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이 사는 세계 (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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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대로 산다. 주춤할 순 있어도 멈추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귀엽다’다. 10월, 미니 앨범을 들고 찾아올 뮤지션 던의 이야기다. 

재킷과 셔츠, 타이는 모두 생로랑 제품.

오늘 촬영장에 반려견 햇님이가 함께했다. 친해지고 싶어서 계속 따라다니며 귀찮게 굴었는데 눈길조차 주지 않더라. 주인을 닮아서다(웃음). 아직 아기인데 행동이 굉장히 굼뜨다. 밥도 엄청 느리게 먹고. 1년 전 유기견 보호소에서 만나 같이 살고 있다. 현아가 기르는 강아지 이름이 ‘소금’이라 햇님이라고 이름 지었다. 둘이 만나 ‘빛과 소금’이 된다는 뜻에서.

10월 초 발매하는 미니 앨범의 작업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나? 총 다섯 곡을 수록한다는 것은 결정했는데, 글쎄 나오기 전까지 어떤 형태로 완성될지 모르겠다. 무엇 하나 진득하게 붙잡고 하는 성격이 아니라, 진짜 하고 싶을 때만 몸이 움직인다. 한두 달 전에 급하게 쓴 곡이 수록될 것 같기도 하다.

촬영하면서 타이틀곡을 흥얼거리던데, 작년 발매한 첫 솔로곡 ‘Money’와는 분위기가 정반대여서 좀 의외였다. 완전 다를 거다. 힙합 장르인데 굉장히 미니멀하게 편곡했다. 드럼, 베이스로만 쭉 간다. 나를 소개하는 곡이다. 그래서 첫 소절이 ‘난 던이라고 해’다. 중간중간 아주 은근하게 자기 자랑도 한다(웃음). 평소에는 조용한 편인데 무대에만 서면 싸이 형처럼 사이코가 된다든지.

솔로 뮤지션으로서의 출사표나 다름없던 ‘Money’를 좋게 들었다. 돈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독백처럼 풀어내지 않았나. 가사를 듣고선 ‘두 발이 땅에 붙어 있는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한창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웠을 때 쓴 노래다. 음악을 통해 내 얘기를 하고 그걸 알아봐주는 소수의 사람이 있다는 것만 보고 음악을 시작했는데, 막상 음악을 업으로 삼고 나니 돈이란 벽을 마주하게 된 거지. 내가 하고자 하는 음악과 대중, 하물며 소속사가 원하는 음악이 따로 있지 않나. 그리고 모든 문제는 결국 돈으로 귀결되고. 가사를 들여다보면 나와 돈이 참 치열하게 싸운다. 돈에게 편지를 쓰듯 쓴 가사다. 그러다 보니 마치 옛 연인에게 하소연하듯 가사가 써지더라고. 네가 너무 좋은데 싫다느니, 너를 갖고 싶지만 네게서 떠나고도 싶다느니. 그러다 결론은 마지막에 한 줄로 아주 심플하게 끝난다. ‘I don’t need you’라고.

옛 연인에게 쓰는 편지라니, 뜨거운 피로 썼겠다. 가사 쓰는 데 1시간도 안 걸린 것 같다. 그리고 원래는 정말 어두웠다. 기타 연주에 목소리만 얹은 노래였는데, 반주만 들으면 어디서 귀신 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일기 대신 가사를 쓰는 습관이 있다 보니 ‘팬들에게 들려주자’ 생각하며 가볍게 쓴 곡이다. 애초에 발매를 목적으로 쓴 곡이 아니었다. 첫 싱글 발매를 앞두고 싸이 형이 유명 작곡가들에게 곡을 여럿 받아 건네줬는데 끝끝내 ‘못하겠다’고 몇 번을 거절하다 내가 쓴 곡을 몇 개 추려 보낸 적이 있다. ‘Money’도 그중 하나였다. 그런데 싸이 형이 콕 찔러 ‘Money’가 좋다고 말하더라. 나로선 참 신기했다.

그럼 돈과는 여전히 ‘I don’t need you’의 사이를 유지하고 있는 건가? 생각이 바뀌었다. 물질적으로 잘 해결할 수 있는 거라면 돈으로 해결하고 싶다(웃음). 그런데 돈을 위해서 절대로 영혼까지 팔진 못하겠더라고. 나름의 선이 생긴 것 같다. 내가 돈을 벌기 위해선 이만큼까지는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타협점을 찾는 거다. 나중엔 또 어떻게 생각이 바뀔지 모르지. 나는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산다.

라이더 재킷과 슬리브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체크무늬 셔츠는 구찌, 팬츠는 톰 포드, 슈즈는 다이드 제품.

얽매이는 걸 싫어하나? 엄청 싫어한다. 좋아하는 게 일이 되는 순간 재미없어진다. 어렸을 때도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모니터에 사진을 띄워놓고 하루 종일 그것만 보면서 그림을 그렸다. 어느 날 엄마가 미술 도구를 잔뜩 사 오셨는데 다음 날부터 손을 놓았다.

어머니가 미술 도구를 사 오지 않았다면 지금 미술가가 되었을 수도 있겠네? 그랬을지도 모르지. 원체 활동적이지 않아서 어릴 때부터 밖에서 노는 걸 안 좋아했다. 항상 집에 있으면서 그림을 그렸다.

그런 사람이 어쩌다 많은 사람 앞에 서는 가수가 된 건가? 엄마가 굉장히 활동적이고 개방적인 분이다. 벨리 댄서였고, 일과 가정 모두에 열정적인 슈퍼맘이었다. 내가 항상 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니까, 공부도 안 할 거면 춤이라도 추라고 했던 거지. 춤추는 남자가 멋지다고. 매일같이 가기 싫다, 가기 싫다,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배웠는데 어느 순간 확 빠지게 된 것 같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캐스팅이 들어왔고 흘러 흘러 여기까지 오게 됐다. 좀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정말 흘러가는 대로 사는 인간이다.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영락없이 한량이었을 거다. 지금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가 나와는 도무지 안 맞다(웃음). 그런데 지금 이상하게 참 잘 살아진다. 나는 이게 좋다.

재킷과 셔츠, 타이는 모두 생로랑 제품.

가만 보면 당신은 그저 흘러가는 대로 가만히 있는데, 주변에서 ‘우쭈쭈’ 예뻐라 하는 게 느껴진다. 그걸 어떻게 아나? 그게 보이는구나. 사람들이 그냥 나를 좋아해준다. 늘 주변에서 도움을 많이 받는 것 같다. 항상 함께하는 스태프도 진심을 담아 나를 도와주는 게 느껴진다. 가끔은 일을 넘어서까지. 그 진심이 모두 느껴진다.

왜일까? 내가 귀여워서인 것 같다(웃음).

방금 옆에 있는 매니저가 박장대소했다. 매니저 형도 나를 좋아한다. 하하. 스스로는 별로 귀엽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주변에서 귀엽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친구가 많은 건 아니지만 진득하게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항상 곁에 있었다.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그들과 한동네에서 같이 살고 싶다. 집 하나씩 지어 입주시키는 게 내 꿈이다.

당신은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인가? 잘 안다. 그리고 나는 남을 위해 살지 않고, 나를 위해 산다. 어떻게 보면 이기적으로 비칠 수 있겠지만 주변 사람을 챙기고 사랑하는 것도 사실은 모두 나를 위해 하는 거다. 가만 보면 타인에겐 한없이 좋은 사람이지만, 자신에겐 못된 사람이 있지 않나. 적어도 나는 나에게 좋은 사람인 것 같다. 삶에서 1순위는 철저히 나다. 나에게 해로운 것으로부터 나를 지켜낼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이 어느 순간 생겼다.

당신을 단단하게 만든 그 근육이 언제 생긴 것 같나? 춤 추면서부터. 내 성격과 정반대 지점에 놓인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아마 춤일 거다. 어린 시절 아무도 없는 시골에서 자랐고 사람을 만날 일이 거의 없었다. 하루 종일 집에 있다가 가끔 나가 곤충을 잡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그래서 처음엔 사람에 대한 겁이 많았다. 그러다 모두가 나를 지켜보는 앞에서 춤을 추면서 틀을 깨간 것 같다. 어쨌든 춤은 곧 교감이니까. 굳이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구나, 이게 사실 별것 아니구나, 천천히 깨달았다.

베스트와 네크리스는 셀린느, 팬츠와 슈즈는 다이드, 뱅글과 벨트는 생로랑 제품. 슬리브리스와 브레이슬릿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언젠가 음악으로 옮겨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곡을 쓰고 싶다. 귀가 즐거운 노래는 세상에 너무 많지 않나. 그런 면에서 언젠가 동요도 꼭 쓰고 싶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제일 중요한 건 사랑인 것 같다. 연인 사이의 사랑, 부모님에 대한 사랑, 더 넓게는 지구 환경을 사랑하는 것까지. 내가 만드는 음악은 어쨌든 긍정적이었으면 좋겠다. 부정적으로 공감을 사는 것보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음악을 하는 편이 죽는 순간에도 뿌듯하지 않을까?

연인 현아를 위한 세레나데가 개인적으로 기대된다. 당신은 현아에게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나? 나와 현아가 나온 예능을 보고 사람들이 종종 ‘집사와 놀아주느라 피곤하고 무기력한 고양이’라고 하던데 딱 사람들이 보는 그대로다(웃음). 나는 뭐든지 여유롭고 안정적이다. 반면 현아는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고. 그런 현아에게 나는 안정을 찾아주는 사람이지 않나 생각이 든다.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안정을 주는 사람. 사실 현아 이전에 만났던 이들에겐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다. 확실히 좋은 남자는 아니었다. 지금은 내가 느껴도 참 착한 남자친구다(웃음).

지금 당신은 어떤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나? 어른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는 것 같다. 꽃이 봉오리를 맺기 시작하는 때랄까. 살면서 배우는 게 많아지는 만큼 ‘어른이 되려고 하나?’ 문득문득 생각하는 순간이 많아진 것 같다.

지금까지는 흘러가는 대로 뒀지만 어느덧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이 찾아왔다는 말인가? 브레이크는 아닌 것 같다. 브레이크가 있을 수 있나? 나에게 멈추는 건 없는 것 같다. 지금 그저 잘 ‘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늘 당신의 타투가 궁금했다. 사실 별 의미 없다. 가장 처음 새긴 게 등에 있는 사슴 그림이다. 옆구리는 그때 서비스로 받은 레터링 타투다. 현아가 그린 드로잉을 군데군데 작게 넣기도 했고. 어깨에 새긴 숫자는 내 생일이다. 가족 모두가 새겼다. 막내인 내가 태어난 순간 가족이 탄생했다는 의미에서.

피처 에디터
전여울
포토그래퍼
이준경
스타일리스트
안두호
헤어
신효정
메이크업
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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