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작 골목 기행 Vol.4 – 대구 봉리단길

이채민

대구의 골목을 거닐었다. 일상에 기분 좋은 자극을 줄 만한 카페, 레스토랑, 갤러리를 만났다.

대구 봉리단길 대봉동 & 삼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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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덕동의 주택을 개조해 만든 카페 겸 가구 쇼룸 LIT에 들어선 건 해가 떨어질 무렵이었다. 손님들은 모두 창가에 앉아 단층 건물 사이로 소박하게 펼쳐진 일몰을 감상하는 중이었다. 방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각 공간에는 원목 가구 브랜드 스튜디오 오리진(Studio Origin)의 가구가 옹기종기 놓여 있다. 그릇과 소품을 위한 수납장, 사이드 테이블, 소파, 스툴까지. 가장 탐난 건 당장이라고 눕고 싶은 충동이 일던 데이 베드였다. 매장에서 잠깐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제대로 된 가치를 가늠할 수 없는 게 가구인데, 이곳에서는 충분히 앉고, 눕고, 살펴보며 나에게 맞는 제품을 선택할 수 있다. 그 시간을 투자해도 좋을 만큼, 훌륭한 퀄리티의 가구들이기도 했고.

2_라우스터프 삼덕점

라우스터프

라우스터프

라우스터프

‘라우스터프(Raw Stuff)’는 대구에 가기 전부터, 가서도 가장 많이 추천받은 로스팅 카페였다. 왜일까? 2호점인 삼덕동 매장에서 만난 김준연 대표에게 대놓고 물었다. “커피가 저렴해서요.(웃음)”‘저렴하다’는 말에는 많은 의미와 이유가 담겨 있다. 바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 나서 가격표를 확인했다. 커피의 산미, 농도, 잔향 모두 3천원이라는 가격이 믿기지 않을 만큼 훌륭했다.“매입하는 생두의 단가 대비 커피 한 잔의 가격이 저렴한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좋은 커피를 경험해볼 수 있는 시장(카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라우스터프는 그 한 잔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재구매를 유도한다. 단순히 매출 신장의 문제가 아니다. 원두의 바잉 파워가 높아질수록 더 좋은 원두를 손님에게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2호점에는 초콜릿 제조 설비를 들이고 테스트 제품을 만드는 중이다.

3_드롭

드롭

드롭

드롭

드롭

드롭

‘드롭(Dropp)’은 오해받기 쉬운 카페다. 간판도 알아보기 어렵고, 영업은 점심 이후부터 시작하며, 메뉴판에는 지나친 사진 촬영을 자제해달라는 당부가 꽤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대구는 어느 도시보다 하드웨어의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는 곳이에요. 콘셉추얼한 소규모 카페가 급속도로 생기면서 인테리어를 즐기기 위해 카페를 찾는 고객층이 굉장히 많아졌죠. 좋다, 나쁘다를 말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공간은 사람들의 행위로 비로소 완성된다고 생각하기에 특정 현상의 부작용이 경계되는 건 사실입니다.”손님 입장에서 둘러보자면 사실 드롭에는 ‘포토 스폿’이 여럿 있다. 아르떼미데의 빈티지 조명이나 에곤 아이어만의 빈티지 의자, 포스터가 무심한 듯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니 오히려 사진을 찍지 않는 게 더 어려운 일 같다. 셀렉션의 기준과 취향은 모두 서촌의 mk2에서 배운 것. 머지않은 미래에 다시 서울로 상경할 계획이다.

4_세컨드 프로젝트

세컨드 프로젝트

세컨드 프로젝트

세컨드 프로젝트

디자이너 부부가 운영하는 라이프스타일 편집 매장. 서울에서 패션과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남자의 고향인 대구로 내려와 1층은 숍, 2층은 집인 건물에서 또 다른 일상을 살고 있다. 생활 소품 위주로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면서도 두고 볼수록 멋스러워야 함’을 기준으로 제품을 큐레이션하는 곳이다. 지역 공예가가 만든 액세서리, 서울의 빈투바 카페에서 공수한 초콜릿 바, 빈티지한 멋을 풍기는 해외 각지의 테이블웨어가 널찍한 공간에서 그림처럼 잘 어우러진다. 마치 하나의 갤러리 같기도. 주변 상인들 여럿이 입 모아 추천한 이유가 수긍이 간다.

5_선댄스팜

선댄스팜

선댄스팜

선댄스팜

선댄스팜

선댄스팜

선댄스팜

선댄스팜

선댄스팜

브류클린에서 삼덕동 방향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브런치 카페 ‘선댄스팜(Sundance Farm)’을 만날 수 있다. 가는 길목에는 아직 블로그에서도 찾을 수 없는 소규모 매장을 보물찾기 하듯 발견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고, 대봉동 명소인 350m의 ‘김광석다시그리기’길도 둘러볼 수 있다. 유명인의 이름을 딴 관광 스폿이 생기면 어찌 됐건 오가는 사람이 생긴다.“김광석거리, 봉리단길이 뜨면서 전에 못 보던 손님들이 확실히 많아졌어요.”주방의 커다란 화덕에서 피자를 꺼내며 매니저가 말했다. 피자뿐 아니라 역시 화덕에서 구운 빵으로 만든 플랫 브레드와 샌드위치도 한 끼 식사로 만족스럽다. 카페 마당이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앉아 느긋한 시간을 보내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6_사교

사교

사교

오후 5시부터 새벽까지 문 여는 바 ‘사교’는 대봉동의 외진 골목에 은밀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일과가 끝나고 가벼운 마음으로 들러 술 한잔할 공간이 마땅치 않은 걸 아쉬워하다 결국 스스로 바 주인이 되는 길을 택했다. 누구나 부담 없이 마실 수 있을 법한 ‘레드 뮬’,‘라벤터 피즈’ 같은 시그너처 칵테일과 메뉴는 모두 서울에서 즐겨 가던 연남동 ‘EP커피 엔 바’에서 컨설팅을 받아 완성했고, 매장의 빈티지 가구는 카페 드롭의 도움을 받아 채웠다.“술에 대해 알고 마시는 건 그걸 즐기는 방법 중 하나인 거죠. 꼭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에요. 귀갓길에 한잔 편하게 마시러, 가끔 오고 싶은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7_브류클린

브류클린

브류클린

브류클린

브류클린

‘깨끗하게 내린 커피를 제공하겠다’는 이다지도 직관적인 상호를 보면 주인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진다. 자신이 파는 커피에 대한 주관이 확고하고 단정하며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 대구에서 만난 첫 카페 ‘브류클린(Brew Clean)’에 들어서자 상상했던 인물이 반갑게 맞아줬다. 10년 차 바리스타인 그는 서울의 카페에서 일하다 2016년 6월 대봉동 웨딩거리에 가게를 열었다.“카페 상권이 아니라면서 주변에서 많이 말렸죠. 하지만 이미 마음을 먹은 후라.(웃음) 웨딩거리다 보니 주말, 평일 상관없이 꾸준히 손님이 들어요. 테이크아웃을 하는 분도 많고요.” 인스타그램에서 조리퐁 음료인 ‘스위트퐁’으로 유명세를 탔지만 브류클린은 커피 맛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다. 지역 상권과의 협업도 점차 진행할 예정. 첫 시작으로 디저트 가게인 르 플랑과 협업한 레몬 케이크를 1월 중순부터 선보인다.


터줏대감 인터뷰
김준연 라우스터프 대표
대구 지역 카페가 타 지역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17년 초 무렵이었다. 평소 카페 투어를 즐기는 이들의 SNS에서 호기심을 자아내는 콘텐츠를 살펴보면 어김없이 ‘대구광역시’에 위치한 카페였다. 2018년 1월 기준, 인스타그램에서 #대구카페를 검색하면 39만 개가 뜬다. #서울카페는 9만 개. #홍대카페는 26만 개, #연남동카페는 14만 개이며, #부산카페 34만 개, #광주카페 15만 개다. 지역명에 카페를 조합한 태그에 뒤따라오는 건 각종 ‘리단길’. 경리단길에서 유래한, 소규모 카페와 숍, 맛집이 모여 있는 골목 상권을 의미하는 ‘리단길’ 태그는 서울의 ‘망리단길’로 그치지 않고 전국으로 퍼졌고, 대구 에서는 중구 대봉동이 ‘봉리단길’ 태그를 달고 카페 투어의 성지로 등극했다. 최근엔 바로 윗동네인 삼덕동도 심상치 않다. “대구에는 (다른 지역과 비교해봐도) 제대로 된 청년 일자리가 별로 없습니다. 대기업 자본의 유입도 없고 관광 산업이 발달한 것도 아니라 자영업 인구가 절대적으로 많죠. 20대 초반부터 창업하는 건 흔한 일이 에요. 게다가 자영업 트렌드의 변화 속도가 굉장히 빠릅니다. 카페는 소규모 창업의 인기 아이템인데다 창업을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대구 지역 사람들의 특성이 더해져 젊은 창업자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증가한 것 같습니다.” 대구 카페들의 외형을 보자면 서울의 여느 카페 못지않은 곳이 많다. 김준연 대표는 대구 카페 시장 전체가 커진 것은 반길 일이지만 커피 자체보다 공간을 소비하는 흐름이 걱정스럽다고 했다. 라우스터프를 연 건 대구에서도 좋은 생두로 만든 커피를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해서 커피에 대한 기준이나 인식을 높이는 데 일조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커피 콘텐츠를 돋보이게 하고자 인테리어도 거의 안 하고 정리만 했는데 커피가 아니라 ‘미니멀리즘 인테리어’를 보러 오는 경우가 많았다고. 커피는 반 이상 남긴 경우도 있었다. “인테리어 중심의 카페는 그게 킬링 콘텐츠인 겁니다. 좋다, 나쁘다 할 수 없죠. SNS에선 맛을 보여줄 수 없으니 커피보다 인테리어에 투자하는 거예요. 그래도 요즘엔 좋은 커피에 대한 인식이 많이 퍼져서 소비자도, 업장도 점차 바 뀌어가는 분위기입니다.” 김준연 대표는 대구가 자영업 인구가 많은 만큼, 트렌드 주도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하는 도시라 한다. 어떤 부분에선 서울보다 더 적극적이고 빠르다고. 다시 인스타그램 태그를 검색했다. #대구맛집 75만 개, #홍대맛집 72만 개. 하루 이틀쯤, 서울을 떠나 단층 건물 사이의 골목 상권을 누비며 기분 전환하기에 대구는 썩 괜찮은 선택이 될 것 같다.

프리랜스 에디터
신정원
포토그래퍼
이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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