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색조 장기용의 연기 서사
화제성 측면에서 <선재 업고 튀어>에 밀리고 말았지만,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은 그에 못지않은 스토리와 완성도로 뛰어난 몰입도를 자랑했습니다. 꽉 찬 ‘해피 엔딩’으로 속 시원한 결말을 맞이한 드라마의 결실 중 하나는 ‘군백기’ 이후 한껏 물오를 대로 오른 연기력으로 “나 아직 죽지 않았음”을 보여준 배우 장기용의 열연. 인상적 악역으로 등장한 <나의 아저씨>를 시작으로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간 떨어지는 동거>, <새콤달콤> 등에서 보여준 ‘스위트 가이’로서의 면모, <나쁜 녀석들: 더 무비>에서의 과감한 액션, 그리고 <히어로를 아닙니다만>의 신비로운 초능력까지, 스크린을 통해 공든 연기 탑을 쌓아온 배우 천우희의 카운터 파트너로서도 전혀 손색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의 팔색조 매력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대표작을 모아봤어요.
<나의 아저씨>, 이광일, 2018년
2024년에도 다시 보기 하는 사람 여기 손? 생각날 때마다 돌려보는 명작 <나의 아저씨>는 배우 이지은(아이유)과 장기용의 재발견으로 불러도 좋을 작품인데요, 극 중 이지은은 할머니와 홀로 남겨진 채 부모가 남긴 사채 빚을 허덕이면서 갚는 처절한 젊음 이지안을 연기합니다. 장기용은 그런 이지안을 괴롭히던 사채 업자의 아들 이광일로 폭행도 대물림 된다는 사실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유년기가 소실된 어른으로 성장해 어디에 쏟아내야 할지 알 수 없는 분노를 간직한 밑바닥 영혼을 열연합니다. 이지안을 괴롭힐 때의 이광일은 너무도 악랄해서 연기인 줄 알면서도 제발 그만하라 붙들고 싶고, 그러면서도 안쓰러워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해요. 쌍꺼풀이 없는 장기용의 처연한 얼굴은 특유의 깊이 있는 눈빛과 반항적인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는데, <나의 아저씨>를 통해 어떻게 그의 얼굴을 써야 효과적일지 완벽하게 알려 준 듯 합니다.
<간 떨어지는 동거>, 신우여, 2021년
<나의 아저씨> 이후 장기용은 <이리와 안아줘>, <킬잇>,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등에서 ‘주연 배우’로 거듭납니다. 이와 동시에 여자 마음을 혹하게 하는 츤데레 매력을 여과없이 드러내면서 차세대 로맨스 기대주로 안착해요. <간 떨어지는 동거>에서 장기용은 무려 999살 먹은 젠틀남 아니 젠틀한 구미호로 등장합니다. 극 중 22살인 연인 혜리(이담 역할)에게 ‘어르신’이라 불리는 그는 드라마가 흘러가는 내내 진지한 얼굴일 때가 많은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이 같은 진지한 면모 덕분에 구미호 캐릭터의 농도 조절에 성공한 듯 보여요. 연인에게는 한없이 다정하고 달콤해 설렘을 느끼게 하고,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광폭한 상황에서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니까요. 장기용 하면 떠오르는 차분한 목소리 또한, 코믹과 멜로가 결합한 드라마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듯합니다. 과잉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선을 지킴으로써 보는 이들이 캐릭터에 집중하고, 감화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배우 장기용의 특기 같아요.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복귀주, 2024
앞서 이야기했듯이 배우 장기용의 군백기 복귀작. 그는 대대로 초능력을 갖고 태어나는 복씨 가문의 막내 아들 복귀주 역할을 맡았어요. 복귀주는 타입 슬립 능력을 타고났으나 안타까운 과거사로 인해 현재는 초능력을 상실한 채, 매일 술독에 빠져 사는 우울증 환자를 연기합니다. 불행한 과거를 지키고 싶어 끊임없이 과거로 돌아가 보지만, 결국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좌절감은 복귀주를 불행하게 하고, 타고난 능력마저 ‘저주’처럼 여기게 해 현재를 사는 일을 어렵게 합니다. 발목을 붙잡는 사연과 싸우면서도 딸인 복이나를 나름의 서툰 방식으로 사랑하는 복귀주의 내밀한 감정선은 배우 장기용을 통해 섬세하게 표현되면서 ‘호평’을 얻었는데요, 그의 중저음 목소리는 이번에도 매력 ‘치트 키’로 캐릭터의 매력을 배가합니다. 단 하나, 복귀주의 리프 컷만큼은 잘생긴 외모를 가리는 무모한 도전 같아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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