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아트위크 다이어리 Vo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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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바젤 기간이 찾아오면 홍콩의 모든 길은 갤러리로 통한다.

홍콩 아트 신의 지형도를 펼쳐 들고 동서남북으로 떠나본 갤러리 호핑기.

마시모 드카를로의 엘름그린 & 드라그셋의 전시 전경.

페더 빌딩 VS 에이치 퀸스

루이즈 부르주아 전시가 열린 하우저 & 워스 갤러리(위), 루이즈 부르주아의 홀로그램 작품(아래). Photo: Matthew Schreiber ⓒ The Easton Foundation/VAGA at ARS, NY, Courtesy The Easton Foundation and Hauser & Wirth

루이즈 부르주아 전시가 열린 하우저 & 워스 갤러리(위), 루이즈 부르주아의 홀로그램 작품(아래). Photo: Matthew Schreiber ⓒ The Easton Foundation/VAGA at ARS, NY, Courtesy The Easton Foundation and Hauser & Wirth

아델 압데세메드의 작품, ‘Forbidden Colours’, 92×73.5×3.5 cm, mixed media on canvas, 2018

아트위크 기간 동안 모르는 누군가를 두 번 이상 마주칠 확률이 높은 양대 산맥이 있다. 주요 갤러리가 층별로 모여 있는 페더 빌딩(Pedder Building)과 에이치 퀸스(H Queens)가 바로 그곳이다. 꼭대기층부터 혹은 아래층부터 계단을 오르내리며 현대미술의 최전선을 관람하는 것은 아트위크만의 특권이다. 페더 빌딩에 위치한 마시모 드카를로(Massimo de Carlo)에서는 엘름그린 & 드라그셋의 개인전 <Overheated>가 열리고 있었다. 수증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지하실 보일러 룸 같은 기묘한 대형 설치 작품이 그곳에 있었다. 관객들은 파스텔 톤 튜브 사이를 이리저리 걸으며 공간을 탐험했다. 온몸을 사용해 작품을 보게 하는 독특한 경험이었다. 이 작품은 홍콩의 도시적 문맥 가운데서도 존재한다. 지난 10여 년 동안 홍콩은 경제, 금융의 중심 그리고 아트 마켓의 허브로 격변해왔다. 기계와 노동의 열기로 뜨겁게 달궈진 건물은 어느덧 하나둘 그 기능을 상실하며 텅 빈 채로 남겨지고, 그곳에 트렌디한 레스토랑, 숍, 아티스트의 스튜디오가 들어서며 재사용되는 현상을 오버랩한 작품이다. 리만 머핀 갤러리는 위트와 충격을 동시에 안겨주는 에르빈 부름(Erwin Wurm)의 작품을 선보였고, 펄램(Pearl Lam) 갤러리에서는 리오나도 드루(Leonardo Drew)의 개인전이 열렸다.

2018년 개관한 에이치 퀸스 빌딩은 26층 높이의 건물 안에 하우저 & 워스, 데이비드 즈워너, 화이트 스톤, 페이스 갤러리 등이 모여 있는 홍콩 센트럴의 핫 플레이스다. 그 가운데 가장 뜨거운 관심을 모은 전시는 하우저 & 워스의 루이즈 부르주아 전시다. 작가의 드로잉 작품부터, 태피스트리, 조각, 그리고 빨려들어가는 듯한 홀로그램 작품 등을 공개했다. 1980년대부터 작가가 사망하기 직전인 2010년까지 가장 긴밀하게 소통한 큐레이터 제리 고로부아(Jerry Gorovoy)가 기획한 전시로 ‘My Own Voice Wakes Me Up’이라는 제목은 부르주아의 정신분석적인 글로부터 가져온 제목이다. 특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그동안 거의 보기 힘들었던 홀로그램 작품으로 꾸민 붉은 방이었다. 작가는 1998년 뉴욕에 기반을 둔 파인 아트 홀로그래픽 스튜디오에 머물며 3차원 사진의 창조적 잠재력에 매료되어 그 분야를 깊게 탐구했다. 어두운 암실에서 감상하는 작가의 홀로그램 작품은 강렬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불러일으켰다. ‘레드는 틀림없는 확언이다.(Red is an affirmation at any cost)’. 작가가 생전에 남긴 말이 맴돌았다. 마치 갤러리 간에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탕 컨템퍼러리 아트에서 선보인 아델 압데세메드(Adel Abdessemed)의 붉은빛 대형 회화 작품도 압도적인 감정을 선사했다. 늘 논쟁적인 작품을 선보인 그답게 마치 피를 흩뿌린 듯한 자극적인 회화는 실제로 영화에서 특수효과로 사용하는 액체로 그린 것이다. 작가는 가짜 피로 그린 그림을 통해 실제보다 더 진짜처럼 보이려고 하는 요즘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었다.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에서는 오프닝에 근사한 슈트와 뱀피 프린트 구두로 드레스업한 네오 라우흐 작가가 수많은 인파 속에 숨어 있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평소 물감 묻은 작업복이 더 익숙해서 그런지 초현실적인 자신의 대형 회화 앞에서 지인들에게 눈인사를 건네는 그의 모습은 작품만큼이나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우리 방금 오픈했어요

3월 새롭게 오픈한 레비 고비 갤러리.

아트 바젤 기간이 되면 언제나 뉴 페이스가 등장한다. 그동안 뉴욕, 런던을 거점으로 활동해온 갤러리 레비 고비(Lévy Gorvy)가 3월 홍콩 센트럴에 상륙했다. 공동 설립자인 도미니크 레비와 브레트 고비가 이끄는 곳으로 첫 개관 전시의 타이틀은 ‘Return to Nature‘. 조앤 미첼, 클로드 모네, 몬드리안, 하오량, 투홍타오 등 자연을 그린 동서양 작가의 회화를 소개했다. 아트 바젤 홍콩에도 참가했는데, 미국 출신의 젊은 작가 댄 콜런(Dan Colen), 추상회화 작가 팻 스테어(Pat Steir)의 작품을 주력해서 소개했다.

컵라면도 예술이 되나요?

아트 센트럴에서 퍼포먼스를 펼친 구민자 작가.

올해로 5회째 열리고 있는 아트 센트럴(Art Central)은 센트럴 하버프런트에서 열리는 일종의 위성 페어다. 금요일 저녁 방문한 아트 센트럴은 디제이가 플레이하는 EDM 사운드가 전시장을 쿵쿵 울리며 ‘Z세대’의 놀이터 같은 분위기였다. 올해는 107개 갤러리가 참여했고, 37천여 명의 관객이 다녀갔다. 그곳에서 우연히 구민자 작가를 만났다. 그는 이번 페어에서 ‘The Authentic Quality: HK’라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2014년에 ‘전통의 맛’이라는 작업을 했어요. 즉석 조리 식품의 패키지에 그려진 ‘조리 예’ 사진을 실제로 재현해서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요리를 만드는 과정을 퍼포먼스와 설치 작업으로 보여주었죠. 이번에는 닛신사의 매운 해물맛 컵라면으로 퍼포먼스를 했어요. 홍콩 친구들이 말하길 이제 정말 ‘홍콩의 맛’이라고 하더군요.” 민트색 주방 한편에는 건축가의 도움을 받아서 그린 식재료의 설계 도면이 정갈하게 걸려 있었다. “가짜 식재료로 만들었을 수도 있는 즉석 식품의 이미지를 실제로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만들어서 누군가 먹는 과정을 보는 것이 흥미로운 지점이에요. 미술사에서 큰 흐름이라고 할 수 있는 재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죠. 즉석 조리 식품의 겉면에 있는 아이코닉한 이미지를 어떻게 현실에 가져올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출발한 작업이에요.” 1 시간 30분의 쿠킹 쇼가 끝날 때까지 사람들은 자리를 떠나지 앉고 지켜봤다. 완성된 요리는 실제로 관객들이 나눠 먹으며 퍼포먼스가 마무리되었다.

피처 에디터
김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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