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컬러를 좋아하든지 싫어하든지, 여성에게 이만큼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색도 없다. 올 가을, 거리는 핑크빛으로 물들 것이다.
핑크에 대한 감정은 태어난 시대와 성별 그리고 엄마가 얼마나 이 색을 강요했는지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1902년에 태어난 우아한 레이디라고 가정해본다면, 아마도 당신은 핑크야말로 가장 완벽하고 매력적인 컬러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시기도 아주 잠깐, 안타깝게도 갓 태어난 남자 아기들에게 빼앗겨버리고 만다.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 1402년에 태어난 화가일 경우, 핑크는 저주이자 기쁨이자 성가실 정도로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컬러다. 아기 천사의 통통하고 건강한 핑크빛 뺨을 캔버스에 정확하게 묘사하기 위해 밤낮없는 고민이 이어진다. 새벽까지 겨우 그림을 완성했다 하더라도, 당시의 조명은 그야말로 끔찍했다. 당연히 낮에 그림을 꼼꼼히 검토하면서 시노피아(적갈색 안료)에 흰색과 라임을 섞어 다시 칠했다가 말리고 또 다시 칠했다가 말리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중세는 물론이고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 속에서 핑크를 표현하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또 만일 1992년 이후에 태어났다면 핑크와 함께하는 인생이 시작된다. ‘대디스 리틀 프린세스(Daddy’s Little Princess)’ 드레스를 필두로, 알록달록한 침실 세팅엔 핑크빛 조랑말 인형이 필수적으로 자릴 잡게 된다. 적어도 질풍노도의 반항기를 거쳐 과격한(?) 십대 고트족으로 변신하기 전까진! 그래서인지 어른이 되어갈수록 당신은 핑크색을 더욱 증오하고 경멸하고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사실 핑크는 수많은 혐오자를 거느렸고, 이 색만큼 이렇게 폭력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컬러도 없지 싶다. 하지만 옛날의 핑크는 그야말로 순수했다. 호머(BC 800년경 그리스 시인)는 ‘아침의 아이, 분홍빛 손가락 같은 새벽(The Child of Morning, Rosy Fingered Dawn)’이라는 시구를 남겼고, 당시 그리스에는 핑크라는 단어가 없었지만, ‘로지(Rosy)’라는 표현은 사랑스러운 핑크를 의미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arvard Business Review)의 2011년 분석에 따르면 여성들은 과반수 이상이 핑크를 싫어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진짜로 취향이 아니어서 싫어하거나 왠지 싫어해야 할 것 같아서, 핑크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무시당할 거 같아서, 성별을 구별 짓는 컬러여서, 혹은 지나치게 앙증맞은 컬러여서 등등 그 이유도 다양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핑크를 좋아한다. 역사적으로 핑크가 잠시 잠잠했던 소강기에 자란 탓일지도 모른다. 사실 어느 누구도 왜 핑크가 ‘여성의 영역’이 되었는지 그 이유를 만족스럽게 설명하지 못하겠지만, 난 재물의 신 마몬(Mammon)의 유혹과 마케팅 전략 때문이라 생각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핑크는 작은 소년들을 위한 것이었고, 소녀들은 핑크 대신에 옅은 블루를 입었고, 이 색조가 훨씬 더 부드러운 것이라 여겨졌다. 하지만 더 많이 팔리는 상품을 위해 마케팅 팀들은 발상의 전환을 꾀하기 시작했다. 6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바비 인형은 세상에 없었고, 요리에서부터 교육이나 의학 어디에도 핑크가 소녀들의 삶에 스며들지 않았다. 내 경우에도 어머닌 딸의 눈동자 색깔에 어울리는 옅은 블루 원피스를 입혔고, 나중에 노란색으로 갈아탔지만, 적어도 핑크에 대한 강요는 없었다. 반면 안타깝게도 짙은 갈색 머리를 지닌 내 막내 동생은 ‘벗어던지고 싶은’ 핑크의 대열에 합류했으며, 강박증이 꽤 컸던 탓인지 그녀는 거의 40년 가까이 이 색상을 멀리했다!
더욱이 내게는 남들과는 달리 핑크 트라우마에 시달리지 않을 몇 가지 계기가 되는 순간이 있었다. 첫째는 1999년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쥔 귀네스 팰트로가 엷은 핑크빛 랄프 로렌 드레스를 입고 살짝 울먹이면서 수상 소감을 밝힌 일, 둘째는 바비 인형의 진분홍빛 드레스가 해마다 점점 더 노골적인 핑크로 바뀌어갈 무렵 난 신디 인형 그룹으로 합류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셋째는 나치가 수용소에서 동성애자를 식별해 탄압하기 위해 핑크 트라이앵글을 달게 했다는 점이다(당시 왼쪽 가슴에 거꾸로 된 삼각형 모양의 헝겊을 덧대 분류했는데 나중에 동성애 운동과 게이 프라이드의 상징 마크로 사용되었다). 20살 때까지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지만 굳이 핑크의 상징성을 싫어하거나 거부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넷째는 영화 <금발이 너무해>의 리즈 위더스푼! 엘자 스키아파렐리의 쇼킹 핑크 드레스를 비롯해, 그녀는 금발과 핑크라는 어려운 컬러의 조합을 누구보다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실제로 내 마음속에 이 컬러가 가장 강하게 각인된 건 바비 인형 때문도 아닌, 영화 속 인상적인 장면들 때문이었다.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에서 선홍색 스트랩리스 드레스를 입은 채 남자에게 돈을 우려내는 법을 말하는 마릴린 먼로부터 1957년 <파리의 연인>의 ‘Think Pink!’에 이르기까지. 핑크는 강렬한 함축성을 지니고 있다. 물론 아직까진 케이티 프라이스의 승마 테마엔 이 컬러가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곳곳에 스며든 핑크를 통해 다른 컬러와는 확연히 다른 뚜렷한 차별점을 느낄 수가 있다. 일부 여성들은 이를 종교처럼 숭배하기도 하지만, 솔직히 털어놓자면 온통 검은색만을 입는 것보다 온통 핑크만을 입은 모습이 더 기이한 게 사실이다.
핑크는 자기 진화를 한다. 시대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에 때론 당황스럽고 외설스러운 저가의 엉성함을, 또 때론 재키 케네디의 백악관 룩처럼 우아하고 정교한 레이디라이크 룩을 표방하기도 한다. 남자들은 전쟁터에 나갈 때 핑크 리본을 달기도 했고, 울 부클레의 핑크 샤넬 슈트는 불명예스럽게 곳곳에서 카피되기도 했다(재키 케네디가 남편의 암살 당일 입었던 옷 역시 핑크 트위드 재킷이고, 지금은 워싱턴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때론 핑크는 포르노그래피의 상징물이 될 수도 있으며 ‘핑크를 보여달라(Showing the pink)’는 말은 스트리퍼나 포르노 스타들에게는 가장 은밀한 부위를 노출해달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이렇듯 핑크의 이미지는 어린 소녀들에게 잘 어울리는 화사함뿐만 아니라 포르노그래피의 노골적인 유혹까지 포괄한다. 게다가 10살 때까지 별탈 없이 잘 즐겨 입던 컬러였음에도 자아가 강해지면서 완전히 경멸하는 컬러로 돌아서 버리는 아이러니함도 지닌다.
핑크가 갖고 있는 정치적 사회적 모순을 잘 알고 있으며, 이를 요령껏 활용하는 역발상가로는 미우치아 프라다를 꼽을 수 있다. 2015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적당히 톤다운된 핑크를 혼합한 그녀의 무대가 아낌없는 호평과 갈채를 받은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반면 해리엇 하먼(Harriet Harman, 영국 노동당 부당수)은 여성 유권자 공략을 위해 노동당 선거운동용 버스를 핑크로 택 함으로써 스스로 함정에 빠져버렸다. 핑크의 불모지대라 할 정치판에서 유독 방어적인 이 컬러를 사용한 것에 대해 수많은 정치인들이 의아해했다. 그렇다면 그 핑크는 무엇이었을까? 마젠타 핑크 혹은 푸크시아 핑크? 사실, 어느 누구도 핑크의 색감을 한마디로 규정할 순 없다. 완곡한 선홍빛 핑크에서부터 시적인 엷은 장밋빛이나 경고를 불러일으키는 버블검 핑크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아주 다양한 색조를 지닌 컬러이기 때문이다. 현재 유행 중인 컬러는 더티 핑크 혹은 더스티 핑크, 핑크의 순수함이 약간 탁하거나 쿨하게 톤다운된 컬러다. 하지만 하먼의 버스는 톤다운되기보다는 선명한 푸크시아와 마젠타 핑크에 가까워서, 트위터를 통해 여성 저널리스트의 참여보다는 그 의도를 둘러싸고 시끌벅적한 논쟁과 격분을 불러일으켰다.
미우치아의 컬렉션 역시 헤드라인을 장식했지만 반응은 정반대로 긍정적이다. “핑크가 역설적으로 보이길 원했어요.” 페미니스트이든지 혹은 안티페미니스트이든지 모두의 눈에 예쁜 컬러로 비치는 파스텔 핑크를 택한 그녀는 쇼가 끝난 후 백스테이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또한 올겨울 컬렉션 곳곳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이 컬러를 두고서 에르뎀 모랄리오글루는 “저도 핑크를 사랑해요. 무엇보다도 다양한 감정과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컬러이기 때문이죠!”라 말한다. 그는 쇼룸에 걸린 핑크 실크 드레스를 가리킨다. “핑크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요. 굉장히 감각적인 컬러죠. 때론 지나치게 걸리시하게 여겨지지만, 그건 당신이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카멜레온 같은 색이라 할까요. 에메랄드 그린과 매치한다면 기이하게 어긋난 느낌이지만, 크림이나 원색의 컬러와 매치할 경우 아주 흥미롭고 섹시한 인상을 줄 수 있죠. 또 검은색 스웨터나 흰색 코트와도 시크하게 잘 어울리고요.”
정치에서와는 달리, 패션에서는 핑크로 실험하는 것이 네 장의 에이스 카드를 쥔 것과도 같다. 네오프렌이나 페이턴트 가죽에 핑크를 접목해 실험적인 룩을 연출할 수 있고, 이를 ‘아이러니한 룩’이라 정의할 수도 있다. 물론 이 룩 역시 대중적으로 확산될 경우 결국 얼리어답터의 신선함이나 기발함도 사라져버릴테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매치스패션닷컴의 공동 창립자인 루스 채프먼(Ruth Chapman)에 따르면 ‘핑크는 잘 팔리는 컬러’다. “특히 블러시 핑크와 파스텔 핑크가 그렇죠. 여성들이 기본적으로 이 컬러에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피부 톤을 돋보이게 만들어주기 때문이에요.” 2012년 초반 질 샌더의 라프 시몬스는 여성스러운 핑크와 50년대 무드로 우리의 기대치를 충족시켰다. 50년대는 핑크가 진정으로 모던한 컬러로 여겨지던 마지막 시대였으며, 핑크 냉장고는 페미니스트의 신념을 배반하는 것이 아니었고 획기적인 첨단의 아이템이었다.
라프 시몬스의 코트는 대중에게 유사한 효과를 각인시켰다. 패션에 민감한 수많은 여성은 호머의 시구 ‘분홍빛 손가락과 같은 새벽’의 컬러에 반응했다. 쿨해 보이는 핑크는 도브 화이트와 어울려 <다이얼 M을 돌려라>의 그레이스 켈리를 연상케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여리거나 감상적인 느낌을 주지 않는 이 엷은 핑크는 수많은 카피를 양산하면서 열풍을 불러일으킨 반면, M&S에서 가을 시즌의 핑크 코트를 론칭했을 때 데일리 메일(Daily Mail)은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시류에 편승하는 급격한 변화’라 꼬집었다.
똑같은 핑크인데도 왜 이 컬러가 등장할 때마다 이중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일까? 때론 숭배시되고 때론 괄시받으니 말이다. 크리스토퍼 케인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핑크가 반복되는 걸 멈추지 못한다”고 말한다. “핑크에 관해선 수많은 편견이 존재하지만, 늘 이 컬러의 클래식함과 중성적인 매력을 사랑해왔어요. 범위가 아주 넓은 아름다운 컬러죠. 개인적으론 핑크로 정면 돌파하기보다는 미묘한 힌트를 주는 걸 더 좋아해요. 핑크는 수많은 의미와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으니까요. 섹시함, 저급함, 여성스러움, 아이 같은 순수함, 나약함, 외설스러움, 귀여움, 역설적인 차분함 등 이 모두를 지닌 컬러이고 전후의 문맥이나 텍스처에 따라서도 다 달라져요. 특히 난 엘리자베스 여왕이 입은 핑크 의상을 무척 좋아하죠.” 영국 여왕은 최고의 핑크 방어자다. 특히 파스텔 버전에 있어서! 그녀는 다른 어떤 컬러보다도 엷은 핑크를 통해 여성스러움과 위엄을 동시에 드러낸다. 이 컬러만 놓고 본다면 제왕의 컬러라기보다는 지극히 여성스러운 컬러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바로 여기에 포인트가 있다. 여왕다운 위엄을 드러내는 핑크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린 핑크가 우릴 규정하는 것을 멈추게 만들어야 한다.
대신에 우리의 취향이나 미학에 따라 핑크가 규정되거나 활용될 필요가 있다. 핑크를 입은 롤모델들, 이를테면 미셸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안젤라 메르켈, 크리스틴 라가르드(국제통화기금 총재) 등을 생각해보라. 그녀들의 룩은 핑크에 의해 지배당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부드러운 측면을 드러내는 전략일 뿐이다. 89세인 영국 여왕에게도 핑크는 첨단의 에지를 드러내거나 클래식하거나 사회적 허용도의 의미는 아니다. 더욱이 이 올 핑크 룩이 페미니즘적인 신념을 깨뜨리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녀는 여왕답게 컬러를 활용할 따름이다. “핑크는 감정적으로 아주 쉽게 공감을 이끌어내는 따뜻한 컬러입니다.”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크리스 토마주(Chris Toumazou) 교수의 말이다. “핑크는 환자들을 안심시켜주는 컬러이기도 하죠!” 유방암 캠페인에 핑크 리본이 활용되는 것 역시 이러한 연관성 때문이기도 하다. 유방암 예방과 정기 검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에는주로 푸크시아,마젠타,시클라멘 핑크가 사용된다.
핑크는 자선단체나 캠페인의 좋은 의도뿐 만 아니라 마케팅의 생존 전략으로도 두루 활용된다. 한때 여성 마켓을 겨냥해 범위를 축소하되 오직 핑크만을 사용하라는 전략이 있었을 정도로, 핑크는 만병통치약처럼 활용되곤 했다. 물론 이 컬러의 상징성과 수많은 맹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도적인 핑크 공략은 존재한다. “아이러니한 건 가정용 전자제품에 관련된 것이에요. 예를 들어 클라리소닉의 페이셜 클렌징 브러시와 음파 칫솔은 화이트가 핑크보다 두 배는 더 잘 팔려요.” Currentbody.com의 CEO 로런스 뉴먼(Laurence Newman)의 말이다. 하지만 회사는 여전히 핑크 제품을 생산하기를 고수한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를 타깃으로 하는 것일까? “95%는 남성을 위한 것이에요.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내나 여자친구에게 선물할 제품을 구입하는 남자들이죠.” 특히 크리스마스, 어버이날, 밸런타인데이 등에는 핑크를 구입하는 남자 고객들의 매출이 정점을 이루는 시기라 한다. “하지만 여성은 흰색 전자제품을 훨씬 더 선호해요, 집 안 인테리어와도 잘 어울릴뿐더러 선반에 놓기도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죠.” 케임브리지 대학의 정신분석학 교수인 사이먼 배런-코언(Simon Baron-Cohen)에 따르면 ‘의사 결정을 내릴 때 여성들은 대개 감정적인 연결성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고 한다. 감성 지능(정서 지능, emotional intelligence)은 다소 모호한 개념이어서, 남자들과는 달리 여성에게는 전광판의 광고 메시지가 직접적인 설득력을 지니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케팅 전문가들은 ‘의심스러울 때는 핑크를 택하라’고 말한다. 2025년까지 영국의 개인 자산의 60% 이상을 여성이 점유할 것이라는 예측 아래, 만병통치약과도 같은 핑크 전략은 지속될 전망이다. 더욱이 제품 가격이 20~50%까지 더 비싸게 책정되는 이른바 ‘핑크 세금(Pink Tax)’ 역시 마케팅의 일환으로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특히 셰이빙 제품에 관한한, 여성을 겨냥한 핑크 컬러 재포장과 가격 상승이 종종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지만 말이다).
작년 얼스 코트(Earl’s Court)에서 열린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는 순간적으로 내 핑크 팬클럽 카드를 던져버리고 싶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판타지와 가장행렬을 방불케 한 런던 쇼에 무엇보다도 잘 어울렸던 건 다름 아닌 핑크 컬러였다! 최근의 난 평소 쓰던 뉴트럴 계통의 아이섀도에 엷은 핑크와 라일락 컬러를 섞어서 사용하곤 한다. 마치 핑크를 자유자재로 활용한 라파엘로나 프라고나르 혹은 마크 로스코처럼! 월리스 심프슨(윈저 공작 부인)도 핑크에 능수능란한 달인이었다. 그녀는 집 안을 재단장할 때 벽면에 핑크 파우더 퍼프를 터치한 후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 이 색깔에 어울리게 페인팅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엷은 핑크야말로 피부 톤을 가장 화사하게 돋보이게 만드는 컬러다. 게다가 핑크빛 램프갓도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다. “브라운 계통의 아이섀도에 핑크나 바이올렛을 블렌딩하면 훨씬 더 부드럽고 화사한 효과가 나요. 나이가 들수록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죠.” 샤넬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케이 몬타노의 말이다. “브라운만을 단독으로 사용할 경우 평면적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시대에 뒤처진 느낌을 준답니다. 핑크를 아주 살짝만 섞어서 터치해보세요.”
핑크에 대한 우리의 편견과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엷고 화사한 기운을 실은 사랑스러운 핑크의 행렬은 이어지고 있다. 올해 최고의 드레스와 베스트셀링 컬러는 귀네스 팰트로가 오스카 시상식 때 입었던 옅은 핑크색이다. 하지만 이듬해 그녀는 완전히 상반된 블랙 드레스로 돌아섰다는 사실. 한 가지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건 너무 지나친 핑크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 에디터
- 정진아
- photo by
- PATRICK DEMARCHELIER
- 글
- 리사 암스트롱(Lisa Arm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