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누구든 어디에 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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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빛나는 출발에 목격자가 된다는 건 은밀한 긍지를 공유하는 경험이다. 데뷔 앨범을 내놓고 한국에 온 휘트니(Whitney)를 바라볼 때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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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허설도 시작하기 전, 공연장인 홍대 앞의 콘서트홀에 일찍 도착해서 서성이는 팬들 가운데는 빨간 장미 한 다발을 든 소녀가 있었다. 공연을 보러 온 관객이라면 누구나 미소를 지을 광경이었다. 휘트니의 첫 앨범인 <Light Upon the Lake> 재킷에 그려진 한 줄기의 장미에서 착안한, 재치 있는 인사라는 사실이 명백했으니까. 많은 음악 매체의 2016년 ‘올해의 앨범’ 결산에서 빠지지 않으며 빛나는 시작을 알렸던 이들의 데뷔작은 두 젊은이를 시카고로부터 한국까지 불러들였다. 기타를 연주하는 맥스 커케이식, 그리고 드럼을 치며 노래를 부르는 줄리언 얼릭은 언노운 모털 오케스트라, 스미스 웨스턴스 같은 팀에서 연주를 하다 두 사람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꾸렸다. 독특하지만 뾰족한 데 없는 가성의 음색, 노스탤지어가 묻어나는 트럼펫 사운드는 앨범 제목처럼 햇살이 부서지는 호수 같은 온화한 장면에 어울리지만 휘트니의 정체성을 맘 편하게 포크록으로 치워버릴 수 없게 만드는 건 까슬까슬한 젊음의 에너지다. ‘No Matter Where We Go’의 가사 한 구절처럼 누군가를 태우고 차 유리창을 내린 채 내내 달리고 싶은, 그런 젊음의 시간에 속해 있으니까. 30시간 이상 잠들지 못한 채로 비행기에서 내렸다면서도 서울의 고궁과 이태원을 이미 섭렵하고 온 이들의 대기실에는 떡볶이와 샌드위치, 맥주와 버번, 기대와 긴장이 어지럽게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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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Korea> 2016년 많은 이들이 휘트니의 첫 앨범을 올해의 데뷔로 꼽았다. 당신들에게는 어떤 시간이었나?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인가?

줄리언 투어 중일 때 우리 팀의 베이스 연주자가 오줌을 마신 일이 있다. 누군가가 숙소에서 병에다 실례해놓은 것을, 늦은 시간 파티에서 돌아와 물을 찾다가…. 이건 웃긴 해프닝이라 할 수 있고, 진지하게 2016년 전체가 우리에겐 예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시간이었다. 이렇게 한국과 일본에서 공연까지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맥스 곧 유럽에 여섯 번째로 공연을 하러 간다. 투어 버스를 타고 다니고, 수많은 관중 앞에 서고 이런 것이 모조리 다 놀랍다. 우리로서는 가장 큰 규모였던 1천6백명 정도의 관객 앞에서 공연한 코펜하겐 공연이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공연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주 작은 도시에서 벌어지곤 하는 것 같다. 노르웨이 베르겐이나 덴마크의 오르후스 같은 곳이 그랬다.
줄리언 리스본에서는 맥스와 나 둘이서만 어쿠스틱 기타를 가지고 공연한 일도 있다. 뒤를 받쳐주는 밴드 없이 무대에 선다는 건 상당히 떨리는 일이다. 게다가 나는 기타 실력이 그리 뛰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하지만 관객들은 반응이 좋았고, 감사한 기억으로 남았다.

줄리언과 맥스,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나?
맥스 각자 이전에 다른 밴드에 속해 투어를 다니다가 만나 친구가 되었다.
줄리언 우정에서 먼저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서로 밴드를 했고 솔로로 음악을 해볼까 하다가… 같이 연습 삼아 음악을 해보니 꽤 괜찮다고 느꼈던 것 같다.

휘트니라는 밴드 이름은 어떻게 정하게 됐나? 검색하기에 괜찮은 팀 이름은 아닌 것 같다. 휘트니 휴스턴이 너무 많이 나오니까.
맥스 한 단어짜리 실존하는 사람 이름 같은 걸로 정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아침 먹다가 폰에 저장된 이름 중에 서 찾았다.

어린 시절에는 어떤 음악을 좋아했나?
줄리언 우리는 음악을 좋아하는 만큼 스포츠에도 빠져있는 10대였다. 축구나 농구 같은 걸 즐기기도 했고. 비슷하게 재미있었지만, 음악은 아마 운동처럼 기술적으로 뛰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맥스 자니 캐시에 푹 빠진 시절이 있었다. 티렉스 같은 펑크 밴드를 좋아하기도 했고.
줄리언 우리 둘 다 클래식을 탐색하던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나 브라이언 이노….

요즘은 음악을 어떻게 듣나?
줄리언 라이프스타일 때문에 스트리밍으로 들을 수밖에 없다. 투어를 다니면서 레코드 가게에 가도 그걸 깨지지 않게 갖고 다닐 일이 걱정되니까 구입할 수가 없다. 완벽한 세계에서라면 바이닐을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음악 감상을 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늘 떠돌아다니고, 집 레코드 플레이어 세팅도 제대로 못한 상태니까. 하지만 당신이 뮤지션이 되면, 주변에서 음반을 주는 사람이 늘 생긴다! 관악기를 사용한다는 점이 요즘 밴드 가운데 독특한 것 같다.

트럼펫 소리를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맥스 ‘Polly’라는 곡을 녹음할 때 코러스를 웅장하게 하고 싶었다. 우리 둘의 공통적인 친구가 트럼펫 연주자를 소개해줬고, 한번 어떤지 들어보자고 했는데 밴드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소리가 났다. 그 후로 녹음과 투어에 같이하게 됐다.

옷을 고를 때 원칙이 있나?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다면?
맥스 양말이 중요하다. 하지만 늘 저렴한 양말을 산다!
줄리언 아, 누디진을 언급해야겠다. 우리에게 늘 청바지를 협찬해주는 스웨덴 브랜드다. 뮤지션들에게 아주 호의적이다! 옷 입을 때 원칙이 있다면 멋지게 보이려고 애쓰지 않는 거다.
맥스 그리고 또 하나, 너무 좋은 물건은 갖지 않는다. 잃어버리면 슬프니까. 옷에 너무 많은 돈을 쓸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언젠가는 사라지니까.

한국이 처음일 텐데, 재미있다고 발견한 부분이 있나?
줄리언 30시간 동안 못 잔 채로 도착했기 때문에 비행기 위에서 일출이 멋지다는 게 서울의 첫인상이었다. 냄새가 좋지 못하다고 느꼈지만 그건 뉴욕을 비롯한 대도시는 다 비슷하다. 큰 궁궐에 갔는데 멋졌고, 공연장이 있는 홍대 주변이나 이태원도 괜찮았다. 그리고 카스라는 맥주가 가벼워서 마시기 좋았고, 라즈베리 색의 아주 달콤한 와인이 맛있더라.

복분자주를 먹었나 보다.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사회적 이슈가 있나?
줄리언 도널드 트럼프는 지금 우리 모두의 관심사다. 사람들의 가치 기준을 시험에 들게 하고 있으니까. 30대 후반의 나이가 될 때까지는 아마 계속해서 많은 사회 문제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을까 싶다.

줄리언은 드럼을 치면서 노래하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줄리언 그래서 박자를 틀리거나 실수할 때가 많다. 리허설 때 여러 번 반복하는 것도 그래서다. 리듬이 어려운 곡은 근육이 기억하도록 새겨야 하기 때문이다.

음악을 통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싶은가?
줄리언 우리는 회복에 대한 이야기를 노래로 해왔다고 생각한다. 실연의 상처, 혹은 가족의 죽음처럼 누구나 삶에서 마주칠 수밖에 없는 경험들 말이다. 그런 이야기들이 아픈 경험에 위로를 준다면 좋을 것이다.
맥스 공연에 오는 사람들이 음악을 듣고 행복해하는 표정을 본다.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같은 시간을 공유할 때는 친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럴 때 음악이 그들을 조금은 긍정적으로 만들어준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에디터
황선우
포토그래퍼
PARK JONG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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