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oming World (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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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의 모든 일상이, 걸음 하나하나가 음악과 연결돼 있다. 음악을 통한 숨이 마침내 화사라는 세계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머메이드 프린트의 개버딘 소재 슬리브리스 트렌치코트, 트렌치 위에 겹쳐 입은 씨 메이드 프린트의 파카, 안에 입은 흰색의 실크 저지 소재 터틀넥 톱은 모두 Burberry 제품.

머메이드 프린트의 컷아웃 효과를 더한 검정 실크 티셔츠, 검정 면 소재 피시넷 터틀넥 톱, 흰색의 저지 소재 피시테일 스커트, 검정 피셔맨 햇, 흰색 가죽 슈즈는 모두 Burberry 제품.

줄무늬 울 코튼 소재 스웨터, 오렌지 색상의 레이스 피시넷 슬립 드레스, 오렌지 색상의 울 소재 보디슈트, 오렌지 색상의 마이크로 올림피아 백, 레이어드해 연출한 지퍼 포켓 장식의 오렌지색 바이저와 면 소재 피셔맨 햇, 검정 가죽 롱부츠는 모두 Burberry 제품.

chapter 1.
한복 입고 돌아다니던 아이

제 과거부터 지금까지 일대기를 쭉 듣고 싶다고요? 좋아요, 준비됐습니다(웃음). 어릴 때 살던 동네요. 골목이 많았어요. 동네 사람끼리 누가 누군지 다 알았죠. 그곳 풍경을 생각하면 딱 <응답하라 1988>이 떠올라요. 엄마 화장품으로 화장하고, 한복 입고 동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어요. 집안이 어려워서 그런지 화려한 것을 갈망했나 봐요. 아래위로 샛노란 색에 진분홍 색이 어우러진 한복이 있었거든요. 어린 여자아이들이 입는 꼬까옷, 그게 왜 그렇게 좋았나 몰라요. 유치원 다닐 때 저요? 그때부터 그야말로 불나방 같았어요(웃음).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불타오르는. 좀 소심한 면도 있었지만 하고 싶은 게 뚜렷하고 화끈한 아이였어요. 툭하면 유치원을 땡땡이 쳐서 엄마 속 좀 썩였죠. 가기 싫으면 안 가고, 유치원생이 참 프리했다… 언니가 둘 있어요. 언니들은 연년생이고 저는 둘째 언니랑 네 살 차이예요. 저 혼자 어린 데다 제멋대로였으니, 언니들이 놀 때 저를 따돌리곤 했죠. 그럼 저는 기죽지 않고 매번 아빠한테 일렀어요. 자매들이 만나면 맨날 하는 얘기가 우리 어릴 적 얘기예요. 최근에도 언니들과 옛날 얘기하며 웃었어요. 우리 그렇게 싸웠지, 하면서 추억하는데 이제는 그때를 그리워하는 거 같기도 해요.

네, 어릴 적부터 끼가 어마어마하다는 소릴 들었어요. 그 시작은 부모님 때문이에요. 우리 몇 달 전 환불원정대 화보로 만났을 때도 제가 이 얘기 좀 한 거 같네요. IMF 시절에 집안이 타격을 받으면서 부모님이 맞벌이로 아주 바빴거든요. 엄마 아빠는 그때 얘길 하면 너무 여유가 없어서 그 시기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고 하세요. 유치원에서 학예회를 하거나 초등학교 때 체육대회를 하면 친구들 부모님은 다 오는데 우리 엄마 아빠는 바빠서 못 오시잖아요. 1등 도장 받은 거 보여주고 싶어서 제가 뭐든 기를 쓰고 했어요. “나 이번에 장기자랑 하니까 꼭 와야 돼”라고 엄마 아빠가 오시게끔 일을 만들었고. 부모님한테 예쁜 모습 보여주고 싶다, 칭찬을 받고 싶다는 마음이 제 뽐내기의 출발이었어요. 그러다 점점 ‘너 잘한다’는 반응을 들으면서 더 재미를 느낀 거죠. 집에서도 혼자 아주 쇼를 하며 놀았어요. 노래 부르고, 거울 보면서 춤추고, 누구 흉내도 내고, 영화 보다가 대사도 따라 해보고.

사춘기는 꽤 성숙하게 보냈어요. 뭐 그때도 여전히 엄마 아빠 속 썩인 면은 있었지만, 어릴 때부터 고생한 사람이 나이에 비해 성숙하듯이 저도 자아 성찰을 했죠. 중고등학교 시절은 가수라는 꿈을 향한 열정이 폭발했을 때예요. 어린 나이 부터 꿈에 확신이 있었다는 것. 그게 제 큰 복이라고 생각해요. “에이, 너는 안 돼” 하는 비아냥도 들었고, 가수 데뷔 과정에 실패라는 맛도 겪었고. 그런 일들이 저에겐 소중한 자극이 됐어요. 누가 저를 쉽게 판단하면 눈이 돌아가더라고요? ‘당신이 틀렸다는 걸 보여주겠어.’ 무시당한다 싶으면 더 강해졌죠. “너는 개성도 강하고 노래도 너무 잘하지만 뚱뚱하고 예쁘지가 않아”라고 한 사람. 누군지는 비밀로 할래요. 그 말 들은 날 집에서 밤새 본 영상이 비욘세 공연이에요. 2019년 마마무 콘서트의 ‘화사 쇼’에서 제가 오마주한 게 그때 본 영상이거든요. 라스베이거스에서 한 공연. 투어 타이틀이 <I Am… Yours>와 <I Am World Tour>였나 헷갈리네요. 제가 그때 비욘세 공연 두 개에 완전 빠져 있었죠. 이상하게, 그걸 보고 있으면 그냥 위안이 돼요. 동질감하고는 다른데. 뭐라 해야 할까, 희로애락을 다 느끼게 해주는 카타르시스가 있어요. 비욘세 투어 다큐멘터리 <홈커밍>도 좋죠. 요즘도 힘들 때 비욘세 공연 영상을 보면 막 힘이 생겨요. 고갈된 에너지가 다시 차오르는 기분. 보고 있으면 영감이 떠올라요.

올리브 색상의 피시 스케일 프린트가 돋보이는 터틀넥 톱과 스커트는 Burberry 제품.

검정 나일론 트렌치코트, 크리스털 장식을 더한 그물 형태의 네트 베스트, 머메이드 테일 프린트의 보디슈트, 가죽 브레이스 장식의 빕 프런트 팬츠, 검정 가죽 롱부츠는 모두 Burberry 제품.

chapter 2.
꿈은 이루어진다

데뷔는 2014년 스무 살 때 했어요. 그리고 2018년, 마마무의 ‘별이 빛나는 밤’으로 활동할 무렵부터 제가 좀 달라진 걸 느꼈어요. 좀 더 역량이 갖춰졌달까. 더 정돈되고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았죠. ‘별이 빛나는 밤’ 전후로 무대에서 제 모습의 결이 달라요. 사실 그사이에 개인적으로 사건이 있었어요. 이후 제가 좀 고요해졌죠. 2017년 9월에 삼촌이 돌아가셨거든요. 저에게 아주 큰 존재였어요. 난생처음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경험을 한 거예요. 그때 제가 무슨 정신으로 살았는지 기억이 제대로 안 날 정도예요. 그 여파가 아직까지 오고 있어요. 시간이 흘렀으니 이젠 고통스럽다기보다는 그리운 거죠. 제가 어릴 때부터 꾸미는 거 좋아하고 끼 부릴 때, 삼촌만이 저를 예뻐하고 호응해줬어요. 전주에서 지금 마마무 멤버인 제 친구 휘인이랑 같이 서울 올라와 자취하고 어렵게 살 때도 삼촌이 저를 챙겼어요. 장가도 안 가고 할머니 모시고 살면서 외로웠을 텐데, 일어나서 잠들기 전까지 그렇게 저만 찾아봤나 봐요. 삼촌의 휴대폰과 지갑이 저한테 있거든요. 그걸 머리맡에 두고 자요. 삼촌한테 미안하지만, 한 번은 폰을 켜 봤어요. 온통 제 노래, 제가 연습생 때 녹음한 가이드, 사진들….

화사의 결정적 순간요. 아마 대중에게는 2018년 연말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 ‘마마(MAMA)’ 무대가 아닐까요? 새빨간 라텍스 의상을 입고 무대에 섰을 때. 아직까지도 그 무대에서의 기분을 넘는 무대가 없어요. 저 그때 막 잘하려고 용 쓰는 분위기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희한하게 모든 게 다 맞아떨어질 때가 있어요. 그 무대 올라가기 직전에도 ‘지금 이 순간을 먹어버릴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다 들어맞는, 충만하게 준비된 느낌이 확실히 있었어요. 무대 마치고 내려올 때는 너무 행복해서 온몸이 후들후들. 그 무대가 그렇게 화제가 될 줄도 모르는 상태에서 저는 이미 최고의 순간을 느낀 거죠. 아, 그때의 그 기분을 다시 한번 맛볼 수 있다면.

저는 부족한 게 많아요. 무대 위에서 잘 해내고 싶은 저만의 목표가 있는데 ‘나 왜 이렇게 어설프지?’ ‘왜 이런 표정밖에 못 지을까?’ 싶고. 춤추는 거요. 너무 좋아요, 춤이. 에너제틱하고, 움직임이 많잖아요. 그런데 제가 춤을 못 추거든요. 진짜예요. 마마무 멤버 중에서 안무를 제일 느리게 익히는 사람이 저예요. 그 어색함을 스스로 못 참아서 계속 연습하는 거고요. 처음에 그 어색하던 몸 동작을 내 거로 만들었다는 데서 희열이 와요. 준비를 다 마친 뒤 카메라 앞에서 제 모든 걸 뿜어낼 때는… 와, 미칠 것 같아요. 솔로곡인 ‘마리아’를 발표했을 때의 제가 그나마 지금까지 제 모습 중에서 가장 자부심을 느끼게 해요. 완벽해서라기보단 저를 잘 반영해서요. 시원하게 한 번 싹 비워낸 듯해요. ‘마리아’의 가사와 그 밖의 모든 것에 담은 아이디어는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것들이라 그 곡이 저를 뚜렷하게 보여주거든요. 저에게 음악이란, ‘숨’이라고 하겠어요. 숨 쉬는 것과 같다고 느껴요. 제 모든 일상이, 제 걸음 하나하나가 다 음악이고 음악과 연결돼 있어요. 음악 없으면 저는 숨 못 쉬어서 답답해 죽어버릴지도 몰라요. 요즘의 호흡요? 음…. 한숨?(웃음) 모르겠어요, ‘에휴’를 자주 해요. 지금은 저에게 한숨 돌릴 타이밍이라 그런가 봐요. 조만간 다시 가쁜 호흡을 하게 될 거예요.

머메이드 테일 프린트의 트렌치코트, 블루 샤크 프린트의 슬리브리스 톱, 엑스트라 라지 레더 포켓 백은 모두 Burberry 제품.

푸른색 트렌치코트와 점프슈트, 크리스털 장식을 더한 그물 형태의 네트 베스트, 안에 입은 머메이드 테일 프린트의 보디슈트, 검정 가죽 롱부츠는 모두 Burberry 제품.

머메이드 테일 프린트 셔츠와 시폰 소재 쇼츠, 안에 입은 흰색 코르셋, 흰색 가죽 롱부츠는 모두 Burberry 제품.

chapter 3.
외로움, 사랑, 진심 그리고 강인함

오프라 윈프리가 마돈나 인터뷰할 때 뭐라고 했는데요? 갖은 화려한 포장과 마케팅 같은 걸 다 치워버리고 나면 남는 것… 저는요, 그냥 동네 백수 같은 사람입니다(웃음). 평소 추레하게 하고 다녀요. ‘내가 편하면 그게 멋이다’라고 생각해서. 또 외로움도 많고 사랑도 많은 사람이에요. 감수성이 풍부해서 그런지 말에 상처를 잘 받거든요. 제가 그렇다 보니 누군가와 말을 할 때 혹시나 상대가 내 말로 인해서 외로워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잘 휩싸여요. 말도 표현도 신중히 하려고 하죠. 어? 맞아요, 어릴 때 조숙하게 보냈더니 오히려 나이 들수록 제가 아기처럼 되어가요! 전에는 힘든 티를 내는 게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다고 생각해서 혼자 감내했어요. 요새는 힘들면 힘들다고 말을 하고 투정 부려요, 가까운 사람들한테. 그게 건강한 건데 왜 전에는 그러지 못했을까?

요즘 제 화두는 ‘평화’예요. 최근에 좀 쉬는 시간을 가졌는데 제가 쉬는 법을 잘 모르더라고요. 쉰다는 게 뭔지 까먹었나 봐요. 온전히 행복하게 평화로운 쉼을 위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싶어서 저 혼자 드라이브하며 바람 쐬고 오기도 했죠. 일만 열심히 하다 일을 멈추니까 확실히 잡생각이 많았어요(웃음). 문득 든 생각이, 제가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팬들뿐 아니라 가까운 이들에게서 이미 많은 걸 받고 있더라고요. 저와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거 아닌가 싶었어요. 이젠 저보다 그들의 컨디션을 먼저 살피고 싶고, 그들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다는 걸 알겠어요. 그렇게 제 나름의 사랑을 주면서 소소하게 웃고 이야기 나눌 때 행복해요.

그저 매 순간 진심으로 하자는 것. 그게 제게 남아 있는 배움 비슷한 거예요. 예능도 저는 재밌어서 하는 거거든요. 재미없으면 피곤한 티가 좀 나는 게 단점이긴 하지만. 진심이 있으면, 돈이나 다른 무엇은 다 따라오는 것 같아요. 저는 누군가를 만날 때도 최선을 다해서 준비해요. 만남을 앞두고 노력한다는 뜻이에요. 그 사람이 뭘 좋아할지 사소한 부분을 생각하고 신경 써요. ‘아, 와인을 좋아하지’ 싶으면 나는 와인을 잘 모르지만 이리저리 알아보고 선물로 준비해 간다든가. 바라는 게 있다면 세상에 대해 보다 넓은 시야를 가지면 좋겠어요. 아직 저는 시야가 너무 좁거든요. 단순한 예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라는 생각을 하기 보다 좀 더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그럼 음악적으로도 더 성장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도 제가 강인한 사람이라 이렇게 발전해왔다고 봐요. 엄마 아빠가 결과적으로 저를 강하게 키우셨어요. 부모님이 저에게 해줄 수 있는 다른 서포트가 없었고, 주실 수 있는 게 그냥 사랑뿐이었잖아요. 그러니까 사랑을 열심히, 듬뿍 주신 거죠. 가수를 준비할 때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저 자신이 대견스러우면서 슬퍼요. 저는 독립적이어야 했어요. 그래서 결국 강해졌고요. 네, 제 안의 외로움과 사랑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상태이긴 하지만, 저는 아주 강인한 사람입니다. 안 그랬으면 못 버티고 나가떨어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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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지, 문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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