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회의 거대한 모순과 거기 휩쓸린 평범한 인생은 <인생> <허삼관 매혈기>를 쓴 작가 위화의 중요한 관심사다. 최근 출간된 논픽션에서 그는 어느 때보다도 과감한 직설법을 시도했다. 현실에 대한 날 선 비판처럼 시작하지만 결국은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귀결되는 이야기다. 이 치열하고 우직한 예술가의 소설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문제를 직설적으로꼬집는 위화의 새 책은여전히 본토에서 출간되지못하고 있다.“그래도 해외 여러 나라에는이미 소개가 됐잖아요.별다른 압력이 들어오지 않는걸 보면 중국 사회가꽤 발전했구나 싶어요.”

중국의 문제를 직설적으로
꼬집는 위화의 새 책은
여전히 본토에서 출간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해외 여러 나라에는
이미 소개가 됐잖아요.
별다른 압력이 들어오지 않는
걸 보면 중국 사회가
꽤 발전했구나 싶어요.”

어떤 소설들은 백일몽 같다. 몇백 페이지를 읽고 난 뒤에도 잠깐의 환상을 겪은 것처럼 몽롱하다. 그렇다면 위화의 장편은? 정반대라고 해야 할 거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는 하나의 인생을 느리고 지독하게 살아낸 듯한 기분이 된다. 우직하고 담백한 문장들은 독자의 코끝에 텁텁한 흙 냄새를 끼얹고 만다. 장이모우가 영화로도 옮긴 <인생>의 푸구이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시대의 변화를 겪는 인물이다. <허삼관 매혈기>는 곤궁할 때마다 병원에 피를 팔아 길고 가느다란 삶을 이어가는 남자를 그린다. 그리고 배다른 형제인 이강두와 송강은 <형제>에서 중국의 현대사를 신랄하게 비추는 거울이 된다. 모든 픽션은 어떻게든 현실을 반영하기 마련이지만, 위화의 글에서는 그 밀도가 특히 높다. 소설가가 정한 약속 장소는 베이징의 여우이호텔이었다. 다소 요란하게 꾸민 건물 내의 카페에서 위화가 뜨거운 차를 한 모금 넘겼다. “기자들은 거의 여기서 만납니다. 일단 집과 가까워요. 사진 찍기에도 괜찮을 것 같고. 우리 집은 볼 것도 없고 지저분하거든요.” 선해 보이는 미소가 카랑카랑한 목소리 뒤를 따른다.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는 친절하고 수더분했다. 뭔가 추어올리는 말이라도 하면 손을 내젓듯 “아아, 그런 게 아니라…” 이러면서 대화를 돌렸다. 그렇다고 그가 수줍은 표정으로만 일관하는 사람은 아니다. 현재 중국이 앓고 있는 문제를 짚을 때면 위화의 펜은 예리한 창이 된다. 최근 한국에도 소개된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이하 <사람의 목소리는…>)는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직설이다. 그런데 정작 본토에서는 2010년 작인 이 책이 아직도 정식 출간되지 못하고 있다. “첫 장부터 천안문 사건을 언급하거든요.” 어쩔 수 없다는 투의 설명이다. 천안문 사건이 발생한 1989년 6월 4일은 중국의 인터넷상에서 금지된 날짜다. 그래서 사람들은 5월 35일이라는 가상의 날짜를 만들어 이날을 기념한다. 위화는 <사람의 목소리는…>이 문제를 에두르지 않고 겨냥하는 ‘6월 4일식’ 글쓰기라고 했다. 물론 직격탄을 날린 뒤에는 다시 소설로 돌아가 ‘5월 35일식’ 글쓰기의 자유를 누리는 중이다. 문학도 현실의 삶에 관한 발언이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 그의 작품은 매번 중국의 역사를 단단하게 껴안는다. “쓰는 것 말고 또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나라를 조금씩이나마 바꾸어가고 싶다는 바람은 위화가 펜을 드는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중국 밖의 독자들에게도 절절한 이야기의 힘은 충분히 유효한 듯하다. 정직하게 묘사된 생의 기쁨과 슬픔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이기 때문이다. 위화의 소설에서는 소박한 희극과 묵직한 비극이 고단하게 교차한다. 인생이 봉우리만으로, 혹은 골짜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위화의 작업 공간을 직접 구경하고 싶었는데 기대가 꺾여서 안타깝다. 그러니 질문으로라도 대신하려고 한다. 어떤 곳에서 소설을 쓰나? 글을 쓸 때 반드시 고집하는 환경이 있나?
집이 지저분하기 때문에 그곳으로는 못 부른다. 청소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니까. 그리고 집이 너무 깨끗하면 작업이 안 된다(웃음). 그 외 별다른 건 없다. 나만을 위한 공간이 있고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그런 상태라면 글은 얼마든 쓸 수 있다. 사실 요즘은 잠 때문에 곤란을 겪는 중이다. 늘 1시간만 더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침대에 누워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밤이 되어있는 거다. 이렇다 보니 작업 속도가 별로 높지 않다.

헤밍웨이는 전날 밤 술을 잔뜩 마셨더라도 반드시 아침 9시에는 일어나 글을 썼다고 한다. 위화의 작업 방식은 전혀 다른 모양이다.
내게는 아무런 규칙이 없다. 아침에 쓰고 싶으면 아침에, 저녁에 쓰고 싶으면 저녁에 쓴다. 뭐 작가가 기계도 아니고… 난 그런 사람들 보면 존경스럽다.

항저우와 베이징을 수시로 옮겨 다니며 생활한다. 둘 중 글이 더 잘 써지는 곳은 어느 쪽인가?
일은 베이징에서 더 많이 한다. 본가가 있는 항저우는 날씨 좋은 봄가을에 한두 달씩 머무른다. 거기서는 주로 단편이나 외신들이 청탁한, 본토에서는 발표되지 않는 글을 쓴다. 예를 들어 올 초 항저우에서는 <타임>지에 실릴 짧은 에세이를 썼다. 미국으로 <사람의 목소리는…> 홍보 여행을 떠난 작년 가을에는 일정을 소화하는 틈틈이 <뉴욕 타임스> 등에 원고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장편 소설은 반드시 베이징에서 작업해야 한다.

외신에서는 주로 어떤 글을 청탁하나? 중국에 관한 칼럼이 많다.
<타임>은 중국 특집을 준비하면서 내게 현 세태를 종합적으로 아우르는 글을 의뢰했다.

<사람의 목소리는…>은 유럽과 미국, 대만, 한국 등 해외에서만 출간됐다. 본토에서 정식으로 소개되지 못하는 이유는 뭔가?
첫 장인 ‘인민’부터가 천안문 사건을 언급한다. 중국 내에서 출간할 경우, 그 부분을 삭제하는 건 물론이고 다른 장도 수정해야 한다. 그래서 포기했다.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인데도 표현의 자유를 크게 제약받고 있는 셈이다. 중국에서 소설가로 살아가는데 갑갑함을 끼지는 않나?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솔직하게 피력해야 하는 직업이다.
꼭 그렇진 않다. 정부에서는 내가 뭘 쓰고 있는지 잘 모를걸? 첫 장을 쓸 때 <사람의 목소리는…>이 대륙에서는 출판되지 못하리라는 걸 이미 예상했다. 그러면서도 쓴 거다. 그리고 중국 작가는 본토에서 책 낼 길이 막힐 경우 대만에서 시도하면 된다. 해적판도 워낙 많지 않나? 저작권 침해는 맞지만 아무튼 독자들에게 읽힐 방법은 있는 셈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해적판을 나쁘게만 볼 일도 아니다. 대만에서 이미 책이 나왔으니 원고를 슬쩍 보여달라고 부탁해오는 친구들도 있다. “이거 너희들만 봐야 한다. 언젠가 본토에서도 발표할 날이 올 텐데 그때 나도 인세를 좀 챙겨야 하지 않겠냐.” 이러면서 건네주긴 했는데 아무래도 그 친구들이 각자의 친구들에게 또 넘긴 것 같다(웃음). 너무 퍼져나가서 통제가 안 된다.

중국의 모순에 대해 꾸준히 지적해왔으며 이 책 역시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지금 현재 중국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나?
문제가 너무 많은 게 문제다.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건 천안문 사건이다. 경제 개혁에 맞춰 정치적으로도 변화가 모색되던 시기였는데 이 사건 이후로 열정이 꺾여버렸다. 결국 정치에 대한 반성이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만 발전하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불거지게 됐다. 대표적인 세 가지로는 빈부 격차의 심화, 부패 그리고 환경 오염을 꼽겠다. 지난 10~20년간 중국에서 발생한 오염의 정도는 유럽 산업 혁명100~200년의 세월과 맞먹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해결하려면 정치 개혁이 필수인데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최근 2년 새 중국에서는 ‘웨이원(維穩: 안정유지)’이란 신조어가 자주 쓰인다. 각지에서 폭동이 엄청나게 일어나고 있지만 중국 정부는 현상 유지에만 힘을 쏟는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종종 법보다도 우선한다. 갈등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형제> 출간 당시, 중국 사회의 거대한 병폐에 책임감을 느끼며 총체적으로 병든 사회에서 본인 역시 한 사람의 병자처럼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소설가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일은 뭘까?
글 쓰는 것 외에 또 뭐가 있겠나? 친구들은 왜 외국 언론에만 글을 싣느냐고도 묻는다. 물론 나도 예전에는 중국 매체에 기고했다. 그런데 인쇄된 뒤 확인하면 글이 완전히 달라져 있는 거다. 물론 작가 한 명이 중국 전체를 바꾼다는 건 말이 안된다. 내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 그래도 내가 발견한 것들로 사회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을 약간은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사회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이 변하면 그에 따라 사회도 바뀌기 마련이다. 이 모든 과정이 아주 길고, 어쩌면 허무한 여정이 되겠지만.

첫 직장은 치과였는데 몸이 편한 일을 하고 싶어서 소설가로 전직했다. 출발은 농담 같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을 거다. 결정적인 계기를 던져 준 작업이 있나?
내게 대단한 사명감은 없다. 그냥 어떤 글을 쓰든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음에 안들면 발표를 못할 테니까. 작가로서의 태도를 극적으로 바꾸어 놓은 작업도 없다. 작가의 변화는 더디 진행된다. 그리고 작품보다는 일상을 통해 바뀌어간다. 중국 사회에 대한 내 비판의 강도가 점점 세진다는 걸 스스로도 느낀다. <형제> 출간 당시 미국과 유럽의 평론가들은 이런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중국 본토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했다. <사람의 목소리를…>에 대해서도 비슷한 말을 한다. 그럴 때마다 좀 부끄럽긴 하다. 난 그다지 용감한사람이 아니다. 류 사오보나 아이 웨이웨이 같은 이들도 있는데(웃음). 아무튼 본토에서는 아니지만 <사람의 목소리를…>이 해외 여러 나라에서 발표됐는데 별다른 압력이 들어오지 않는 걸 보면 중국 사회도 발전하지 않았나 싶다. 정부가 나 같은 작가를 좋아할 리 없지만 아무튼 용인해주고 있는 셈이니까.

문화대혁명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스무 살이 넘어서야 제대로 된 독서가 허락됐다. 좀 더 일찍부터 다양한 책을 읽었더라면? 어쩌면 지금과는 다른 개성을 지닌 소설가가 될 수도 있었을까?
다 운명이다. 이제와서 그런 가정을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나.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딱 두 사람, 루쉰과 마오쩌둥의 글만 허락됐다. 가끔 다른책을 운 좋게 손에 넣더라도 앞이나 중간, 혹은 뒷부분이 찢겨있기 일쑤였다. 그나마 앞이 없는 경우는 괜찮다. 결말이 끊기면 궁금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뒷부분이 딱 끊겨서 어린 위화를 괴롭혔던 책은 어떤 작품이었나?
언젠가는 앞부분도, 뒷부분도 없이 중간만 남아있던 프랑스 소설을 얻었다.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릴 때마다 혹시라도 들킬까 가슴을 졸이며 읽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나 1980년대를 맞았다. 우연히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을 읽게 됐는데 옛 기억이 떠오르는 거다. ‘아, 이거 그때 내가 본 소설이잖아!’ 그제야 비로소 결말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떤 시대에서 자라든, 그 시대는 각각의 방식대로 사람의 성장을 돕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뚝 잘린 후반부가 너무 궁금해서 밤에 누워 나만의 결말을 수십 가지씩 그려보곤 했다. 13~14세 무렵 나는 그렇게 문학가로서의 상상력을 훈련한 것 아닐까?

<인생> <허삼관 매혈기> <형제>는 모두 문화대혁명을 주요 배경으로 등장시킨 작품이다. 다음 장편도 마찬가지일까?
물론이다. 내 성장의 기억이 깃든 시기니까.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시작해 고등학교를 마친 뒤에야 끝난 게 문화대혁명이다. 작가든 아니든 성장기의 경험은 한 사람의 인생에 막강한 영향을 미친다.

한때는 소설 속 인물들을 완벽하게 통제하려고 했지만, 언젠가부터 캐릭터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걸 깨닫고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껏 쓴 인물 중 특히 목소리가 요란했던 건 누구였나?
<형제>의 이광두. 캐릭터 자체가 워낙 시끄럽다. <허삼관 매혈기>의 허삼관이 바이올린이고, <인생>의 푸구이가 피아노라면 이광두는 교향악단 같은 녀석이다. 레퍼토리도 베토벤보다는 메시앙이다.

대단하거나 거창한 성과를 이루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는 법이 없다. 삶에 끊임없이 치이고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도 어떻게든 일어나 걸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다. 이런 인물을 줄기차게 파고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나부터가 대단한 사람이 못 되니까. 나의 부모님도 그랬고 내 주변 사람도 다 그렇다. 나는 내가 잘 알고 있는, 나와 닮은 사람에 대해서만 쓸 수 있는 작가다.

또한 그 인물들의 삶은 대체로 지난하다. 구불구불한 일대기의 장편을 마치고 나면, 작가는 어떤 기분이 드나? 확 늙어버린 심정이 아닐까 짐작된다.
늙어버린 기분이라기 보다는 좀 모순된 감정에 사로잡힌다. 글을 쓰는 과정은 대단히 고되고 더디기 때문에 집필 내내 빨리 끝내버리고 싶다는 생각만 한다. 그런데 막상 마지막 마침표를 찍고 나면 허무함이 밀려드는 거다. 하루아침에 실직해버린 느낌이다.

<형제>가 2005년 작이었으니 출간 이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형제>도 <허삼관 매혈기> 이후 10년 만에 출간된 장편이었다. 다음 소설은언제쯤 볼 수 있을까? 이번에도 10년을 채우게 될까?
차기작은 이미 몇 년째 집필 중이다. 그런데 이름이 알려지고 나면 글 쓰는 것 외의 일이 많아진다. 물론 대부분은 거절하는 편이다. 부르는 곳마다 쫓아 다니다가는 장편에 쏟아야 할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사실 책을 마치고 나면 몸도 마음도 텅 비어버린다. 기운을 추스르기 위해 1~2년 정도는 쉬어야 한다. 그런데 휴식을 취한 뒤 2~3년째부터 이제 글을 좀 써볼까… 하면 해외 번역판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외국 에이전시들의 초청이 이어지는 건 당연하다.

가끔은 생각이 딱 막혀서 한 문장도 쓰지 못하는 순간을 겪을 거다. 당신 같은 작가는 이런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나?
그런 경우야 흔하다. 사실 매일 겪는 것 같다. 이겨내는 방법은 딱 한 가지, 계속 쓰는 거다. 그런데 지금의 가장 곤란한 문제는 아이디어 고갈이 아니다. 글은 잘 쓰고 있는데 부수적인 요청이 방해를 한다.

장편이 워낙 유명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위화의 단편도 무척 좋아한다. 특히 섬세한 심리 묘사와 장르적 실험이 눈에 띄었던 <무더운 여름>을 읽을 때는 작가의 미처 몰랐던 표정을 본 기분이었다. 장편과 단편이 위화에게는 각각 어떻게 다른 작업인가?
글쎄, 단편은 그냥 일이다. 며칠, 길어도 일주일이면 완성할 수 있다. 미리 설계도를 그려 놓고 그 계획된 바를 원고로 옮긴다. 그런데 장편은 다르다. 내가 다 통제할 수가 없다. 쓰는 동안에도 수시로 방향을 바꾸고 제 의지대로 달려간다.

더 선호하는 작업을 골라낼 수 있나?
장편을 쓰는 것. 단편이 일이라면 내게 장편은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