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18년째를 맞은 오지호는 다시 한번 출발선에 선 기분이라고 말했다.배우로서, 그리고 남자로서 그는 새로운 두려움과 떨림을 배워가는 중이다.
스튜디오에 들어서는 오지호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밤샘 촬영 뒤 간신히 몇 시간 눈을 붙인 그는, 인터뷰를 마치는 대로 다시 현장으로 향할 예정이라고 했다. <처용 2>의 방영 일정이 가까워 오면서 스케줄에 부쩍 쫓기는 듯했다. 이 배우가 지난 시즌에 이어 다시 한번 귀신을 보는 형사로 복귀하는 작품이다. “군 제대 이후로 이렇게까지 짧았던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귀신 보는 형사보다 귀신 잡는 해병대에 가까워 보이는 머리 모양에 대해 묻자 오지호가 예의 서글서글한 미소를 흘린다. 그러면서 1시즌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설명을 들려줬다.
물론 새로운 시즌에서는 처용의 헤어스타일 외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예정이다. 사건은 더 정교해지고 공포의 수위 또한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이 배우가 요즘 가장 두려워하는 건 촬영장의 유령이 아니다. 그는 몇 개월 후면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이 자신을 특히 떨리게 한다고 털어놓았다. 더불어 배우로서의 삶에 대한 생각 역시 깊어졌다는 말을 덧붙인다. 마흔이라는 나이는 오지호에게 요지부동의 ‘불혹(不惑)’이 아니다. 그는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둔 채로 다가올 변화를 기껍게 기
다리는 중이다.
<처용 2>의 첫 방영이 8월 23일로 결정됐다. 현재 촬영은 어느 정도까지 진행됐나? 대략 3회 분량까지 완성됐다. 이야기나 액션의 강도가 높아졌고, 사건 사고의 디테일도 풍부해졌기 때문에 현장에서의 진행 속도는 1시즌보다 더딘 편이다. 그만큼 더 공을 들이고 있다.
시즌 드라마도 처음이고 영화에서도 속편에 연달아 출연한 적이 없다. 이미 호흡을 맞춰본 스태프들과 이미 겪어본 캐릭터를 다시 한번 만들어가는 과정은 그렇지 않은 경우와 어떻게 다른 경험인가? 아무래도 좀 더 많은 걸 살필 여유가 생겼고 그만큼 더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된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익숙하고 편한 환경이다 보니 전에는 하지 못했던 걸 부담 없이 해볼 수가 있다.
액션의 강도가 전 시즌보다 세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칼리 아르니스라고, 영화 <아저씨>도 등장한 필리핀 무술과 인도네시아 무술인 실랏을 적절히 섞는 액션을 시도하고 있다. 모니터링을 해보니 장면들이 상당히 강렬 하더라. 몸이 많이 고되긴 하지만.
격투기에는 원래 관심이 있었던 편인가? 남자고 또 배우니까. 사극의 격투 신부터 킥복싱까지, 지금껏 액션은 종류별로 거의 경험해본 것 같다. 아직 못해본 건 와이어 액션 정도? 그런데 난 또 현실성이 너무 떨어지는 격투 스타일에는 큰 재미를 못 느낀다. 실제처럼 생생한 장면이 더 흥미롭다.
액션 연기를 꽤 즐기는 눈치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아버지가 되면 또 어떤 변화를 겪을까? 어쩌면 결혼보다 더 엄청난 경험일 텐데. 아, 생각해보니 그게 가장 두려
운 일인 것 같다.
기대가 된다기보다는 두려운가? 지금 아내가 임신 5개월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내가 원래 예상과 계획을 미리 세운 뒤 그대로 밀고 나가는 성격이다. 그런데 부모가 되는 일에 대해서는 감을 못 잡겠다. 아내로부터 아이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정말 기쁘면서도 그게 다가 아닌, 뭐라 표현하기힘든 감정을 겪었다. 어떻게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좋은 아빠라는 건 뭘까? 그런 게 궁금하면서 두렵다.
아이들은 원래 좋아하나? 별로 안 좋아한다. 물론 애들을 보고 있으면 예쁜데, 그냥 예쁜 걸로 끝이다. 만지는 것조차 조심스럽고. 그래서 더 겁을 내나 보다.
딸? 아니면 아들? 솔직히 어느 쪽이었으면 하나? 첫째는 딸이었으면 한다. 그래야 동생들도 잘 다독이고, 부모에게도 살가울 테고. 아무튼 장차 셋까지는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셋이면 요즘 기준에는 많은 편인데, 가족 계획에 대해서는 부부가 합의를 마쳤나? 솔직히 아직…. 그래도 둘째 까지는 이미 합의가 됐다(웃음).
어느덧 데뷔 18년 차다. 가끔씩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기 도 할 것 같다. 처음에는 무작정 뛰어들었다가 욕도 많이 먹었다. 내가 너무 무지했던 건가 고민도 하고,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3~4년 지난 시점에서 문득 억울하더라. 살면서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평생 들어보지도 못한 욕을 먹고 있으니까. 그래서 다시 제대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한테 맞는 작품을 찾아가면서 조금씩 선입견을 극복해왔다고 믿는다. 나름대로 힘도 들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다 좋은 기억이다. 그리고
이건 솔직한 심정인데, 난 전보다 지금 더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 같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생각이 많아진 만큼 욕심도 더 커져서 아닐까 싶다.
오지호라는 사람이 배우라는 직업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뭐라고 생각하나? 다른 직업이었다면 이렇게 많은 경험을 쌓고 다양한 인연을 얻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통해서 삶을 배우고 덕분에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배우로 일하면서 삶이 더 풍성해졌다는 생각을 한다.
-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정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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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자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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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석
- 헤어
- 임정호(아우라)
- 메이크업
- 김지영(아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