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바이러스, 신 풍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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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은 원더키디의 해로 배우고 자랐지만, 막상 닥친 2020년 현재의 풍경은 어떠한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 일상에 미친 영향에 대해 외근이 잦은 여자와 재택을 추구하는 남자가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감

“잡지 그거 한 달만 발행 쉬면 안 되니?” 국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확진자 수가 돌연 폭증하며 가파른 종형 곡선을 그리기 시작할 때, 엄마가 말했다. 나는 발행인도 편집장도 아닌 일개 에디터일 뿐이라 발행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어느 집단이든 구성원의 상식과 욕망은 제각각일 수 있지만, 월간지에서 일하는 자들은 이러한 대명제를 공유한다는 것만 안다. ‘매달 마감이라는 걸 한다. 매달 새 콘텐츠로 한 권을 채운다.’ 그건 ‘공기가 있어야 숨을 쉰다’처럼 너무나 당연히 뇌에 탑재된 기본값이어서, 발행을 쉬면 안 되냐는 음성을 듣는 순간 굉장히 신선하게 어이없는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국내 확진자 수가 세 자릿수일 때부터 회사 건물 1층에는 공항에서나 보던 열 감지 카메라가 설치됐다. 어느 날에는 층마다 체온계가 비치됐다. 메일함에는 각종 전시와 공연과 행사가 연기되거나 취소됐다는 보도자료가 쌓여간다. 변하는 것들이 많지만, 그 속에서 변하지 않고 지켜내야 하는 것도 있다. 이를테면 ‘마감’처럼.

시국이 어수선해도 할 일은 해야 하니까 많은 회사들이 택한 게 재택근무다. 세 살, 일곱 살짜리 남자 조카 둘과 동거하는 나는 이 세상 워킹맘들에게 무한한 경의를 품 고 있는데, 2주간의 재택근무를 하면서 내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카오스 상태를 타개하기 위한 재택근무가 또 다른 카오스를 일으키고 있었다. 이미 처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헤쳐나가겠다는 마인드를 가지니 창작욕이 샘솟아서 나도 모르게 시나리오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집 밖에 바이러스가 창궐한다. 한창 뛰어 놀아야 할 유아들은 어른의 지도 아래 집 안에 감금된다. 어른이 재택근무를 위해 방문을 잠그자 아이들은 나라 잃은 사람처럼 오열하며 방문을 두드리기 시작하고,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한 전국의 유아들은 각자의 집을 어린이집화하기 위해 일제히 봉기하는데…’ 장르는 호러물이다.

자영업자가 어떤 상황에서도 가게로 나가 생업을 이어 가듯, 잡지를 둘러싼 사람들은 일정한 때가 오면 집을 벗어나 촬영장으로 향해야 한다. 화보 하나를 위해 모이는 군단을 페이지별로 더하면 사열종대 앉아 번호로 연병장 몇 바퀴쯤 된다. 그나마 한국 잡지의 사정은 심플한 것이다. 해외 잡지의 화보를 보면 책 접지에 영화 스태프 크레딧에 준하는 사람 수가 깨알같이 나열돼 있다. 평소 ‘사회적 거리 두기’를 준수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 거리를 둘 수 없는 에디터와 사진가, 모델 및 셀렙, 스태프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각자는 촬영일을 조정하거나 하지 않아도 되는 촬영은 없는지 고심했다. 그 과정에 혼란의 나비 효과가 생긴 건 물론이다. 촬영장에서는 마스크를 벗지 않기 위해 간식도 최소화했다. 곳곳에 손 소독제 를 놔뒀다. 연예인은 그들을 돕는 많은 스태프들에 둘러 싸인 존재이면서 얼굴에 마스크 자국이 남은 채로 카메라 앞에 설 수도 없는 처지다. 일대일로 이루어지는 인터뷰를 할 때면 인터뷰어든 인터뷰이든 즐겁게 흥분한 나머지 목소리가 높아질 때도 있지만, 내내 억압된 공기가 짓누르는 듯했다.

이 사회의 구성원들이 생애 처음 경험하는 방식의 위기는 사회와 경제와 의학 및 방역 등의 카테고리에서 다시 각각의 이슈를 낳고 있다. 쏟아지는 기사들을 보며 배워가지만, 비판적인 생각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진해야 하는 이 어수선한 언론에 지치기도 한다. 신종 바이러스라는 지극히 전문적인 분야를 두고 어찌 쉽게 왈가왈부 할 수 있겠으며, 나에게 아직 닥치지 않은 불행도 공동체 안에서는 분명 일어나고 있는 불행이라는 걸 알 뿐이다. 제네바의 WHO와 지척인 동네에서 6년째 살고 있지만 아무 덕도 보지 못한다는 친구는 생산적인 이야기나 하자며 IT 기사 링크를 보내왔다. 지금과 같은 사태는 앞으로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높으니, 기업들은 구성원이 물리적으로 접촉하지 않고도 쉽게 협업할 수 있는 플랫폼을 모색할 때라는 내용. 원격 근무를 위한 전문적인 기반은 어쩌면 거역할 수 없는, 필요한 이야기 같았다.

“월간지가 매달 나와서 월간지인 거 몰라?” 엄마의 신선한 발상에 이렇게 답하며 돌아섰을 때, 사실 잡다하게 떠오르는 것들이 있었다. 톰 포드와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때마다 당연하게 열리는 패션위크에 불참하겠다 선언했을 때, 혹은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남성복과 여성복으로 나눠서 하는 게 당연했던 패션쇼를 하나로 통합했을 때. 당연한 줄 알았던 법칙을 어긴 그들은 결국 새로운 패러다임의 선구자가 됐다. 촬영을 앞두고 걱정을 한가득 안으며 잠든 어느 날, 나는 꿈속에서 당시 해외 출장을 떠나 있던 편집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시국이 혼란스러우니, 방송사가 비상시에 재방송을 편성하는 것처럼 과거에 만들었던 잡지를 재탕하십시오. ‘그땐 그랬지’ 콘셉트로 과거의 기사를 오늘날의 시각으로 재해석하여 뉴트로로 거듭나…” 글 | 권은경(<더블유> 피처 에디터)

바이러스보다 강한 공포

코로나바이러스 – 코비드 19는 내 삶과 집의 구조를 크게 바꿨다. 내가 사는 집에는 불과 얼마 전까지도 음식과 요리 설비와 와이파이가 없었다. 집은 그저 쉬거나 책을 읽는 공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을 하려면 나가야 했고 나가려면 마스크를 써야 했다. 마스크를 오래 쓰면 특유의 가공된 종이 냄새가 난다. 거기 내 체온과 침 냄새가 붙으면 코에 침 뱉은 종이를 붙여둔 것 같다. 마스크가 크게 쓸모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그건 내 의견일 뿐. 지금 마스크를 안 쓰면 몰상식한 사람이 되는 분위기다. 나는 마스크보다 손 소독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 면에서는 외출도 곤란하다. 커피를 리필하거나 문손잡이를 잡을 때도 매번 손 소독제를 찾자니 그것도 피곤하다. 며칠 전에는 카페에 일하러 갔다가 손 소독제인 줄 알고 무심코 설탕 시럽을 손바닥에 짤 뻔했다.

매번 밖에서 커피를 사 마시기도 그래서 집에서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작동시킨 지 1년 넘은 가스레인지를 켜서 물을 끓였다. 어느 날 아침에는 차를 마시고 밥을 먹으러 동네 식당에 갔다. 주문한 콩나물국밥에 날달걀을 넣고 국물을 세 숟가락쯤 떴을 때 갑자기 생각났 다. 가스레인지 껐나? 외투도 안 입고 집까지 전력 질주했다. 다행히 가스는 꺼져 있었다. 이때부터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 삶을 바꿀 때인가. 그다음 날, 와이파이를 설치했다. 와이파이를 설치하고 오랜만에 PC로 인터넷에 들어가보았다. 중년층의 의견 성토 채널이 된 페이스북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타임라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누가 잘못이고, 외국은 어떻고, 어디엔 뭐가 있고. 내 눈엔 코비드 19보다 그게 더 위험해 보였다. 무분별한 주장, 불안을 키우는 말들, 그 뒤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

도시는 시골보다 인구밀도가 높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전염병에 취약하다. 전염병은 역사적으로 외국으로부터 와 도시를 멈춰 세웠다. 기원전 430년 그리스에서도 아테네 근교 항구 도시 피레우스를 통해 전염병이 돌았다고 한다. 전염병에 대처한 도시의 역사는 그 자체로 방역과 시민의식 향상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면에서 인류의 도시는 아주 많이 발전해왔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나는 현대 도시의 시민의식과 한국 행정 실무자의 능력을 믿는다. 그래서 코비드 19와 관련해 내가 지켜본 지표는 딱 하나였다. 사망자. 39일 현재 질병관리본부 배포 보도자료에 따르면 사망자는 51명이다. 그중 50세 이상이 49명, 0~49세 사망자는 2명이다. 10대, 20대 사망자는 없다. 301명, 401명. 둘 다 남성이다.

나쁜 소문이 좋은 소문보다 빨리 퍼진다. 지금 한국에서는 공포가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더 강해 보인다. 사람들은 각자의 집 안에서 스마트폰을 매개로 사방에 공포와 불안을 감염시킨다. 만인의 정보 생산과 유통이 가능한 SNS 천국에 차분한 정보의 자리는 없다. 출처 모를 공포와 ‘이때다’ 싶은 혐오가 재난 문자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찌르르 울린다. 공포와 혐오는 인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위축된 인간 심리는 소비와 생산의 동시 둔화로 이어진다. 지금의 혼란은 유례없는 경기 침체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나는 이번 일로 현대 사회의 전제가 ‘사람들이 많이 모여도 안전한 것’ 이라는 걸 깨달았다. 코로나바이러스는 그 전제를 깼다. 사람이 모이지 못하면 일상 전체가 흔들린다. 한국 가톨릭교회의 미사가 236년 만에 전부 멈췄다. 어느 트위터리안 말처럼 ‘흥선대원군도 못한 일을 바이러스가 해냈다’. 이탈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프로축구 세리에 A의 운영을 중단했다. 전염병이 주는 공포와 불확실성의 효과는 이제부터 나타나는 것 같다. 나 역시 코로나바이러스의 나비효과 같은 재택근무의 대가를 치렀다. 개에 물렸다. 차를 끓여 마시고 점심을 먹으러 가던 그날 집 마당에서 주인집 할머니가 키우는 개가 오른쪽 종아리를 물었다. 바이러스는 내 폐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대신 내 종아리에 소형견 이빨 자국 두 개를 남겼다. 밥 먹고 병원에 가서 파상풍 주사를 맞았다. 글 | 박찬용(칼럼니스트)

피처 에디터
권은경
사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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