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용과 스키아파렐리, 그 열정적인 대화

W

1930년대 엘사 스키아파렐리라는 한 여인이 낳은 패션의 혁명은 오늘날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통해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엘사가 당대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영감을 받은 독창적인 초현실주의와 위트 어린 실험 정신, 무엇보다 여성들을 매혹시키는 우아함은 건재하다. 그리고 스키아파렐리(Schiaparelli)의 현재와 미래를 이끌어갈 새로운 수장으로서 첫발을 내디딘 베르트랑 기용(Bertrand Guyon)은 지난 7월 6일, 파리 오트 쿠튀르 데뷔 무대를 통해 스키아파렐리 하우스의 모던한 가능성을 기대하게 했다. 침착하고도 열정 어린 태도로 하우스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그를 <W Korea>가 파리에서 직접 만났다. 여기 가슴속의 엘사와 대화를 나누며 이번 컬렉션을 준비했다고 전한, 한 겸손하고도 진실된 모던 쿠튀리에와 나눈 열정적인 순간이 펼쳐진다.

파리 방돔 21번지(21 Place Vendome)에 위치한 스키아파렐리의 하우스에서 만난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베르트랑 기용. 거실엔 엘사 스키아파렐리를 위해 한 아티스트가 그녀가 좋아하는 모티프들을 콜라주해 완성한 그림이 걸려 있다. 베르트랑과 함께 포즈를 취한 모델 최소라가 입은 의상은 ‘30년대 엘사의 극장’을 주제로 한 데코 프린트 드레스. 새틴 스커트 위에 오간자로 한 겹 더해 프린트를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모델 뒤의 그림 아래 놓인 클래식한 전화기 모티프가 위트 있는 크림색 원형 클러치와 커프는 모두 스키아파렐리 오트 쿠튀르 2015 F/W 시즌 제품 

파리 방돔 21번지(21 Place Vendome)에 위치한 스키아파렐리의 하우스에서 만난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베르트랑 기용. 거실엔 엘사 스키아파렐리를 위해 한 아티스트가 그녀가 좋아하는 모티프들을 콜라주해 완성한 그림이 걸려 있다. 베르트랑과 함께 포즈를 취한 모델 최소라가 입은 의상은 ‘30년대 엘사의 극장’을 주제로 한 데코 프린트 드레스. 새틴 스커트 위에 오간자로 한 겹 더해 프린트를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모델 뒤의 그림 아래 놓인 클래식한 전화기 모티프가 위트 있는 크림색 원형 클러치와 커프는 모두 스키아파렐리 오트 쿠튀르 2015 F/W 시즌 제품

스키아파렐리의 정체성을 근사하게 담아낸 쇼를 잘 보았다. 새로운 수장으로서 펼친 첫 오트 쿠튀르 쇼였기에 궁금한 게 많다. 우선 쇼를 마친 소감은 어떤가.  하하. 그러면 내일까지 인터뷰하면서 아침을 먹을 수도 있겠다(웃음). 사실 그동안 갖고 있던 부담이 싹 사라졌다고 할까. 결과물도 잘 나왔고 말이다. 프레스들의 평가도 다 찬찬히 살펴보았고, 그들의 의견에 대해서도 충분히 수긍한다. 그래서 다음 시즌을 좀 더 마음 편히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첫 쇼였기 때문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의 압박감이 있었을 텐데,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겠다. 물론이다. 가끔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했고, 그럴 때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몇 번이고 다시 했다. 특히 나에게 던진 질문은 지금 내가 하는 것이 스키아파렐리 하우스와의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였다. 그리고 뭔가 공허함도 느꼈다. 어떻게 내가 이 컬렉션을 준비해야 하는지, 생각이 많았다. 

방금 쇼룸에서 당신의 손길이 닿은 옷들을 보고 왔다. 쇼를 볼 때는 미처 알아채지 못한 옷의 디테일이나 매니큐어를 칠한 손 모양의 클러치 같은 액세서리에서 엘사 스키아파렐리가 남긴 패션 유산의 상징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쿠튀르 터치의 바이커 재킷 앙상블은 매우 신선했다. 그러니 안심해도 된다는 말이다(웃음). 혹시 당신이 힘들거나 스스로의 작업에 의심이 들 때, 스키아 파렐리의 뮤즈인 파리다 켈파가 어떤 조언을 건넸나? 사실 컬렉션에 대해 집중적인 이야기를 나눌 정도의 여유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녀와 나 사이에는 좋은 연결 고리가 있다. 그래서 쇼를 준비하는 동안 자연스러운 대화가 오갔다. 돌이켜보면 난 언제나 그녀가 하는 말에 귀 기울 이고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다른 이유를 차치하고라도 난 여성을 위한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이기에 한 훌륭한 여성의 의견을 듣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특히 쿠튀르 패션을 입는 여성 말이다. 

스키아파렐리의 새로운 디자이너로 ‘베르트랑 기용’이라 는 이름이 호명되었을 때, 패션계에서 자주 회자된 이름이 아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누구인지 궁금해했다. 이곳에 오기 전 발렌티노에서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 리와 피에르 파올로 피치올리 듀오와 함께 일했고, 지방시와 크리스찬 라크루아 등에서 일했다고 알고 있다. 쿠 튀리에로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을 것 같다. 명성이 자자한 쿠튀르 하우스들을 거치면서 배운 것은 무엇이었나? 쿠튀르에 대한 열정이랄까. 난 레디투웨어와 쿠튀르를 나누어 생각하거나 그 사이에서 고민해본 적이 없다. 내 삶에서 패션은 곧 쿠튀르에 대한 강렬한 사랑이니까. 

이번 쿠튀르 컬렉션에 첫 번째 룩으로 선보인 금빛의 엠브로이더리를 더한 새틴 소재 재킷과 테일러드 팬츠, 안에 레이어드한 섬세한 엠브로이더리 스웨터, 아티스틱한 헤드피스, 슈즈는 모두 스키아파렐리 오트 쿠튀르 2015 F/W 시즌 제품. 

이번 쿠튀르 컬렉션에 첫 번째 룩으로 선보인 금빛의 엠브로이더리를 더한 새틴 소재 재킷과 테일러드 팬츠, 안에 레이어드한 섬세한 엠브로이더리 스웨터, 아티스틱한 헤드피스, 슈즈는 모두 스키아파렐리 오트 쿠튀르 2015 F/W 시즌 제품. 

당신이 패션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 디자인 철학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있나? 철학이라니 너무 거창한 단어인 것 같다. 나에게 쿠튀르는 기본적으로 ‘진짜 옷’을 가리킨다. 물론 이번 컬렉션에 선 엘사 스키아파렐리가 사랑한 대상 중 하나인 ‘극장’에 서 영감을 받긴 했지만, 나에게 옷은 무대에서 입는 그런 옷이 아니다. 쿠튀르는 진정한 클래식이라고 할 수 있다. 내게 있어 쿠튀르는 역사 속의 그 무엇이 아닌 현대적이며 웨어러블한 옷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 안에 럭셔리가 깃든 그런 것이야말로 진짜 쿠튀르라고 생각한다. 진짜 옷 말이다. 장식용이 아니라. 그래서 나는 여성들이 내 옷 을 사고, 입고, 함께 즐기길 바란다. 

이번 컬렉션에서 바이커 재킷 같은 모던한 아이템을 선보인 것도 같은 맥락인가? 그렇다. 바이커 재킷은 클래식한 아이템이지만 오늘날 동 시대적으로 활용되며 모든 이들이 입는 의상이 아닌가. 그래서 바이커 재킷에 섬세하고 럭셔리한 엠브로이더리 장식을 넣어 오트 쿠튀르 의상으로 선보였다. 

당신의 바이커 재킷이 우아할 수 있었던 건 소재 때문으로도 보였다. 쿠튀르에 있어 ‘디자인’과 ‘테크닉’, 그리고 ‘소재’는 특별한 연관성을 지닌다. 이번 컬렉션에서 이 세 요소는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었나? 그 세 요소는 디자인 과정을 통해서 서로 만나고 조율되었다. 먼저 의상 스케치가 있고, 여기에 어울리는 소재를 찾는다. 동시에 구현 가능성에 대한 테크닉적인 면을 다 각도로 생각한다. 바이커 재킷을 예로 들자면 지금 사용한 오간자 소재를 찾기 전에 수없이 많은 소재를 찾아서 시도해봤다. 어떤 건 너무 얇거나 두껍고 혹은 거칠었다. 아니면 바느질을 할 수 없을 정도여서 결과물이 꽝이었거 나. 바로 여기서 테크닉적인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 모든 시행착오를 거쳐 그 세 요소가 서로 맞닿을 때 결과물이 완성된다. 그리고 물론 이 옷을 생각하고 만들었던 것은 밑도 끝도 없이 시작한 게 아니라, 엘사 스키아파렐리 여사가 1930 년대에 사용했던 시스루 소재를 참고했다. 같은 소재를 현재에는 찾을 수가 없었기에 수많은 종류의 소재를 구해 실험 과정을 거친 것이고. 

엘사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특히 하우스에 들어와서 그녀의 아카이브를 실제 보면서 느낀 바는 무엇인가? 스키아파렐리 하우스에 들어온 뒤로 나는 엘사에 대해 새롭게 ‘발견’을 했다. 예전엔 내가 그녀의 스타일을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들어와서 보니 내가 아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그녀의 예술가다운 모습이나 특히 내가 좋아하 는 30년대 그녀의 컬렉션을 통해서, 혹은 그 당시 그녀가 선보인 스케치와 실제 남아 있는 아카이브 의상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발견한다. 그녀의 특이한 취향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더 관심을 갖는 부분은 그녀가 시도한 색상 들이다. 쇼킹 핑크로 세간에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녀의 컬렉션을 면밀히 살펴보면 어두운 색상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리고 그녀가 만든 당대의 의상에 수놓인 매우 작고 정교한 장식은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뿐인가? 위트도 넘친다. 이런 모든 것을 새롭게 발견했다. 잘 알려진 그녀의 초현실주의, 바닷가재 드레스, 우주를 주제로 한 컬렉션 등 그 모든 것들이 정말 환상적이다. 

하늘거리는 시폰 드레스, 등 부분에 문스톤 등이 화려하게 장식된 오간자 소재의 바이커 재킷, 헤드피스는 모두 스키아파렐리 오트 쿠튀르 2015 F/W 시즌 제품.

하늘거리는 시폰 드레스, 등 부분에 문스톤 등이 화려하게 장식된 오간자 소재의 바이커 재킷, 헤드피스는 모두 스키아파렐리 오트 쿠튀르 2015 F/W 시즌 제품.

몇 해 전,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은 미우치아 프라다와 엘사 스키아파렐리의 가상의 대화를 주제로 다룬 전시 <프라다와 스키아파렐리 : 불가능한 대화>를 열었다. 만약 당신 앞에 엘사가 있다면 어떤 대화를 나누고 싶은가? 우와, 대답을 못하겠다. 왜냐면 그녀를 대면한다는 상상 만으로도 너무 흥분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만약 무언가를 물을 수 있다면 ‘혹시 내가 당신이랑 같이 일할 수 있을까요?’ 하고 물어보면 어떨까. 물론 그녀는 어쩌면 ‘됐어요’ 라고 대답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내가 패션학도일 때 마담 그레의 집에 간 적이 있다. 나는 포트폴리오를 팔에 낀 채 그녀의 집 문을 노크하곤 ‘혹시 마담 그레를 만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한 젊은 여자가 나와 ‘마담 그레는 어느 누구도 필요하지 않아요’ 라고 대답하며 문을 쾅 닫아버리는 게 아닌가. 멍한 기분으로 그 집 계단을 다시 내려온 기억 때문인지 어쩌면 자존감 넘치는 엘사 여사도 같은 대답을 하지 않을까 싶다(웃음).

평소 영감을 얻는 대상과 영감을 찾는 방식이 궁금하다. 이번 컬렉션을 위해서 어떻게 영감을 발전시켜갔는지도. 처음에는 모든 정보와 이미지를 수집한다. 책의 한 구절이나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모든 이미지들을 수집한다. 단지 스키아파렐리에 대한 이미지뿐만 아니라 정말 모든 것 말이다. 그리고 그 이미지들을 찬찬히 훑어보고 머리 속에서 되뇌이다 보면 그 안에서 마침내 주제를 찾는다.

쇼를 마치고 스키아파렐리 백스테이지에 가봤다. 영감 보드가 벽에 붙어 있었고, 거기에서 리 밀러의 이미지를 찾을 수 있었다. 쇼장 자리에 놓인 프레스 키트를 살펴보니 엘사 스키아파렐리 외에 리 밀러(Lee Miller)와 리 보워리(Leigh Bowery)라는 인물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들을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영감 보드에서 만 레이의 연인으로 유명한 리 밀러의 이미지를 많이 발견했을 것이다. 알다시피 엘사는 뉴욕에서 많은 아티스트, 특히 만 레이와 같은 초현실주의 아티스트들과 교류를 했다. 그래서 나는 리 밀러가 한편으론 스 키아파렐리의 여자(뮤즈)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에게는 리 밀러가 굉장히 동시대적 인물이자 20세기의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여겨진다. 이번 컬렉션을 위해 나는 그녀의 이미지를 나의 뮤즈처럼 생각하고 작업했다. 한편 영국 출신의 전위적인 아티스트인 리 보워리는 그만큼의 영감을 준 건 아니지만 단지 내 작업에서 엠브로이더리 작업이 클래식한 상태로 남기보다는 좀 더 현대적으로 변화하길 원했기에 그의 작업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그의 작업 역시 스키아파렐리의 어떤 면과 닮았다고 생각하기 도 했고.

아트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해보자. 엘사는 초현실주의 아티스트를 좋아했고 그들과의 친분도 끈끈했다. 당신도 예술에 관심이 깊은 듯한데, 좋아하는 아티스트나 당신의 예술적 취향이 어떠한지 궁금하다. 물론 관심을 갖는 여러 아티스트들이 있다. 우선 다니엘 피르망을 좋아한다. 프랑스 리용 출신인데 뉴욕에서 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이다. 파브리 시베르 역시 선호하는 아티스트 중 하나로 그의 작품 세계가 매우 마음에 든다. 참, 신디 셔먼의 피에로 시리즈도 매우 좋아한다. 나는 현대 미술을 특히 좋아하는데 줄리안 오피와 현대미술의 대모인 루이즈 부르주아 팬이다. 물론 루이즈는 지금의 컨템 퍼러리한 성향을 지닌 건 아니지만, 매우 명민하고 작품에 힘이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루이즈 부르주아랑 엘사가 예전에 만났던 것 같다.

당신의 컨템퍼러리한 예술적 취향이 쇼에 모던한 기운을 불어넣은 것 같다. 이번 쇼에 대해 ‘스키아파렐리의 새로운 시대’라는 평이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모더니즘은 어 떤 것인가? 흠, 사실 모더니즘이 의미하는 건 별게 아니다. 아시아 조형물을 예로 들어보면, 그것들은 20세기 디자이너에게 강력한 영감을 줄 수 있다. 그냥 우리가 어떤 관점으로 그 사물을 바라보느냐가 결국 모던함을 부여하는 것 아닐까. 앵그르의 작품을 보고 우리는 19세기의 아카데믹한 작품이라 말한다. 또 우리는 그걸 보고 폼피에 미술이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앵그르의 훌륭한 작품 중 하나다. 매우 모던한 작품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건 당신이 그 그림에 대한 관점을 어디다 두느냐에 따라 다른, 매우 주관적인 잣대이다. 1960년대의 쿠튀르 시대를 생각해보 자. 앙드레 쿠레주와 같은 훌륭한 디자이너가 활동하던 시기 말이다. 그 당시 우리는 그들의 옷들을 굉장히 모던 하다고 얘기했다. 당시엔 굉장히 신선한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옷들은 오늘날 굉장히 올드한 느낌을 준다. 어떤 면에서 말이다. 반면 클래식에 대해 말하자면, 이상하 게도 예전의 것이 현재의 어떤 쿠튀르보다 더 모던하기도 하다. 물론 내가 느끼는 모더니즘 역시 매우 주관적이다.

엘사 스키아파렐리가 사랑했던 꽃인 아이리스를 모티프로 표현한 쇼킹 핑크 색상의 밍크 코트, 섬세한 엠브로이더리 블라우스와 노란색 팬츠, 하우스의 아카이브에서 영감을 받은 매니큐어를 칠한 손 모티프의 클러치, 슈즈는 모두 스키아파렐리 오트 쿠튀르 2015 F/W 시즌 제품. 

엘사 스키아파렐리가 사랑했던 꽃인 아이리스를 모티프로 표현한 쇼킹 핑크 색상의 밍크 코트, 섬세한 엠브로이더리 블라우스와 노란색 팬츠, 하우스의 아카이브에서 영감을 받은 매니큐어를 칠한 손 모티프의 클러치, 슈즈는 모두 스키아파렐리 오트 쿠튀르 2015 F/W 시즌 제품. 

이번 쿠튀르 쇼장에 할리우드 여배우 맥 라이언이 온 걸 보고 놀랐다. 당신이 생각하는 스키아파렐리의 새로운 뮤즈가 그녀는 아닐 것 같은데 말이다. 혹시 디자인하면서 염두에 둔 모던한 이 시대의 여성이 있다면 누구인가. 여전히 엘사가 아닐까. 하하. 이건 진짜인데 엘사는 오랫 동안 내 머릿속에 자리했다. 오늘날의 사람은 아니지만 살아 있는 현대적인 여성처럼 강렬하게 머릿속을 맴돌았 다. 엘사를 제외하고는 글쎄, 여배우 중에선 틸다 스윈턴 을 좋아한다. 여자로서도, 배우로서의 기량과 태도도 너무나 좋다. 

요즘 스트리트 패션의 높은 인기나 SNS를 통해 패션을 얘기하는 문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패션이 즉각적으로 소통하게 된 것에 대한 생각을 알고 싶다. 스트리트 패션은 어떤 면에서는 영감을 주는 요소다. 아니 영감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고, 그냥 관심이 간다 정도가 더 맞는 표현인 듯하다. 물론 멀리서 바라봤을 때 말이다. 패션이란 그 시대와 호흡해야 하는 의무도 있는 거니까. 어쨌든 난 거리에서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걸 주시한다. 바이커 재킷에 대한 영감처럼 말이다. 

패스트 패션을 이끄는 SPA 브랜드에 대한 생각은? 역설적이지만 그런 브랜드가 있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왜냐면 모든 사람이 옷을 입을 권리가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내가 말하는 건 레디투웨어에 해당한다. 어쨌든 우리가 사는 오늘날의 삶에 함께하는 패션인 것이다. 다만 내가 그것들에 불편해하는 이유는 과잉 소비의 측면이다. 그런 브랜드들이 하우스의 옷을 카피하는 것을 가지고 뭐라 하는 건 아니다. 과잉 소비, 즉 옷을 아끼고 오래 간직 하지 않고 한 시즌 만에 버리는 소비 행태는 정말 유감이 다. 

존경하는 쿠튀리에는 누구인가? 마담 그레를 찾아갈 정도의 열정이라면 쿠튀리에에 대한 동경이 있었을 텐데. 물론이다. 엘사와 마담 그레를 비롯해 이브 생 로랑, 위베르 드 지방시, 비오네, 크리스찬 라크루아 등 꽤 많다. 순서를 매길 수는 없지만 말이다. 

아쉽지만 마지막 질문이다. 훗날 어떤 디자이너로 기억되고 싶은가? 겸손하고 진실된 당신의 대답이 궁금하다. 우와, 그걸 지금 대답하기엔 난 너무 젊은 것 같다. 우리 10년 뒤에 다시 만나면 어떨까. 그때면 아마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웃음).

에디터
박연경
포토그래퍼
김희준(Kim Hee 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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