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이 얼마나 크고 빛나는 가능성인지는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실감하게 된다. 1990년대에 태어나 현재 20대를 통과하고 있는 배우와 뮤지션 중 앞으로의 활약이 특히 기대되는 인물로는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이들 세대보다는 조금 더 많은 인생 경험을 쌓았을 네 명의 필자가 누나, 혹은 이모의 시선으로 될성부른 떡잎을 검증했다.

예상 그 이상,
최우식

 

작년 초 최우식을 만났으니 벌써 1년하고도 절반이 지났다. 연초 ‘주목해야 할 라이징 스타’라는 콘셉트로 여러 배우를 인터뷰했는데 최우식도 그중 한 명이었다. 최우식에게는 신인 배우 하면 으레 보이는 절박함이 없어서 좀 신기했다. “제 위치를 잘 아는데요. 그냥 최우식한테 맞는 연기를 하면서 길게 가고 싶어요” 정도의 멘트. 슬렁슬렁하는 말 같지만 <옥탑방 왕세자>의 박유천,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김수현과 같은 한류스타들과 연기하는 동안 나름의 기대감과 팬덤의 차이로 인한 상실감을 모두 겪었을 터라 왠지 그 속내가 짐작되는 발언이었다.

사실, 파이팅이 없는 그의 마무리 멘트는 꼬인 데 없는 청량함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때 그는 스스로의 외모를 “워낙 밋밋하다”고 평가했고 나는 그 지점이야말로 지금 최우식이 어필할 수 있는 무기라고 판단했다. 181cm의 큰 키에 날렵한 몸, 맑고 깨끗한 피부 톤에 쌍꺼풀 라인이 없는 깔끔하고 트렌디한 마스크가 어우러지고 나니 ‘시장에서 내 위치쯤은 내가 잘 안다’는 그의 현실적인 멘트도 최우식이라는 캐릭터의 이미지를 한층 여유롭게 해주는 시너지 효과로 작용했다. 이제 스물다섯, 캐나다에서 온 교포 출신 배우. 키이스트의 연습생으로 선발되어 한국에 온 최우식은 평탄한 데뷔를 한 배우계의 아이돌이었다. 어리고 귀엽고 재기도 있고 뭐 그럼 됐지. 그즈음, 구조대원의 일상을 그린 SBS <심장이 뛴다>에 출연 하던 그가 응급환자를 보고 새파랗게 질렸던 에피소드를 보면서 순진한 그를 조금씩 가늠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해 가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최우식이 주연한 <거인>을 봤다. 아, 그가 “앞으로는 조금 더 활동 영역을 넓혀갈 예정”이라며 인터뷰때 언급한 김태용 감독의 독립영화였다. 최우식은 보호 시설인 그룹 홈에서 생활하는 열일곱 살의 영재를 연기했다. 가족에게 무책임한 아버지 곁으로는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에, 소년은 주변 어른들뿐만 아니라 자신까지 속이며 절망의 나락에서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었다. 스크린을 가득 채운 클로즈업 샷에 흔들리는 영재의 눈빛이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스크린을 장악한 건 영화 전체를 삼킬 만큼 거대하게 커버린 ‘배우’였다. 객석에서 이내 관객들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잠깐. 내가 만난 최우식은 어디 갔지? 느긋하던 그가 완벽하게 연기해낸 그 절박함은 어디서 온 것일까. 급하게 김태용 감독을 불러 세워 흥분을 전했다. “우식이가 참 잘했죠”라는 김태용 감독도 최우식의 그런 ‘여유’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배우의 심리 상태를 벼랑 끝으로 몰아붙일 방법을 강구하느라 고심한 것 같았다. 최우식은 감독의 그런 자극을 재빨리 캐치하고 실행해내는 영리한 배우였다. <거인>은 신인배우 최우식의 에너지를 모두 담을 수 있는 절호의 작품이었다. 최우식은 그해 부산국제영화제가 처음 신설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하며 해피엔딩의 순간을 맞보았다.

 

솔직히 최우식에 대해 예찬을 하면서도 나는 아직 그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어놓지는 못하고 있다. 이후 영화 <빅매치>와 드라마 <오만과 편견>과 <호구의 사랑>까지 연달아, 쉬지 않고 매달렸지만 <거인>의 영재 같은 에너지의 총화를 뛰어넘는 연기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칫 트렌디한 장르로 소비될 것 같은 외형적 한계를 자각한 그는 다양한 시도로 그 지점을 돌파 중이다. 그는 영재처럼 끓어오르기도 하다가 호구처럼 순진해질 줄도 안다. 이런 시도들을 보면서 그가 굳이 ‘열정’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을 뿐, 실은 상당한 욕심쟁이에 노력파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20년 후 “조지 클루니의 주름이 가진 분위기를 낼 수 있는 남자가 되고 싶다”던 그의 소망을 떠올려본다. 강렬함으로 완성된 조지 클루니와 그는 확실히 다른 카테고리의 외모긴 하다. 하지만 정반대 지점에서 담백한 마스크로 그걸 채워가는 스타일이라 자꾸 궁금증이 생기는 배우다. 최우식이 자신이 가진 역량을 아낌없이 보여줄 작품을 조만간 만나길 바란다. 그때까지 놓치지 않고 내가 쭉 지켜봐주마.

 

글 |이화정(<씨네21>기자)

에드 시런,
멋지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덕통사고’란 말이 있다. 뜻밖에 일어난 교통사고처럼 어떤 일을 계기로 갑자기 어떤 대상에 집착하게 됨을 말하는 말인데, 내가 갑자기 이 가수 에드 시런을 주목하게 된 건 2015년 브릿 어워드 공연이었다. 그가 최우수 앨범상과 남자 솔로가수상을 탔음을 이미 알고 보는 거였는데, 그 동영상을 보고 좀 충격을 받았다. 거대한 브릿 어워드 무대에 혼자 서서 노래와 기타, 루프 스테이션으로 그 공간과 시간을 지배하는 에드 시런, 입을 딱 벌리고 볼 수밖에 없는 공연이었다. 그렇다, 나만 몰랐다, 에드 시런이 그렇게 라이브를 잘한다는 걸. 그가 받은 그래미 어워드와 브릿 어워드, 영국과 미국 차트에서 동시에 1위를 한 9명 중 하나, 83개국 아이튠즈 1위라는 기록도 내게는 데이터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 무대를 보기 전에는. 덕통사고의 순간.

알고 보니 영국 최고의 무대 중 하나인 웸블리 스타디움을 세번이나 매진시키고(무대에 혼자 서서) 그래미 시상식에서는 존 메이어, 허비 행콕과 잼을 하는가 하면(그런 선배들과!) 올해 한국 공연에서도 원맨쇼를 펼치며(난 왜 못 간 걸까) 많은 팬들을 감동시킨 남자, 에드 시런. 1991년생, 한국 나이로 스물다섯. 오오, 스물다섯, 재능 있고 젊은 이 뮤지션의 앞날엔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인가.

 

물론 이런 성공은 굴러들어온 것이 아니다. 네 살 때 이미 교회 성가대 활동을 시작한 그는 기타를 배우고 오디션에 참가하고 길거리 공연을 하며 실력을 차근차근 쌓았다. 열다섯 살 때 첫 EP를 발매하고 느닷없이 LA로 건너가 초청받지도 않은 오픈 마이크 무대를 돌아다니며 연주한 걸 보면 꽤나 패기도 있는 듯. 그런 노력의 결과, 이 폭풍 청년은 레이블도 마케팅도 없이 EP인 ‘No.5 Collaborations Project’를 아이튠즈 2위에 올려놓은 후, 메이저 레이블에서 2011년 싱글 <The A Team>, 앨범 <+>를 내놓으며 세계적 인기를 얻게 되고, 2014 년작 앨범 <X>으로 소포모어 징크스마저 던져버린다.

 

얼마 전 발표한 `Photograph’ 뮤직비디오에서 스타가 되기 전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성장 과정을 홈비디오로 편집한, 우리가 돌잔치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바로 그런 영상인데, 큰 차이가 있다면 마지막엔 주인공이 큰 무대에 올라 관객의 환호를 받는 걸로 끝난다는 것. 그중 나의 ‘이모 마음’을 자극한 건 소년 에드가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는 장면이었다. 겁먹은 표정으로 주위를 불안하게 둘러보며 연주하는 한 소년. 전 세계로 중계되는 초대형 무대에서 기타 한 대로 청중을 사로잡는 에드 시런도 처음엔 이런 시절을 거쳤다! 길 위에서 몇 백 회의 공연을 반복하며 세상의 관객과 부딪친 경험이 지금
의 파워를, 지금의 담력을, 지금의 능숙함을 만든 것
이다.

혹시 당신이 아직 에드 시런의 얼굴을 모르는 독자라면 지금 여기까지 읽고 ‘아, 최강의 사기 캐릭터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니까, 미리 고백한다, 에드 시런은 우리가 머릿속에 떠올리는 보편적인 팝스타의 외모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걸. 사실 난 (어렸을 때 친구들에게 Teddy로 불렸다는) 그의 곰돌이 외모를 처음 접하고 ‘얘가 그렇게 인기가 있어?’라고 생각했음을. 왠지 내겐 햇감자를 떠올리게 하는 외모랄까. 하지만 그의 흡인력 넘치는 라이브를 보고 있노라면 갑자기 그가 귀여워지고 멋져 보이는 환각을 경험하게 된다. 지미 팰런의 투나잇 쇼에 소개된 어느 한국 팬도 나랑 똑같은 생각을 했음이 틀림없다. 에드 시런이 직접 소개한 편지에서 그 팬은 “당신은 조금 못생겼지만 사랑합니다”라고 고백인지 디스인지 모를 글을 썼다.

그러나 우린 항상 완전체를 사랑하진 않는다. 미끈한 외모나 록스타의 터프함을 가진 건 아니지만 에드 시런을 사랑할 이
유, 그가 앞으로도 흥할 거라고 예측할 이유는 충분하다. 마음을 붙드는 목소리, 동료 가수에게도 소문난 송 라이팅 실력,
빼어난 기타 솜씨, 수준급은 아니지만 랩도 하고 뮤직비디오에서 춤을 추는 용기까지. 우리는 데미안 라이스와 에미넴에게서 동시에 영향을 받은 새로운 가수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작은 키에 말을 더듬는 이상한 주황색 머리의 꼬마’는 지금도 계속 커가고 있다.

스물다섯. 난 그 나이를 ‘무엇이든 저지를 수 있는 나이’로 정의한다. 궁금한 것,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을 모두 욕망해도 좋을 나이. 물론 실패는 존재한다. 자다가 이불을 걷어차고 싶을 만큼 소모적인 연애, 인생을 걸었지만 나를 배신한 직장
같이. 하지만 스물다섯엔 실패해도 된다. 다시 원점으로 돌릴 수 있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대신 좀 멀리 돌아가더라도 충분한 시간이 있다. 내가 택한 길이 틀리다면 과감히 접고 다른 길로 떠나도 된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지만 내 안 에 있는 능력을 믿으면 그 실패들은 사라지지 않고 견고한 벽돌이 되어 미래의 나를 만든다. 난 이 인생의 비밀을 알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에드 시런은 이미 그걸 체화한 것 같다. 아주 좋은 선배와 친구들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를 투나잇 쇼에 초대한 지미 팰런은 어린 에드 시런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한다. “이 아이는 커서 웸블리를 매진시킵니다.” 2015년 에드 시런의 사진을 보며 10년 뒤 우리는 무엇을 말하게 될까. 몹시 궁금할 따름이다.

 

글|이지영(오디오 피디)

청춘의 증명,
랩몬스터

솔직히 말하면 랩몬스터는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외계인처럼 마르고 긴 팔다리를 가진 남자들? 태어나서 한 번도 관심 가져본 적이 없다. 그들은 지구가 아니라 ‘화성’이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가야 마땅하다. 처음에 힙합 아이돌 콘셉트로 나온 방탄소년단에 조금 관심을 둔 적이 있지만 그들이 ‘여자는’ 최고의 선물이야 진짜 내 소원은 너뿐이야’라고 노래 부르자 나 혼자 굿바이 인사를 했다. 30대 여자가 (오글거리지 않는) 온전한 몸 상태로 들을 수 있는 가사는 아니었다. 그러기엔 난 이미 세상이 얼마나 더럽고 짜증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생각이 바뀐 건 3월 20일부터다. 3월 20일은 랩몬스터가 믹스테이프 을 발표한 날이다. 랩몬스터의 ‘Do You’를 듣고는 충격에 빠졌다. 메트로놈 소리에 맞춰 시간에 쫓기듯 할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그는 비트와 가사 간의 속도를 맞추면서 갑자기 느긋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비트 위를 따라가는 단어와 문장은 침도 뱉었다가 숨을 삼키기도 했다. 힙합을 ‘주관의 리듬’이라 믿는 나에게 그의 플로는 섹시함 그 자체였다. 그는 미친 듯이 뛰어가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저기, 잠깐 내 말 좀 들어볼래?” 나도 모르게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가사에는 아직 치기 어린 면이 있었지만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트랙을 고르는 안목, 그 지겨운 사랑 타령 말고 자신만의 랩을 할 줄 아는 두려움 섞인 확신, 식상하기 그지없는 울고 짜는 뮤직비디오를 안 찍었다는 개척 정신에 믹스테이프를 주의 깊게 들어볼 수 있었다. 덕분에,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표현인 ‘fashion은 곧 passion 한국말로 쓰면 똑같아 패션’이란 구절도 눈 질끈 감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는 믹스테이프 에서 나스, 에미넴에서 영향 받은 자신의 근원과 아이돌로서 힙합이란 장르로 인정받고 싶은 모순을 모두 드러냈다. ‘회사 갔더니 병신 다 됐다며’라고 말하질 않나, ‘아이돌인지 아티스트인지 사실 중요한 적 없었지 니들이 날 보는 시선, 그게 나일 뿐이었었지 타이틀에 연연하고 수식어에 목맸네’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른 곡을 비슷하게 흉내 냈던 실수와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까다로운 시선도 다 드러냈다. 멋있는 척하기를 그만두고 오류 섞인 자신의 열정을 솔직하게 얘기하자 그가 진짜 멋있어진 것이다. 자신만의 얘기를 하는 사람은 누구나 추앙받을 가치가 있다. 그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 음악은 저 자신이죠. 제가 가진 내면의 어두움, 고민, 욕망, 추악함 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제 음악이에요.” 랩몬스터에 대한 응원은 ‘재능 있는 자의 재능을 썩히는 건 지구 전체로 보면 마이너스다’라는 인류애적 생각에서 출발했지만 젊음에 대한 어떤 특별한 가치 부여로 이어졌다.

 

그는 아이돌 산업이라는 경계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정의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여 믹스테이프를 발매했다. 1994년생, 겨우 스물두 살이다. 20대 초반에 과연자신이 속한 세계를 흔들거나 바꾸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 얼마나 있던가? 그러니까 이건 우리의 젊은 날에 대한 게으른 반성, 세상의 중심이 새로운 세대인 그들로 이동했다는 질투 섞인 시선이 섞여 있는 복잡한 응원이다. 그는 지금 젊은이들이 머리 쥐어뜯고 하는 고민을 아이돌과 래퍼, 엔터테이너로서 가진 자신의 복잡한 층위를 통해 대신 보여주고 있다. 지금의 세대 전체에 대한 어떤 가능성이기 때문에 두 손 두 팔 벌려 응원하는 거다. 설사 그들이 쾌유하라는 의미의 ‘빨리 나아요’를 ‘빨리 낳아요’라고 쓴다 해도 말이다.

글|나지언(칼럼니스트)

성숙한 미완성,
유승호

 

언젠가 만화가 천계영이 트위터에 이런 얘기를 쓴 적이 있다. “어떻게 그 나이에 아이돌을 좋아할 수 있냐고 주변에서 놀라워한다. 그런 얘기 들으면 내가 더 깜짝 놀라는 게… 아이돌을 무릎 연골로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늙은 게 무슨 상관이여…” 실로 옳은 말씀이다. 남자는 무릎 연골이 아니라 취향으로 좋아하는 것이다. 일평생 순정 만화형 미남에겐 영 관심이 없는 나는 꼬꼬마 시절부터 고기를 잘 씹을 것 같은 강인한 턱과 탄탄한 생활근육(헬스클럽이 아니라 일상에서 힘쓰는 일을 하다 생긴 근육), 이글이글 레이저 눈빛의 소유자들에게 마음을 빼앗기곤 했다.

이 유구한 취향은 현재까지 이어져 나는 본의 아니게 요즘 ‘대세’라는 10~20대 남자 연예인에게 별 흥미를 못 느끼는 사람
이 됐다. 고독하다. 내 눈에는 다들 너무 말랐거나 너무 턱이 뾰족하고, 멋있다기보다는 ‘멋있음’을 흉내 내는 남자들뿐이다. 최악은 ‘누난 너무 예뻐’류의 당돌한 연하남 제스처를 일삼는 부류. ‘이렇게 하면 누나들이 심쿵하겠지?’라는 영악한 계산이 읽힐 때마다 “죄송하지만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라며 사양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 2009년이었나, 드라마 <선덕여왕> 34회(너무 인상적이어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에서 김춘추 역으로 첫 등장한 배우 유승호였다.

 

이 역사적 34회는 마침내 서라벌에 도착한 김춘추의 살인미소와 함께 끝났는데, 정지화면이 된 미소 위로 엔딩 크레딧 올라가는 동안 전국의 누나들이 심장을 움켜쥐고 신음하는 소리가 환청으로 들리는 듯했다. 저 번듯하고 서늘하게 생긴 청소년이 정녕 영화 <집으로>의 그 프라이드 치킨 마니아란 말인가! 장하다! 참으로 흐뭇하게 잘 자라주었구나! 감탄하다 문득 기분이 이상해졌다. 10대 소년의 눈빛에 가슴이 두근거리다니… 오해예요! 저는 그러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인지 부조화는 그 이후에도 계속됐다. 드라마와 영화로 착실히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던 유승호는 지난 2013년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비밀리에 육군에 자원 입대했다. 머리를 빡빡 깎고 훈련복을 입은 모습을 방송으로 봤는데, 오랜만에 <선덕여왕> 때의 그 누나들이 단체로 통곡하는 환청이 다시 들리는 듯했다. 왜 벌써 가니! 군대 다녀오면 예쁜 얼굴 다 망가질 텐데!(이런 마음은 여자들만 느끼는 게 아닌 모양인지, 그와 함께 군복무를 했다는 남자들이 각종 게시판에 남긴 ‘유승호 군대썰’에도 “훈련 받고 머리 떡져서 밥 먹는 거 보면 같은 남잔데도 내 마음이 다 짠했다”는 증언이 빠지지 않는다.) 소속사가 밝힌 유승호의 입대 이유는 짧고 담담했다. “또래 친구들과 비슷한 시기에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본인의 결정이다. 대학교에 진학하더라도 대부분 2학년 즈음 군대에 가지않나.” 그제야 전 국민이 성장 과정을 지켜본 이 예쁘장한 청년에 대해 실은 우리가 아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춘 적도 별로 없고, 대사를 하지 않을 땐 어떤 투로 말하는지 제대로 들은 기억도 없다. 한 인터
뷰에서 ‘대학에 가지 않은 걸 후회하진 않느냐’는 질문에 유승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대학에 가려는 건 학위가 필요해
서고, 대학이 저를 받아준다면 제가 유명해서라고 생각합니다. 대학 졸업장을 받기 위해 다른 친구들의 기회를 빼앗고 싶
진 않습니다. 현장에서 배우는 게 더 많으니까요. ”

‘모성애 자극’이 콘셉트인 남자에겐 무덤덤할 수 있어도,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아이나 힘들수록 활짝 웃는 남자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모성애가 ‘밀어서 잠금해제’ 되고 만다. 유승호는 자기가 얼마나 예쁜지 잘 모르거나 알아도 개의치 않는 사
람 같다.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왔지만 여전히 선이 가늘고 앳된 얼굴. 조금 먼 곳을 쳐다보면 금세 처연해지는 눈빛. 20대 초반이어서가 아니라 ‘20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남자.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이 아직 완성형이 아니라는 근사한 기대감. 유승호의 30대와 40대가 기대된다. 그러니 부디앞으로도 쭉 잘 자라주시오.

 

글 | 신윤영(<싱글즈> 피처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