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 팬데믹 시대의 젊은 패션 디자이너 Vo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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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의 대유행으로 젊은 디자이너를 육성하고 지원하는 프로그램인‘LVMH 프라이즈 2020’의 결선이 취소되었고, 파이널 리스트에 오른 8명의 디자이너에게 30만 유로의 상금이 고르게 분배되는 이례적인 상황이 펼쳐졌다. 지금 우리에게는 경쟁이 필요하지 않다. 각자의 자리 를지키며, 나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도움이 될 만한 긍정적인 움직임을 도모하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노력할 뿐. 더블유는 수상이라는 빛나는 성휘를 축하하고, 새로운 인재를 독자에게 소개하기 위해 파이널 리스트에 오른 5명의 디자이너와 랜선 인터뷰를 진행했다. 새롭고 창의적인 일을 도모할 아이디어가 가득한 이들은 지금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레게, 자메이카와 스코틀랜드의 문화적 정체성을 탐구하며 장인 정신이 담긴 옷을 만드는
니컬러스 데일리(Nicholas Daley), @nicholas_daley

공예와 레게 등 자메이카와 스코틀랜드 문화로부터 영감을 받아 다문화적인 에너지를 발산한다. 브랜드 소개를 부탁한다.

니컬러스 데일리 2013년에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를 졸업하고 2015년에 내 레이블을 출시했다. 자메이카와 스코틀랜드 혼혈인 나는 브랜드를 창시하고 나서 계속 내 다문화적 배경에 대해 탐구했다. 영국과 일본을 기반으로 생산하면서 장인 정신에 중점을 두고 다문화주의와 내 영국적 정체성을 담아낸다. 다양한 창작 분야와의 크로스오버를 지속적으로 탐구하면서 내 공동체의 음악가, 시인 등 예술가들과 긴밀히 협업한다.

좋은 품질의 의류를 만드는 데 주력한다고 들었다. 최고 품질의 원단을 선택하는 노력과 제조 공정에 대해 알고 싶다.  2020 F/W 컬렉션에서는 스코틀랜드의 역사적인 직물 공장에서 만든 맞춤형 울, 모헤어 타탄을 개발했다. 이 원단을 내 시그너처 오버사이즈 코트에 사용했는데, 영국의 장인 정신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옷임과 동시에 새로운 패턴 커팅 기술과 실루엣으로 현대적 면모도 갖췄다고 자부한다. 영국 밖의 장인 정신도 탐구하는 데 공을 들이는데, 이번 시즌에는 맞춤 넥타이 염색 아이템을 만들 때 일본의 전통 염색 전문가와 같이 일했다.

당신의 옷에 담긴 문화적 영향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부모님이 1978~1982년까지 스코틀랜드에서 레게 클럽을 운영하셨다. 레게 음악이 주류로 떠오르기 전에는 영국 밴드를 주로 소개하셨다. 내 2019 S/S SLYGO’ 컬렉션에서 부모님의 레게 클럽을 참조했다. 우리 가족의 음악적 유산을 부각시켜 옷을 뛰어넘는 문화적 서사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했다.

패션과 음악에 대한 철학이 있나?  음악과 패션은 늘 창의적 관계를 맺어왔다. 나 역시 매 시즌 나만의 시각으로 이 관계를 탐구하고 있다. 패션은 나의 창의성을 드러내는 수단 중 하나다.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내가 믿고 아끼는 가치를 담아낸 컬렉션을 펼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니컬러스 데일리의 시그너처 아이템은 무엇인가? 시그너처 아이템은 천연 주트 실을 사용한 핸드 크로셰 버킷 모자일 것이다. 자메이카의 전통 모자 라스타 탐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스코틀랜드의 주트 실을 사용한다. 공예, 유산, 창의성이 집약된 아이템이다.

브랜드를 확장하거나 더 좋은 품질의 옷을 생산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싶은가? 지난 몇 시즌 동안 직물, 액세서리, 의류를 같이 개발한 장인들과 계속 일하고 싶다. 내 컬렉션을 빛내줄 새로운 기술을 탐구하기 위해 다른 공예가와의 소통도 지속하고 싶고 나만의 창의적인 길에 집중하면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브랜드를 믿는 매장과 일하고 소비자들이 즐길 수 있는 컬렉션을 만들거다.

올해 LVMH 프라이즈 최종 후보 8명 중 한 명으로 지명되고 나서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다. LVMH 프라이즈는 내 브랜드를 더 많은 사람과 업계 전문가에게 보여줄 좋은 플랫폼이었다. 결승 진출자로 선발되어 매우 영광스럽고, 상금을 나눠 가지기로 한 것도 아주 멋진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패션 브랜드들이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이 상금이 코로나19의 영향을 극복하는 데 유용하게 쓰일 거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낼 것 같다. 다음 컬렉션을 위해 조사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내 창의적인 세계를 발전시키고 내 브랜드 메시지의 디지털 소통을 위해 새로운 창구를 찾는 게 중요해 현재 2021 S/S 컬렉션을 침착하게 준비하고 있다. 파라오 샌더스와 앨리스 콜트레인과 같은 스피리추얼 재즈 음악을 많이 듣는데 불안이나 긴장을 풀어준다.

지속 가능성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나? 초기부터 혼합 유기 직물, 천연 섬유를 사용하고 환경에 최소한의 영향을 미치는 직물을 개발하기 위해 공장과 긴밀히 협력하며 지속 가능성을 실천해왔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 제화공 중 하나인 트리커스와 같이 일하는데, 제품이 모두 수제로 노스햄튼에서 만들어지며 수명이 굉장히 길다. 지속 가능성은 브랜드 DNA의 일부이며, 계속 탐구하고 실천할 것이다.

당신의 패션쇼는 라이브 콘서트와 흡사하다. 사람들이 당신의 쇼를 관람할 때 무엇을 느낄 수 있길 바라는가? 런던 패션위크 맨즈에서 몇 차례 쇼를 하면서 음악과 패션의 크로스오버를 위해 음악가, 예술가들과 꾸준히 협업했다. 영국의 음악뿐 아니라 장인 정신과 제조업을 지원하면서 영국이 보유한 최고의 것을 탐구하고 강조하며 다른 분야와의 크로스오버를 통해 더 강력한 내러티브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다.

궁극적으로 패션으로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가? 패션계에 인종 다양성을 확대하고 싶다. 내가 나만의 레이블을 만든 이유 중 하나도 국제적인 수준으로 브랜드를 내세우는 소수 민족 디자이너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창의적인 분야의 상호 협력이 내게는 너무 중요한 터라 시각 예술가, 음악가, 시인 등과 더 많은 협업을 전개하려고 애쓴다. 내 공동체와 내가 존경하는 다른 창작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인도인의 장인 정신, 나이지리아 라고스의 활력과 에너지, 영국 남성의 뒤섞인 옷장에서 영향 받은
알루왈리아(Ahluwalia), @ahluwalia_studio

프리아 알루왈리아가 만드는 알루왈리아는 어떤 브랜드인가?

알루왈리아 우리 브랜드의 옷은 남녀노소 누구나 입을 수 있지만, 핵심 코드는 남성복이다. 변화를 주고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남성복만의 드레스 코드와 규칙이 맘에 들기 때문이다. 실험적인 남성복의 범위는 무척이나 넓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무한한 가능성에 이끌렸다. 알루왈리아의 시그너처 룩은 트랙 슈트 하의, 직조된 니트, 재활용된 청재킷 등으로 레이어드하기 좋은 구성이고, 도회적 특징을 가진 의상들이다.

어머니는 인도인이며, 아버지 나이지리아인, 런던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본질적으로 미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들었다. 그것들은 당신의 브랜드에 어떻게 스며들어 있 는지? 미국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할 수 없을 거다. 내가 인도- 나이지리아계 혈통이라는 점과 영국 출신이라는 점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인도인들의 장인 정신, 나이지리아 라고스의 활력과 에너지, 또 영국 남성의 뒤섞인 옷장에서 받은 영향의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2019H&M Design Award를 수상, 아디다스의 트레이닝복을 커스터마이징하는 협업, 2020 LVMH 프라이즈 공동 수상까지, 이력이 무척 화려하다. 사람들이 당신을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전통을 미묘한 방식으로 뒤틀고 접목한다는 점이 사람들로 하여금 알루왈리아를 더 궁금하게 만들었을 거다. 또 재활용 원료를 활용하는 방법이 신선하고, 큰 솜씨가 필요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그것들을 조합해 유일무이한 작품으로 만들어낸다는 점도 우리 브랜드를 주목하게 하는 것 같다.

주목받는 디자이너로서, 계속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은 없는지? 이를 위해 특별히 하는 노력이 있다면?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부담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고단한 과정을 즐긴달까. 나의 일이 옷에 한정되는 것도 아니다. 내 책인 <Sweet Lassi>를 출판했고, 디자인 자문 등 여러 종류의 프로젝트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한다. 내 사업이 진행되는 속도를 즐기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항상 나만의 속도에 맞게 진행하고 있다. 물론 회사가 휴식이 필요한 상태라고 판단하면 계획을 진행시켜야 한다는 압박에 휘둘려 무언가를 진행시키지 않고 바로 멈출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언제나 뉴스를 보고, 책을 읽고, 팟캐스트를 듣고, 갤러리를 방문하며 자료를 수집한다.

자료 조사를 강도 높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신은 호기심이 많고, 탐구하는 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2020 S/S 컬렉션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어떤 영감에서 시작되었고, 그 옷에는 어떤 시대의 영감이 들어 있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나는 자료 조사를 매우 즐긴다. 호기심이 가득한 사람이다. 만약 처음 들어보는 것이 생기면 바로 구글 검색에 들어간다. 2020 S/S 컬렉션에 대한 영감은 가족에게서 받았는데, 특히 어린 나이라 가족과 함께 가지 못한 90 년대의 UK 개러지 파티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 파티가 어떨지, 그 환각적인 색감과 질감은 어떠할지 늘 상상하곤 했었다. 옛날에 찍은 가족 사진을 보며 그 당시에 입은 옷을 살펴보기도 했고, 실크 치마나 데님 투피스와 같이 포인트가 되는 복장에서 영감을 받았다.

음악에도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나만의 팟캐스트를 해보고 싶다. 특히 프레젠테이션 때 음악과 관련하여 나를 도와주는 친구 레오 기본(Leo Gibbon)과 함께 진행해보는 게 꿈이다. 최근 음악을 굉장히 많이 듣고 있어서 지금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요즘은 샤데이(Sade) 노래를 특히 자주 듣는다.

LVMH 프라이즈 공동 우승은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궁금하다. 첫 번째 시상식 때부터 LVMH 프라이즈에 대해 알고 있었고, 여기에 참석하는 브랜드들을 늘 동경해왔다. 상당한 권위가 있는 시상식이기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이루고 싶었던 꿈 중 하나였다.

지속 가능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지금 패션을 하는 모든 사람들, 브랜드의 숙명이다. 당신은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지속 가능한 의류에 대한 편견부터 이야기해야겠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지속 가능한 의류를 일종의 히피스타일로 연결해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브랜드와 같이 재활용 원료를 사용하며 앞서 나가려고 노력하는 브랜드도 많다. 지속 가능한 기술의 발전과 관련하여 멋진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지 않나? 거기에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청바지에 쓸 수 있는 레이저 기술 같은 것 말이다.

코로나19는 디자이너들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멈추지 않아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당신에게 찾아온 어려움도 있을 테고, 변화도 많을 것 같다. 당신은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해가고 있으며, 어떻게 긍정적인 움직임을 도모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처음에는 굉장히 속상했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애도를 표하고 싶다. 내가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려 애쓰고 있다. 내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들에 한해서는 베이킹과 요리, 그리고 음악 연주를 통해 즐거움을 전해주려고 한다. 일도 하고 있긴 하지만 예전에 비해서는 훨씬 느리게 진행하고 있다. 시간 여유가 있으니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덕분에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기가 수월하다.

앞으로 어떤 브랜드로 자리 잡고 싶은가? 우리 브랜드가 훌륭한 아이디어를 가진 훌륭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브랜드로 확장해가기를 바란다. 또 여성복과 가정용품 분야로도 뻗어 나가고 싶다.

셀린느, 데렉 램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성과 융통성을 유지한 채 새롭고 실험적인 웰메이드 미니멀리즘 시대를 주도하고 있는
피터 도(Peter Do), @the.peterdo

1 년 반 전에 온라인에서 만난 친구 그룹에 의해 시작된 브랜드라 들었다. 피터 도를 구성하고 있는 친구들을 소개해달라.

피터 도 브랜드 아이디어는 2년 전 거실에서 처음 떠올렸다. 곧바로 친구 몇 명 불러서 정신 나간 아이디어가 하나 있는데 같이할 생각이 있느냐 물어봤다. 만약에 그들이 거절하면 혼자선 못할 거라고 얘기도 했다. 그 친구들이 제일 먼저 합류했고, 이제는 팀이 12명으로 늘었다. 안(An)은 내 오른팔로, 나와 같이 컬렉션 디자인을 맡고 있다. 빈센트는 사업 파트너이자 판매 디렉터다. 제시카는 소통과 전자상거래 디렉터다. 그리고 리디아는 이 모든 걸 종합하는 역할로, 사업 전반을 담당한다. 개별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다. 시간이 흐르며 일과 관련된 고충을 공유하다 보니까 실생활에서도 친구가 되었다. ‘피터 도’ 사업을 전개하는 우리의 공통점은 색다른 것을 시도하는 데 망설임이나 주저함이 없는 모험가라는 것이다.

셀린느, 데렉 램에서의 이력이 있다. 당신의 성장에 영향을 미친 그곳에서는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2014LVMH 대학생 부문 상을 타고 나서 셀린느의 피비 파일로 밑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다. 그곳은 약간 도제 훈련소와 비슷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가르침은 직물 개발 일이었다. 작업실에서 일하면서 정말 패션계에 눈이 튼 것 같다. 피비가 하는 작업과 디자인을 보며 많은 영감을 얻었다. 그녀는 여자를 생각한 디자인과 자신도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었다. 데릭 램한테 갈 때는 선임 디자이너 자격으로 갔는데, 옷 디자인 이상을 배울 수 있었다. 디자인의 비즈니스 면모를, 쇼룸부터 바이어 만나기, 팀 관리까지 전부 배웠다.

하이엔드, 진정한 럭셔리에 대한 당신의 정의는? 매우 개인적인 질문인 것 같다. ‘럭셔리’라는 개념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된다. 대학에서 처음 ‘럭셔리’를 접한 것은 매장이었다. 들어가면서도 이런 겉치장은 내 취향이 아님을 느꼈다. 고압적으로 느껴졌달 까? 내가 배운 럭셔리는 전부 외부인의 입장에서 관찰한 것이다. 매장이나, 학생 신분으로 배웠지 직접 생활 속에서 입어본 적은 없다. 나한테 럭셔리란, 디테일과 대외 구매와 직접 제작과 옷을 만드는 데 기여한 모든 사람의 종합이다. 많은 사람이 럭셔리의 기준을 유명 브랜드나 가격표로 평가한다. 하지만 그 기준도 바뀌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피터 도처럼 젊은 브랜드도 팔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피터 도가 추구하는 옷은 어떤 옷이고, 브랜드는 어떤 가치를 따르는가? 중요하게 여기는 건 다양성과 융통성이다. 이 같은 특성을 갖추기 위해선 시험과 피팅이 필수다. 딱히 미니멀리즘 미학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덜어내는 과정은 무시할 수 없다. 필요 없는 부분을 잘라내어 다양한 물리적, 사회적 환경에 적응 가능한 옷을 만드는 것, 그것이 포인트다.

잘 만들어진 옷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사람들은 왜 잘 만들어진 옷을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옷, 특히 웰메이드 옷을 만들 때엔 ‘보이지 않는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최종 작품이 나오기 전에 몇 시간 동안 회의와 조사, 피팅 등을 통해 모든 디테일을 시험해본다. 무엇이 웰메이드 옷이냐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웰메이드 옷이란 입는 사람에게 가치 있는 옷이다. 그런 까닭에 옷을 입게 될 여자와 옷을 입는 목적을 고려해 디자인한다. 사람들에게 옷에 어떤 점을 바라는지 물어보면, 제일 먼저 나오는 답이 편안함이다. 추리닝 같은 편안함이 아니라 편안한 디자인을 말한다. 그래서 오래 입을 수 있는, 시간이 흘러도 버려지지 않는 옷을 만들려 한다.

지속 가능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지금 패션을 하는 모든 사람들, 브랜드의 숙명이다. 당신은 어떻게 실천하고 있나? 지속 가능성 역시 중요히 다뤄야 할 문제다. 지속 가능성을 달성하는 데 정해진 공식이 있는 건 아니다. 피터 도에선 그저 지속 가능, 친환경 등의 단어를 체크리스트에서 지우는 것보다는 하나의 접근법을 세우려고 한다. 우리가 만드는 디자인은 두 시즌 이상 지속되며, S/S 땐 실험성을 위주로, F/W 땐 조금 더 안정성과 성숙성을 중심으로 작업한다. 시그너처를 계속 사용하는 것과 직물을 알뜰하게 활용하는 것, 남는 가죽을 재활용하는 것은 브랜드 창립 이후 계속해온 원칙이다. 프린트도 매우 좋아하지만,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시도하지 않고 있다.

LVMH 프라이즈 공동 우승은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궁금하다. LVMH 프라이즈 참가자, 그리고 파이널 리스트까지 된 것은 매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프라이즈로 인해 현 시국에 큰 도움이 되었을 뿐 아니라 대회에 참여함으로 패션계 영웅들을 만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연락은 주고받았지만 직접 만나지는 못한 사람들과, 내가 어릴 때부터 존경해온 거장들까지, 그분들을 만난 게 우리에게 상이었다.

당신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디자이너로 유명하다. 물론 당신의 팬들은 문신으로 당신을 식별한다고 들었지만. 마케팅 전략이 아닌 것은 알고 있다. 브랜드 창립 이후, 피터 도는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 된 적이 없다. 시작부터 우리 브랜드의 상징이 팀과 팀이 제작한 옷이 되기를 바랐다. 나는 옷들이 스스로 빛났으면 했고, 또 한 사람만 주목받기보다는 많은 사람이 대변되길 바랐기 때문에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코로나19는 디자이너들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멈추지 않아야 한다. 당신은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해가고 있으며, 어떻게 긍정적인 움직임을 도모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했을 때 가장 큰 어려움은 정확한 정보가 매우 부족했다는 사실이다. 브랜드를 시작할 때 대외 구매와 컬렉션 제작 대부분을 뉴욕에서 해결하자고 합의한 것이 이 사태를 이겨내는 데 가장 크게 기여했다. 덕분에 많은 길이 끊기는 와중에도 우린 작업장 내에서 유연하게 상황에 적응할 수 있었다. 또 전자상거래 웹사이트에 중점을 둬서 고객과 직접 연락을 했다. 그리고 반려견 ‘유니’도 이 사태를 이겨내는 데 큰 힘을 줬다. 지난 한 달 동안 유니한테 많은 시간과 관심을 쏟았다. 현재 우리는 새 컬렉션을 디자인하는 중이다. 이렇게 우린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내 궁극적인 목표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고 인터뷰에 언급한 것을 보았다. 자유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 지켜야 하는 것, 제약도 많을 것 같 다. 당신이 타협하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 말이 맞다. 우리는 자유를 얻기 위해 개인적으로, 직업적으로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나 같은 경우는 그 동안 방이 아닌 거실에서 살면서 돈을 아꼈다. 하지만 난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했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친구들도 브랜드에 동참하면서 그들만의 희생을 했다. 그리고 직업적인 면에선, 팀과 브랜드를 지키기 위해 많은 제안을 거절해야 했다. 감당할 수 없게 일하다가 모든 걸 잃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지난 2년간 우리는 의리와 신뢰, 친절함을 바탕으로 특별한 관계를 형성해왔다. 내가 지금 누리는 자유는 팀과 내 동업자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세워졌다. 이 사람들 덕분에 피터 도가 탄생할 수 있었다. 결코 내가 포기하지 않을,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가 바로 이들에 대한 의리다.

패션 에디터
김신
뉴욕 통신원
SUSAN YOON
런던 통신원
김민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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