 청담동의 가장 핫한 편집숍에서 판매되는 현상을 보아도 그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잘루즈(Jalouse)는 20~30대를 겨냥해 영 패션 모피 시장을 공략한다. 밝고 화사한 분위기로 데일리 퍼 룩을 제안하고 있다. 기존 리얼 퍼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핑크, 블루, 베이지 등 컬러풀한 색감과 스트라이프, 컬러 블록이 특징이다. 리퍼(Refur)는 액세서리 브랜드 ‘넘버링’의 디자이너 김누리가 2016년 론칭한 퍼 브랜드다. 모피가 가지고 있던 보수적인 이미지에 트렌드를 가미한 첫 프레젠테이션은 성공적이었다. 20~40대의 스타일리시하고 세련된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만큼 조금은 발칙한 무드를 보여주는 것이 특징. 웨딩 디자이너 케일라의 케미(Kay+Me) 역시 2016 F/W가 첫 시즌이다. 우아함과 시크함을 느낄 수 있는 리얼 퍼와 트렌디하고 스타일리시한 페이크 퍼 컬렉션을 동시에 진행한다. 클래식과 과감함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는 균형 잡힌 룩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캐주얼 브랜드 지컷(G-Cut)은 퍼 캡슐 컬렉션 ‘Fur Weather’를 새롭게 전개한다. 페이크 퍼와 리얼 퍼를 믹스했고, 이 시도는 퍼의 접근에 대한 부담감을 줄여주었다. 이처럼 젊은 브랜드들은 젊은 감성에 가격도 낮췄지만 품질은 최고급을 지향한다. 고급스러운 품격에 더해진 다양한 디자인과 자유로운 스타일링. 오늘도 퍼는 시간을 거꾸로 달린다.
- 에디터
- 정환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