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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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함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우아해질 수 있다. 삶에 기발함을 더하기도 하고, 따분해질 수도 있는 옷에 적당한 위트를 녹여내는 것, 그것 역시 일종의 우아함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팍팍한 세상을 유연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갖춰야 할 요소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위트다. 패션에서도 마찬가지. 차고 넘치는 진지한 아름다움 가운데서 뜬금없이 등장하는 위트는 엄숙한 패션 신에 숨통을 틔워주는 휴식 같은 존재. 여기서 말하는 위트는 온몸 전체를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치장하는 것이 아닌, 우아함을 동반한 위트를 가리킨다. 예를 들면 실크처럼 부드러운 토즈의 가죽 드레스에 밤송이 모자를 씌운 알레산드라 파키네티의 동물적 감각이나, 한 번도 패션에서 활용된 적 없었던 스누피 캐릭터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페이의 토마소 아퀼라노와 로베르토 리몬디 듀오처럼 말이다. 그뿐이 아니다. 앞서 말한 두 가지 예시는 하우스 브랜드에 새 바람을 불어넣은 디자이너의 이야기고, 가훈 자체가 ‘위트 있게 살자’인 브랜드도 있다. 먼저 태생부터 위트 있는 브랜드 모스키노는 이번 시즌 30주년 파티를 성대하게 치렀는데, 프랑코 모스키노의 아이코닉한 쇼핑백, 물음표 드레스를 오마주한 의상을 선보이는가 하면, 번듯한 테일러드 재킷에 속옷을 매치한 바니걸을 등장시켜 미소를 자아냈다. 거기에 콘돔, 피임약을 캔디처럼 가슴에 붙여 만든 의상을 통해 건강한 성생활의 중요성을 일깨우기까지.

모스키노가 이태리식 유머를 구사한다면, 프랑스식 위트를 구사하는 브랜드는 바로 카스텔바작이다. 아직도 테디 베어를 안고 자는 영원한 피터팬, 장 샤를 드 카스텔바작은 모스키노보다 더 아티스틱한 방식으로 의상에 위트를 담는다. 이번 시즌에는 옷감을 도화지 삼아 자신의 그림 실력을 맘껏 뽐냈는데, 아이가 그린 그림처럼 천진난만함이 넘치는 벨트 모양과 낙서 드로잉이 그것. 그의 작품이 한바탕 웃음거리로 끝나지 않은 까닭은 완벽한 테일러링 기술이 동반되었기 때문일 터이다. 진지한 실루엣 안에 깃든 창의적 시도는 완벽한 소재와 실루엣 안에서 구사되어야만 헛헛한 웃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편 앞서 언급한 브랜드 외에 위트 패션의 명맥을 이어갈 디자이너를 꼽자면 바로 모스키노의 수장이 된 제레미 스콧과 동화적 상상력을 가진 자일스 디컨, 그리고 옷을 가지고 실험에 실험을 거듭하는 크리스토퍼 케인이 아닐까. 제레미 스콧의 경우 이번 시즌 자신의 컬렉션 테마였던 60년대를 컬러 TV를 화면 조정 시리즈로 형상화해 갈채를 받았고, 자일스 디컨 역시 쿠튀르급 재단 실력을 자랑하며 위트 있는 패션이 나아갈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했다. 그중에서도 이번 시즌 그가 우아한 롱 드레스에 덮어씌운 벌어진 입술 프린트는 그동안 수없이 반복된 입술 프린트와는 달랐다. 그는 입술 사이로 벌어진 이빨을 표현했는데, 탐스러운 입술 사이로 드러난 이빨은 우아한 드레스와 상반된 무드로 어우러져 웃음을 자아낸 것. 물리 교과서를 보는 듯한 크리스토퍼 케인의 쇼 역시 <개그 콘서트>만큼 볼 만했다. 식물의 생식기를 친절하게 설명해놓은 도표나 식물의 광합성 과정을 설명한 드레스, 가녀린 슬립 드레스의 어깨끈을 고무 집게로 만든 그의 기상천외한 감각은 어딘지 괴짜스럽기까지 하다.

한편 의상이 아닌 핵폭탄급 액세서리로 우아한 한 방을 날린 디자이너도 있다. ‘안녕 내 이름은 요지야’라고 웨지 슈즈 굽에 귀엽게 자기 소개를 한 Y-3, 패션 피플에게는 이제 성경책만큼이나 친숙한 올림피아 르 탱의 책 모양 클러치가 바로 그것이다. 사실 디자이너가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영역은 의상, 액세서리뿐만 아니라 런웨이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에서다. 이번 시즌 감각적인 네온 시리즈를 발표한 요지 야마모토는 곤충의 더듬이 같은 헤어스타일로 웃음을 선사했고, 톰 브라운 역시 유니폼을 입은 여직원들이 단정해 보이기 위해 착용하는 헤어 망을 독특한 방식으로 재해석해 미소짓게 만들었다. 과함은 모자라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간혹 그 정도를 넘어서기 때문에 유치한 코스프레로 저평가받기도 하는 위트. 하지만 적정선만 지킬 수 있다면, 위트는 우아함으로 충분히 추앙받을 수 있다. 여기서 우아함이란 좋은 소재, 견고한 실루엣일 수도 있고, 그것을 선택한 사람의 애티튜드가 될 수도 있다. 정확히 말해 우아한 발걸음, 품위 있는 행동 등이 그것인데 우리는 재치 넘치는 아이템을 대할 때 그에 걸맞은 몸짓이나 표정이 무언지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에디터
김신(Kim Shin)
포토그래퍼
JASON LLOYD EVANS, KIM WESTON ARN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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